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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예술, 인간을 말하다」 EP.53, 낭만주의 음악의 시대 : 교향시와 표제음악, 19세기가 만든 소리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19.

1856년,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가 악보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삶이란 죽음이 울리는 첫 엄숙한 음표를 향한 일련의 서주들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 문장이 그의 교향시 《레 프렐류드(Les Préludes)》의 서문이었습니다. 라마르틴의 시에서 가져온 물음. 삶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물음을 음악으로 답하려 한 것.
이 작품이 역사상 처음으로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가진 음악이었습니다.
교향시. 관현악으로 시, 그림, 자연,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 여러 악장으로 나뉜 교향곡이 아닌 하나의 긴 악장. 그러나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긴 것.
반 룬은 이 리스트의 발명에서 19세기 음악의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를 봅니다. 음악이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 한 것. 그림이 그릴 수 없는 것을 소리로 만들려 한 것. 그리고 그 야심이 19세기 내내 음악을 이끌었습니다.


19세기 음악 : 양과 질의 폭발

18세기에 비해 19세기 음악이 폭발적으로 팽창했습니다.
규모. 교향곡 오케스트라가 커졌습니다. 베토벤이 80명 정도였다면 후기 낭만주의 오케스트라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8번은 1000명의 연주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길이. 베토벤의 교향곡이 30~40분이었다면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이 60~90분이 되었습니다.
표현의 범위. 신화, 역사, 자연, 개인의 감정, 민족의 정체성, 철학적 사유. 이 모든 것이 음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국제화. 19세기 이전 클래식 음악이 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의 것이었습니다. 19세기에 체코, 러시아, 노르웨이, 핀란드, 스페인, 헝가리의 음악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습니다.
반 룬은 이 팽창에서 낭만주의의 본질을 봅니다. 확장. 경계를 밀어붙이는 것. 음악이 표현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표현하는 것.


절대음악 대 표제음악 : 19세기 최대의 논쟁

19세기 음악계를 양분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절대음악(Absolute Music) 대 표제음악(Programme Music).
절대음악 진영. 대표자 요하네스 브람스. 그리고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
한슬리크의 주장. 음악은 음악 자체로 완결되어야 한다. 음악이 시를 묘사하거나 그림을 흉내 내거나 이야기를 전달하려 할 때 음악 본래의 아름다움이 훼손된다. 음악의 내용은 "울림 속의 움직이는 형태들(tonend bewegte Formen)"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표제음악 진영. 대표자 프란츠 리스트. 그리고 그의 사위 리하르트 바그너.
리스트의 주장. 음악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담아야 한다. 시, 그림, 자연, 이야기가 음악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표제(programme)가 청중에게 길잡이가 되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두 진영이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한슬리크가 바그너와 리스트의 음악을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브람스가 바그너와 리스트로부터 거리를 두었습니다.
반 룬은 이 논쟁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두 방향 모두에서 위대한 음악이 나왔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들도 위대하고 리스트의 교향시들도 위대합니다. 논쟁 자체가 19세기 음악을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 1884

리스트 : 교향시의 발명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그는 두 가지로 역사에 남습니다. 피아노 비르투오소로서, 그리고 교향시의 발명가로서.
리스트가 교향시를 만든 것이 단순한 형식의 발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철학이었습니다.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장된 비전.
그의 13개 교향시들. 각각이 문학, 신화, 자연, 역사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레 프렐류드(Les Préludes, S.97)》. 1854년. 가장 유명한 교향시. 삶을 죽음으로 가는 서주들의 연속으로 보는 라마르틴의 시에서 출발. 평화로운 시작, 폭풍, 전쟁, 목가, 그리고 마지막 승리. 이 모든 것이 18분 안에.
《마체파(Mazeppa)》. 빅토르 위고의 시에서. 야생마에 묶여 끌려가다가 결국 그 마을의 수령이 되는 코사크 전사의 이야기. 격렬한 리듬, 화려한 관현악.
《오르페우스(Orpheus)》. 그리스 신화. 그러나 극적 서사보다는 명상적입니다. 오르페우스의 리라가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
반 룬은 리스트의 교향시에서 음악이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는 것을 봅니다. 음악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야기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이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본질을 소리로 포착하는 것. 이것이 교향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개발한 기법이 있었습니다. 변형 주제(thematic transformation). 하나의 주제 선율이 악곡 전체를 통해 다른 리듬, 다른 속도, 다른 화성으로 반복적으로 변형됩니다. 같은 씨앗에서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것처럼. 이 기법이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로, 20세기 음악 전체로 이어졌습니다.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앞에서의 환상, 1840

민족주의와 음악 : 나라의 소리를 찾아서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또 다른 큰 흐름이 민족주의(Nationalism)였습니다.
각 나라의 음악가들이 자신의 민족 음악, 민요, 역사, 자연을 클래식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소재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체코에서, 러시아 차르 체제 아래 핀란드에서, 독립을 꿈꾸던 폴란드에서. 음악이 민족 정체성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금지당하면서도.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 체코 음악의 아버지. 그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 1872~79)》. 6개의 교향시로 이루어진 연작. 체코의 전설, 역사, 자연.
그 중 두 번째 《블타바(Vltava)》. 체코를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의 여정을 묘사합니다. 두 개의 샘물에서 시작하여 강이 되고, 숲을 지나고, 농촌 결혼식 소리가 들리고, 달빛 아래 님프들이 춤추고, 급류를 지나, 마침내 프라하에 도달합니다. 이 음악이 체코인에게 국가처럼 사랑받습니다.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스메타나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귀가 멀었습니다. 고야처럼. 그는 귀 멀고 나서 이 가장 체코적인 음악들을 완성했습니다.
반 룬은 스메타나에서 예술이 민족 정체성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표현이 전 세계인에게 보편적으로 닿는다는 것도. 체코어를 모르는 사람도 《블타바》에서 강을 느낍니다. 이것이 음악의 마법입니다.


드보르자크 : 보헤미아에서 뉴욕으로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 1841~1904). 스메타나의 후계자. 체코 음악을 세계에 알린 사람.
드보르자크가 1892년 미국으로 갔습니다. 뉴욕 국립 음악원 원장으로 초청받아. 3년을 뉴욕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1893년 《교향곡 9번 E단조 《신세계에서(From the New World)》》를 완성했습니다.
이 교향곡이 아메리카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체코 민요의 멜로디가 흐릅니다. 동시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영가(spirituals)와 미국 원주민 음악의 리듬이 있습니다.
2악장 라르고의 선율.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클래식 멜로디 중 하나. 드보르자크의 학생 윌리엄 암스 피셔(William Arms Fisher)가 이 선율에 가사를 붙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Goin' Home)》.
드보르자크가 나중에 썼습니다. 미국 음악의 미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과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에 있다고. 1893년에. 100년을 앞서간 통찰.
반 룬은 드보르자크에서 민족주의 음악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타자의 것을 흡수하는 것. 보헤미아와 미국이 한 교향곡 안에서 만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국제주의였습니다.


러시아 5인조 : 러시아 음악의 자각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다섯 명의 러시아 작곡가들이 뭉쳤습니다.
발라키레프(Balakirev), 큐이(Cui), 무소르그스키(Mussorgsky), 림스키-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보로딘(Borodin). 이들을 "5인조(The Five)" 또는 "막강한 한 줌(Moguchaya Kuchka)"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 러시아 음악이 독일 음악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민요, 교회 음악, 러시아의 역사와 전설이 러시아 음악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 EP.45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러시아 사실주의 정신이 음악으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Scheherazade)》.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가져온 관현악 모음. 동방의 색채,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리스트의 교향시와 다른 방향의 표제음악.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 러시아 군대와 동방 대상(隊商)이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단악장 교향시. 멀리서 들려오다가 가까워지다가 다시 멀어지는 음악. 지평선이 음악이 된 것.
반 룬은 러시아 5인조에서 민족주의 음악의 창조적 에너지를 봅니다. 독일 전통을 거부한 것이 결핍이 아니라 해방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을 찾음으로써 더 독창적이 된 것.


그리그 : 북방의 서정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 노르웨이 출신.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페르 귄트 모음곡(Peer Gynt Suite)》. 헨리크 입센의 희곡을 위해 작곡된 부수 음악. 그 중 《아침(Morning Mood)》과 《산왕의 궁전에서(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이 두 곡이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중 하나입니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 그리그가 25세에 완성한 이 작품이 노르웨이 음악의 국제적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첫 악장 첫 화음이 울리는 순간부터 북방의 차갑고 청명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그가 노르웨이 민요와 춤의 선율을 클래식 음악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그 결합이 그를 국민 작곡가로 만들었습니다. 노르웨이 화폐에, 우표에, 공항 이름에 그의 이름이 있습니다.
반 룬은 그리그에서 작은 나라의 음악이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노르웨이 민요가 파리에서, 빈에서, 뉴욕에서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지역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 되는 역설. 그리고 그 역설이 낭만주의 민족음악 전체의 성취였습니다.


차이콥스키 : 러시아의 서정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러시아 5인조와 달리 독일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5인조에게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차이콥스키를 국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형식과 러시아의 서정.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음악.
발레 음악들. 《백조의 호수(Swan Lake, 1876)》,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 1889)》,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 1892)》. 이것들이 발레 음악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발레가 단순한 공연의 반주가 아닌 독립적인 음악 작품이 된 것.
교향시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1869)》. 세익스피어에서. 그리고 그 안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 주제. 이 멜로디가 "고전 음악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개인적 고통이 그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성적 지향성으로 인한 고통. 결혼의 실패. 이 고통들이 음악의 깊이로 변환되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6번 비창(Pathétique)》은 죽기 9일 전에 초연되었습니다. 마지막 악장이 느리고 조용히 끝납니다. 교향곡 역사상 유례없는 결말. 승리가 아닌 소멸로.
반 룬은 차이콥스키에서 개인의 고통이 예술을 통해 보편이 되는 방식을 봅니다. 그의 고통이 그의 것이었지만 그 음악이 수백만 명의 고통에 닿았습니다.


리스트와 바그너 : 두 혁명가의 연대

다시 리스트로 돌아옵니다.
리스트와 바그너. 이 두 사람의 관계가 19세기 음악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 같은 관계. 리스트가 바그너의 음악을 지지하고 바이마르에서 초연했습니다. 《탄호이저》, 《로엔그린》. 바그너가 정치적 망명 중일 때 리스트가 도왔습니다.
그다음 바그너가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코지마가 바그너와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리스트가 바그너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복잡한 관계.
그러나 음악적으로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향했습니다. 음악이 더 많은 것을 담아야 한다는 것. 형식의 제약을 넘어야 한다는 것. 감정의 깊이를 끝까지 탐구해야 한다는 것.
반 룬은 이 두 사람의 연대에서 예술적 혁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봅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을 함께 이루었습니다. 서로 비판하고 서로 배우면서. 그리고 그 사이에 개인적 갈등이 있었음에도.


교향시의 후계자들

리스트가 만든 교향시 형식이 다음 세대 작곡가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리스트를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더 거대하게.
《돈 후안(Don Juan, 1889)》. 24세에 완성한 이 작품으로 슈트라우스가 하룻밤에 유명해졌습니다. 리스트의 교향시보다 더 대담한 화성, 더 복잡한 오케스트레이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96)》. 니체의 철학서에서. 도입부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일출 장면. 나중에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사용한 바로 그 음악.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 1898)》. 영웅이 비판자들과 싸우고 사랑하고 전투하고 은퇴하는 이야기. 그 영웅이 슈트라우스 자신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교향시로 만든 것.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 핀란드. 《핀란디아(Finlandia, 1899)》. 러시아 지배 하에 있던 핀란드의 독립 염원. 러시아 당국이 이 음악의 연주를 금지했습니다. 음악이 혁명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 프랑스. 그의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1874)》. 자정에 해골들이 묘지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교향시. 바이올린이 해골의 무릎뼈를 흉내 내듯 삐걱거립니다.
반 룬은 이 후계자들에서 리스트가 열어놓은 문이 얼마나 넓었는지를 봅니다. 철학, 신화, 민족의 정체성, 자전적 이야기, 죽음의 춤. 모든 것이 교향시가 되었습니다.


19세기 음악이 남긴 것

반 룬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는가.
그것이 음악의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시도였다고 봅니다. 음악이 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모든 것을 하려 했습니다. 철학을 표현하고, 자연을 묘사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민족을 대변하고,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내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야심이 부분적으로 성공했습니다. 19세기 음악은 이전 어느 시대의 음악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깊이 닿았습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가 대서양을 건너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그의 노르웨이 서정이 열대 지방의 청중을 울렸습니다. 차이콥스키의 고통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닿았습니다.
그러나 반 룬은 동시에 이 야심의 한계도 봅니다. 음악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할 때 때로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 음악이 얼마나 쉽게 민족주의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그는 1937년에 이미 목격했습니다.
예술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반 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이 무기가 되지 않으려면 예술가들이 의식적으로 그 유혹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거부가 예술의 자유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세 방향, 즉 교향시, 민족주의 음악, 그리고 후기 낭만주의 표제음악을 각각 대표하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 프란츠 리스트, 교향시 《레 프렐류드(Les Préludes) S.97》(1854년) — 역사상 처음으로 "교향시"라는 이름을 가진 음악. "삶이란 죽음으로 가는 일련의 서주들"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18분의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평화에서 폭풍으로, 전쟁에서 목가로, 그리고 마지막 승리로. 리스트가 발명한 변형 주제 기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 음악의 야심이 가장 압축된 형태로 담긴 작품입니다.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 중 제2곡 《블타바(Vltava)》(1874년) — 귀 먼 작곡가가 자신의 조국 강을 음악으로 그린 것. 두 개의 샘물이 만나 강이 되고, 숲을 지나고, 농촌 결혼식 소리가 들리고, 달빛 아래 님프들이 춤추고, 급류를 지나, 프라하에 도달합니다. 강이 음악이 된 것인지 음악이 강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결합. 민족주의 음악이 어떻게 보편적 감동이 될 수 있는지를 이 12분이 보여줍니다.

    •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E단조 Op.95 《신세계에서(From the New World)》(1893년) — 보헤미아 작곡가가 뉴욕에서 쓴 교향곡. 체코 민요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영가와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이 하나로 녹아있습니다. 2악장 라르고의 그 선율이 흐를 때 세계 어디에서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됩니다. 이것이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유산 중 하나입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개인적인 장르로 들어갑니다. 가곡(Lied).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담은 예술. 슈베르트가 그 형식을 완성하고 슈만이 그것을 확장했습니다. 시와 음악이 하나가 되는 순간. 괴테의 시가 슈베르트의 음악이 되고 하이네의 시가 슈만의 음악이 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54 , 시와 음악의 결혼: 슈베르트·슈만의 가곡 세계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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