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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46음악의 거인들: 바로크에서 고전주의까지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1.

「예술, 인간을 말하다」 EP.46

1829년 3월 11일, 베를린.

스무 살의 펠릭스 멘델스존이 지휘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에르바르메 디히, 마인 고트(Erbarme dich, mein Gott, 나의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알토가 노래했습니다. 바이올린이 울었습니다.

청중이 울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마태 수난곡》. 1727년 초연 이후 100년 만의 공연. 바흐가 죽은 지 79년 만에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세상에 다시 울렸습니다.

멘델스존이 이 악보를 어느 고서점에서 발견했습니다. 생선을 싸는 포장지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바흐의 친필 악보가.

반 룬은 이 장면에서 오래 머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 중 하나가 생선 포장지가 될 뻔했습니다. 그리고 한 스무 살 청년이 그것을 구해냈습니다.

예술이 언제나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술은 남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집니다.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 음악의 두 세계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이 다섯 이름이 서양 음악 역사의 가장 긴 황금기를 대표합니다. 대략 1685년(바흐와 헨델 출생)부터 1827년(베토벤 사망)까지 약 140년.

이 140년을 두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크(Baroque, 1600~1750년경). 바흐와 헨델의 시대. 대위법, 복잡한 화성, 웅장한 형식. 신을 위한 음악, 왕을 위한 음악.

고전주의(Classicism, 1750~1820년경).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시대. 명확한 형식, 균형, 우아함. 그리고 점점 개인의 감정이 음악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그러나 이 구분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 있습니다. 바흐는 바로크를 완성하면서 동시에 음악의 모든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반 룬은 이 다섯 거인을 개별적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긴 대화로 봅니다. 바흐가 말하면 헨델이 응답하고, 하이든이 받아서 발전시키고, 모차르트가 꽃피우고, 베토벤이 문을 열었습니다. 140년의 대화. 그 대화가 서양 음악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초상화, 엘리아스 고트로프 하우스만 작 (1748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모든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그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브람스가 말했습니다. "모든 작곡가들이 자신이 쓴 것에서 바흐가 이미 쓴 것을 발견한다."

베토벤이 말했습니다. "그는 강이 아니다. 바다다(nicht Bach, sondern Meer)."

슈만이 말했습니다. "음악은 바흐로 시작했다."

이 이야기들이 과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흐의 삶이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젠나흐에서 태어나 뮐하우젠, 바이마르, 쾨텐을 거쳐 라이프치히에서 죽었습니다. 독일 중소도시들. 국제적인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주로 교회 음악가로, 궁정 음악가로 일했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당대에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이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칸타타 200곡 이상. 오르간 작품 수백 곡. 《평균율 클라비어곡집(Well-Tempered Clavier)》 전2권 96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6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 《b단조 미사》. 《음악의 헌정》. 《푸가의 기법》.

바흐의 음악의 특성이 무엇인가.

대위법(counterpoint). 여러 개의 독립적인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서로 어울리는 것. 바흐의 푸가에서 하나의 주제가 여러 성부에서 동시에, 다른 높이에서, 때로는 거꾸로, 때로는 느리게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그 복잡한 구조가 수학적으로 완벽하면서 동시에 감동적입니다.

반 룬은 바흐에서 예술과 신앙의 완벽한 결합을 봅니다. 바흐가 자신의 모든 악보 위에 "예수님의 도움으로(Jesu juva)" 또는 "하나님 홀로 영광(Soli Deo Gloria)"을 썼습니다. 그에게 음악이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이 되었습니다.

멘델스존의 《마태 수난곡》 부활 공연으로 돌아옵니다. 이 공연이 바흐 르네상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바흐의 작품들이 재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바흐는 서양 음악에서 모든 작곡가가 출발하는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초상화, 토머스 허드슨 작 (1756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세계인이 된 독일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바흐와 같은 해에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바흐가 독일 작은 도시들에서 일생을 보냈다면 헨델은 유럽 전체를 무대로 삼았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배우고 영국에서 꽃피웠습니다.

헨델이 영국에 간 것이 1710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잠깐 머무를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국에 남았습니다. 나중에 영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George Frideric Handel이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헨델이 이탈리아 오페라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오페라의 인기가 시들면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오라토리오(oratorio). 무대 없이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성경 이야기 음악. 이것이 헨델의 진짜 위대함이었습니다.

《메시아(Messiah, 1741)》.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 런던 초연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울릴 때 조지 2세가 일어섰다는 전설. 오늘날에도 이 합창에서 청중이 일어서는 전통이 이어집니다.

헨델은 바흐와 달리 살아있는 동안 인정받았습니다. 영국의 음악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3,000명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반 룬은 헨델에서 음악의 국제성을 봅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배우고 영국에서 완성된 음악. 민족이 아닌 보편적 인간성을 향한 음악. 《메시아》의 할렐루야가 20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울리는 이유입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토머스 하디 작 (1791년, 런던)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질서와 유머의 거장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그는 두 가지로 역사에 남습니다. 교향곡 형식의 완성, 그리고 현악 사중주 형식의 완성.

하이든이 교향곡을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4악장 구조, 소나타 형식, 균형 잡힌 오케스트라. 104개의 교향곡. 이 작품들을 통해 교향곡이 음악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 되었습니다.

하이든의 음악에서 유머가 있습니다. 반 룬이 특히 주목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놀람 교향곡》의 2악장에서 갑자기 터지는 큰 음. 졸던 청중을 깨우는 농담. 《고별 교향곡(Farewell Symphony)》에서 한 악기씩 연주를 마치고 퇴장하는 구성.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연주자들이 휴가를 원한다는 것을 알리는 유머.

예술이 항상 진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하이든이 보여주었습니다. 형식 안에서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 웃음이 위대한 예술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

하이든은 모차르트보다 24년 먼저 태어나 모차르트보다 18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가 모차르트를 알아본 것도 중요합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어린 모차르트를 데리고 하이든을 만났을 때 하이든이 말했습니다. "신 앞에서 말하는데, 당신의 아들이 음악에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재능입니다."

반 룬은 하이든에서 예술의 교사 역할을 봅니다. 하이든이 베토벤을 가르쳤습니다. 직접적인 사제 관계. 그리고 하이든의 음악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위대함이 다음 위대함을 낳는 연속.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초상화, 크로체 작 (1789~90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신이 보낸 선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그는 서른다섯 살에 죽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 교향곡 41곡. 피아노 협주곡 27곡. 현악 사중주 23곡. 피아노 소나타 18곡. 오페라 20곡 이상. 그리고 수백 곡의 다른 작품들.

이 모든 것이 서른다섯 해 안에. 그 중 상당 부분이 열두 살 이전에.

모차르트의 삶이 어떠했는가. 신동으로 출발했습니다. 여섯 살에 황제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유럽 전역을 투어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모차르트에게 세상이 냉담했습니다. 궁정 직책을 얻지 못했습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고용인이었다가 해고되었습니다. 빈에서 독립 음악가로 살았습니다. 빚에 쪼들렸습니다. 그리고 서른다섯에 죽었습니다.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곳에.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 《돈 조반니(Don Giovanni, 1787)》. 《코지 판 투테(Così fan tutte, 1790)》.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1791)》. 이 오페라들이 그의 마지막 6년 안에 나왔습니다. 서양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가난과 병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에 무언가 초인적인 것이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반 룬의 답은 이렇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처음 들을 때 즐겁고 두 번째 들을 때 더 깊어지고 열 번째 들을 때 전혀 다른 차원이 열립니다. 표면의 아름다움 아래 무한한 층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가볍고 우아하면서 동시에 깊습니다. 이것이 모차르트만의 것입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이것을 극화했습니다. 살리에리가 말합니다. "당신은 창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모차르트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

이 말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지만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는 진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초상화, 요제프 카를 슈틸러 작 (1820년), 베토벤 하우스, 본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그는 하이든에게서 배웠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넘어섰습니다.

베토벤이 바꾼 것이 무엇인가.

규모. 베토벤의 교향곡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것보다 두 배 가까이 깁니다. 《교향곡 3번 영웅》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 어떤 청중이 말했습니다.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칠 것인가 아니면 울 것인가."

강도. 베토벤의 음악에서 모차르트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분노. 투쟁. 고통. 그리고 그 고통 이후의 승리. 이것이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가는 문이었습니다.

귀가 멀어감. 1800년경부터 시작된 청력 저하. 그가 하일리겐슈타트 유언(Heiligenstadt Testament, 1802)을 썼습니다.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살기로 했습니다. 예술이 자신을 살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의 음악이 더 깊어졌습니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 쓴 작품들. 《교향곡 9번》, 《피아노 소나타 Op.109~111》, 말년 현악 사중주들. 이 작품들이 인간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것들에 닿아있습니다.

반 룬은 베토벤에서 예술가의 의지를 봅니다.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만들어낸 것.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인류에게 가장 많이 들리는 음악을 선사한 것. 이것이 단순한 역설이 아닙니다. 내면의 음악이 외부의 소리보다 더 깊을 수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부활시킨 베를린 징아카데미 (1829년 공연장)

다섯 거인의 대화

이 다섯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바흐가 기초를 놓았습니다. 대위법, 화성, 형식의 모든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헨델이 음악을 대중에게 가져갔습니다. 오라토리오라는 형식으로 귀족의 것이 아닌 시민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이든이 기악 음악의 형식을 완성했습니다. 교향곡, 현악 사중주.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모차르트가 그 형식 안에서 꽃피웠습니다. 하이든의 형식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 신적인 것을 담았습니다.

베토벤이 문을 열었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할 때 형식을 깼습니다. 그리고 그 깨짐에서 낭만주의가 탄생했습니다.

반 룬은 이 연속이 단순한 영향 관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각자가 이전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흡수한 후에 다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바흐를 모르고는 헨델을 이해할 수 없고, 하이든을 모르고는 모차르트를 이해할 수 없고, 모차르트를 모르고는 베토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연속이 오늘날에도 이어집니다. 이 다섯 거인의 음악이 지금도 세계의 콘서트홀에서 울립니다.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들입니다. 가장 많이 들리는 음악들입니다. 3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반 룬이 말하는 예술의 불사성입니다. 작곡가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살아있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바로크에서 고전주의까지 다섯 거인 각각의 본질을 담은 세 작품을 권합니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마태 수난곡(Matthäus-Passion) BWV 244》 중 〈에르바르메 디히, 마인 고트(Erbarme dich, mein Gott)〉 : 에피소드 오프닝 훅의 바로 그 음악.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울며 부르는 알토 아리아.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와 알토의 대화. 이 5분의 음악이 인간의 회한과 용서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흐가 신을 위해 쓴 음악이 어떻게 모든 인간에게 닿는지를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K.467》 2악장 안단테 : 표면은 아름답고 그 아래는 무한합니다. 처음 들을 때 그냥 아름다운 멜로디입니다. 여러 번 들으면 그 멜로디 아래에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얼마나 정교한 대화를 나누는지가 들립니다. 그리고 또 들으면 그 대화 안에 인간의 모든 서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모차르트의 마법입니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Appassionata)"》 : 1806년,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가장 격렬한 작품을 쓴 시기. 1악장의 폭풍, 2악장의 변주, 3악장의 맹렬함. 고전주의의 형식 안에 낭만주의의 불꽃이 담겨있습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가는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를 이 소나타가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예술 혁명으로 넘어갑니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발굴이 유럽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고대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요한 요아힘 빙켈만이 고대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론화했습니다. 레싱이 예술과 문학의 경계를 논했습니다. 그리고 신고전주의가 탄생했습니다. 로코코의 화려함에서 고대의 단순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으로. 그 대전환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47  고대의 재발견: 신고전주의의 탄생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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