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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52도피처를 찾다 : 상징주의와 탐미주의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8.

「예술, 인간을 말하다」 EP.52

아르놀트 뵈클린 《죽음의 섬(Die Toteninsel)》 제1판 (1880년), 쿤스트무제움 바젤

1884년 파리, 한 소설이 출판되었습니다.

주인공 장 데젱생트(Jean des Esseintes)는 귀족 출신 탐미주의자입니다. 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집을 꾸밉니다. 창문을 막습니다. 빛을 차단합니다. 희귀한 꽃들로 공기를 채웁니다. 보석으로 장식한 거북이를 키웁니다. 진귀한 책들과 그림들로 방을 채웁니다. 그리고 거기서 혼자 삽니다.

이 소설이 조리-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의 《거꾸로(À Rebours, Against Nature)》. 19세기 탐미주의와 상징주의 문학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 오스카 와일드가 이 소설을 "노란 책(Yellow Book)"이라 불렀습니다. 그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도리언을 타락시키는 바로 그 책.

반 룬은 이 소설의 주인공에서 19세기 후반 예술이 향한 방향을 봅니다. 세상에서 등을 돌리는 것. 현실의 추함, 산업화의 소음, 혁명의 실패.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는 것.

도피처. 그것이 상징주의와 탐미주의였습니다.


왜 도피처인가 : 세기말의 피로

1880년대의 유럽을 보면 도피가 이해됩니다.

산업혁명이 완성되었습니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솟았습니다. 도시가 팽창했습니다. 빈민가가 생겼습니다. 철도가 자연을 가로질렀습니다. 전보가 세계를 연결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시끄럽고 계산적이었습니다.

1848년의 혁명들이 실패했습니다. 1871년 파리 코뮌이 피로 진압되었습니다. 정치적 이상들이 좌절되었습니다.

사실주의가 이 세계를 직면하려 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그 현실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세기말(Fin de siècle). 20세기가 오기 전 마지막 수십 년. 이 시대의 감각이 특별했습니다. 무언가가 끝나고 있다는 느낌. 오래된 세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불안. 그리고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한 시도.

상징주의(Symbolism). 탐미주의(Aestheticism). 아르누보(Art Nouveau). 이 운동들이 그 도피의 예술들이었습니다.

반 룬은 이 도피가 비겁함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것이 다른 종류의 진실이었습니다. 현실의 추함을 직면하는 것만이 예술의 역할이 아닙니다.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도, 아니 그 추함과 무관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도 예술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 룬은 이 도피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1937년 그가 이 챕터를 쓸 때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상아탑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상징주의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다

상징주의(Symbolism)가 1886년 시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의 선언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핵심 원리. 예술이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것, 즉 꿈, 신화, 무의식, 영혼을 표현해야 한다. 그 표현의 수단이 상징(symbol)이다. 직접 말하지 않고 암시하는 것.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하는 것.

시에서 상징주의.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 그의 시들이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지 않습니다. 소리, 리듬, 이미지들이 조합되어 어떤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의미가 아닌 음악이 목표였습니다. 시가 음악에 가까워지는 것.

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 그의 선언. "음악, 무엇보다 음악을(De la musique avant toute chose)." 시가 음악처럼 되어야 한다.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17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세에 그만두었습니다. 20살이 넘어서는 아예 시를 버리고 아프리카로 가서 무기 장수가 되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쓴 시들이 현대시의 원점이 되었습니다.

반 룬은 이 상징주의 시인들에서 예술이 언어의 한계를 넘으려 한 것을 봅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 불가능한 시도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 : 황금과 신화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 프랑스 상징주의 회화의 가장 화려한 이름.

그의 그림들의 특성. 신화와 성경 이야기들. 그러나 평범한 역사화가 아닙니다. 그것들이 꿈과 환상의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황금이 흘러넘칩니다. 보석들이 빛납니다. 여인들이 신비롭습니다.

《현현(L'Apparition, 1876)》. 살로메가 춤을 춥니다. 그러나 배경에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가 빛을 발하며 공중에 떠있습니다. 살로메가 그 머리를 보며 경악과 매혹의 표정을 짓습니다. 배경은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 보석들이 반짝입니다. 황금이 흐릅니다.

이 그림이 작가 위스망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가 《거꾸로》에서 이 그림에 대해 황홀하게 묘사했습니다. 살로메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욕망과 죽음과 아름다움이 결합된 상징이 된 것.

모로의 그림들에서 내러티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합니다. 색채, 빛, 장식. 감각이 이성보다 먼저입니다.

반 룬은 모로에서 예술의 감각적 자율성을 봅니다. 그림이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감각적 경험이 되는 것. 이것이 탐미주의의 본질이었습니다.


오딜롱 르동 《감은 눈들(Closed Eyes)》(1890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오딜롱 르동 : 꿈의 경계에서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모로와 함께 프랑스 상징주의 회화의 양대 산맥.

그러나 모로와 달랐습니다. 모로가 화려하고 장식적이었다면 르동이 내면적이고 몽환적이었습니다.

르동의 초기 작품들. 흑백 목탄화와 석판화. 거대한 눈이 혼자 공중에 떠있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거미. 태양 같은 눈을 가진 눈. 이것들이 악몽인지 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르동이 말했습니다. "나의 그림들은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에 의해 변환된다."

후기 르동. 꽃들. 빛나는 색채들. 공중을 나는 인물들. 불교적 이미지들. 어두웠던 세계가 빛으로 변했습니다.

《감은 눈들(Closed Eyes, 1890)》. 눈을 감은 얼굴. 평화롭습니다. 잠든 것인지 명상하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배경이 파란 물. 이것이 내면의 세계입니다. 현실의 눈을 감고 내면의 눈으로 보는 것.

반 룬은 르동에서 상징주의의 심리적 차원을 봅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이론화하기 전에 이미 르동이 그것을 그렸습니다. 꿈의 논리, 무의식의 이미지들.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알폰스 무하, 1894년 무차 지스몬다 국립미술관 프라그

뵈클린 : 죽음의 섬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 스위스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죽음의 섬(Die Toteninsel, 1880~86)》. 어두운 바다 위에 작은 섬. 하얀 절벽들. 높은 사이프러스 나무들. 조그만 배가 섬으로 다가옵니다. 배 안에 흰 옷을 입은 인물이 서 있습니다. 그 앞에 흰 관(棺)이 있습니다. 노 젓는 사람의 뒷모습.

이 그림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디인지. 저 사람이 누구인지.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러나 보는 사람 누구나 느낍니다. 죽음으로 가는 여정. 저 섬이 저승입니다.

뵈클린이 이 그림을 다섯 번 그렸습니다. 1880년부터 1886년까지. 각 버전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것은 색채가 더 어둡고 어떤 것은 섬이 더 높습니다.

이 그림이 20세기 초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36년 소설에서 썼습니다. 이 그림의 복제품이 "베를린의 모든 집에 있다"고. 히틀러도 이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그림에서 영감받아 교향시를 썼습니다. 시그문트 프로이트의 서재에도 이 그림이 있었습니다.

반 룬은 《죽음의 섬》에서 상징주의 예술의 가장 순수한 성취를 봅니다. 설명 없이 감정을 전달하는 것.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로 말하는 것. 죽음에 대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과 호기심이 이 단순한 장면 안에 담겨있습니다.


탐미주의 : 예술을 위한 예술

탐미주의(Aestheticism).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L'art pour l'art)." 이 슬로건이 탐미주의의 선언이었습니다.

예술이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 예술이 아름다움만을 추구해도 충분하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것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탐미주의의 가장 화려한 대변인.

그의 말들이 유명합니다.

"모든 예술은 완전히 쓸모없다." "아름다운 것에서 추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타락한 자다. 이것이 잘못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것보다."

와일드 자신이 탐미주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옷차림, 대화, 재치, 몸짓. 모두 예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 미국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한 화가. 탐미주의 회화의 대표자.

그의 작품 《검은색과 회색의 배열: 화가의 어머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 1871)》. 일반적으로 "휘슬러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 그림. 검은 옷의 노인이 옆을 바라보며 앉아있습니다. 배경이 회색. 그림이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특이합니다. "어머니의 초상화"가 아닌 "검은색과 회색의 배열." 휘슬러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제목이었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가 어머니가 아니라 색채와 형태의 관계라는 것.

음악처럼. 그의 그림들에 자주 "교향곡", "야상곡", "배열"이라는 음악 용어들이 제목으로 붙었습니다. 그림이 음악처럼 순수한 형식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

반 룬은 탐미주의에서 예술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봅니다.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를 위한 예술. 그러나 동시에 이 순수성이 고립과 현실 도피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도 봅니다.


아르누보 : 아름다움이 일상으로

상징주의와 탐미주의가 순수 예술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는 일상으로 가져왔습니다.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유럽을 풍미한 이 양식. 꽃, 덩굴, 나비, 여성. 자연의 유기적 형태들이 건물 정면, 가구, 포스터, 보석, 유리 공예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 체코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디자이너. 그의 포스터들이 아르누보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었습니다.

1894년 크리스마스 이브.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가 급하게 포스터를 요청했습니다. 당시 파리 최고의 여배우. 다른 화가들이 모두 휴가 중이었습니다. 무하가 맡았습니다.

이 포스터가 《지스몽다(Gismonda)》. 베르나르의 얼굴이 위에 크게. 꽃과 식물들로 된 장식 테두리. 비잔틴 양식과 자연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양식.

파리가 열광했습니다. 베르나르가 무하와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무하의 포스터들이 아르누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르누보의 건축.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의 브뤼셀 건물들. 앙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의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에밀 갈레(Émile Gallé)의 유리 공예.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의 스테인드글라스.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 자연의 유기적 형태. 예술과 공예의 경계를 허무는 것. 건물과 가구와 조명이 예술이 되는 것.

반 룬은 아르누보에서 예술의 민주화가 또 다른 방향으로 실현되는 것을 봅니다. 쿠르베와 밀레가 내용의 민주화를 했다면 아르누보가 형식의 민주화를 했습니다. 미술관의 그림이 아닌 일상의 물건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이것도 예술이라는 것.


클림트 : 황금의 마에스트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의 지도자. EP.49에서 잠깐 보았습니다. 여기서 더 깊이.

1897년, 클림트를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이 공식 예술 아카데미에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전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슬로건. "시대에는 그 예술을, 예술에는 그 자유를(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클림트의 그림들에서 황금이 중심입니다. 《유디트 I(Judith I, 1901)》. 아름다운 여인이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린 머리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여인의 황홀한 표정이 중심입니다. 죽음과 아름다움이 하나입니다.

《키스(The Kiss, 1907~08)》. 두 인물이 황금빛 망토로 함께 감싸여 있습니다. 무릎 꿇은 여인과 허리 굽힌 남자. 꽃 가득한 절벽 가장자리. 그들 아래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이 순간.

이 그림이 왜 이렇게 유명해졌는가. 반 룬의 해석이 있습니다. 사랑의 가장 순수한 시각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과도하지 않습니다. 신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두 인물이 황금으로 덮여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죽음의 가장자리에 있습니다. 가장 강렬한 순간은 항상 소멸 직전입니다.


오브리 비어즐리 : 선의 마술사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1872~1898). 25세에 결핵으로 죽은 영국 삽화가. 그 짧은 생애에 아르누보 삽화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검은 잉크와 하얀 종이만으로 그렸습니다. 색채 없이. 그러나 그 선들이 관능적이고 신비롭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삽화들. 왜곡된 인체. 과장된 장식. 에로틱한 분위기.

비어즐리의 그림들이 때로 외설적이었습니다. 잡지 편집자들이 출판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예술이었습니다. 선의 음악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 말했습니다.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내가 만든 외설적인 것들을 모두 파기해 주십시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예술을 부끄러워한 것인지, 아니면 그 마지막 순간의 두려움인지.

반 룬은 비어즐리에서 탐미주의의 비극을 봅니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했지만 그 아름다움이 죽음과 함께 왔습니다. 너무 일찍 죽은 천재들이 남긴 것들. 그것들이 오히려 신화가 되었습니다.


상징주의와 탐미주의의 유산

이 운동들이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1914년 전쟁이 상아탑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유산은 남았습니다.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 말라르메의 시가 드뷔시의 음악이 된 것. 인상주의 음악이 상징주의의 음악적 표현이었습니다.

현대 광고 디자인. 무하의 포스터 양식이 오늘날 광고 디자인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아르누보가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였습니다.

영화의 시각 언어. 상징주의 회화의 이미지들이 20세기 영화에 스며들었습니다. 빛과 그림자, 몽환적 분위기, 죽음의 상징들.

심리학과 예술의 만남. 르동의 꿈 이미지들이 프로이트 이전에 이미 무의식을 그렸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이 상징주의에서 직접 왔습니다.

반 룬은 상징주의와 탐미주의가 현대 예술의 가장 중요한 전통 중 하나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예술이 현실에 봉사하는 것이 아닌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움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의 특별한 역할이라는 것.

도피처는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피가 만들어낸 것들은 영원합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상징주의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세계를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클로드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1894년) : 말라르메의 상징주의 시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이 작품이 현대 음악의 시작점이라고 피에르 불레즈가 말했습니다. 플루트의 첫 음표가 들릴 때 세상이 달라집니다. 하프가 물처럼 흐릅니다. 목신이 꿈을 꿉니다. 뜨거운 여름 오후의 공기. 님프들의 형상.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10분이 상징주의 음악의 완벽한 표현입니다.
    • 가브리엘 포레, 《레퀴엠 Op.48》 : 1887년, 파리 상징주의 살롱들이 꽃피던 시기. 포레가 전통적 레퀴엠과 전혀 다른 것을 만들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이 달콤하고 평화롭습니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처럼. 어두운 물 위의 고요. 이 레퀴엠이 마치 수면에 잠기는 것 같습니다. 상징주의가 죽음을 아름답게 만든 방식이 음악으로 표현됩니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Salome)》 중 〈7개의 베일의 춤(Dance of the Seven Veils)〉 : 1905년.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 속 살로메가 오페라가 되었습니다. 관능과 죽음. 아름다움과 잔인함. 7개의 베일을 하나씩 벗으며 추는 춤. 탐미주의의 모든 위험과 매혹이 이 음악 안에 있습니다. 파리에서 피어난 상징주의가 빈에서 음악이 된 것.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이 시대의 음악 세계로 들어갑니다. 19세기 낭만주의가 음악에서 어떻게 꽃피었는지. 교향시라는 새로운 형식이 탄생했습니다. 음악이 자연을, 역사를, 문학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리스트, 브람스, 드보르자크, 생상스, 스메타나. 낭만주의 음악이 가장 풍요롭게 전개되는 19세기 후반의 음악 세계를 함께 탐험하겠습니다.

EP.53  낭만주의 음악의 시대: 교향시와 표제음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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