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의 어느 봄날
이 마지막 회를 2026년 5월의 한 봄날에서 시작하고 싶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한반도의 어느 도시에서, 어쩌면 부산에서 또는 서울에서, 한 노인이 자기 집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그는 90대다. 1932년 또는 1933년에 태어난 사람. 1950년 6월 그가 17세 또는 18세였을 때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 전쟁을 직접 경험한 마지막 세대다.
그가 햇볕을 쬐고 있는 그 마당 위로 한반도의 76년이 흘러갔다. 1950년부터 2026년까지 76년. 그 76년의 시작에 그가 있었다. 그가 보았던 그 새벽의 포성, 그가 건넜던 한강 다리, 그가 점령기에 견뎠던 그 90일, 그가 1·4 후퇴 때 떠났던 그 집, 그가 정전협정 소식을 들었던 그 마을. 그 모든 것을 그가 안에 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을 그의 자녀와 손자녀에게 정확히 전할 수 있는가. 그는 평생 자기 경험에 관해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일부는 침묵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일부는 말할 언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며, 일부는 그 말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자녀와 손자녀는 그가 안에 담고 있는 것의 일부만을, 어쩌면 매우 작은 일부만을 알고 있다.
이 마당의 풍경이 2026년 한반도의 한 모습이다.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시리즈의 명제가 가장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자리. 그 노인이 사라지면 그가 안에 담고 있던 것의 일부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그 사라진 자리에도 한국전쟁이 만든 모든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분단된 한반도, 두 적대적 체제,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의 일상.
시리즈가 던졌던 질문
이 시리즈는 처음에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했다. "왜 지금 다시 한국전쟁인가." EP.01에서 던졌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시리즈 전체가 풀어내려 시도했다. 마지막 회에서 그 답을 정리하는 자리에 도달했다.
가장 짧은 답은 이것이다.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의 정전협정이 법적으로 평화협정이 아니라 휴전 합의였다는 사실(EP.21). 그 정전협정이 한반도의 분단을 임시 합의로 설계했지만 그것이 사실상 70년이 넘는 영구 질서가 되었다는 사실. 한국전쟁이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에 새긴 깊은 흔적이 오늘까지 작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갈라진 가족과 마을과 한 사회 전체의 침묵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이 한국전쟁이 오늘의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짧은 답으로 끝낼 수는 없다. 시리즈가 23회에 걸쳐 따라간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정리를 통해 한국전쟁의 의미가 어떻게 한반도의 오늘까지 이어지는가를 시리즈는 마지막으로 보여주려 한다.
결정의 사슬
시리즈가 처음 따라간 것은 결정의 사슬이었다. 1949년 봄 모스크바에서 김일성이 처음 거절당했던 청원(EP.01)에서 1953년 7월 판문점의 정전 서명(EP.21)까지. 그 사이에 무수한 결정이 내려졌고, 그 결정들이 한반도의 운명을 형성했다.
가장 결정적인 결정들을 다시 짚어보자.
1950년 1월 30일 스탈린의 마음이 바뀐 결정(EP.04). 그것이 김일성에게 청신호를 보낸 결정이었고, 한국전쟁의 직접적 출발점이었다.
1950년 5월 18일 베이징에서 마오가 동의한 결정(EP.05). "미군이 참전하면 중국이 나선다"는 그의 한 마디가 5개월 후 압록강에서 100만 군대를 움직인 약속이 되었다.
1950년 6월 28일 새벽 두 시 삼십 분 한강 인도교 폭파 결정(EP.09). 이 결정이 144만 서울 시민을 한강 북쪽에 가두었고, 점령기 90일과 그 후 부역자 처벌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950년 7월부터 시작된 보도연맹원 학살의 결정(EP.13). 한국 정부가 자국 시민 수만에서 수십만 명을 재판 없이 처형한 그 결정이 한국 사회에 새긴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가 되었다.
1950년 10월 38선 북진의 결정(EP.15). 이 결정이 중국군 100만 이상의 대규모 개입을 불러왔고, 한국전쟁의 그 후 모든 흐름을 결정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의 결정. 그러나 그 협정에 한국이 서명하지 않은 결정(EP.21). 이 두 결정이 한반도의 그 후 70년을 결정했다.
이 결정들의 사슬을 다시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한국전쟁의 결정들의 다수가 한반도 사람들의 손이 아니라 외부의 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와 베이징과 워싱턴이 한국전쟁의 시작과 끝의 핵심 결정자였다.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그 결정들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사실의 의미를 김동춘은 "한반도의 외교적 종속성의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전쟁이 한반도의 운명이 외부에서 결정되는 구조의 가장 결정적 사례였고, 그 구조가 그 후 한국 외교의 한 기본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분석에는 일면 반박도 가능하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점차 자기 외교적 주체성을 확립해갔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 주체성 확립이 결코 완전한 자율성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한반도의 핵심 문제들(분단의 해소, 평화 체제의 구축, 통일의 방식 등)이 여전히 외부 변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비극의 무게
시리즈가 다음으로 따라간 것은 비극의 무게였다. 결정들이 만든 결과가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동했는가.
가장 큰 비극의 무게는 인명 손실이다. 한국전쟁의 전체 인명 손실 추산은 자료마다 다르지만, 한반도 안팎을 합쳐 약 300만에서 400만 명에 이른다. 한반도 내 사망자만 약 200만에서 250만 명. 그 중 한국 측 민간인 사망자가 약 100만 명, 한국군 사망자가 약 14만 명, 미군 사망자가 약 3만 6천 명, 다른 유엔군 사망자가 약 4천 명, 인민군 사망자가 약 50만 명, 중국군 사망자가 약 18만에서 40만 명(자료에 따라 다름). 그리고 이산가족 약 1,000만 명, 부상자와 후유증을 안고 산 사람들 수백만 명.
이 거대한 인명 손실 안에서 시리즈가 가장 자주 짚은 것은 학살의 무게였다. 보도연맹원 학살 약 10만에서 20만 명(EP.13), 점령기와 수복 후의 부역자 처벌,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 한반도 전역에서 자행된 다양한 형태의 민간인 학살. 이 학살이 한국전쟁의 진정한 비극의 한 핵심이었다. 전선의 전투가 아니라 후방의 학살이 한국 사회에 새긴 더 깊은 흔적이었다.
또 한 가지 시리즈가 짚은 것은 의미 없는 죽음의 무게였다. EP.19에서 다룬 정전 협상 2년 4개월 동안의 38선 부근 전투. 군사적 의미가 거의 없는 한 고지를 두고 수천 명이 죽은 백마고지 같은 전투들. 그리고 EP.21에서 다룬 한 중대장의 회고, "정전이 3일 후로 결정된 상태에서 그 3일 동안 30명을 잃은 것의 의미"라는 그의 평생 질문. 한국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응축된 그 무의미한 죽음의 무게가 한국전쟁의 본질적 비극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모든 무게가 통계 안에 있다. 그러나 통계만으로는 그 무게가 다 옮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리즈는 추상적 숫자를 한 사람의 얼굴로 옮기려 했다. EP.18의 흥남 부두의 한 가족, EP.13의 거창의 한 가족, EP.21의 한 중대장, 그리고 EP.23의 1985년 호텔 로비의 한 형제. 이런 한 사람과 한 가족의 사례를 통해 거대한 비극의 무게가 한 인간의 얼굴로 옮겨지는 자리를 만들려 했다.
사회의 변형
시리즈가 그 다음으로 따라간 것은 사회의 변형이었다. 한국전쟁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EP.22에서 다룬 반공국가의 형성이 그 변형의 거시적 모습이었다. 한국전쟁 이전의 다양했던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가 한국전쟁의 3년 동안 결정적으로 단순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단순화된 정치 문화가 한국 사회의 그 후 70년을 정의했다는 것. 1950년대의 권위주의, 1960~70년대의 군사 정권, 1980년대의 신군부 체제. 이 모든 권위주의 정치 체제가 한국전쟁이 만든 반공국가의 정치 문화 위에서 가능했다.
EP.23에서 다룬 가족과 마을의 변형이 그 변형의 미시적 모습이었다. 한국전쟁이 만든 가족 단위의 상처, 마을 공동체의 신뢰 파괴, 그리고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침묵. 이 미시적 변형이 거시적 정치 문화의 변형과 결합되어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 사회의 그 후 모든 변화가 이 한국전쟁이 만든 사회 구조 위에서 진행되었다. 1960년대의 산업화, 1970년대의 도시화, 1980년대의 민주화, 1990년대의 세계화, 2000년대의 정보화. 이 모든 변화가 한국전쟁이 만든 깊은 구조의 위에 새로운 층위를 더한 것이지, 그 깊은 구조 자체를 해체한 것이 아니다. 2026년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한국전쟁이 만든 그 깊은 구조의 일부가 여전히 작동한다.
끝나지 않은 전쟁
이제 시리즈의 핵심 명제로 돌아간다.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명제. 이 명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표면적인 의미는 법적 차원의 것이다. 1953년 7월 27일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이 아니었다는 사실(EP.21). 따라서 한국전쟁은 법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 법적 사실이 한반도의 외교 구조에 미친 영향은 크다. 한반도가 평화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결정적 배경 중 하나가 이 정전협정 구조의 미완성성에 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는 사회사적 차원의 것이다. 한국전쟁이 만든 분단 체제, 반공국가, 가족 단위의 상처, 마을 공동체의 변형, 그리고 한 사람의 침묵. 이 모든 것이 2026년 오늘의 한반도에 여전히 살아 있다.
분단 체제는 여전히 작동한다. 38선 부근의 비무장지대는 1953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두 적대적 체제가 70년 이상 대치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점점 멀어져가는 듯 보인다. 1950년대의 통일 논의, 1960~70년대의 통일 논의, 1990년대의 통일 논의가 모두 결정적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 한반도의 통일은 이전 어느 때보다 멀게 느껴지는 가능성이 되었다.
반공국가의 정치 문화는 여전히 작동한다. 그 명시적 형태는 약해졌지만, 잠재적 형태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 어떤 정치적 사안이든 그것을 "종북" 또는 "친북"과 연결시키는 정치 문화가 2020년대에도 반복적으로 작동한다. 그 작동의 방식은 1950년대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 단위의 침묵은 여전히 작동한다. 1세대 이산가족의 다수가 평생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사망했다. 2세대와 3세대에게 그 그리움의 무게가 어떻게 전수되었는가는 여전히 한국 가족 안의 깊은 주제다. 보도연맹 학살 가족, 부역자 가족, 의용군 가족, 월남민 가족. 이 모든 가족의 그 후 한국 사회 안에서의 자리매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을의 변형은 한국 농촌 사회의 해체와 결합되어 또 다른 차원의 비극을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파괴한 마을 공동체가 그 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더 결정적으로 해체되었다. 2020년대 한국 농촌의 인구 공동화와 마을 소멸의 한 깊은 배경에 한국전쟁이 만든 신뢰 파괴가 있다.
한 사람의 침묵은 점점 사라져간다. 1세대 직접 경험자가 점점 사망해가면서, 그들이 안에 담고 있던 침묵의 무게도 함께 사라져간다. 그 사라짐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한쪽에서는 그것이 한국전쟁 트라우마의 자연스러운 치유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한국 사회가 자기 역사에 관한 깊은 기억을 영구히 잃어버리는 과정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남은 것
이 시리즈가 마지막으로 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한 가지 답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한국전쟁이 남긴 것은 너무 많고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즈가 일관되게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출발해 한 가지 답을 시도해볼 수는 있다.
첫째,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반도의 모양이다. 1953년 7월 27일의 군사 분계선이 1945년의 38선과 거의 같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한국전쟁의 가장 표면적 결과다.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그러나 그 사실 안에 한반도 전체의 그 후 모든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 분단된 한반도 위에서 두 사회가 70년 이상 별도로 발전했고, 그 결과 오늘의 한반도가 형성되었다.

둘째,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다. 반공국가의 정치 문화, 가족 단위의 상처,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변형. 이 모든 깊은 구조가 한국 사회의 그 후 모든 변화의 토대가 되었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도, 그 성취의 한계도, 모두 이 깊은 구조 안에서 형성되었다.
셋째,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 시대 사람들의 평생이다. 1950년 6월의 한반도에 살았던 약 3,000만 명의 사람들 각자가 한국전쟁을 자기 평생의 가장 깊은 사건으로 안고 살았다. 그들 중 약 200만 명이 그 전쟁에서 죽었고, 나머지는 그 죽음과 함께 살아남았다. 그 살아남은 사람들의 평생이 한국전쟁의 가장 직접적 유산이었다. 그들 중 다수가 이제 사망했지만, 그들이 자기 자녀와 손자녀에게 전수한 정서적 풍경이 오늘 한국 가족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넷째,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 가지 질문이다.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질문. 약 300만에서 400만 명의 사람이 죽은 한 사건을, 그리고 그 사건이 만든 한 사회의 깊은 변형을, 다음 세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의 활동, 작가들의 자전적 글쓰기, 그리고 학자들의 연구가 그 답을 만들어가는 매개였다. 그러나 그 답이 완성되기까지 여전히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김동춘의 마지막 문장
이 시리즈가 의지한 가장 큰 자료 중 하나인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가 그 책의 마지막에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결론은 단순하다.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의 첫 출발이라는 것. 한국 사회가 한국전쟁이 자기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정직하게 보지 않는 한, 한국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이 결론을 시리즈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 가지를 덧붙인다. 정직하게 보는 일이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가의 문제. 한국전쟁을 어느 한 진영의 시각에서만 볼 수 없다는 것. 인민군과 중국군의 폭력만 보고 한국 정부 측의 폭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거대한 정치사의 무게뿐 아니라 한 가족과 한 사람의 평생에 새겨진 상처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
이 자세를 시리즈는 23회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하려 했다. 어느 한 진영의 시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리, 거시와 미시를 함께 보는 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한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는 자리. 이 자리에서 한국전쟁을 보는 일이 시리즈가 시도한 작업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이 시리즈가 EP.01에서 시작했던 그 모스크바의 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다시 떠올려본다. 1949년 3월 7일 크렘린의 스탈린 집무실. 37세의 김일성이 70세의 스탈린에게 청원하고 있었다.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허락을 구하는 청원. 그날 스탈린은 거절했다. 그러나 그 거절은 영원한 거절이 아니었다.

그 첫 거절에서 1953년 7월 정전협정까지 약 4년 4개월. 그 사이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전쟁이었다. 그 4년 4개월의 시간 동안 약 300만에서 400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한반도가 결정적으로 분단되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깊이 변형되었다.
그 모든 일의 출발이 그 1949년 모스크바의 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그 회담을 가능하게 한 것은 더 큰 사슬이었다. 1945년의 38선 분단, 1948년의 두 정부 수립, 1949년의 마오의 승리, 그리고 다양한 결정들. 그 모든 결정들이 결국 그 모스크바의 한 회담을 만들었고, 그 회담이 1950년 6월의 한 새벽을 만들었으며, 그 새벽이 그 후 76년의 한반도를 만들었다.
이 사슬을 보는 일이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한국전쟁이 어떤 한 사건의 출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사슬 안에서 일어난 한 결정적 매듭이었다는 인식. 그 매듭의 그 후 풀림 또는 더 굳어짐이 한반도의 그 후 모든 역사를 형성했다.
마지막 풍경
2026년 5월의 오늘. 한반도의 어느 도시에서 한 노인이 자기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그가 안에 담고 있는 것의 무게를 그의 자녀와 손자녀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도 한국전쟁의 일부를 안고 살아간다. 직접 경험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전수된 정서적 풍경으로.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의 일부로.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한반도의 분단된 모양 그 자체로.

그 노인이 사라지면 그가 안에 담고 있던 것의 일부도 사라진다. 그러나 그가 살아냈던 그 시대가 만든 모든 것은 여전히 한반도에 남는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 그 모든 것의 이름이다.
시리즈가 이 마지막 풍경에 두고 싶은 것은 한 가지 자세다. 그 노인을 한 번 더 보는 자세. 그리고 그가 안에 담고 있는 것의 일부라도 받아 안으려는 자세. 한국전쟁의 1세대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그들이 안고 살았던 무게의 일부라도 다음 세대가 받아 안는 일. 그 받아 안는 일이 가능할 때 한국전쟁의 그림자에서 한 걸음씩 벗어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그 받아 안는 일의 작은 한 부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약 3,000만 명의 한국전쟁 세대가 안고 살았던 그 무게의 작은 한 조각을 글로 옮겨두는 일. 그 작업이 한국 사회가 자기 가장 깊은 사건과 마주하는 한 작은 매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직시할수록 그 끝의 가능성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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