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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38 오페라 : 노래가 된 인간의 운명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20.

「예술, 인간을 말하다」 EP.38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초상,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작 (1630년경)

 
1600년 10월 6일, 피렌체 피티 궁전.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 축하 연회가 열렸습니다.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의 결혼을 기념하는 자리.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이 축제를 위해 모였습니다.
그날 밤 야코포 페리(Jacopo Peri)가 작곡한 《에우리디케(L'Euridice)》가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노래했습니다. 대사를 말하듯, 그러나 노래로. 감정이 선율을 타고 흘렀습니다.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었을 때 오르페오의 슬픔이 노래가 되었습니다. 지하 세계의 어둠이 화음이 되었습니다.
관객들이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연극은 알고 있었습니다. 음악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둘 다이면서 둘 다가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말로는 너무 커서 노래가 되어야 했습니다. 노래로는 모자라서 몸짓과 무대와 이야기가 함께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오페라였습니다.
반 룬은 이 순간을 서양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탄생 중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역설적인 탄생이기도 합니다. 고대를 복원하려던 시도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나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다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예술이 이후 300년간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왕들이 극장을 짓고, 작곡가들이 평생을 바치고, 가수들이 신처럼 숭배받고, 관객들이 울고 웃고 싸웠습니다. 모두 이 이상한 예술 형식을 위해서.


피렌체 피티 궁전 전경

오페라의 탄생 : 실수가 만든 걸작

오페라는 계획된 발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오해에서 태어났습니다.
1570년대와 1580년대, 피렌체의 조반니 바르디(Giovanni Bardi) 백작의 저택에서 일군의 인문주의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였습니다. 카메라타(Camerata). 음악가, 시인, 철학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것.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노래로 공연되었을 것이라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이 위대한 드라마들이 단순히 대사로 낭독된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공연되었을 것이라고.
그들이 옳았을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리스 비극에 음악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합창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음악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카메라타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고대 음악을 재현하려 했습니다. 단선율의 노래가 가사의 의미를 따라가는 것. 텍스트가 음악을 지배하는 것. 화려한 다성음악이 아닌, 한 목소리가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것.
이 시도에서 나온 것이 모노디(monody), 즉 단선율 성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노디가 극적 서사와 결합되었을 때 오페라가 탄생했습니다.
그들은 고대를 복원하지 못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실제로 어떤 소리였는지를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었습니다. 반 룬은 이것을 예술 창조의 가장 아름다운 역설로 봅니다. 과거를 정확히 모방하려는 욕망이 가장 혁신적인 새로운 것을 낳는 것.


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객석과 샹들리에

몬테베르디 : 오페라에 영혼을 불어넣다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케》가 오페라의 최초 기록이라면, 오페라에 진정한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였습니다.
1607년, 만토바 곤차가 공작의 궁정에서 《오르페오(L'Orfeo)》가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오페라 역사의 진정한 시작점으로 꼽힙니다.
페리의 《에우리디케》와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의 차이는 무엇인가. 반 룬은 하나의 단어로 답합니다. 인간.
페리의 작품에서 인물들이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이 음악을 통해 살아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에서는 다릅니다.
오르페오가 사랑하는 에우리디케의 죽음 소식을 듣는 장면. 그가 노래합니다. 그 노래에서 실제로 무너지는 사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지하 세계의 뱃사공 카론에게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 음악이 애원 자체입니다. 설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순간. 오르페오가 지하 세계를 빠져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지를 어깁니다. 에우리디케를 다시 잃습니다. 이 순간의 음악이 청중을 찌릅니다.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소리로 표현됩니다.
몬테베르디는 또한 오케스트라를 드라마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특정 악기가 특정 감정이나 장면과 연결되었습니다. 트럼펫이 영웅적 장면에서 울렸습니다. 현악기가 서정적 장면에서 흘렀습니다. 오르간이 지하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드라마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반 룬은 몬테베르디를 오페라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형식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이 가진 가능성을 처음으로 완전히 실현한 사람. 그리고 그 실현이 너무나 완벽해서 이후 모든 오페라 작곡가들이 그 그림자 안에서 작업해야 했습니다.


파리넬리(카를로 브로스키) 초상화, 자코모 아마니 작 (1760년경)

왜 노래하는가 : 오페라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오페라에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노래하는가. 사람이 죽어가면서 왜 노래를 부르는가. 현실에서 우리는 노래하지 않는데.
이 질문이 오페라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이라는 것.
반 룬은 이 비판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리고 뒤집습니다.
연극에서 인물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핵릿이 독백을 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말하지 않습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구사하는 언어로 우리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극이 비현실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현실의 복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현실의 본질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래인가. 감정이 말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 노래가 됩니다. 일상의 언어가 담을 수 없는 것을 음악이 담습니다. 우리도 압니다. 기쁨이 너무 클 때 콧노래가 나옵니다. 슬픔이 너무 깊을 때 소리가 납니다. 사랑이 너무 충만할 때 노래가 됩니다.
오페라는 이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갑니다. 모든 감정이 노래가 될 자격이 있다고. 가장 극단적인 순간에 인간은 노래한다고. 그리고 그 노래가 말보다 더 진실하다고.
반 룬은 이 논리가 오페라를 처음 만든 카메라타의 생각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그들이 고대 그리스 비극이 노래로 공연되었다고 믿은 것, 비극의 가장 고귀한 순간들이 음악을 필요로 했다고 믿은 것. 이 믿음이 옳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그들이 상상한 방식이 아닌 오페라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증명되었을 뿐입니다.


베네치아 : 오페라가 대중의 것이 되다

오페라는 처음에 귀족의 예술이었습니다. 피렌체의 궁정, 만토바의 궁정. 결혼식과 외교 행사를 위한 화려한 오락.
그러나 1637년,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베네치아에 최초의 공공 오페라 극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산 카시아노(San Cassiano) 극장. 누구든 돈을 내면 들어올 수 있는 극장.
이 변화가 오페라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귀족만을 위한 예술이 상인과 시민도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다양한 관객이 오페라를 형성했습니다.
관객이 바뀌면 예술도 바뀝니다. 공공 오페라 극장이 생기면서 오페라는 더 이해하기 쉬워야 했습니다. 더 극적이어야 했습니다. 더 화려해야 했습니다. 귀족 청중을 위한 철학적 성찰보다 일반 관객을 위한 드라마와 스펙터클이 중요해졌습니다.
몬테베르디 자신이 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의 만년 작품 《포페아의 대관(L'Incoronazione di Poppea, 1643)》은 베네치아 공공 극장을 위해 쓰였습니다. 이전 작품들과 다릅니다. 신화가 아닌 역사가 주제입니다. 네로와 포페아의 실제 역사. 그리고 이 오페라는 도덕적으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승리하고 선인들이 쓰러집니다. 관객이 불편해야 할 결말. 그러나 그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불편함이 아름다움 속에 녹아듭니다.
반 룬은 베네치아의 공공 오페라 극장이 오페라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봅니다. 오페라가 귀족의 전유물에서 시민의 예술이 된 것. 이것이 이후 오페라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그리고 유럽 전체로 퍼질 수 있었던 토대였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성기 : 성악가의 시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럽을 지배했습니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1725). 나폴리 오페라 악파의 창시자. 그가 확립한 아리아 형식, 특히 다카포 아리아(da capo aria)가 이후 한 세기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다카포 아리아는 A-B-A 구조. 첫 섹션을 노래하고 대조적인 중간 섹션을 노래한 뒤 첫 섹션으로 돌아오는 것. 이 마지막 반복에서 가수들이 즉흥적인 장식음을 더했습니다. 기교의 시험대였습니다.
그리고 카스트라토(castrato)의 시대가 왔습니다.
오늘날 거의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변성기 이전에 거세한 남성 가수. 어린 시절의 목소리 음역을 유지하면서 성인 남성의 폐 용량과 근육을 가진 가수. 이 결합이 인간의 목소리가 낼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파리넬리(Carlo Broschi, 1705~1782). 그의 본명보다 예명 파리넬리로 알려진 이 카스트라토 가수가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였습니다. 스페인 왕 펠리페 5세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 파리넬리를 불렀습니다. 파리넬리가 매일 밤 왕을 위해 노래했습니다. 같은 아리아들을 수년간. 이 노래가 왕의 병을 달랬습니다.
이것이 과장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 룬은 이 이야기에서 음악의 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을 봅니다. 고대 그리스 이래 계속된 믿음. 음악이 영혼에 직접 작용한다는 것. 오페라의 목소리가 그 믿음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었습니다.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와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구분이 생겼습니다. 오페라 세리아는 진지한 오페라. 역사와 신화의 영웅들, 고귀한 감정, 비극적 결말. 오페라 부파는 희극 오페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웃음, 일상의 혼란.
반 룬은 이 구분이 몰리에르가 말한 희극과 비극의 구분과 같은 지점을 건드린다고 봅니다. 오페라 부파의 등장이 오페라를 귀족의 영웅들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확장이 오페라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낳았습니다.


모차르트 : 오페라의 절정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그가 오페라에서 이룬 것을 반 룬은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음악이 인물을 만들어냈다.
이전의 오페라에서 음악은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슬픈 장면에서 슬픈 음악, 기쁜 장면에서 기쁜 음악. 그러나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음악이 인물 그 자체를 만들어냅니다.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 보마르셰의 희극을 다 폰테가 대본으로 쓰고 모차르트가 음악을 붙인 이 작품이 오페라 역사의 가장 완벽한 성취 중 하나로 꼽힙니다.
백작.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귀족의 오만함과 그 오만함 뒤에 숨겨진 불안이 동시에 들립니다. 백작부인. 그녀의 아리아 〈사랑의 신이여, 위안을 주소서〉에서 버림받은 여인의 슬픔이 너무나 고귀하게 표현되어 있어 눈물이 납니다. 피가로. 그의 음악에서 민첩하고 재치 있는 하인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케루비노. 이 젊고 사랑에 빠진 소년의 음악에서 첫사랑의 혼란과 설렘이 정확하게 담겨있습니다.
이 인물들이 함께 있을 때 그 관계의 역학이 음악으로 표현됩니다. 백작과 피가로가 대립할 때,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함께 계획을 짤 때. 앙상블이 이야기를 말하고 감정을 말하고 관계를 말합니다.
《돈 조반니(Don Giovanni, 1787)》. 반 룬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작품입니다. 돈 후안의 이야기. 여성들을 정복하고 버리는 방탕한 귀족. 그러나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그의 음악이 그를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그가 나쁜 사람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에게 끌립니다. 이것이 모차르트의 도덕적 복잡성입니다. 악이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매력을 인정하는 것이 더 정직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것보다.
결말에서 석상이 된 기사장이 돈 조반니를 지옥으로 끌어내립니다. 이 장면의 음악이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반 룬은 이 도덕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전체의 에너지가 돈 조반니에게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모차르트가 그렇게 썼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두운 매력을 직시한 것.
《마술 피리(Die Zauberflöte, 1791)》.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독일어로 쓰인 이 작품은 이탈리아어 오페라의 고귀한 형식에서 벗어나 민중의 언어와 민중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밤의 여왕의 화려한 아리아와 파파게노의 소박한 노래가 같은 오페라 안에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도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 룬은 모차르트 앞에서 오래 멈춥니다. 서른다섯 살에 죽은 이 천재가 오페라에서 이룬 것이 너무나 완결적이어서, 이후의 오페라 작곡가들이 모두 그를 의식해야 했습니다. 그를 넘으려 하거나 그와 다른 길을 가거나. 어떤 방향이든 모차르트가 기준이었습니다.


글루크의 개혁 : 오페라가 스스로를 비판하다

18세기 중반, 오페라 세리아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문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카포 아리아의 장식음 경쟁. 카스트라토 가수의 기교 과시. 드라마가 음악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드라마를 무시하는 상황. 오페라가 성악 기교의 전시장이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가 개혁을 선언했습니다.
1762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Orfeo ed Euridice)》. 이 작품의 서문에서 글루크가 자신의 원칙을 밝혔습니다. 음악은 드라마를 섬겨야 한다고. 가수의 기교를 위해 드라마의 흐름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진실한 것이 화려하고 인위적인 것보다 낫다고.
이 원칙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메라타가 처음 오페라를 구상할 때 가진 원칙과 같습니다. 텍스트가 음악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 오페라는 160년 만에 자신의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글루크의 시도가 완전히 성공했는가. 반 룬은 조심스럽게 봅니다. 글루크의 음악이 아름답습니다. 드라마적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교의 즐거움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가. 관객은 때로 드라마보다 아름다운 목소리 자체를 원합니다.
이 긴장, 즉 드라마와 음악 사이의 긴장이 오페라 역사 전체를 관통합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 긴장 자체가 오페라를 살아있게 합니다.


오페라와 정치 : 무대 위의 세계

오페라는 단순한 예술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공간이었습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오페라 극장을 세운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오페라가 권력의 도구였습니다. 왕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프롤로그, 신화 속 영웅과 왕을 동일시하는 알레고리. 오페라가 절대 군주의 선전이었습니다.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 루이 14세의 궁정 작곡가. 그의 오페라들이 베르사유의 화려함과 왕의 영광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오페라의 형식을 확립했고, 왕의 총애를 받아 실질적으로 프랑스 음악계를 독점했습니다.
그러나 오페라가 권력을 찬양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페라 부파에서 하인이 귀족을 속이고, 권위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계급의 벽이 사랑으로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위험한 이야기였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1786년) 프랑스 혁명은 3년 후였습니다. 하인 피가로가 귀족 백작에게 맞서는 이야기. 보마르셰의 원작 희곡은 10년간 상연이 금지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나중에 말했습니다. 이 연극이 혁명을 실제로 시작했다고.
오페라로 만들어진 《피가로의 결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그 위험성을 아름다움으로 감쌌습니다. 혁명적 메시지가 아름다운 선율 속에 숨어있었습니다.
반 룬은 이것이 오페라의 가장 영리한 특성이라고 봅니다. 직접 말하면 위험한 것을 노래로 말하는 것. 아름다운 것은 허용됩니다. 아름다운 것은 무해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이 가장 깊이 마음에 들어갑니다. 가장 오래 남습니다.


오페라 극장 : 사교의 공간

오페라 극장이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18세기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의 오페라 극장들. 이 극장들의 박스석에서 귀족들이 저녁을 먹고 카드 게임을 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오페라가 배경 음악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아리아를 부를 때만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는 무례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 룬은 다르게 봅니다. 오페라 극장이 살아있는 사회적 공간이었다고. 음악이 삶과 분리된 신성한 예식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고. 오페라를 들으면서 웃고 먹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페라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가 삶의 한복판에 있다는 표시였다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것이 바뀌었습니다. 오페라가 더 真지하고 더 신성한 것이 되었습니다. 객석이 조용해졌습니다. 조명이 꺼졌습니다. 이 변화가 오페라의 예술적 수준을 높였지만 동시에 오페라를 일상에서 분리시켰습니다.
반 룬은 이 두 가지 오페라 경험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옳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박스석에서 저녁을 먹으며 듣는 오페라도 오페라입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 음악에 몰입하는 오페라도 오페라입니다. 오페라는 그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왔습니다.


반 룬이 오페라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오페라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이 이상한 예술 형식의 본질에 대해 성찰합니다.
오페라는 비합리적입니다. 사람들이 대화를 노래로 하고, 죽어가면서 아리아를 부르고, 3시간 동안 이탈리아어로 비극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합리적 관점에서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합리성이 오페라의 힘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비합리적입니다. 사랑이 비합리적이고, 질투가 비합리적이고, 명예에 죽는 것이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비합리적인 것들을 위해 살고 죽습니다. 오페라는 이 비합리적 감정들에게 그 크기에 맞는 언어를 줍니다.
말이 너무 작을 때 노래가 됩니다. 노래가 너무 작을 때 오케스트라가 됩니다. 오케스트라가 너무 작을 때 무대 전체가 됩니다. 오페라는 인간의 가장 큰 감정들이 자신의 크기에 맞는 그릇을 찾아 흘러들어간 것입니다.
반 룬은 1937년 이 챕터를 쓰면서 유럽이 다시 한번 거대한 비합리성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오페라를 이야기하면서 어쩌면 이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비합리적 감정이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파괴적인 정치가 될 수도 있다고. 그 차이는 그 감정이 무엇을 향하느냐에 있다고.
오페라는 인간의 가장 어둡고 가장 밝은 감정들을 무대 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관객이 그것을 보면서 안전하게 경험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죽음을 보고, 극장을 나와 살아있음을 더 강하게 느꼈습니다. 무대 위에서 사랑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사랑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카타르시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고, 카메라타가 되찾으려 했고, 몬테베르디가 실현하고, 모차르트가 완성한 것.
그리고 이것이 오페라가 300년이 지난 오늘도 살아있는 이유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살아있는 한, 그 감정에 어울리는 크기의 그릇을 찾는 충동이 살아있는 한, 오페라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오페라의 탄생과 절정을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중 〈나는 강력한 정신을 가졌노라 (Possente spirto)〉 : 오르페오가 지하 세계의 뱃사공에게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이 아리아는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노래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인간의 목소리가 죽음의 신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 음악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오페라가 왜 탄생해야 했는지를 이 한 곡이 말해줍니다.

    •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사랑의 신이여, 위안을 주소서 (Porgi amor)〉 : 버림받은 백작부인의 아리아. 불과 10분 남짓의 짧은 곡이지만 그 안에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깊은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기교가 없습니다. 단순하고 직접적입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깊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모차르트가 오페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예 중 하나입니다.

    •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중 〈에우리디케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Che farò senza Euridice)〉 : 오르페오가 에우리디케를 두 번째로 잃은 후 부르는 이 아리아는 역설적으로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가장 큰 상실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된 것. 이것이 오페라가 말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글루크의 개혁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드라마와 음악이 하나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 곡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오페라와 함께 탄생한 또 다른 중요한 음악 세계로 넘어갑니다. 현악기로 시작된 작은 앙상블이 어떻게 오케스트라가 되고, 실내에서 연주되던 음악이 어떻게 거대한 콘서트홀을 채우게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혁명. 바이올린 장인들의 손에서 태어나 유럽 전체의 귀를 바꾼 악기들. 크레모나, 그 이름이 어떻게 음악의 성지가 되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EP.39 : 크레모나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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