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 EP.43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
에펠 탑이 처음으로 세워진 그 해.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박람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것들이 파리로 왔습니다.
스물일곱 살의 한 젊은 작곡가가 박람회장을 걸었습니다. 클로드 드뷔시.
그가 어떤 천막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자바 섬에서 온 가믈란(gamelan) 음악. 금속 타악기들이 겹겹이 울리는 소리. 복잡하지만 규칙적인 리듬들. 5음 음계의 선율.
드뷔시가 한참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썼습니다. "자바의 음악은 서양 대위법의 모든 규칙을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보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날 드뷔시가 들은 것이 그의 음악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20세기 서양 음악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반 룬은 이 순간을 예술 교류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로 봅니다. 동양이 서양에게 가르쳐준 것. 서양이 모르고 있었던 것을 동양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서양이 놓친 것 : 유럽 중심 예술사의 맹점
반 룬은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예술》을 쓰면서 자신이 주로 유럽의 예술을 다루었다고. 그러나 세계는 유럽만이 아니라고. 그리고 유럽이 르네상스를 경험하기 훨씬 전부터 동양에서는 전혀 다른 원리로 전혀 다른 위대한 예술들이 꽃피고 있었다고.
인도의 석굴 사원 벽화들. 중국의 산수화. 일본의 목판화. 이것들이 서양의 것보다 열등하지 않습니다.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이 서양 예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양 예술이 정복하려 했다면 동양 예술은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서양이 원근법으로 공간을 지배하려 했다면 동양은 여백으로 공간을 느끼게 했습니다. 서양이 유화의 두꺼운 물감으로 세계를 채우려 했다면 동양은 먹의 농담으로 세계를 암시했습니다.
반 룬은 이 차이가 우열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른 철학, 다른 우주관, 다른 인간관에서 나온 다른 예술. 그리고 그 다름이 서로를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동양이 서양을 배웠고 서양이 동양을 배웠습니다. 그 배움이 20세기 예술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도 : 석굴이 담은 세계
아잔타(Ajanta) 석굴.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아우랑가바드 근처.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바위를 파서 만든 30개의 불교 석굴 사원들.
1819년 영국 군인 존 스미스가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수백 년간 밀림에 묻혀 잊혀져 있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석굴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운 벽화들. 부처의 전생 이야기들. 왕들의 연회. 춤추는 여인들. 코끼리들. 연꽃들. 이 모든 것이 1,500년을 버텨 생생한 색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잔타 석굴 1호의 보살 파드마파니(Bodhisattva Padmapani). 이 벽화가 인도 회화의 가장 완벽한 성취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연꽃을 든 보살의 얼굴이 그리스 조각처럼 이상화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깊은 내면의 자비심을 표현합니다. 눈이 반쯤 감겨 있습니다. 명상의 상태. 그 눈에서 무량한 연민이 흘러나옵니다.
서양 미술관에서 이 벽화의 사진을 처음 본 유럽인들이 경이로워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보다 1,000년 앞서 그려진 이 얼굴이 그에 못지않은 심리적 깊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엘로라(Ellora) 석굴. 아잔타에서 가까운 또 다른 석굴 사원 단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석굴들이 함께 있습니다. 그 중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 하나의 바위 산 전체를 깎아 만든 사원. 지하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깎아 내려간 것. 2백만 톤의 바위를 제거하여 만들어진 이 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오늘날에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 룬은 이 인도의 예술에서 서양이 자주 간과한 것을 봅니다. 예술과 종교, 예술과 수행의 분리 불가능한 관계. 아잔타의 화가들이 벽화를 그리는 것이 기도였습니다. 예술 행위 자체가 수행이었습니다. 서양에서도 중세 고딕 성당을 지은 석공들이 비슷한 정신으로 일했지만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가 개인으로, 예술이 세속적인 것으로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의 예술 전통이 그 분리를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 산수화와 여백의 철학
중국 예술에서 반 룬이 가장 주목한 것이 산수화(山水畵, 山水)입니다.
산수화. 산과 물을 그리는 그림. 중국에서 이것이 단순히 풍경화가 아닙니다. 철학입니다.
도가(道家) 사상.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산수화가 이 철학을 표현합니다.
서양의 풍경화와 어떻게 다른가.
서양 풍경화에서 원근법이 있습니다. 관찰자가 있고 그 관찰자에서 세계가 펼쳐집니다. 인간의 시점이 기준입니다. 중국 산수화에는 고정된 시점이 없습니다. 위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봅니다. 산을 올라가면서 보는 것처럼. 시간 속의 움직임이 하나의 화면에 담깁니다.
여백(留白). 중국 산수화에서 빈 공간이 의도적입니다. 안개, 구름, 물. 이것들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그려지지 않은 공간이 그림의 절반입니다. 아니, 더 중요한 절반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노자의 철학이고 중국 예술의 원리입니다.
먹의 농담(濃淡). 서양 화가들이 색채로 세계를 표현한다면 중국 화가들이 먹 하나로 세계를 표현합니다. 먹을 얼마나 진하게 갈고 얼마나 많은 물을 섞느냐에 따라 수백 가지 변화가 나옵니다. 그 단순함 안에 무한한 표현이 있습니다.
중국 도자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송나라 도자기의 청자. 그 투명하고 옥빛의 아름다움. 유럽인들이 처음 중국 도자기를 보았을 때 어떻게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백 년간 비밀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이센이 그것을 따라 만들면서 유럽 도자기 산업이 탄생했습니다.
반 룬은 중국 예술에서 서양 예술이 가장 배울 것이 많은 원리를 봅니다. 여백. 빼는 것. 말하지 않는 것. 서양 예술이 채우려 했다면 중국 예술이 비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움이 오히려 더 풍요로웠습니다.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1829~33년경)
일본 : 우키요에의 혁명
일본 예술이 유럽에 도달한 방식이 극적이었습니다.
1854년 미국 해군 제독 페리의 압박으로 일본이 개항했습니다. 이후 일본과 유럽 사이에 무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역선의 짐 사이에 끼어 왔습니다. 도자기를 싸는 포장지로 사용된 목판화들.
유럽 상인들이 그 포장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멈추었습니다.
우키요에(浮世絵). 흘러가는 세상의 그림. 에도 시대 일본의 목판화. 가부키 배우들, 미인도, 스모 선수들, 그리고 풍경화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 《후가쿠 삼십육경(富嶽三十六景)》. 후지산을 36개의 다른 장소에서 그린 연작. 그 중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거대한 파도 아래 조각배들이 있고 멀리 후지산이 보입니다.
이 그림이 유럽에서 충격이었습니다.
왜인가. 이 파도가 서양 회화의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원근법이 다릅니다. 파도가 산보다 크게 그려졌습니다. 선이 굵고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파도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포착합니다. 파도가 살아있습니다.
드뷔시가 이 그림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악보 《바다(La Mer)》 첫 판 표지에 이 그림의 이미지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호쿠사이가 자신의 이름을 쓰는 위치, 즉 하늘 위에 썼습니다.
호쿠사이 자신이 동서양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전통 회화를 배우면서 동시에 네덜란드 회화의 원근법을 연구했습니다. 그 두 가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종합했습니다. 《가나가와의 파도》가 동서양 두 전통이 만나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자포니즘(Japonisme) : 일본이 인상주의를 바꾸다
일본 목판화가 유럽 예술에 미친 영향을 자포니즘(Japonisme)이라고 부릅니다. 이 현상이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전체를 관통했습니다.
마네가 일본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그렸습니다. 모네가 일본 정원을 만들고 그 안에 수련 연못을 팠습니다. 드가가 일본 판화의 비대칭 구도와 화면을 과감하게 자르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반 고흐가 히로시게의 판화를 직접 모사했습니다. 고갱이 일본 판화의 강한 윤곽선과 평면적 색채 처리를 자신의 언어로 삼았습니다.
안도 히로시게(安藤広重, 1797~1858). 도카이도 가도를 따라 53개 역참의 풍경을 그린 《도카이도 오십삼차(東海道五十三次)》. 비 내리는 밤, 눈 덮인 산, 안개 속 다리. 이 그림들에서 날씨와 빛이 풍경을 바꾸는 방식이 모네의 연작 작업과 정확히 같은 것을 추구했습니다.
모네가 나중에 말했습니다. "내가 빛을 이해하게 된 것은 일본 판화 덕분이다."
반 룬은 이 자포니즘에서 문화 교류의 창조적 힘을 봅니다. 일본 예술가들이 서양의 원근법을 배웠고, 서양 예술가들이 일본의 평면성과 비대칭을 배웠습니다. 그 쌍방향 학습이 양쪽 모두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영향이 단방향이 아니었습니다.

가믈란 : 드뷔시가 들은 소리
다시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로 돌아옵니다.
드뷔시가 들은 가믈란(Gamelan).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전통 앙상블. 징, 공, 실로폰 같은 금속 타악기들이 중심입니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가세합니다.
가믈란 음악의 특성이 서양 음악과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화음의 개념이 없습니다. 서양 음악에서 화음이 긴장과 해결의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 그 움직임이 서양 음악의 기본 원리입니다. 가믈란에는 이 구조가 없습니다. 긴장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냥 울립니다.
음계가 다릅니다. 서양 7음 음계가 아닌 5음 음계(pentatonic). 드뷔시가 이 5음 음계를 자신의 음악에 도입했습니다. 조성적 긴장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소리가 겹쳐 울립니다. 가믈란에서 여러 악기가 같은 선율을 조금씩 다른 속도로 연주합니다. 그 어긋남이 빛이 물 위에서 흔들리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드뷔시가 1903년에 발표한 피아노곡 《판화(Estampes)》 중 첫 번째 곡 《파고다(Pagodes)》. 파고다는 아시아 탑의 모양. 이 곡에서 가믈란의 소리가 들립니다. 5음 음계, 저음의 공소리를 흉내 낸 베이스 음, 반복적인 리듬 패턴. 이것이 아시아 음악을 직접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서양 음악을 만든 것입니다.
반 룬은 이 《파고다》가 동서양 음악 교류의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어느 쪽에서 왔는지 구별할 수 없는 음악. 두 전통이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한 것.

인도 미술과 유럽의 만남
인도 예술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일본만큼 직접적이지 않았지만 깊었습니다.
영국의 인도 지배가 길었습니다. 수많은 영국 장교들, 학자들, 예술가들이 인도를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이 유럽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양면성. 유럽인들이 인도와 중동의 예술에서 이국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 발견이 때로 왜곡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진짜 인도가 아닌 상상 속의 인도를 소비하는 것.
그러나 진정한 만남도 있었습니다. 아잔타 석굴 벽화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인도 미술의 위대함이 재평가되었습니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캄보디아 앙코르의 조각들에 감동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마티스가 이슬람 세계의 장식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반 룬은 이 만남들에서 예술이 국경을 넘는 방식을 봅니다. 동양이 서양을 가르쳤고 서양이 동양에서 배웠습니다. 그 배움이 항상 순수하지는 않았습니다. 권력의 불균형이 있었습니다. 식민지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균형 속에서도 예술이 교류했습니다. 예술이 정치보다 더 자유롭게 경계를 넘었습니다.

동양의 원리가 서양에 가르친 것
반 룬은 동양 예술이 서양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정리합니다.
첫째, 여백의 힘. 빈 공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그 빈 공간이 말한다는 것. 서양 예술이 채우려 했다면 동양 예술이 비우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둘째, 단순함의 심오함. 먹 하나로 산 전체를 그릴 수 있다는 것. 세 가지 색으로 우주를 담을 수 있다는 것. 복잡함이 깊이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 마티스와 케이지와 미니멀리스트들이 이것을 배웠습니다.
셋째, 자연과의 조화.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대화하는 것. 산수화의 화가가 산을 그릴 때 산 위에 올라가 앉아서 오래 바라봅니다. 자신이 산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 후 붓을 듭니다. 이 태도가 모네가 같은 수련 연못을 수백 번 그린 것과 연결됩니다.
넷째, 현재 순간의 집중. 우키요에(浮世絵), 흘러가는 세상의 그림. 지금 이 순간, 이 배우, 이 봄꽃, 이 파도. 영원한 것이 아닌 덧없는 것을 그리는 것. 그 덧없음이 오히려 영원합니다.
이 네 가지가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예술의 핵심 원리들이었습니다. 동양이 서양에게 준 것이 작지 않았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동양 예술의 원리가 서양 음악 속에 녹아든 세 작품을 권합니다.
-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곡 《판화(Estampes)》 중 〈파고다(Pagodes)〉 :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들은 가믈란 음악이 드뷔시의 귀를 통해 피아노 음악이 된 것. 5음 음계, 공소리를 흉내 낸 저음, 물처럼 흐르는 선율. 이 음악은 자바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닙니다. 두 세계가 만나 탄생한 새로운 세계입니다. 아잔타 석굴 벽화의 여백이 소리가 된다면 이 음악일 것입니다.
- 라벨, 피아노 소품 《황금빛 물고기(Poissons d'or)》 : 라벨의 스튜디오에 있던 일본 漆器 물고기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는 것이 피아노 위에서 빛의 반짝임으로 표현됩니다. 동양의 이미지가 서양의 소리가 된 것. 짧지만 완벽한 동서양 예술 교류의 보석입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반 룬의 《예술》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강렬한 화가로 다시 돌아옵니다. 앞서 로코코 시대의 그늘에서 잠깐 만났던 그 화가. 그러나 그의 예술이 단순히 로코코의 대척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성이 잠들면 무엇이 나타나는지를 보았고, 전쟁이 인간에게 무엇을 하는지를 보았고, 노년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집 벽에 악몽을 그렸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그의 예술 전체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EP.44 어둠의 화가: 고야, 시대의 상처를 그리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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