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 EP.44

1792년 겨울, 스페인 안달루시아.
마흔여섯 살의 화가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열병. 몇 주가 지났습니다.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일어났을 때 세계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완전한 침묵.
그는 영원히 귀가 멀었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 스페인 왕실의 수석 궁정화가. 화려한 파티 장면들, 아름다운 귀족 초상화들, 밝은 색채의 태피스트리 밑그림들. 그것들이 그의 화풍이었습니다.
귀가 멀기 전에는.
이 이후 그의 그림이 달라졌습니다. 색채가 어두워졌습니다. 주제가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광기가 등장했습니다. 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악몽이 캔버스 위로 올라왔습니다.
반 룬은 이 변화를 예술 역사의 가장 극적인 전환 중 하나로 봅니다. 병이 화가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화가를 해방시켰습니다. 왕실의 요구, 사회의 기대, 아카데미의 규범. 그것들에서 귀가 멀었습니다. 문자 그대로도, 비유적으로도.
그리고 그 해방에서 현대 회화의 씨앗이 탄생했습니다.
고야 이전 : 궁정화가의 빛나는 삶
고야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746년 아라곤 주의 작은 마을 푸엔테토도스(Fuendetodos) 출신. 아버지가 도금장인. 가난한 가정. 그러나 재능이 있었습니다. 열네 살에 화가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마드리드로 왔습니다.
왕립 태피스트리 제작소의 밑그림 화가. 이 직책이 그를 왕실에 연결했습니다. 그가 그린 태피스트리 밑그림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아름답습니다. 연을 날리는 사람들. 소풍 나온 가족들. 춤추는 처녀들. 로코코의 밝고 유쾌한 세계.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왕실의 수석 화가. 그가 그린 왕실 초상화들이 유럽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의 그림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카를로스 4세 왕실 가족의 단체 초상화. 이 그림이 공식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왕가 사람들 모두가 그다지 지성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눈들이 비어있습니다. 마치 고야가 그들을 동정하거나 비웃는 것 같습니다. 공식 초상화 안에 숨겨진 풍자.
반 룬은 이 초기 고야에서 이미 날카로운 사회적 시선을 봅니다. 아름다운 표면 아래 진실을 보는 눈. 그 눈이 병 이후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병 이후 : 어둠이 열리다
1792~93년의 병이 고야를 바꾸었습니다.
귀가 멀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가에게 귀가 멀다는 것이 베토벤에게 귀가 멀다는 것과 다릅니다. 화가는 귀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야에게 이 사건이 세계와의 관계를 바꾸었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졌습니다. 대화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왕실의 명령이 직접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회의 기대가 멀어졌습니다. 고야는 자신의 내면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내면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공포. 광기. 인간의 어둠. 전쟁. 종교재판. 미신. 그 모든 것들이 그림으로 나왔습니다.
《광인 수용소(Yard with Lunatics, 1794)》. 고야가 병 직후 그린 소품 시리즈 중 하나. 안마당에 정신이상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싸우고, 비명을 지르고, 기괴한 자세로 있습니다. 18세기 스페인의 정신병원 실태를 고야가 직접 방문해서 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실을 위한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팔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봐야 했기 때문에 그린 것이었습니다.
반 룬은 이 전환에서 예술 역사의 중요한 문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고야 이전에 화가가 주로 의뢰를 받아 그렸습니다. 교회, 귀족, 왕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렸습니다. 고야부터 화가가 자신이 보아야 하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뢰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화가를 이끌기 시작한 것. 이것이 현대 미술의 시작이었습니다.

카프리초스 : 이성이 잠든 자리에서
1799년, 고야가 80점의 에칭 시리즈를 출판했습니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변덕들, 또는 환상들이라는 뜻.
이 시리즈가 당시 스페인 사회의 어리석음과 부패를 풍자했습니다. 종교재판의 위선. 귀족들의 허영. 미신을 믿는 민중. 돈으로 결혼하는 풍습. 이 모든 것들이 날카로운 풍자로 그려졌습니다.
43번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 이 작품이 카프리초스 전체의 핵심이자 가장 유명한 이미지입니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인물. 그 주위를 올빼미들, 박쥐들, 스라소니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들이 졸고 있는 인물을 노려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야가 이 그림에 설명을 남겼습니다. "이성과 분리된 상상력은 불가능한 괴물들을 낳는다. 그러나 이성과 결합한 상상력은 예술의 어머니이며 모든 경이로움의 원천이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 즉, 이성이 중요하다. 계몽주의의 메시지. 둘. 이성 자체가 꿈을 꿀 때 괴물을 만든다. 즉, 이성도 완전하지 않다. 반(反)계몽주의적 경고.
반 룬은 이 모호성이 의도적이었다고 봅니다. 고야는 어느 하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성이 충분한가.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성이 없으면 괴물이 나타나지만 이성만으로도 괴물이 나타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이 질문이 1799년의 것이지만 지금도 유효합니다. 오히려 더 유효합니다.

전쟁 : 1808년의 충격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했습니다. 고야의 삶과 예술 모두를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스페인 독립 전쟁(1808~1814). 프랑스 군대에 맞선 스페인 민중의 게릴라 저항. 잔인한 전쟁. 양쪽 모두에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고야는 이것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마드리드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점령 하의 마드리드에서.
그리고 그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1808년 5월 2일(El dos de mayo, 1814)》. 마드리드 시민들이 프랑스 마멜루크 기병대와 싸우는 장면. 혼란, 폭력, 절망.
《1808년 5월 3일(El tres de mayo, 1814)》. 다음날 새벽. 봉기에 가담한 스페인 시민들이 처형되는 장면. 하얀 셔츠의 남자가 두 팔을 벌리고 총구 앞에 서 있습니다. 그의 눈이 크게 떠져 있습니다. 발밑에는 이미 죽은 자들이 있습니다. 군인들은 얼굴이 없습니다. 그냥 기계처럼 총을 겨눕니다.
반 룬이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머뭅니다.
이전의 전쟁화들이 어떠했는가. 루벤스의 전쟁이, 벨라스케스의 전쟁이 어떠했는가. 영웅들이 빛났습니다. 승리가 아름다웠습니다. 전쟁이 숭고했습니다.
고야가 이 모든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의 전쟁에는 영웅이 없습니다. 승리가 없습니다. 오직 두려움과 죽음이 있습니다. 흰 셔츠의 그 남자가 예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 의도적입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침이 오면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반 룬이 고야를 현대 예술의 아버지 중 하나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고야가 처음으로 예술이 아름다움이 아닌 진실을 향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그 진실이 추하고 끔찍하더라도.
전쟁의 재난 : 판화로 기록한 증언
전쟁 중에 고야가 또 하나의 시리즈를 작업했습니다. 《전쟁의 재난(Los Desastres de la Guerra)》. 82점의 에칭. 그러나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위험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전쟁의 모든 공포가 기록되었습니다. 총살. 교수형. 굶주림. 강간. 시체 더미. 이것들이 누가 프랑스 편인지 스페인 편인지 상관없이 그려졌습니다. 폭력은 양쪽에서 일어났습니다. 잔인함은 균등하게 배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화들 아래에 고야가 말없이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것이 일어났다(Esto es lo verdadero)", "어쩌자고(No se puede mirar)", "나는 보았다(Yo lo vi)".
반 룬은 이 짧은 제목들에서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봅니다. 증언. "나는 보았다." 이 세 단어가 고야의 예술 전체를 요약합니다. 그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편들지 않고. 미화하지 않고. 단지 보았다고.
나체의 마하 : 도발과 자유
전쟁의 어두움만이 고야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나체의 마하(La Maja Desnuda, 1797~1800)》와 《옷 입은 마하(La Maja Vestida, 1800~1808)》. 이 두 그림이 쌍으로 존재합니다.
《나체의 마하》는 스페인 회화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누드를 신화적 맥락 없이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이전의 누드화들에서 여성이 비너스거나 디아나거나 성경의 인물이었습니다. 즉 누드를 정당화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고야의 마하는 그냥 여성입니다. 현실의 여성. 그리고 그녀가 보는 사람을 직접, 당당하게 바라봅니다.
이 그림이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모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고야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반 룬은 이 그림에서 고야의 자유를 봅니다.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정화가가 종교재판에 회부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려야 했기 때문에.

검은 그림들 : 자신의 집 벽에 그린 악몽
고야의 예술이 마지막으로 극단에 달한 것이 검은 그림들(Pinturas negras, 1819~1823)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일흔셋. 마드리드 외곽에 사들인 집. 귀난 집(Quinta del Sordo, 귀머거리의 집). 그는 이 집 벽에 직접,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의도 없이, 일련의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열네 점. 어둡고 거칠고 끔찍합니다.
《자식을 먹어치우는 새턴(Saturn Devouring His Son)》. 거대한 손에 인간의 몸을 쥔 채 먹어치우는 존재. 눈이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입이 크게 열려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이 자식들을 삼킨다는 그리스 신화.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권력이 민중을 삼키는 것. 전쟁이 젊음을 삼키는 것. 노년이 기억을 삼키는 것. 무수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어떤 해석도 완전히 틀리지 않습니다.
《개(The Dog)》. 검은 배경. 그 안에 개의 머리만 보입니다. 모래 속에 파묻힌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혼자 어딘가를 바라보는 개. 이 그림이 가장 현대적입니다. 이것이 20세기 표현주의, 실존주의 예술의 직계 선조입니다.
반 룬은 이 검은 그림들 앞에서 긴 침묵을 가집니다. 일흔셋의 노인이 자신의 집 벽에 이것들을 그렸습니다. 팔려고? 아닙니다. 보여주려고? 아닙니다. 그냥 그려야 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악몽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이것이 예술의 가장 순수한 형태입니다. 반 룬은 씁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리는 것. 시장도 없고 관객도 없는 곳에서 그리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인 것.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가장 위대한 예술이 되었습니다.

고야와 현대 미술의 연결
고야가 1828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82세로 죽었습니다. 망명한 채로. 페르디난트 7세의 절대주의 왕정을 피해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들이 19세기와 20세기 예술 전체에 흘렀습니다.
마네가 고야를 보았습니다. 그의 《올랭피아》에서 고야의 마하의 당당한 시선이 살아납니다. 들라크루아가 고야에게서 배웠습니다. 고야의 색채 대담함, 붓 자국의 자유.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고야의 검은 그림들 없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없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반 룬은 이 계보를 봅니다. 고야가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현대 미술 전체로 자랐습니다. 어둠을 직면하는 용기. 아름다움이 아닌 진실을 향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아무도 요청하지 않아도 표현하는 것.
이것이 고야가 예술에 준 것이었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고야의 시대, 고야의 정신과 공명하는 세 작품을 권합니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3번 E♭장조 Op.55 《영웅(Eroica)》》 2악장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 : 1804년, 고야가 전쟁의 재난을 기록하던 바로 그 시대. 베토벤이 처음에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다가 그가 황제가 되자 헌정을 취소한 교향곡. 2악장 장송 행진곡이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정확히 같은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영웅의 시대가 왔다가 가는 것. 그 가는 것의 슬픔.
- 엔리케 그라나도스, 피아노 조곡 《고예스카스(Goyescas)》 중 〈사랑의 나누기(El amor y la muerte)〉 : 스페인 작곡가 그라나도스가 1909~11년에 고야의 그림들에서 직접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 조곡. 고야의 마하와 마호들이 음악이 된 것. 스페인의 빛과 그늘, 사랑과 죽음. 이 음악을 들으면 고야가 그린 세계가 소리로 들립니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Appassionata)》 : 1806년, 고야가 전쟁 전야의 스페인을 그리던 시기. 베토벤의 가장 격렬한 피아노 소나타. 1악장의 폭풍과 3악장의 맹렬함이 고야의 검은 그림들이 가진 에너지와 공명합니다.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감정. 통제할 수 없는 어둠이 아름다움과 공존하는 것.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교차점으로 나아갑니다. 시각 예술과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 그림이 음악을 만들고 음악이 그림을 낳는 순간들. 바흐가 음악의 건축가였다면 건축가들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색채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색채가 되는 예술의 가장 신비로운 경계를 함께 탐험하겠습니다.
EP.45 이미지에서 소리로: 시각예술과 음악의 교차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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