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8년 3월, 빈.
공연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극장 앞에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정장을 갖춘 귀족들, 두꺼운 외투를 걸친 시민들, 혼잡 속에 끼어든 소매치기들. 모두가 같은 것을 보러 왔습니다.
극장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무대에 나왔습니다.
말라 비틀어진 몸. 창백한 피부. 너무 긴 손가락들. 검은 눈이 광채를 발했습니다. 그가 바이올린을 들었습니다.
첫 음이 울렸습니다.
청중이 숨을 멈추었습니다.
그 소리가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바이올린 한 대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들렸습니다.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음계가 달렸습니다. 현 하나로 두 성부가 동시에 노래했습니다. 활이 현을 두드렸습니다. 현이 울음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손가락들이 인간의 것이 아니다. 저 남자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어두운 밤 묘지에서 영혼을 팔았다. 그래서 저렇게 연주하는 것이다.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
반 룬은 이 장면에서 19세기가 발명한 새로운 예술적 현상을 봅니다. 비르투오소(Virtuoso). 단순히 잘 연주하는 사람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주자. 기술이 예술이 되고 공연이 신화가 되는 것.

비르투오소란 무엇인가
비르투오소(Virtuoso). 이탈리아어로 "덕이 있는 사람" 또는 "숙련된 사람"이라는 뜻.
그러나 19세기에 이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단순한 기술적 숙련을 넘어서는 것. 듣는 사람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것을 보여주는 연주자.
비르투오소의 시대가 왜 19세기에 탄생했는가.
첫째, 악기의 발전. 피아노가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음역이 넓어지고 건반이 더 빠른 반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제작 기술이 완성되었습니다. 악기가 연주자의 기술에 따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
둘째, 공연 문화의 변화. 이전에는 귀족 살롱이나 왕궁이 음악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제 공공 콘서트홀이 생겼습니다. 더 많은 청중. 더 넓은 공간. 청중을 압도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셋째, 스타 문화의 탄생. 신문이 발달했습니다. 소문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비르투오소가 한 도시에서 성공하면 다음 도시가 기대를 안고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현대 연예 산업의 원형이었습니다.
반 룬은 비르투오소의 시대에서 예술과 공연 사이의 긴장을 봅니다. 기술이 어디까지 예술인가. 청중을 놀라게 하는 것이 음악의 목적인가. 이 질문들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파가니니 : 전설의 탄생
니콜로 파가니니. 그의 이야기가 음악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1782년 제노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신동. 아버지가 엄격한 연습을 강요했습니다. 기절할 때까지 연습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런데 파가니니의 신체적 특성이 특별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었습니다. 유연성이 극도로 높았습니다. 의학적으로 마르판 증후군(Marfan Syndrome)이나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의 일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때문에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불가능한 움직임이 그에게 가능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숨겼습니다. 오히려 신비를 키웠습니다.
악마와의 계약 전설. 파가니니는 이 전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즐겼습니다. 신비한 외모, 창백한 얼굴, 검은 옷. 모든 것이 전설을 강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죽었을 때 교회가 그의 유해를 거부했습니다. 악마와 계약한 사람의 장례를 교회에서 치를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유해가 5년간 여러 곳을 전전했습니다. 나중에 겨우 제노바에 안장되었습니다.
파가니니의 기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4현 바이올린에서 3현, 2현, 1현만으로 연주하는 것. 활 없이 손가락으로만 퉁기는 것(피치카토). 활을 반대로 들고 나무 부분으로 치는 것(콜 레뇨). 현 위에서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는 것(글리산도). 이 모든 것을 다른 연주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속도로.
그의 《24개의 카프리치(24 Caprices for Solo Violin, Op.1)》. 바이올린 하나만으로 가능한 모든 기술이 담긴 연습곡들. 그러나 단순한 연습곡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음악 작품들입니다.
그 중 24번 카프리치. 테마와 11개의 변주. 이 단순한 주제가 수십 가지 방식으로 변형됩니다. 이 주제를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루토스와프스키가 가져다가 변주곡들을 썼습니다.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선율입니다.
반 룬은 파가니니에서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봅니다. 파가니니의 기술이 예술이었습니다. 그 기술을 통해 그는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음악적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한계를 넘는 것이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리스트 : 파가니니를 보고 변하다
1831년 파리, 파가니니의 연주회.
열아홉 살의 청년이 그 연주를 들었습니다.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연주가 그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 청년이 나중에 썼습니다. "저 사람이 바이올린으로 한 것을 나는 피아노로 해야 한다. 피아노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 한다. 피아노로 파가니니처럼 울어야 한다."
프란츠 리스트.
그는 연주회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연습했습니다. 하루 10시간, 12시간. 수년간. 파가니니의 카프리치를 피아노로 편곡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아노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다시 발견했습니다.
리스트가 개발한 기법들. 손을 교차하는 것. 옥타브를 극고속으로 반복하는 것. 한 손이 멜로디를 치면서 동시에 반주하는 것. 두 손을 사용하여 세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성부를 만드는 것. 피아노 뚜껑을 열고 현을 직접 뜯는 것. 이것들이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마니아(Lisztomania).
1840년대, 리스트가 유럽을 투어했습니다. 그 결과가 전례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성 팬들이 그의 장갑과 수건 조각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가 버린 장갑을 여성들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가 부러뜨린 피아노 줄을 팔찌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커피 찌꺼기를 로켓에 담았습니다. 실신하는 여성 팬들이 공연장마다 있었습니다.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이 현상에 "리스트마니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신중하게 분석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리스트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고. 리스트의 인격, 외모, 신비, 서사.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이라고.
반 룬은 리스트마니아에서 현대 팝스타 문화의 원형을 봅니다. 비틀즈에게 열광하던 청중, 마이클 잭슨 공연장의 실신자들. 이 모든 것이 리스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술가가 예술을 넘어 현상이 되는 것.

리스트의 피아노 : 새로운 악기를 만들다
리스트가 피아노를 새로운 악기로 만들었습니다.
이전 피아노 음악에서 피아노가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웠습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들. 절제되고 우아했습니다. 베토벤이 그 한계를 밀었습니다. 그러나 리스트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열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 E♭장조(Piano Concerto No.1 in E♭ major)》. 이 작품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씨름합니다. 100명의 오케스트라와 혼자 맞서는 피아노. 그 대결 구도가 음악적 극장이 됩니다.
《헝가리 랩소디(Hungarian Rhapsodies)》. 19곡의 랩소디 시리즈. 헝가리 집시 음악에서 영감받은 것. 느린 라산(Lassan)에서 빠른 프리스카(Friska)로 넘어가는 구조. 이 형식이 후에 재즈 즉흥 연주의 구조와 비슷합니다. 느리고 블루지한 섹션에서 빠르고 화려한 절정으로.
《순례의 해(Années de pèlerinage)》. 3권으로 된 피아노 소품 모음집. 스위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경험한 것들. 라파엘로의 그림, 단테의 지옥,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이것들이 피아노 음악이 되었습니다. 표제 음악이 가장 철학적으로 표현된 피아노 작품들.
반 룬은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들에서 교향시 형식과 연결되는 것을 봅니다. 리스트에게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아노 오케스트라로 그는 세계를 담으려 했습니다. 그 야심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스트의 말년 : 바이마르의 현인
그러나 리스트의 이야기가 스타 피아니스트로 끝나지 않습니다.
1847년, 리스트가 갑자기 공개 연주 투어를 그만두었습니다. 35세. 전성기. 그리고 바이마르로 갔습니다. 바이마르 궁정악장으로.
거기서 그가 작곡에 전념했습니다. 교향시들. 피아노 소나타 B단조(1853). 이것이 그의 피아노 음악 중 가장 위대한 단일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가르쳤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바이마르로 왔습니다. 리스트는 수업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르쳤습니다. 브람스, 그리그, 생상스가 그의 음악을 가지고 왔을 때 리스트가 그것들을 지지했습니다.
말년의 리스트가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가톨릭 수도회의 낮은 성직자 위계인 수사(abbé)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스타에서 종교적 생활인으로.
반 룬은 이 변화가 리스트를 더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화려함에서 단순함으로 가는 것. 자신을 내보이는 것에서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것이 예술가의 성숙이었습니다.
비르투오소와 예술 : 긴장의 역사
비르투오소의 시대가 하나의 긴장을 만들었습니다. 기술과 예술 사이의.
기술이 너무 화려하면 음악이 서커스가 됩니다. 듣는 사람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술 없이는 표현에 한계가 있습니다. 더 넓은 표현의 영역이 더 높은 기술을 요구합니다.
파가니니와 리스트가 이 긴장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의 기술이 때로는 서커스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기술을 통해 이전에 불가능했던 음악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브람스가 이 긴장에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그는 비르투오소적 화려함을 경계했습니다. 그의 피아노 음악이 기술적으로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숨겨진 어려움.
반 룬은 이 긴장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오늘날에도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선택을 합니다. 가장 빠르게 치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음악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술 없이는 음악이 표현될 수 없습니다. 이 긴장이 음악을 살아있게 합니다.
파가니니의 유산 : 200년 후에도 살아있는 선율
파가니니가 죽은 지 20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이 살아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유산이 그의 《카프리치 24번》 주제입니다. 이 단순한 선율이 후대 작곡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브람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by Paganini, Op.35, 1863)》. 두 권의 피아노 변주곡. 파가니니의 주제가 브람스의 엄격한 대위법과 만났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1934)》.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24개의 변주. 가장 유명한 18번 변주가 원래 주제를 거꾸로 뒤집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이 실제로 파가니니의 악마적 주제의 반전입니다.
이외에도 리스트, 루토스와프스키, 안드루 로이드 웨버. 수십 명의 작곡가들이 파가니니의 이 주제로 작품을 썼습니다.
반 룬은 이 유산에서 위대한 선율의 생명력을 봅니다. 파가니니가 만든 그 짧은 주제가 200년 동안 수십 명의 작곡가들이 계속 찾아오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것이 소진되지 않는 것. 오히려 다루면 다룰수록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는 것.
이번 화 감상 추천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대표하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기술이 예술이 되는 순간들입니다.
- 니콜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 D장조 Op.6》 : 1817~18년, 파가니니 자신을 위해 쓴 협주곡.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에서 바이올린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고속 아르페지오, 피치카토, 이중 음, 플라제올레트. 이것들이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닙니다. 그 기술들이 오케스트라와의 대화 안에서 음악이 됩니다. 왜 청중이 악마와 계약했다고 생각했는지를 들으면서 이해합니다.
-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E♭장조 S.124》 : 1849년 완성.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씨름하는 음악. 4개의 악장이 쉬지 않고 연결됩니다. 첫 악장의 강렬한 오케스트라 제시 후 피아노가 등장하는 순간. 그 피아노의 첫 음표가 마치 "나 여기 있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리스트마니아가 왜 일어났는지를 이 음악이 설명합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Op.43》 : 1934년. 파가니니가 죽은 지 90년 후, 라흐마니노프가 그 주제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24개의 변주 중 18번 변주. 원래의 악마적이고 빠른 주제가 거꾸로 뒤집어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됩니다. 악마의 주제가 천사의 멜로디가 되는 것. 파가니니의 유산이 100년을 건너 어떻게 살아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적 같은 작품입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의 가장 극적이고 가장 혁명적인 인물로 넘어갑니다.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 작곡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그가 발명한 것들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낭만주의였습니다. 실패한 사랑, 열정적인 창작, 인정받지 못한 천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음악이 되었습니다.
EP.56, 오케스트라의 혁명가: 베를리오즈와 관현악의 확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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