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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 EP.02】 두려움이 길을 막을 때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조금 더 공부하고 나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아이들이 크고 나면. 이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돈이 좀 더 모이면.그 '조금'과 '나면'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몇 년이 지나 있다. 하고 싶었던 것은 여전히 하지 못한 채로.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 같은 사람이 감히."단테도 그랬다.지옥의 입구 앞에서, 스승 베르길리우스가 말했다."자, 이제 가야 한다."그러자 단테가 멈춰 섰다.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하지만 왜 제가 가야 합니까. 아이네아스도 아니고, 바울도 아닌 제가. 그런 여행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신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간적인 순간 중 하나다. 위대한 서사시의 주인공이, 첫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

【단테의 신곡 | EP.01】 숲 속에서 길을 잃다

어느 날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출근길 지하철 안도 아니고, 회의실 한가운데도 아니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저녁, 밥을 먹다가, 혹은 샤워를 하다가 — 갑자기 이런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목표를 이뤘는데도 허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뭔가 틀렸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감각. 지도는 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느낌.단테는 이 감각을 700년 전에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다."인생 여정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신곡의 첫 세 줄이다.장엄한 서사시의 시작치고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번개도 없고, 신의 음성도 없다. 그냥 — 숲 속에 있었다. ..

「권력의 지도」 6화 : 권력 이전의 세계

권력 이전의 세계 — 수렵채집 사회에서 왜 권력이 생겨났는가지금으로부터 약 1만 2000년 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수렵채집인이었습니다.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쫓고, 열매를 따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이동했습니다. 20명에서 50명 사이의 작은 무리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성벽도 없었고, 왕도 없었고, 세금도 없었고, 군대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 하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그렇다면 이 사회는 혼란스러웠을까요. 약자가 강자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세계였을까요.놀랍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인류학자들이 20세기까지 남아있던 수렵채집 사회들을 연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아마존 열대우림의 피라하족, 필리핀 밀림의 아에타족 ..

EP.04 두 강 사이의 문명 — 바빌론, 칼데아, 그리고 신비한 수메르인의 나라

두 강 사이의 문명 — 바빌론, 칼데아, 그리고 신비한 수메르인의 나라기원전 3000년경,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평원.두 강이 만들어낸 기름진 충적 평야 위에 인류 최초의 도시들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르, 우루크, 니푸르, 라가시. 진흙 벽돌로 쌓아 올린 이 도시들의 중심에는 하늘을 향해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거대한 탑이 서 있습니다. 지구라트(Ziggurat).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머무는 산.사막과 평원 사이,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땅에서 인류는 최초의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최초의 법전을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서사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과 함께, 독자적이고 강렬한 예술의 세계를 창조했습니다.반 룬은 메소포타미아를 논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이집트와 메소포타..

카라얀, 완벽이라는 이름의 삶 — 네 번째 이야기

제4편 | 베를린 필하모닉의 황제황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카라얀은 35년에 걸쳐 베를린 필하모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카라얀을 통해 20세기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그 35년 안에는 영광과 공포와 애증이 함께 있었다.1955년, 왕좌에 앉다1955년 봄,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마흔일곱 살.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울름의 초라한 오페라단에서 시작하여, 아헨의 음악감독을 거쳐, 나치 입당과 전후 활동 금지를 통과하고, 월터 레그와의 협업으로 국제 음반 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끝에 도달한 자리였다. 그것은 단순한 직함이 아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는 당시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리 중 하나였다.카라얀은 그 자리에 ..

EP.03 나일강의 영원 — 고대 이집트 예술, 죽음을 위한 아름다움

나일강의 영원 — 고대 이집트 예술, 죽음을 위한 아름다움기원전 2560년경, 이집트 기자 고원.수만 명의 사람들이 태양 아래 움직이고 있습니다. 채석장에서 잘라낸 2.5톤짜리 석회암 블록들이 썰매와 밧줄로 끌려옵니다. 구리 끌로 돌을 다듬는 소리, 감독관의 호령 소리, 인부들의 숨소리가 뒤섞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이 거대한 작업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한 사람의 죽음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파라오 쿠푸의 대피라미드. 높이 146미터, 밑변 230미터. 230만 개의 돌블록으로 이루어진 이 구조물은 완공 후 3,800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19세기에 파리에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이집트인들은 이토록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죽음에 쏟아부었을까요?반 룬은 답합..

「권력의 지도」 5화 : 정치 권력이란 무엇인가

정치 권력이란 무엇인가 — 영토·행정·법의 집중화, 국가란 무엇인가1648년 10월, 유럽의 외교관들이 베스트팔렌이라는 작은 도시에 모였습니다.30년 전쟁의 끝을 선언하는 조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약은 단순히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선언했습니다. 각 국가는 자국 영토 안에서 최고 권력을 가지며, 다른 나라는 그 내부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 — 이것이 바로 주권(sovereignty)의 원칙입니다.그 순간부터 세계는 달라졌습니다. 교황도, 황제도, 어떤 보편적 권위도 개별 국가의 영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국가 체계, 즉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 질서가 이 조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한..

카라얀, 완벽이라는 이름의 삶 — 세 번째 이야기

제3편 | 푸르트벵글러 vs 카라얀 — 세기의 라이벌두 사람은 한 번도 정면으로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독일 음악계는 항상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사람들과, 카라얀의 사람들.두 개의 태양태양이 두 개인 하늘은 없다.20세기 전반 독일 음악계에는 그런 하늘이 있었다. 한쪽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가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 독일 음악의 살아있는 전통, 베토벤과 브람스의 정통 계승자로 불리는 사람. 다른 한쪽에는 카라얀이 있었다. 빠르게 올라오는 젊은 지휘자, '기적의 카라얀'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푸르트벵글러의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사람.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푸르트벵글러가 188..

「권력의 지도」 4화 : 군사 권력이란 무엇인가

군사 권력이란 무엇인가 — 폭력의 독점과 조직화, 단순한 무력이 아닌 것1241년 봄, 유럽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폴란드와 헝가리의 군대가 불과 며칠 사이에 궤멸됐습니다. 독일 기사단도, 프랑스 기사들도 막지 못했습니다. 몽골 기병대는 유럽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싸웠습니다. 분산과 집결을 자유자재로 반복하고, 거짓 후퇴로 적을 유인하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부대들이 정확한 시간에 동시에 공격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타타르의 군대가 기독교 세계를 멸망시키러 왔다"고 선언했습니다.그런데 몽골군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대칸 오고타이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이 사건은 군사 권력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몽골의 힘..

카라얀, 완벽이라는 이름의 삶 — 두 번째 이야기

제2편 | 나치의 그림자 — 카라얀과 정치위대한 예술가는 도덕적으로도 위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술과 삶은 분리될 수 있는가. 카라얀의 이야기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피할 수 없다.1933년, 독일의 봄1933년 4월, 독일은 달라져 있었다.그해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취임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실상 끝났다. 나치당은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고, 독일 사회의 모든 영역에 그 손을 뻗었다.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치 정권은 음악, 미술, 영화, 문학을 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독일적'이지 않은 예술은 퇴폐 예술(Entartete Kunst)로 낙인찍혔다. 유대인 음악가들은 무대에서 쫓겨났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에서 유대인 단원들이 사라졌다.그리고 독일에서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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