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 EP.47

1748년,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
한 무리의 인부들이 땅을 팠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단단한 것이 나왔습니다. 벽. 그리고 그 안에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색채가 선명한 프레스코화들.
1,669년 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날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추었습니다. 79년 8월 24일. 폼페이(Pompeii).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빵집. 아직도 빵 자국이 남은 오븐. 술집. 메뉴가 적힌 벽. 극장. 목욕탕. 사창가. 선거 포스터. 낙서. "마르쿠스는 바보다"라는 낙서가 1,700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예술. 집마다 프레스코화들. 모자이크들. 신화의 장면들. 일상의 장면들. 이 모든 것이 화산재 속에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들이 달려왔습니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고대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교과서 속의 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사람들이 살았던 실제 세계였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욕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예술이 아름다웠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반 룬은 폼페이의 발굴에서 18세기 유럽 문화 전체가 뒤바뀌는 전환점을 봅니다. 로코코가 지배하던 세계에 고대의 단순하고 명쾌한 아름다움이 충격처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고전주의를 낳았습니다.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 : 잠든 고대가 깨어나다
실제로 발굴의 시작은 폼페이보다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이 먼저였습니다. 1738년, 폼페이보다 10년 앞서.
헤르쿨라네움. 역시 79년 화산 폭발로 묻힌 도시. 그러나 폼페이와 다르게 화산재가 아닌 화산 이류(泥流)에 덮였습니다. 그래서 더 완벽하게 보존되었습니다.
두 도시의 발굴이 유럽 전역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나폴리 왕국의 카를로스 3세가 발굴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발굴된 유물들이 나폴리 왕립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유럽의 귀족들이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목적지로 나폴리를 추가했습니다. 영국 귀족들, 독일 지식인들, 프랑스 예술가들. 그들이 나폴리에서 고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그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발굴된 것들이 무엇이었는가.
건축. 그리스-로마 양식의 단순하고 질서 있는 건물들. 기둥, 비례, 대칭. 로코코의 과도한 장식과 완전히 대비되는 건축.
회화. 벽면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들. 신화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색채가 선명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를 묘사한 대형 모자이크들. 기술적 완성도가 놀라웠습니다.
조각. 청동 조각들, 대리석 조각들. 인체의 아름다움이 이상화되면서도 자연스러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18세기 유럽 예술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것이 이것보다 더 나은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지 않은가.

빙켈만 : 예술사의 아버지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 그를 현대 미술사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독학으로 고대 언어를 배우고 고전 문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로 갔습니다. 바티칸 도서관 사서. 그 자리에서 고대 조각들을 연구했습니다.
1755년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술 《회화와 조각에서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관한 성찰(Gedanken über die Nachahmung der griechischen Werke)》. 이 짧은 팸플릿이 유럽을 흔들었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이 단순했습니다. 그리스 예술이 최고다. 그 이유가 있다. 그리스 예술이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edle Einfalt und stille Größe)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귀한 단순함. 로코코의 화려한 장식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었습니다. 단순함이 열등한 것이 아닌, 더 깊은 아름다움이라는 것.
조용한 위대함. 바로크의 극적인 감정 표현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고요한 것이 더 위대하다는 것.
1764년 《고대 예술의 역사(Geschichte der Kunst des Altertums)》. 이 책이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했습니다. 이전에는 예술가들의 전기가 있었습니다. 바사리가 그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술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을 빙켈만이 처음 했습니다.
그의 그리스 예술 이해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상화한 하얀 대리석 조각들이 원래는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이 탈색된 조각들이었기 때문에 하얀 것이 그리스의 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오해가 서양 건축에서 하얀 신전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반 룬은 빙켈만에서 예술사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라는 것을 봅니다. 빙켈만의 해석이 부분적으로 틀렸지만 그 해석이 18세기 후반 예술 전체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이론과 비평이 예술에 미치는 힘입니다.
비극적으로 빙켈만은 1768년 트리에스테의 여관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했습니다. 51세. 빈에서 황제에게 훈장을 받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라오콘 : 빙켈만과 레싱의 쟁점
두 독일 지식인 사이의 논쟁이 신고전주의 미학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라오콘(Laocoon) 조각상. 바티칸에 있는 고대 그리스 조각.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이 두 아들과 함께 뱀에게 감겨 죽어가는 장면. 고통이 극도에 달한 순간.
그런데 이상합니다. 라오콘의 얼굴이 소리 지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입이 크게 벌어져 있지 않습니다. 고통을 참는 듯한 표정입니다.
빙켈만이 이것을 해석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 예술의 위대함이라고.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절제하는 것. 조용한 위대함의 증거.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이 반박했습니다. 1766년 《라오콘: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Laokoon: oder ü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
레싱의 주장이 달랐습니다. 라오콘이 절제된 이유는 그리스적 이상 때문이 아니라 시각 예술의 본질 때문이라고. 조각이 하나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극도의 고통을 나타내는 얼굴이 계속 보는 사람 앞에 있으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조각가가 가장 강렬한 것보다 한 단계 전의 순간을 선택한 것이라고.
그리고 레싱이 더 나아갔습니다. 시각 예술과 언어 예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회화와 조각이 공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시와 문학이 시간 안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예술이라고. 이 차이가 각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결정한다고.
반 룬은 이 빙켈만-레싱 논쟁에서 18세기 지식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예술의 본질을 탐구했는지를 봅니다. 하나의 조각상을 앞에 두고 두 위대한 지성이 예술이 무엇인지, 형식과 내용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논했습니다. 그 논쟁이 예술 이론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신고전주의 회화 : 자크 루이 다비드
이론이 있었고 실천이 따라왔습니다. 신고전주의 미술의 가장 중요한 이름이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였습니다.
다비드가 로마에서 고전 문화를 직접 배웠습니다. 빙켈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돌아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 1784)》. 이 그림이 충격이었습니다. 로코코의 가볍고 장식적인 그림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엄격한 구성. 강한 선. 남성적인 힘. 그리고 도덕적 메시지.
로마 역사에서 온 주제. 호라티우스 형제들이 아버지 앞에서 로마를 위해 싸우겠다고 맹세합니다. 조국을 위한 희생. 이것이 혁명 5년 전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비드는 실제로 프랑스 혁명의 공식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공식 화가가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거대한 캔버스. 나폴레옹이 황후 조제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순간. 200명이 넘는 인물들. 장엄함과 위엄. 신고전주의의 형식이 새로운 제국의 선전 도구가 된 것.
반 룬은 다비드에서 예술이 정치와 맺는 위험한 관계를 봅니다. 신고전주의가 처음에 로코코의 허식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도덕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예술. 그러나 그것이 결국 나폴레옹의 제국을 미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예술의 형식이 어떤 내용을 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됩니다.
안젤리카 카우프만 : 신고전주의의 여성
안젤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 1741~1807). 스위스 출신의 화가. 그녀가 신고전주의 회화의 중요한 이름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가 런던에서 활동했습니다. 로열 아카데미 창립 회원 중 두 명의 여성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의 신화적 주제 그림들이 영국 귀족들에게 인기였습니다.
그녀가 또한 빙켈만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764년. 빙켈만이 자신의 초상화에 매우 만족했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카우프만의 그림들에서 신고전주의의 특징이 있습니다. 고전 신화의 주제. 절제된 감정. 이상화된 인물.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서정적입니다. 다비드의 경직된 남성성과 달리 카우프만의 신고전주의는 따뜻하고 우아했습니다.
반 룬은 카우프만에서 같은 운동 안에서도 젠더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신고전주의가 하나의 양식이지만 그것을 표현한 사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건축의 신고전주의 : 판테온에서 미국 의사당까지
신고전주의는 회화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건축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의 로버트 애덤(Robert Adam, 1728~1792). 그랜드 투어 중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가 애덤 스타일(Adam Style)을 만들었습니다. 로마 고대 주택의 장식 원리를 영국 귀족 저택에 적용했습니다. 섬세하고 우아한 실내 장식. 오늘날에도 영국의 많은 저택들이 이 양식을 유지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판테온(Panthéon). 원래 성 주느비에브 성당으로 계획되었다가 혁명 후 프랑스 위인들의 묘소가 된 이 건물이 신고전주의 건축의 기념비입니다. 로마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은 돔과 기둥들.
미국. 신고전주의가 미국 건국의 건축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그가 건축가이기도 했습니다. 버지니아 주의회 의사당을 설계했습니다. 프랑스 님의 메종 카레(Maison Carrée), 로마 신전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 제퍼슨이 이 건물을 보고 "몇 시간씩 멍하니 바라보았다"고 썼습니다.
워싱턴 D.C.의 도시 설계 자체가 신고전주의였습니다. 의사당, 링컨 기념관, 대법원. 이 모든 것들이 로마와 그리스의 건축 언어를 사용합니다.
왜 미국이 신고전주의를 선택했는가. 반 룬의 답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공화국이 로마 공화국의 이상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왕이 아닌 시민이 지배하는 나라. 덕성(virtus)과 공화주의. 이 정치적 이상이 건축적 언어를 필요로 했고 신고전주의가 그것을 제공했습니다.

조각의 신고전주의 : 카노바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757~1822). 이탈리아 조각가. 그가 신고전주의 조각의 가장 완벽한 표현자였습니다.
카노바가 고대 그리스 조각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완벽한 인체. 매끈한 대리석. 고요하고 이상화된 아름다움.
《프시케를 깨우는 큐피드(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1793)》. 잠든 프시케를 큐피드가 깨우는 순간. 두 인물의 몸이 얽혀있습니다. 대리석이 살처럼 부드럽습니다. 이것이 차가운 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나폴레옹의 누이 파울리나 보르게세(Pauline Bonaparte Borghese)의 누드 조각도 카노바가 했습니다. 파울리나가 비너스처럼 표현된 이 조각이 가족들에게는 불쾌했지만 예술적으로는 완벽했습니다.
반 룬은 카노바에서 신고전주의가 단순히 고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봅니다. 카노바의 조각들이 고대보다 더 완벽했습니다. 고대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 거기서 새로운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신고전주의의 가장 위대한 성취였습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쟁
신고전주의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낭만주의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두 운동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고전주의가 이성, 질서, 절제를 추구한다면 낭만주의가 감정, 자유, 격렬함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반 룬은 이 대립이 완전하지 않다고 봅니다.
두 운동 모두 로코코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로코코의 경박함과 허식에 맞서서 하나는 고대의 엄격함으로, 다른 하나는 내면의 진실로 향했습니다. 그 방향이 달랐지만 출발점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두 운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다비드의 제자 앵그르(Ingres)는 신고전주의이면서 낭만주의적 요소를 가졌습니다.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이지만 고대의 주제들을 다뤘습니다.
예술 역사에서 운동들이 단순하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겹치고, 대화하고, 서로를 변형시킵니다.
반 룬이 신고전주의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이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신고전주의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폼페이의 발굴이 충격이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새로운 예술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미 있었던 것을 새롭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이 오랫동안 서양 교육의 기반이었습니다. 모든 교육받은 유럽인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습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추상적인 지식이었습니다. 책 속의 것이었습니다.
폼페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제 사람들이 살았던 실제 공간. 그들이 먹은 빵, 그들이 마신 술, 그들이 그린 그림들. 고대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빙켈만이 그 살아난 고대에서 예술의 원리를 읽어냈습니다.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 이 원리가 18세기 후반 예술의 새로운 방향이 되었습니다.
반 룬은 신고전주의에서 예술이 과거로 돌아가면서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는 역설을 봅니다. 고대를 모방하면서 고대를 넘어서는 것. 전통에서 배우면서 전통을 바꾸는 것. 이것이 예술의 역사가 반복하는 패턴입니다. 각 시대가 자신의 이상을 과거에서 찾고,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고, 그 현재가 미래의 과거가 됩니다.
폼페이가 1,700년 후에 발굴되어 18세기 예술을 바꾸었습니다. 그 영향이 지금도 지속됩니다. 워싱턴의 의사당, 런던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판테온. 모두 폼페이를 통해 재발견된 고대의 언어를 씁니다.
예술의 연쇄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신고전주의의 정신, 즉 고대의 단순함과 엄격한 형식미가 음악으로 표현된 세 작품을 권합니다.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에우리디체 없이 나는 어디로(Che farò senza Euridice)〉 :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이 음악에서의 신고전주의였습니다. 로코코 오페라의 화려한 기교 대신 단순하고 직접적인 감정. 빙켈만이 회화에서 추구한 것을 글루크가 음악에서 추구했습니다. 이 아리아의 단순한 선율 안에 오르페오의 모든 비탄이 담겨있습니다. 과잉 없이, 절제 속에서.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C장조 K.551 〈주피터〉》 4악장 : 고전주의 교향곡 형식의 완성. 모차르트가 "주피터"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지만 후대가 이 이름을 붙인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마지막 악장에서 다섯 개의 주제가 동시에 결합되는 푸가적 구조. 바흐의 대위법과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의 결합. 반 룬이 말한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이 음악으로 표현됩니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Pathétique)〉》: 신고전주의 형식 안에서 낭만주의가 눈을 뜨는 순간. 고전주의의 소나타 형식을 완벽하게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베토벤의 격렬한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2악장 아다지오의 서정성이 고대 이상의 조용한 위대함과 낭만주의의 개인적 감정이 공존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신고전주의가 혁명과 만나는 순간으로 넘어갑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예술이 어떻게 혁명의 무기가 되었는지, 그리고 혁명이 어떻게 예술을 바꾸었는지. 다비드의 붓이 자유, 평등, 박애를 그리고, 그 그림들이 사람들을 바리케이드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혁명이 나폴레옹 제국으로 변질되면서 예술도 함께 변했습니다. 혁명과 제국 사이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48 다비드의 붓: 혁명이 예술을 소환하다에서 뵙겠습니다.
'역사 > 예술, 인간을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EP.49격동의 한 세기 : 낭만주의에서 모더니즘까지, 1815~1937 (0) | 2026.06.05 |
|---|---|
| EP.48다비드의 붓 : 혁명이 예술을 소환하다 (0) | 2026.06.04 |
| EP.46음악의 거인들: 바로크에서 고전주의까지 (0) | 2026.06.01 |
| EP.45이미지에서 소리로 : 시각예술과 음악의 교차 (0) | 2026.05.31 |
| EP.44어둠의 화가 : 고야, 시대의 상처를 그리다 (1) | 2026.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