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테의 신곡

【단테의 신곡 | EP.01】 숲 속에서 길을 잃다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4. 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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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출근길 지하철 안도 아니고, 회의실 한가운데도 아니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저녁, 밥을 먹다가, 혹은 샤워를 하다가 — 갑자기 이런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목표를 이뤘는데도 허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뭔가 틀렸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감각. 지도는 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느낌.
단테는 이 감각을 700년 전에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인생 여정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곡의 첫 세 줄이다.
장엄한 서사시의 시작치고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번개도 없고, 신의 음성도 없다. 그냥 — 숲 속에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길이 없었다.
단테가 말하는 '인생 여정의 한중간'은 당시 기준으로 서른다섯 살이었다. 그는 지금의 우리처럼 바쁘게 살았다. 정치에 뛰어들었고, 인정받으려 했고, 무언가를 이루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 정치적으로 추방당하고, 사랑하는 도시 피렌체를 영영 잃었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단테가 숲에서 길을 잃은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숲에 들어선 것이 언제인지, 어떻게 들어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냥 어느 순간 거기 있었다고.
그것이 더 무섭다. 극적인 사건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깊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길을 잃는 방식도 그렇지 않던가.
어느 날 갑자기 잘못된 곳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냥 살았을 뿐인데,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곳이다.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다 보니 나를 잃었다. 안전한 길만 골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내가 가고 싶었던 방향이 아니다. 눈앞의 것들에 쫓기다 보니 왜 뛰고 있었는지를 잊었다.
단테의 숲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내면의 혼돈이었다.
그리고 그 혼돈을 인정하는 것 — 지금 내가 어두운 숲 속에 있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 그것이 이 긴 여정의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왜 그리 어려운가.


단테는 숲 속에서 멀리 언덕 위에 빛이 보였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빛을 향해 곧장 달려가지 못했다. 발이 묶인 것처럼, 두렵고 무거웠다.
그 마음도 우리는 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은데, 움직이지 못하는 그 감각.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어둠 속에 그냥 서 있는 것.
단테의 여행은 거기서 시작된다.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의 출발이 아니라, 겁먹고, 갈팡질팡하고, 길을 잃은 채로 — 그래도 한 걸음 떼는 것으로.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어두운 숲 속이라면, 잘 왔다. 단테도 거기서 시작했다.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 단테, 신곡 지옥편 제1곡

 
다음 화 예고 EP.02 — 두려움이 길을 막을 때 "나 같은 사람이 감히 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단테도 첫 발걸음 앞에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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