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12월 5일, 파리 음악원.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악장이 끝났습니다. 청중이 박수를 쳤습니다. 아직 계속해야 한다는 것도 잊을 만큼.
두 번째 악장. 왈츠. 이상하게 아름다운 왈츠. 어딘가 불안했습니다.
세 번째 악장. 들판에서 두 목동이 불고 있는 것 같은 오보에와 잉글리시 혼의 대화.
네 번째 악장. 북소리가 단두대로 걸어가는 행진처럼.
그리고 다섯 번째 악장. 마녀들이 모였습니다. 종소리. 그레고리오 성가가 왜곡되어 울렸습니다. 오케스트라가 포효했습니다.
청중이 경악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이것이 세계였는가? 아니면 꿈이었는가? 아니면 악몽이었는가?
프란츠 리스트가 맨 앞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일어나서 소리쳤습니다. 자신의 모자를 공중에 던졌습니다.
에크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의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Op.14)》 초연.
반 룬은 이 밤을 서양 음악사의 가장 혁명적인 순간 중 하나로 봅니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오케스트라 음악이 달라졌습니다. 음악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젊은 프랑스 작곡가가 음악 역사에 영구적인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베를리오즈 : 의대생에서 작곡가로
에크토르 베를리오즈. 그의 이야기가 낭만주의 예술가의 전형입니다.
1803년 프랑스 남부 이제르 주의 라코트상안드레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 의사의 아들. 아버지가 의사였기 때문에 베를리오즈도 의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파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 빠졌습니다.
특히 파리의 오페라 공연들. 글루크의 오페라들을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의학을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하겠다고.
아버지가 학비 지원을 끊었습니다. 베를리오즈가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합창 지도로, 신문에 음악 비평을 써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원의 규칙들이 그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전통적 화성 규칙들을 배우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왜 지켜야 하는지 의심했습니다.
베를리오즈가 나중에 회고록에서 썼습니다. "나는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음악을 배웠다. 나는 첫날부터 규칙들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반 룬은 베를리오즈에서 독학과 고집의 힘을 봅니다.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규칙을 완전히 내면화하기 전에 그것들을 의심했습니다. 그 의심이 혁명을 만들었습니다.
해리엇 스미스슨 : 사랑이 교향곡이 되다
베를리오즈의 이야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것이 해리엇 스미스슨(Harriet Smithson, 1800~1854)과의 사랑이었습니다.
1827년, 파리에서 영국 극단이 셰익스피어 공연을 했습니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오필리아 역의 아일랜드 배우 해리엇 스미스슨이 파리 관객을 매혹했습니다.
스물세 살의 베를리오즈가 이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즉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더 정확히는 집착에 빠졌습니다.
그는 해리엇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답장이 없었습니다. 다시 보냈습니다.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전갈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거절당했습니다. 해리엇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을 썼습니다.
이 교향곡의 프로그램(표제). 한 예술가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랑받지 못합니다. 아편을 먹고 꿈을 꿉니다. 꿈 속에서 그는 연인을 살해합니다. 처형됩니다. 마녀들의 집회에 연인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 "고정 악상(idée fixe)"이 울립니다. 연인의 선율. 하나의 멜로디가 다섯 악장 전체를 통해 변형됩니다. 왈츠에서, 목가에서, 행진에서, 마녀들의 춤에서.
아이러니가 있었습니다. 초연 당일 해리엇 스미스슨이 공연장에 있었습니다. 그녀가 관객석에서 이 교향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음악이 자신에 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돌렸습니다.
1833년, 베를리오즈와 해리엇이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해리엇의 연기 경력이 기울었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졌습니다.
반 룬은 이 이야기에서 낭만주의 예술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을 봅니다. 현실의 사랑이 아닌 상상 속의 사랑. 그 상상이 교향곡이 된 것. 그리고 그 교향곡이 현실의 사랑을 만들었지만 그 사랑은 음악만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예술이 현실보다 더 완벽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비극일 수 있다는 것.

오케스트레이션의 혁명
베를리오즈가 음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었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이란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에 음표를 배분하는 기술입니다. 어떤 음표를 플루트에 줄 것인지, 어떤 음표를 첼로에 줄 것인지. 이 선택이 음악의 색채와 질감을 결정합니다.
베를리오즈 이전에도 오케스트레이션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오케스트라를 능숙하게 사용했습니다. 베토벤이 그 규모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가 완전히 다른 차원을 열었습니다.
악기들의 새로운 사용. 오보에와 잉글리시 혼의 대화를 전례 없이 확장했습니다. 바수 드럼(bass drum)이 우렛소리처럼, 팀파니 여러 대가 동시에, 하프들이 겹겹이, 현악기를 나무로 치는 것(col legno). 이것들이 《환상 교향곡》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악기의 수. 그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요구했습니다. 《레퀴엠(Grande Messe des Morts, 1837)》에서 4개의 보조 오케스트라를 동쪽, 서쪽, 남쪽, 북쪽에 배치했습니다. 총 연주자가 400명 이상. 그 소리가 파리 앵발리드 성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반 룬은 베를리오즈의 오케스트레이션에서 색채 화가의 음악적 동등자를 봅니다. 들라크루아가 색채로 감정을 직접 표현한 것처럼 베를리오즈가 오케스트라 색채로 감정을 직접 표현했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하는 것.

관현악법 대전 : 베를리오즈의 교과서
베를리오즈가 1844년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관현악법(Grand Traité d'instrumentation et d'orchestration modernes)》.
이 책이 현대 오케스트레이션의 성경이 되었습니다.
각 악기의 음역, 특성,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악기들이 어떻게 결합될 때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악보 예시와 함께 설명했습니다.
이 책이 이후 모든 작곡가들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바그너가 이 책을 읽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읽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읽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읽었습니다.
말러가 이 책에 자신의 경험을 보충하여 개정판을 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이 악보들보다 더 큰 유산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베를리오즈의 생각이 이후 모든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흘렀습니다.
반 룬은 이 이론적 작업에서 예술가의 또 다른 역할을 봅니다.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자. 자신이 발견한 것을 체계화하여 전달하는 것. 그 전달이 개인의 작품보다 더 넓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해롤드 : 바이런과 비올라
《이탈리아의 해롤드(Harold en Italie, Op.16, 1834)》. 베를리오즈의 두 번째 교향곡.
파가니니가 의뢰했습니다. 새로운 비올라를 위한 독주 협주곡을 써달라고. 베를리오즈가 썼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가 거절했습니다. 독주 파트가 너무 단순하다고. 비르투오소를 위한 화려한 기교가 없다고.
베를리오즈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의 의도가 달랐습니다. 비올라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관찰자처럼 있는 것. 때로 사라지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 바이런의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에서 영감받은 구조.
해롤드라는 인물이 이탈리아 풍경 속을 방랑합니다. 순례자들의 행렬. 산의 음악. 저녁 기도. 산적들의 광시곡.
그 4년 후, 파가니니가 이 교향곡의 공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베를리오즈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베토벤 이후 이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2만 프랑을 선물했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이 돈으로 드라마틱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습니다.
반 룬은 이 일화에서 위대함이 위대함을 알아보는 것을 봅니다. 파가니니가 처음에 거절했지만 나중에 인정했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즉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 셰익스피어에 대한 경의
《로미오와 줄리엣(Roméo et Juliette, Op.17, 1839)》. 베를리오즈 자신이 "가장 위대한 내 작품"이라고 부른 드라마틱 교향곡.
이것이 오페라도 교향곡도 아닙니다. 독창자, 합창, 오케스트라. 그러나 극적으로 연기되지 않습니다. 음악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중앙에 "사랑의 장면(Love Scene)"이 있습니다. 어떤 가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만으로 발코니 장면을 표현합니다. 소리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베를리오즈가 서문에서 썼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부르는 노래를 내가 쓰지 않은 것은 그들의 목소리가 이 음악을 격하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설이 아름답습니다. 사랑 이야기에서 목소리를 빼고 오케스트라만 남긴 것.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깊이 사랑을 표현한 것.
반 룬은 이 작품에서 베를리오즈의 가장 독창적인 사고를 봅니다. 형식을 따르지 않는 것. 오페라의 요소와 교향곡의 요소를 섞되 어느 것도 아닌 제3의 것을 만드는 것. 이것이 예술 창조의 가장 순수한 형태였습니다.
파우스트의 겁주 : 문학과 음악의 만남
《파우스트의 겁주(La Damnation de Faust, Op.24, 1846)》.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받은 극적 전설. 오페라도 교향곡도 아닙니다. 성악가들과 합창과 오케스트라. 그러나 무대 위에서 연기되기 위한 것이 아닌, 연주회 형식을 위한 것.
공연 실패. 초연이 참담했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이것을 위해 돈을 빌렸습니다. 관객이 너무 적었습니다. 그가 큰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작품이 베를리오즈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장면.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말에 태우고 지옥으로 내달리는 장면. 《공기의 질주(Course à l'abîme)》. 오케스트라가 폭주합니다. 합창이 비명을 지릅니다.
반 룬은 초연의 실패와 후대의 인정 사이의 거리에서 예술의 역설을 봅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것들이 역사에서 살아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대에 성공한 것들이 잊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시간과 함께 드러나는 것.
레퀴엠 : 웅장함의 극단
《레퀴엠, 혹은 죽은 자를 위한 대미사곡(Grande Messe des Morts, Op.5, 1837)》.
4개의 보조 오케스트라. 동서남북 네 방향. 오케스트라들이 차례로 울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울립니다. 그 소리가 성당 전체를 가득 채웁니다.
〈투바 미룸(Tuba mirum)〉 악장. 심판의 날. 네 방향에서 금관 악기들이 일제히 울립니다. 팀파니 여덟 대. 이 소리가 공간을 진동시킵니다.
베를리오즈가 이것에 대해 썼습니다. "내가 살면서 단 하나의 작품만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레퀴엠을 구하겠다."
그러나 이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공간이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연주자가 필요한지. 그래서 오늘날에도 완전한 형태로 연주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반 룬은 이 레퀴엠에서 베를리오즈의 야심이 때로는 현실을 넘어선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야심이 없었다면 이 음악도 없었을 것이라고.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영역을 넓힙니다.
트로이인들 : 생애의 대작
《트로이인들(Les Troyens, 1858, 완성 기준)》. 5막 오페라. 베를리오즈가 30년에 걸쳐 꿈꾼 작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트로이의 함락, 카르타고에서의 사랑, 그리고 아이네아스의 이탈리아 도착까지.
베를리오즈가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완성한 후에도 전막 공연을 볼 수 없었습니다. 너무 길었습니다. 파리 오페라가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의 생전에 전막이 공연되지 않았습니다. 일부분만. 그것도 초라하게.
베를리오즈가 죽고 21년 후인 1890년에 처음으로 전막이 공연되었습니다. 독일 칼스루에에서. 독일어로.
반 룬은 이 이야기가 베를리오즈의 생애를 요약한다고 봅니다. 꿈은 위대했지만 현실은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죽은 후에라도.
오늘날 《트로이인들》이 베를리오즈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세계 주요 오페라 하우스들이 이 거대한 작품을 무대에 올립니다.
베를리오즈의 마지막
베를리오즈는 노년을 고독하게 보냈습니다.
두 번째 아내 마리 레시오도 죽었습니다. 아들 루이도 먼저 죽었습니다. 친구들도 하나씩 세상을 떠났습니다. 쇼팽, 리스트의 딸 블랑디나. 이 죽음들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1867~68년, 그가 러시아와 독일을 마지막으로 순회했습니다. 건강이 나빴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환영받았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 가족 앞에서 지휘했습니다.
1869년 3월 8일, 베를리오즈가 파리에서 죽었습니다. 65세.
그가 남긴 회고록의 마지막 문장. "나는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렸는가. 인정? 이해? 아니면 그냥 죽음?
반 룬은 이 "나는 기다린다"에서 낭만주의 예술가의 본질을 봅니다. 현실에서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기다리는 것. 그러나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150년이 지난 지금 베를리오즈가 낭만주의 음악의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 중 하나로 인정받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유산
베를리오즈가 이후 음악에 미친 영향을 정리합니다.
오케스트레이션. 그의 《관현악법》이 이후 모든 작곡가들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바그너,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스트라빈스키. 이들 모두 베를리오즈에서 배웠습니다.
프로그램 음악. 고정 악상(idée fixe) 개념이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로 발전했습니다. 하나의 주제가 인물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음악 비평. 그가 파리의 신문들에 쓴 음악 비평들이 탁월했습니다. 베토벤을 옹호하고 글루크를 분석하고 새로운 음악을 소개했습니다.
형식의 자유. 교향곡도 오페라도 아닌 새로운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형식적 자유가 말러, 스트라빈스키, 메시앙으로 이어졌습니다.
반 룬은 베를리오즈에서 "자기 시대보다 앞선 예술가"의 전형을 봅니다. 당대에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후 역사에서 그의 영향력이 드러난 것. 이것이 베를리오즈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예술의 역사에는 풍요로움이었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베를리오즈의 오케스트라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 에크토르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Op.14》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Marche au supplice)〉과 5악장 〈마녀들의 밤 축제(Songe d'une nuit du Sabbat)〉 : 4악장에서 팀파니가 처형 장면을 만들고, 5악장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지옥의 축제를 그립니다. 베를리오즈가 오케스트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악장들. 특히 5악장에서 그레고리오 성가 〈진노의 날(Dies Irae)〉이 비틀려 나타나는 순간이 충격적입니다. 종소리, 클라리넷, 현악기의 콜 레뇨. 이 소리들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 에크토르 베를리오즈, 서곡 《로마의 카니발(Le Carnaval Romain, Op.9)》 : 베를리오즈 음악의 가장 빛나는 순간. 오페라 《베네베누토 첼리니》에서 발췌. 잉글리시 혼의 느린 독주에서 시작하여 살타렐로의 현란한 에너지로 폭발합니다. 이 9분이 베를리오즈의 오케스트레이션 기술과 멜로디 감각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부담 없이 베를리오즈를 처음 접하기에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에크토르 베를리오즈, 《레퀴엠(Grande Messe des Morts) Op.5》 중 〈투바 미룸(Tuba mirum)〉 : 4개 방향에서 금관이 동시에 울리는 순간. 이것이 음악인지 자연현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죽음과 심판을 오케스트라로 표현한 것 중 가장 웅장합니다. 이 소리가 앵발리드 성당에 울렸을 때 파리 청중이 무엇을 느꼈는지를 상상하면서 들으시기를 권합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19세기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역설로 넘어갑니다. 예술의 역사를 바꾼 기술이 동시에 예술 자체를 위협했습니다. 1839년 다게르가 세상에 공개한 사진술. 빛으로 그린 그림. 이 발명이 어떻게 미술 세계를 흔들었는지, 그리고 그 혼란에서 어떻게 인상주의가 탄생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57, 빛으로 그린 그림: 사진의 발명과 예술의 위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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