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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예술, 인간을 말하다」 EP.58, 왈츠의 왕 : 요한 슈트라우스와 빈의 황금시대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24.

1867년 2월 15일, 빈 무도회장.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önen blauen Donau)》가 처음 울렸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그의 바이올린이 이끄는 오케스트라에서 왈츠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점점 넓어지며. 그리고 마침내 온 홀을 가득 채웠습니다.

청중이 춤을 추었습니다.

그날의 반응이 열광적이지 않았습니다. 초연은 소박했습니다. 가사가 붙은 합창 버전이었는데 가사가 시원치 않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 왈츠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달라졌습니다.

오늘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인류가 만든 음악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가장 많이 사랑받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매년 1월 1일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에서 울립니다. 2001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선이 이 음악에 맞춰 춤추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이 왈츠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완벽한 움직임의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반 룬은 이 왈츠에서 19세기 후반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취약한 순간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왈츠의 역사 :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왈츠(Waltz). 독일어로는 발처(Walzer). 3박자의 춤.

이 춤이 처음 유럽 궁정에 나타났을 때 스캔들이었습니다. 18세기 말.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귀족 무도회 춤들, 예를 들어 미뉴에트에서 남녀가 손끝만 잡거나 아예 떨어져서 추었습니다. 친밀한 신체 접촉이 없었습니다.

왈츠가 달랐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잡았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이것이 스캔들이었습니다.

1816년 런던에서 왈츠가 처음 선보였을 때 《더 타임스》가 논평했습니다. "우리는 이 독일 무도회의 음탕한 본성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왈츠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퍼졌습니다. 귀족이 금지하면 시민이 더 원합니다.

빈이 왈츠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9세기 초부터 빈의 무도회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오페라 극장 무도회, 약사 무도회, 제빵사 무도회, 굴뚝 청소부 무도회. 각 직업 조합마다 자신의 무도회가 있었습니다. 빈의 겨울이 왈츠의 계절이었습니다.

반 룬은 왈츠의 역사에서 예술이 사회를 반영하는 방식을 봅니다. 귀족 사회의 미뉴에트에서 시민 사회의 왈츠로. 그 전환이 단순한 춤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였습니다.

빈 슈타트파르크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황금 동상


요한 슈트라우스 1세 : 아버지의 왕국

요한 슈트라우스 1세(Johann Strauss I, 1804~1849). 그가 빈 왈츠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가난한 여관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도나우 강변 여관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아이러니가 됩니다. 그 아들이 도나우 강의 왈츠를 작곡하게 되니.

바이올리니스트로 시작했습니다. 요제프 란너(Josef Lanner)와 함께 소규모 무도회 앙상블을 이끌었습니다. 두 사람이 빈 왈츠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슈트라우스 1세의 성공이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가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유럽 투어를 했습니다. 런던에서, 파리에서, 독일에서. 그는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 Op.228)》을 썼습니다. 오스트리아 황군 원수 라데츠키의 이탈리아 승리를 기념하는 행진곡. 이 곡이 오늘날에도 빈 필 신년 음악회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슈트라우스 1세가 세 아들에게 음악을 시키지 않으려 했습니다. 자신처럼 음악가의 고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큰아들 요한 2세를 은행가로 만들려 했습니다.

어머니 안나가 숨겨서 가르쳤습니다. 바이올린을.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서 결국 헤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여인과 살며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빈의 무도회장에서. 아버지의 오케스트라와 아들의 오케스트라가 같은 밤에 다른 장소에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빈 시민들이 어느 슈트라우스를 선택할지 의논했습니다.

반 룬은 이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서 예술의 세대 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지만 그 과정은 상처를 남깁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왕위 계승

1849년, 슈트라우스 1세가 45세에 죽었습니다. 성홍열.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 1825~1899)가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아버지의 자리가 아닌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그가 이미 아버지 생전에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두 오케스트라를 합쳤습니다. 그리고 유럽 전역을 정복했습니다.

1856년, 러시아 황제의 초청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 시즌을 지휘했습니다. 10년 동안 매년 여름을 러시아에서 보냈습니다. 파블로프스크 역의 여름 야외 콘서트. 이 콘서트들이 전설이 되었습니다.

1872년, 미국 보스턴. 세계 평화 기념 콘서트. 슈트라우스가 100개의 보조 지휘자와 함께 20,000명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청중이 100,000명. 그가 나중에 회고했습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성공이었습니다.

그는 왈츠만 썼던 것이 아닙니다. 폴카, 카드릴, 행진곡. 그리고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 1874)》. 오페레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 오해와 혼선이 가득한 희극. 가면무도회 장면. 감옥에서의 코믹한 2막. 이 작품이 오늘날에도 세계 모든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주됩니다.

반 룬은 슈트라우스 2세에서 대중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봅니다. 그의 음악이 가볍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가장 어렵습니다. 단순하게 들리는 아름다움이 실제로는 가장 복잡한 것일 수 있습니다. 브람스가 왈츠 악보에 서명했습니다. "이것은 요한 슈트라우스가 아닌 나 브람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동시대의 가장 엄격한 음악가가 슈트라우스의 재능을 인정한 것.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 가장 유명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314, 1866)》. 이 왈츠의 탄생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배경이 있었습니다. 1866년 쾨니그레츠(Königgrätz) 전투.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에게 패배했습니다. 빈 시민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1867년 새해, 빈 남성 합창 협회가 슈트라우스에게 의뢰했습니다. 빈 시민들의 기운을 북돋울 곡을.

슈트라우스가 이 왈츠를 썼습니다.

그것이 도나우 강이어야 했습니다. 패배의 아픔 속에서 영원히 흐르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아름다운 것.

다섯 개의 왈츠 섹션. 각각이 물결처럼 이어집니다.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강처럼.

아이러니. 도나우 강이 실제로 파란색이 아닙니다. 대개 회갈색입니다. 슈트라우스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음악 속의 도나우가 파랗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반 룬은 이 왈츠에서 예술이 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도나우가 파랗지 않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파랍니다. 그리고 그 음악이 울릴 때 빈 시민들은 파란 도나우를 보았습니다. 예술이 현실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황제 왈츠 : 제국의 노래

《황제 왈츠(Kaiserwalzer, Op.437, 1889)》. 슈트라우스 2세의 가장 장엄한 왈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1867년 성립.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왈츠가 《푸른 도나우》와 다릅니다. 더 위엄 있습니다. 더 느립니다. 마치 황제가 연회장을 가로질러 걷는 것처럼.

그러나 그 위엄이 슬프게 들리기도 합니다. 1889년에 이미 합스부르크 제국이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민족 갈등. 정치적 불안정. 루돌프 황태자가 그해 자살했습니다. 제국이 외면적으로는 화려했지만 내부에서는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반 룬은 이 왈츠에서 세기말(Fin de siècle) 빈의 모순을 봅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불안한 시대에 나왔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위로였는가 도피였는가. 반 룬은 둘 다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둘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박쥐 : 오페레타의 완성

《박쥐(Die Fledermaus)》.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걸작.

1874년 4월 5일 빈 초연. 이 시기 빈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1873년 주식 폭락. 많은 사람들이 저축을 잃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박쥐》가 나왔습니다. 웃음. 혼란. 가면무도회. 부유한 이들의 어리석음. 모든 것이 해프닝으로 끝나는 이야기.

빈 시민들이 극장으로 몰렸습니다. 우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쥐》의 유명한 2막. 감옥 간수 프로슈가 이미 술에 취한 채 등장합니다. 죄수 에이젠슈타인이 어젯밤 가면무도회에서 아내인 줄 모르고 아내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모릅니다. 모두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페레타의 논리입니다. 세상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 낙관주의가 진지한 오페라와 다릅니다.

반 룬은 이 낙관주의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무거운 현실을 가볍게 만드는 것. 비극을 희극으로 보는 것. 이것이 예술의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입니다.


빈의 황금시대 : 그리고 그 그늘

19세기 후반 빈. 이 도시가 세계 음악의 수도였습니다.

슈트라우스 2세.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1897년 빈 필 음악 감독). 그리고 오페라 극장들, 무도회장들, 카페들.

빈 카페 문화. 작가들이 신문을 읽으며 글을 쓰고, 음악가들이 새 악보를 논의하고, 화가들이 스케치를 하고. 이것이 빈이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빈에서 정신분석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빈 분리파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빈의 밤문화를 소설로 썼습니다.

그러나 그 황금빛 아래에 균열이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11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 그들 사이의 갈등. 반유대주의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칼 뤼거(Karl Lueger)가 반유대주의를 내세워 빈 시장이 되었습니다.

젊은 히틀러가 그 시기 빈에 있었습니다. 1907년부터. 예술 아카데미 입시에 두 번 실패했습니다. 빈에서 그는 이 모든 모순을 보았습니다. 황금빛 문화와 내부의 어둠.

반 룬은 빈의 황금시대에서 아름다움과 불안의 공존을 봅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들이 그 공존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가장 불안한 시대에서 나왔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릅니다. 사라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간절하게 아름다운 것.


신년 음악회 : 왈츠가 살아남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99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살아남았습니다.

1939년 1월 1일, 빈 필하모닉이 처음으로 신년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슈트라우스 가족의 음악들로. 그리고 이것이 매년 1월 1일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빈 필 신년 음악회가 세계 90개국 이상에서 생중계됩니다. 수억 명의 청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중계되는 클래식 음악 공연.

그리고 항상 마지막은 같습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그리고 앙코르로 《라데츠키 행진곡》. 지휘자가 청중에게 박수의 박자를 지도합니다. 청중이 함께 박수를 칩니다.

이것이 1월 1일의 빈입니다. 1월 1일의 세계입니다.

반 룬은 이 전통에서 예술이 시간을 이기는 방식을 봅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918년 붕괴했습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살아있습니다. 황제가 없어도 황제 왈츠가 울립니다. 도나우가 파랗지 않아도 《푸른 도나우》가 파랗습니다.

예술이 역사보다 오래 삽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빈의 황금시대, 그 아름다움과 그 덧없음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314》 : 이 왈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때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무도회 음악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계속 들으면 그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섯 개의 왈츠가 각각 다르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강처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인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함 안에 심오함이 있는 것.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 서곡 : 이 서곡이 《박쥐》 전체의 축소판입니다. 날쌔고 우아하고 유머러스합니다. 현악기의 빠른 음계가 박쥐가 날개를 펄럭이는 것 같습니다. 빈의 밤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 서곡을 들은 후 경쾌한 기분이 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무거운 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황제 왈츠(Kaiserwalzer) Op.437》 : 《푸른 도나우》보다 느리고 《박쥐》보다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빈의 황금시대 전체가 담겨있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도입부. 그리고 왈츠의 주제가 들어올 때의 우아함. 이 음악을 들으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궁정 무도회를 상상합니다. 황제와 황후. 화려한 드레스들. 그리고 그 화려함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19세기 피아노 음악의 가장 서정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세계로 들어갑니다. 쇼팽. 피아노의 시인. 폴란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습니다. 사랑했고 고통받았고 고국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피아노 음악이 되었습니다.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발라드, 야상곡, 에튀드. 쇼팽이 피아노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EP.59, 피아노의 시인: 쇼팽, 조국과 예술 사이에서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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