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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예술, 인간을 말하다」 EP.54, 시와 음악의 결혼 : 슈베르트·슈만과 독일 가곡의 세계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20.

1815년 10월 19일, 빈.
열여덟 살의 청년이 책상에 앉았습니다. 괴테의 시집을 펼쳤습니다. 《마왕(Erlkönig)》.
그는 읽었습니다. 말을 달리는 아버지. 팔에 안긴 아픈 아이.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마왕의 목소리.
그는 읽으면서 동시에 들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음악이 왔습니다. 피아노의 양손이 쉼 없이 달리는 말의 발굽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 마왕의 유혹하는 목소리.
그리고 결말.
그는 펜을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책상 위에 악보가 있었습니다. 《마왕》. 완성된 악보.
이것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설 자체가 이 청년이 누구였는지를 말해줍니다.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반 룬은 이 순간에서 가곡(Lied)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시가 음악이 되는 것. 언어와 소리가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결합에서 둘 다 혼자일 때보다 더 큰 것이 탄생하는 것.

프란츠 슈베르트 , 1875

가곡이란 무엇인가

가곡(Lied, 복수형 Lieder). 독일어로 단순히 "노래"라는 뜻. 그러나 음악사에서 가곡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독일 낭만주의 시대에 꽃핀 예술 형식. 피아노 반주에 성악 한 성부. 독일어 시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
그러나 이 단순한 설명이 가곡의 본질을 다 담지 못합니다.
가곡에서 피아노가 단순한 반주가 아닙니다. 목소리와 동등한 파트너입니다. 때로는 목소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피아노가 표현합니다.
그리고 가곡에서 시가 단순한 가사가 아닙니다. 음악이 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시와 음악이 서로를 완성하는 것. 좋은 가곡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분리될 수 없게 하나가 되었을 때 가곡이 성공합니다.
반 룬은 가곡에서 낭만주의 예술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봅니다. 인간의 목소리, 가장 개인적인 악기. 그리고 피아노, 19세기가 발명한 가장 완전한 악기. 이 둘이 만나 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가곡이었습니다.

슈베르트 피아노 II , 1899, 캔버스에 유화

슈베르트 이전 : 가곡의 역사

가곡이 슈베르트와 함께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긴 역사가 있었습니다.
민요(Volkslied). 독일 민중의 노래들. 그것들이 가곡의 뿌리였습니다.
18세기 후반, 독일 작곡가들이 시를 음악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글루크, 하이든, 모차르트도 가곡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로 부수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요한 프리드리히 라이하르트(Johann Friedrich Reichardt, 1752~1814). 그가 괴테의 시들에 음악을 붙였습니다. 괴테와의 오랜 우정. 그러나 라이하르트의 가곡들이 상대적으로 단순했습니다. 피아노가 아직 보조적 역할이었습니다.
칼 프리드리히 첼터(Carl Friedrich Zelter, 1758~1832). 또 다른 괴테의 음악 친구. 베를린 징아카데미의 지도자. 그가 나중에 멘델스존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괴테 자신이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가 괴테에게 직접 악보를 보냈지만 괴테가 무시했습니다. 첼터의 단순한 설정이 괴테에게는 더 맞았습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시를 압도한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반 룬은 이 아이러니를 봅니다. 가장 위대한 시인과 가장 위대한 가곡 작곡가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위대함이 항상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슈베르트 :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 그가 31년을 살면서 600곡이 넘는 가곡을 썼습니다.
하루에 여러 곡씩. 어떤 날에는 하루에 8곡을. 1815년 한 해 동안 144곡의 가곡을.
이 숫자가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숫자가 아닌 질이 더 경이롭습니다.
슈베르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빈에서 학교 선생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잠시 교사 생활을 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공식 직책이 없었습니다. 가난했습니다. 건강이 나빴습니다. 매독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빈 사교계에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귀족의 후원도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졌지만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성공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음악을 나누는 모임. 화가, 시인, 지식인들.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면 친구들이 들었습니다. 이 사적인 모임에서 그의 가곡들이 처음 울렸습니다.
반 룬은 슈베르티아데에서 예술의 가장 순수한 공간을 봅니다. 대중을 위해서도 아니고 비평가를 위해서도 아닌, 그냥 나누기 위해서.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명성을 위해서도 아닌, 그 음악이 아름답기 때문에.

: 1817년에 출판된 프란츠 슈베르트의 "송어"의 자필 사본

슈베르트의 가곡들 : 시가 음악이 되는 방식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몇 가지 살펴봅니다.
《마왕(Erlkönig, D.328, 1815)》. 에피소드 오프닝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곡에서 피아노의 오른손이 쉼 없이 세 음을 반복합니다. 말의 발굽 소리. 그리고 성악가 한 명이 네 명의 목소리를 냅니다. 서술자. 아버지. 아이. 마왕.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고 안심시키려 합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높고 두렵습니다. 마왕의 목소리가 달콤하고 유혹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술자가 말합니다. "아이는 그의 팔 안에서 죽어 있었다." 피아노가 침묵합니다.
이 5분이 세 등장인물의 드라마를 한 성악가와 피아노로 완성합니다. 오페라 없이. 무대 없이.
《들장미(Heidenröslein, D.257, 1815)》. 괴테의 시. 소년이 들장미를 꺾습니다. 장미가 찔러도 소년이 꺾습니다. 단순한 민요 같은 선율. 그러나 그 안에 순수함과 폭력의 공존이 있습니다.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 D.531, 1817)》. 하인리히 클라우디우스의 시. 죽음이 소녀를 찾아옵니다. 소녀가 거부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달콤하게 말합니다. "나를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무섭지 않다. 내 팔 안에서 잠들어라." 피아노의 반복되는 화음이 장송 행진곡처럼.
슈베르트가 나중에 이 곡의 피아노 선율을 《현악 사중주 14번(Death and the Maiden)》에서 다시 썼습니다. 같은 선율이 실내악이 되었습니다.
반 룬은 슈베르트의 가곡들에서 공통된 것을 봅니다. 시의 내면을 읽는 능력. 시인이 말한 것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음악이 표현하는 것. 괴테의 《마왕》이 슈베르트의 음악으로 더 무서워졌습니다. 하이네의 시들이 슈베르트의 음악으로 더 쓸쓸해졌습니다.

로베르트 슈만 , 1839

연가곡 : 이야기가 있는 가곡들

슈베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연가곡(song cycle)이었습니다. 여러 곡의 가곡이 하나의 이야기나 감정의 흐름으로 연결된 것.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D.795, 1823)》. 빌헬름 뮐러의 시 20편. 한 젊은이가 방랑 길에서 물방앗간 아가씨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절망한 젊은이가 시냇물에 몸을 던집니다. 마지막에 시냇물이 노래합니다. "자거라, 자거라."
이 20곡이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입니다. 소설보다 더 짧고 더 깊습니다. 슈베르트가 이 연가곡을 매독 진단을 받은 후 요양 중에 썼습니다.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 1827)》. 역시 뮐러의 시 24편. 이번에는 이야기보다 심리적 여정입니다. 사랑에 실패한 방랑자가 겨울 밤 길을 걷습니다. 눈 위의 발자국. 낡은 나무. 마을에서 들리는 피리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 손풍금을 켜는 늙은 거지.
이 연가곡이 슈베르트의 가장 어둡고 가장 깊은 작품으로 꼽힙니다. 죽기 전 해에 완성했습니다. 슈베르트 자신이 이것을 "끔찍한 곡들의 연속"이라고 불렀습니다. 친구들이 처음 들었을 때 우울해했습니다.
바리톤 한스 호터가 말했습니다. 《겨울 나그네》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평생이 걸린다고. 그 24곡 각각이 인간 경험의 다른 층위에 닿는다고.
반 룬은 《겨울 나그네》에서 예술이 어떻게 개인의 경험을 보편으로 만드는지를 봅니다. 슈베르트의 고통이 이 음악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여기서 찾습니다. 특수한 것이 보편이 되는 것. 이것이 예술의 가장 큰 기적입니다.

클라라 슈만 초상 사진 (1878년경)

슈만 : 사랑과 문학과 음악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두 번째 위대한 가곡 작곡가.
슈만이 처음에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을 다쳐 연주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작곡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1840년이 왔습니다.
그해 9월 12일 슈만이 클라라 비크(Clara Wieck, 1819~1896)와 결혼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가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소송이 있었습니다. 법원 판결로 결혼을 허락받았습니다.
그 결혼식 전날 밤, 슈만이 클라라에게 노래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그 한 해 동안 슈만이 138곡의 가곡을 썼습니다.
이것을 "가곡의 해(Liederjahr)"라고 부릅니다.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 하이네의 시 16편. 사랑의 시작에서 환멸까지. 5월의 꽃들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 무덤에 꽃들을 던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첫 곡 〈아름다운 5월에(Im wunderschönen Monat Mai)〉. 피아노가 조율되지 않은 화음으로 시작합니다. 불완전한 화음. 해결되지 않는 긴장. 그 위에 목소리가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 그러나 피아노의 화음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행복한 시처럼 보이지만 음악이 불안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 가진 달콤한 불안입니다.
《여성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 Op.42)》.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시 8편. 한 여인의 삶. 첫 사랑, 결혼, 아이의 탄생, 그리고 남편의 죽음. 마지막 곡의 피아노 후주가 가장 감동적입니다. 첫 번째 곡의 선율이 다시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기억이 남는 것.
반 룬은 슈만의 가곡들에서 문학 지식인의 음악을 봅니다. 슈만이 작곡가이기 전에 글쟁이였습니다. 음악 잡지를 창간하고 비평을 썼습니다. 그의 음악에 문학적 암시가 가득합니다. 하이네의 아이러니, 하이네의 슬픔이 슈만의 음악으로 직접 번역되었습니다.


클라라 슈만 : 음악을 전달한 사람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가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알려졌습니다. 리스트가 그녀의 연주를 듣고 경탄했습니다.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유럽 전역에 알린 것이 상당 부분 그녀의 연주 덕분이었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이 정신 질환으로 입원하고 사망한 후, 클라라가 40여 년을 더 살면서 남편의 음악과 브람스의 음악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클라라 자신도 작곡가였습니다. 가곡들, 피아노 협주곡. 그러나 당시 여성 작곡가에 대한 편견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반 룬은 클라라에서 예술의 전달자(transmitter)의 역할을 봅니다. 작곡가만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연주자가 작품을 살려냅니다. 그리고 그 살림이 또 다른 창조입니다.


브람스, 볼프, 슈트라우스 : 가곡의 계보

가곡이 슈베르트와 슈만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그가 약 300곡의 가곡을 썼습니다. 브람스의 가곡들에서 민요의 소박함과 고전주의의 엄격함이 결합됩니다.
클라라 슈만과의 평생의 우정. 브람스가 로베르트 슈만이 입원한 후 클라라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채. 그 억제된 감정이 그의 음악 안에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낍니다.
휴고 볼프(Hugo Wolf, 1860~1903). 가곡에 생애를 바친 작곡가. 오스트리아 출신. 그가 괴테, 뫼리케, 스페인 시, 이탈리아 시를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250여 곡의 가곡. 슈베르트가 감정을 표현했다면 볼프가 시의 뉘앙스 하나하나를 음악으로 해석했습니다. 가장 문학적인 가곡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 1948)》. 슈트라우스가 84세에 쓴 마지막 작품. 봄, 9월, 잠들 때, 황혼에. 삶의 끝에서 자연과 죽음에 대한 명상.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 이 작품이 낭만주의 가곡의 마지막 위대한 유언처럼 들립니다.
반 룬은 이 계보에서 가곡이 단순한 음악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임을 봅니다. 개인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큰 오케스트라 없이도, 화려한 무대 없이도, 한 목소리와 한 피아노로 인간의 가장 깊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79세 (1828)

괴테와 하이네 : 가곡을 낳은 시인들

가곡을 이야기하면서 시인들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그의 시들이 가곡의 가장 큰 원천이었습니다. 슈베르트만도 괴테의 시에 70곡 이상을 붙였습니다. 볼프, 브람스, 슈만, 베토벤, 모차르트 모두 괴테의 시를 사용했습니다.
괴테의 시들이 가곡에 적합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시들이 간결합니다. 과잉 없이. 핵심을 향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음악으로 표현하기에 이상적이었습니다.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슈만이 가장 많이 사용한 시인. 하이네의 시들이 독특합니다. 아름다운 것에서 갑자기 비틀립니다. 달콤함 다음에 쓴맛. 진지함 다음에 아이러니.
이 하이네의 아이러니가 슈만의 음악에서 피아노 후주로 나타납니다. 목소리가 노래를 끝내면 피아노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말합니다. 목소리가 말한 것과 다른 것을. 그 간극이 하이네의 아이러니입니다.
반 룬은 이 시인과 작곡가의 관계에서 예술들 사이의 대화를 봅니다. 시가 가곡에 영감을 주지만 가곡이 시를 새롭게 만듭니다. 하이네의 시를 읽을 때와 슈만의 음악으로 들을 때가 다른 경험입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가곡의 공연 : 가장 친밀한 예술

가곡이 특별한 것이 그 규모에 있습니다.
교향곡은 100명의 연주자와 2000명의 청중이 필요합니다. 오페라는 더 많습니다.
가곡은 두 사람이면 됩니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그리고 아무도 없어도 됩니다. 혼자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가곡입니다.
이 친밀함이 가곡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대형 공연장보다 작은 방에서, 무대 조명보다 촛불 아래에서 가곡이 가장 빛납니다.
그래서 슈베르티아데가 가곡의 원래 공간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살롱에서. 거실에서.
오늘날 가곡 리사이틀(Liederabend, 가곡의 밤)이 가장 친밀한 클래식 공연 형식으로 남아있습니다. 독창자 한 명, 피아니스트 한 명, 그리고 조용한 청중. 이 형식이 슈베르티아데에서 직접 이어진 것입니다.
반 룬은 이 친밀함에서 예술의 가장 근원적인 형태를 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 대형 기계 없이. 기술 없이. 오직 목소리와 손과 피아노.


반 룬이 가곡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가곡을 낭만주의가 음악에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봅니다.
낭만주의가 개인의 감정을 해방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방이 가장 직접적으로 실현된 것이 가곡이었습니다. 한 개인의 목소리. 한 시인의 언어. 한 작곡가의 음악. 이것들이 결합되어 한 청중의 가장 깊은 곳에 닿는 것.
슈베르트가 31년을 살면서 600곡을 썼습니다. 그 중 많은 것들이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매일 어딘가에서 《겨울 나그네》가 울립니다. 《마왕》이 울립니다. 《들장미》가 울립니다.
이것이 예술의 불사성입니다. 작곡가는 죽었지만 음악은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감정에 닿습니다. 200년의 시간을 건너.


이번 화 감상 추천

슈베르트, 슈만, 그리고 가곡의 세계를 대표하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 프란츠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 중 〈보리수(Der Lindenbaum)〉 : 24곡으로 된 연가곡의 다섯 번째 곡. 방랑자가 잘 알던 보리수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좋았던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겨울 바람이 불고 방랑자는 계속 걸어야 합니다. 피아노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만들고 목소리가 기억을 노래합니다. 그 5분이 "모든 것을 잃고 걸어가야 하는 인간"을 표현합니다.

    • 로베르트 슈만,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 전곡 : 16곡. 사랑의 시작에서 끝까지. 하이네의 시와 슈만의 음악이 결합된 낭만주의 가곡의 최고봉 중 하나. 마지막 곡이 끝나고 피아노 후주가 길게 이어집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의 침묵. 그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 : 84세 슈트라우스의 작별 인사.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 봄, 9월, 잠들 때, 황혼에. 낭만주의 음악의 위대한 전통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마지막 곡 〈황혼에〉에서 호른이 먼 곳에서 불어옵니다. 오래된 것이 사라지는 소리입니다. 이 음악이 가곡 전통 전체의 아름다운 마무리입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19세기 음악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현란한 순간으로 넘어갑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악마와 계약했다는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리스트가 피아노 앞에서 여성 청중을 기절시켰습니다. 비르투오소(Virtuoso)의 시대. 기술이 예술이 되고 공연이 현상이 된 시대. 파가니니와 리스트, 두 전설적 비르투오소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55, 악마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의 시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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