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 이전의 세계 — 수렵채집 사회에서 왜 권력이 생겨났는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000년 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수렵채집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쫓고, 열매를 따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이동했습니다. 20명에서 50명 사이의 작은 무리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성벽도 없었고, 왕도 없었고, 세금도 없었고, 군대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 하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혼란스러웠을까요. 약자가 강자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세계였을까요.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인류학자들이 20세기까지 남아있던 수렵채집 사회들을 연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아마존 열대우림의 피라하족, 필리핀 밀림의 아에타족 — 이 사회들은 놀라울 만큼 평등했습니다. 권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권력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지배와 복종의 구조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그 세계는 어떻게 무너졌을까요.
수렵채집 사회의 권력 구조
수렵채집 사회에도 권력은 있었습니다. 완전한 무정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사냥을 잘하는 사람, 나이 든 지혜로운 사람, 갈등을 중재하는 데 뛰어난 사람 —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집단의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권력은 축적되지 않았고, 세습되지 않았으며, 강제되지 않았습니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은 이것을 역전된 지배(reverse dominance hierarchy)라고 불렀습니다. 수렵채집 집단 안에서 누군가 지나치게 권력을 독점하려 하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연합하여 그것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지배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 본능이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평등주의적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실제로 !쿵족 사회에서는 사냥에 성공하여 큰 짐승을 가져온 사람을 칭찬하지 않는 관습이 있습니다. 오히려 "고기가 별로네", "사냥감이 작구만" 하고 일부러 깎아내립니다. 왜일까요. 자만심이 생기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사냥꾼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하면 불평등의 씨앗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관습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 시기를 IEMP 모델로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 시기에는 네 가지 권력이 모두 존재하기는 했지만, 어느 것도 제도화되거나 집중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념 권력은 있었습니다. 신화와 의례와 금기가 집단을 묶었습니다. 경제 권력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잉여가 없었기 때문에 축적이 불가능했습니다. 군사 권력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비군이 아니라 모든 성인 남성이 전사였습니다. 정치 권력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의에 기반했고 강제적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권력은 있었지만 권력망이 구조화되지 않은 사회였습니다.
왜 수렵채집 사회는 평등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수렵채집 생활의 물질적 조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잉여가 없었습니다.
권력을 축적하려면 무언가를 쌓아두어야 합니다. 곡식이든, 금이든, 땅이든 — 잉여가 있어야 지배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수렵채집인들은 매일 그날 먹을 것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냉장고도, 창고도 없었습니다. 저장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잉여가 없으니 축적이 없고, 축적이 없으니 경제적 지배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음식을 집단 전체가 나누는 것이 보편적 규범이었습니다. 사냥에 성공하면 무리 전체가 함께 먹었습니다. 혼자 독점하는 것은 집단에서 추방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죄였습니다. 나누는 것은 도덕이기 이전에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굶주린 당신에게 고기를 나눠주면, 내일 내가 사냥에 실패했을 때 당신이 나를 먹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동성이 있었습니다.
수렵채집인들은 계속 이동했습니다. 이것이 평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누군가 지나치게 권위적으로 굴거나 착취하려 하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간단히 다른 무리로 떠나면 됐습니다. 농민처럼 땅에 묶여 있지 않았습니다. 이 이동의 자유가 권력 독점을 막는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였습니다.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이것을 다리로 하는 투표(voting with your feet)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인이 선거로 권력에 저항한다면, 수렵채집인들은 발로 저항했습니다. 싫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셋째, 집단의 규모가 작았습니다.
20~50명의 작은 집단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압니다. 익명성이 없습니다. 누가 얼마나 일하는지,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이 투명성이 착취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작은 집단에서는 합의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30명이 모닥불 주위에 앉아 합의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낭만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수렵채집 사회가 평등했다고 해서 이상적인 세계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마이클 만도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폭력은 있었습니다. 집단 간의 전쟁과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두개골 골절, 화살촉이 박힌 뼈들은 선사시대가 평화롭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수렵채집 사회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현대 전쟁보다 훨씬 높았다고 추산하기도 합니다.
성별 불평등은 있었습니다. 많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이 사냥을 독점하고 여성은 채집을 담당했습니다. 식량 공급의 핵심인 사냥을 통제한 남성들이 더 높은 지위를 가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습니다.
집단 외부인에 대한 적대는 있었습니다. 집단 내부는 평등하고 협력적이었지만,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게는 폭력적이거나 배타적일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평등주의는 처음부터 보편적이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 점에서 루소의 "고귀한 야만인" 신화를 거부합니다. 수렵채집 사회가 권력 구조 면에서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도덕적 우월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물질적 조건, 특히 잉여의 부재와 이동의 자유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였습니다. 조건이 바뀌면 사회도 바뀝니다.
그리고 실제로 조건이 바뀌었습니다.
변화의 씨앗 — 무엇이 달라지기 시작했나요
수천 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이 수렵채집 사회의 조건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가 변했습니다. 약 1만 5000년 전부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야생 식물이 풍부해지고, 특정 장소에 정착하는 것이 유리해졌습니다. 이동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구가 늘었습니다. 기후가 온화해지고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모두가 서로를 아는 작은 공동체의 투명성이 사라집니다.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권력의 집중을 막는 사회적 압력도 약해집니다.
저장이 가능해졌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야생 곡물을 저장하는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장은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오늘 수확한 것을 내일을 위해 쌓아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잉여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잉여가 생기는 순간, 그것을 누가 통제하느냐의 문제가 생겨납니다.
이 세 가지 변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농업혁명입니다.
행복했을까요, 불행했을까요
여기서 잠시 멈추고 한 가지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수렵채집인들은 행복했을까요.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 사회(original affluent society)"라고 불렀습니다. !쿵족의 경우 하루 평균 3~4시간만 일하면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고, 쉬었습니다. 노동 시간만 보면 현대 직장인보다 훨씬 여유로웠습니다.
물론 의료 기술이 없었고, 평균 수명이 짧았으며, 자연재해와 포식자의 위협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단점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불평등, 착취, 전쟁의 규모는 훨씬 작았습니다. 적어도 같은 집단 안에서는요.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농업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불평등과 착취와 전쟁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마이클 만도 이 통찰에 공감합니다. 권력의 탄생은 반드시 인간의 행복 증가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농업을 선택한 집단들은 더 빠르게 인구를 늘렸고, 결국 수렵채집 집단들을 밀어냈습니다.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방식이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냉혹한 논리입니다.
우리 안의 수렵채집인
마이클 만은 이 먼 과거가 단순한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수렵채집인의 본능이 살아있습니다.
지나친 권력 독점에 대한 분노, 불공정한 분배에 대한 직관적 반발, 투명하고 평등한 관계에 대한 갈망 — 이것들은 수백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심리적 유산입니다. 우리는 문명을 만들고 국가를 세웠지만, 그 안에 평등을 향한 오래된 본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독재에 대한 저항,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 — 이것들이 단순히 근대적 이념의 산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수백만 년 전 모닥불 주위에 앉아 평등하게 고기를 나누던 우리 조상들의 기억이 남긴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권력의 역사는 그 평등한 출발점에서 어떻게 불평등이 탄생하는가의 이야기입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다음 화의 주제입니다.
다음 화를 예고하며
1만 2000년 전, 지구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에 기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이 씨앗을 땅에 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행위가 인류 역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잉여가 생겼고, 정착이 시작됐으며, 저장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당하는 세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농업혁명은 식량 혁명이기 이전에 권력 혁명이었습니다.
다음 화 예고 7화: 농업혁명과 권력의 탄생 — 잉여 생산물이 만든 최초의 지배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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