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 EP.49

1937년 가을, 뉴욕 코네티컷.
반 룬이 펜을 놓았습니다. 《예술》의 마지막 페이지를 썼습니다.
창밖으로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스페인에서 내전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해 봄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완성했습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뮌헨에서 퇴폐 예술전(Entartete Kunst)을 열었습니다. 칸딘스키, 클레, 뭉크, 키르히너. 반 룬이 방금 책에서 다룬 화가들의 작품들이 그 전시회에서 조롱받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전쟁의 기운이 짙어졌습니다.
그는 1815년부터 지금까지 122년의 예술 역사를 썼습니다. 그 122년이 어떤 세기였는가.
인류가 전례 없는 속도로 변했습니다. 산업혁명이 도시를 바꾸었습니다. 사진이 발명되었습니다. 기차가, 자동차가, 비행기가 세계를 좁혔습니다. 두 번의 전쟁이 유럽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에 예술이 반응했습니다. 낭만주의로, 사실주의로, 인상주의로, 표현주의로, 추상미술로.
반 룬이 이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펜을 놓았습니다.
그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가. 혼돈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이 챕터에 담겨 있습니다.

1815년 : 새로운 세계의 출발점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나폴레옹이 패배했습니다. 유럽의 지도가 다시 그려졌습니다. 빈 회의(Congress of Vienna)가 나폴레옹 이전으로 질서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왕정이 돌아왔습니다. 혁명의 이상이 억압되었습니다.
그러나 혁명의 씨앗은 억압될 수 없었습니다.
예술에서 낭만주의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바이런, 셸리, 키츠. 고야, 들라크루아, 프리드리히. 슈베르트, 슈만, 쇼팽. 이 예술가들이 복원된 구질서에 감정으로, 자연으로, 개인의 자유로 저항했습니다.
1830년, 프랑스에서 또 다른 혁명.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렸습니다.
1848년, 유럽 전역에서 혁명의 불길. "민족의 봄(Völkerfrühling)".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거의 모든 곳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가 다음 세대를 만들었습니다.
반 룬은 이 시기를 예술의 긴장 시대로 봅니다. 복원된 권위와 혁명의 충동 사이. 그 긴장이 창조적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이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들을 예술로 표현했습니다.
사진의 탄생 : 그림이 위기에 처하다
1839년 1월 7일, 파리 과학 아카데미.
프랑스 화가이자 발명가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공개했습니다. 은판 위에 빛이 이미지를 새기는 것. 세계 최초의 실용적 사진술.
유럽 예술계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가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
이것이 과장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의 한 기능이 실제로 죽었습니다. 초상화. 이전에 귀족들이 가족의 얼굴을 기록하기 위해 화가를 고용했습니다. 이제 사진관에 가면 훨씬 싸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초상화 화가들이 직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반 룬은 이 위기가 오히려 해방이었다고 봅니다. 회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진 것. 사진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는 압력. 그것이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을 낳았습니다.
위기가 혁명을 만들었습니다.
쿠르베와 사실주의 : 추한 것도 그림이 된다
1850년 파리 살롱. 사람들이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분노했습니다.
3미터 15센티 높이, 6미터 60센티 너비. 시골 마을의 장례 장면. 평범한 농부들, 성직자들, 마을 사람들.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얼굴들. 이름도 없는 사람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의 《오르낭의 매장(A Burial at Ornans)》.
왜 분노했는가. 이 크기의 그림은 역사화, 종교화, 신화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 예수의 부활, 그리스 영웅들. 그것이 살롱의 논리였습니다.
쿠르베가 그 논리를 파괴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장례가 역사화와 같은 크기로 그려졌습니다. 이것이 선언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역사적 사건만큼 중요하다는 것.
쿠르베 자신이 말했습니다. "《오르낭의 매장》은 낭만주의의 매장이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어떤 시대의 풍습, 사상, 외양만을 그릴 수 있다. 역사가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을 그리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고고학이다."
반 룬은 쿠르베에서 사실주의(Realism)의 핵심을 봅니다. 현재를 그리는 것.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것이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상주의로, 나아가 모든 현대 예술로 이어지는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밀레와 노동 : 예술이 민중을 만나다
쿠르베의 동시대인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그가 사실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The Gleaners, 1857)》. 추수가 끝난 밭에서 세 명의 농촌 여인이 남은 이삭을 줍습니다. 허리를 구부린 자세. 힘든 노동. 저 멀리 풍요로운 수확이 쌓여있지만 이들은 그 가장자리에서 남은 것을 줍습니다.
이 그림이 파리 살롱에서 불편함을 일으켰습니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이 이 그림에서 사회주의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농민이 이처럼 크게, 이처럼 존엄하게 그려진 적이 없었습니다.
밀레가 의도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노동이 아름답다는 것. 노동하는 사람들이 존엄하다는 것.
반 룬은 밀레와 쿠르베에서 예술의 민주화가 이미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봅니다. 무엇을 그리는가가 중요합니다. 왕과 신화의 인물들만이 아닌, 이름 없는 농부와 노동자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전환이 혁명만큼 중요했습니다.

산업혁명과 예술 : 기계가 세계를 바꾸다
19세기를 이해하려면 산업혁명을 이해해야 합니다.
공장이 세워졌습니다.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런던, 맨체스터, 버밍엄. 빈민가. 아동 노동. 하루 14시간 노동. 매연이 가득한 도시.
이것이 예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두 가지 방향이 있었습니다.
하나. 산업화를 찬양하는 것.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비, 증기, 속도》. 증기 기관차가 폭풍 속을 달립니다. 현대 문명의 힘이 아름답습니다.
둘. 산업화를 거부하는 것. 영국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이들이 라파엘로 이전의 중세 예술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기계 시대가 잃어버린 것들, 즉 장인 정신, 자연, 영성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 라파엘 전파에서 출발하여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이끌었습니다. 기계 생산에 반대하고 수공예를 옹호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일상용품에도 있어야 한다고. 그의 벽지, 직물, 가구 디자인들이 오늘날에도 생산됩니다.
반 룬은 이 두 방향 모두에서 산업혁명이 예술을 자극했다는 것을 봅니다. 찬양하든 거부하든, 예술가들이 기계 시대와 씨름했습니다. 그 씨름이 현대 예술의 많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상징주의와 탐미주의 : 현실에서 꿈으로
19세기 후반, 또 다른 반응이 나왔습니다.
상징주의(Symbolism). 사실주의가 현실을 직접 보려 했다면 상징주의가 현실 너머의 것을 보려 했습니다. 꿈, 신화, 신비, 죽음. 이것들이 상징주의의 주제였습니다.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그의 그림들에서 인간의 눈이 혼자 떠다닙니다. 꽃들이 기괴한 얼굴을 가집니다.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빈의 화가. 그의 작품들에서 황금이 흐릅니다. 《키스(The Kiss, 1907~08)》. 두 인물이 금빛 망토로 덮인 채 입을 맞춥니다. 배경이 금빛 문양들로 가득합니다. 현실적 공간이 없습니다. 오직 이 순간, 이 사랑, 이 황금빛.
탐미주의(Aestheticism).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대표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 예술이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일 의무가 없다고.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반 룬은 상징주의와 탐미주의에서 19세기 말의 피로를 봅니다. 혁명도, 사실주의도, 산업화도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다른 곳을 향했습니다. 현실 너머. 꿈. 아름다움 자체.
이것이 도피인가 창조인가. 반 룬의 답이 있습니다. 예술이 현실을 반영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예술이 결국 공허해질 수 있다고.

제1차 세계대전 : 모든 것이 바뀌다
1914년 8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4년 동안 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서부 전선의 참호. 독가스. 기관총. 탱크. 비행기 폭격. 현대 기술이 현대적 학살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예술이 이것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전쟁 이전에 표현주의가 이미 이 공포를 예감했습니다. 뭉크의 《절규》(1893), 키르히너의 불안한 도시 장면들. 그 불안이 전쟁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토 딕스(Otto Dix, 1891~1969). 독일 화가. 그가 전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렸습니다. 《전쟁의 트립티크(Der Krieg, 1929~32)》.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지옥 그림 같은 세 폭짜리 그림. 죽은 자들, 부상자들, 무너진 도시들. 이것이 전쟁의 진실이었습니다.
다다이즘이 탄생했습니다. 전쟁을 낳은 문명 전체를 거부하는 예술. 의미를 거부하는 것이 의미가 된 것.
반 룬은 제1차 세계대전을 현대 예술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봅니다. 전쟁 이전의 낙관주의가 사라졌습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예술이 이 환멸을 표현했습니다. 다다이즘의 부조리, 초현실주의의 무의식, 추상미술의 탈현실. 이 모두가 전쟁이 만든 세계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두 전쟁 사이 : 바이마르 공화국의 황금시대
1918년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바이마르 공화국이 독일에 존재했습니다.
이 14년이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롭고 가장 위험한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베를린이 유럽 예술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습니다. 카바레, 재즈 클럽, 영화관. 브레히트와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 바우하우스. 표현주의 영화들. 그로스의 풍자화들. 모든 것이 실험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극도의 인플레이션, 실업, 정치적 폭력이 있었습니다. 이 불안정이 예술의 에너지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조지 그로스(George Grosz, 1893~1959). 바이마르 독일의 풍자 화가. 그의 드로잉들이 부패한 사회를 날카롭게 묘사했습니다. 돈과 군국주의와 종교가 결탁한 사회. 그는 나중에 나치에게 추방되었습니다.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 프리츠 랑의 SF 영화. 미래 도시에서 엘리트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이야기. 이것이 산업화 사회의 불안을 가장 강력하게 시각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반 룬은 바이마르 시대를 비극적 황금기로 봅니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 이 자유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면서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그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히틀러와 퇴폐 예술 : 예술이 박해받다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술 세계가 바뀌었습니다.
히틀러 자신이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 빈 예술 아카데미에 두 번 지원했다가 두 번 다 낙방했습니다. 그 실패가 그의 예술관에 깊이 각인되었는지 모릅니다.
나치 정권이 예술에 개입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예술이고 무엇이 퇴폐적 예술인지를 국가가 결정했습니다.
1937년 뮌헨. 두 개의 전시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하나는 《대독일 미술전(Große Deutsche Kunstausstellung)》. 나치가 옳다고 여기는 예술들. 영웅적인 인물들, 건강한 농부들, 아름다운 독일 풍경. 사실적이고 감상적이고 보수적인 그림들.
다른 하나는 《퇴폐 예술전(Entartete Kunst)》. 나치가 거부하는 예술들. 칸딘스키, 클레, 뭉크, 키르히너, 에른스트, 달리. 이 작품들이 조롱의 배치로 전시되었습니다. "정신병자들의 그림"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러나 결과가 나치의 의도와 달랐습니다. 《퇴폐 예술전》에 200만 명이 찾아왔습니다. 《대독일 미술전》보다 세 배 더 많은 관객이. 사람들이 조롱하러 갔다가 감동받았습니다.
반 룬은 이 역설에서 예술의 불사성을 봅니다. 권력이 예술을 죽이려 할 때 오히려 예술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금지된 것이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그리고 반 룬이 이 책을 쓴 것이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뮌헨에서 퇴폐 예술전이 열리던 그 1937년.
반 룬이 이 혼돈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122년의 예술 역사를 보면서 무엇을 읽었는가.
첫째, 속도의 문제. 이 122년 동안 예술이 변화한 속도가 이전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인상주의로, 표현주의로, 추상미술로. 각각의 운동이 이전 것을 넘어서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속도가 세계가 변화하는 속도와 일치했습니다.
둘째, 분열의 심화. 예술이 점점 더 세분화되었습니다. 한 시대에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수십 개의 운동들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혼란의 증거였습니다.
셋째, 정치와의 불가분한 관계. 이 시기의 예술이 정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혁명, 전쟁, 파시즘. 예술가들이 이것들에 반응하거나 저항하거나 때로는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반 룬이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예술이 살아남았다는 것. 아니, 더 강해졌다는 것.
나폴레옹이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다비드의 그림들이 루브르에 있습니다. 혁명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남아있습니다. 히틀러가 퇴폐 예술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칸딘스키와 클레와 뭉크의 작품들이 전 세계 미술관에 있습니다.
예술이 역사보다 오래 삽니다.
반 룬은 이 확신으로 펜을 놓았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1815년부터 1937년까지의 격동을 음악으로 조망할 수 있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 리하르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서주와 사랑의 죽음 : 1865년, 이 음악이 서양 음악을 바꾸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 끝없이 긴장이 고조되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는 화성. 이것이 무한한 갈망의 음악이었습니다. 낭만주의의 절정이자 동시에 낭만주의의 위기. 이 음악에서 조성 음악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20세기 음악 혁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한 곡이 슈베르트에서 쇤베르크로 가는 다리 전체를 표현합니다.
-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 아다지에토(Adagietto) : 1902년, 제1차 세계대전 12년 전. 말러가 아내 알마에게 사랑의 편지로 보낸 이 아다지에토가 현악기와 하프만으로 연주됩니다. 세기말 빈의 공기가 이 음악에 담겨있습니다.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덧없음을 알고 있는 것. 세계가 무너지기 직전의 평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이 음악을 사용했을 때 그 이유가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현악 사중주 8번 C단조 Op.110》 : 1960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한 소련의 작곡가. 그가 2주 만에 완성한 이 작품을 전쟁의 희생자들과 파시즘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했습니다. 반 룬이 목격한 1937년의 혼돈, 그 이후 일어난 모든 것들이 이 음악에 담겨있습니다. 격동의 한 세기가 한 현악 사중주 안에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이 격동의 세기에서 가장 강렬하게 꽃핀 예술 운동, 낭만주의의 전면 개화로 들어갑니다. 감정의 해방. 자연의 숭고함. 역사와 민족과 이국에 대한 열망. 고야와 들라크루아, 프리드리히와 터너,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의 황금기까지.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가장 깊이 표현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50 감정의 해방: 낭만주의 예술의 전면 개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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