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
1673년 2월 17일, 파리 팔레 루아얄 극장.
무대 위에서 한 남자가 폐병 환자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허약한 몸, 기침, 죽음의 그림자. 희극 《상상의 병자(Le Malade Imaginaire)》의 주인공.
그런데 이 배우는 실제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공연 도중 그가 쓰러졌습니다. 관객들은 처음에 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막이 내려졌습니다.
그는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죽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 세상은 그를 몰리에르(Molière)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극작가. 그리고 그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은 사람.
그런데 그가 죽은 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파리 대주교가 그의 매장을 거부했습니다. 배우는 기독교 장례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배우를 파문 상태의 직업으로 보았습니다.
몰리에르의 아내가 루이 14세를 찾아갔습니다. 왕이 개입했습니다.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야간에, 소규모로, 조용히. 매장이 허락되었습니다.
반 룬은 이 장면을 긴 시간 들여다봅니다.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죽어서 성지에 묻히는 것이 논쟁이 되었습니다. 왕이 개입해야 했습니다. 웃음으로 인간을 이야기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와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이 몰리에르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가의 삶이 가진 본질적인 긴장이었습니다. 사회를 위해 예술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와 싸우는 것.

몰리에르는 누구인가 : 포목상의 아들이 희극의 왕이 되다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 파리에서 왕실 실내장식 담당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법률가로 키우려 했습니다. 클레르몽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연극이 그를 끌어당겼습니다.
1643년, 스물한 살의 젊은이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률을 포기하고 극단을 만들겠다고. 집안에서 물려받을 수 있었던 왕실 직책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가명을 선택했습니다. 몰리에르.
이 결정이 얼마나 급진적인 것이었는지는 당시 배우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야 이해됩니다. 배우는 성직자, 의사, 법률가와 같은 지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하층에 가까웠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배우들을 파문 상태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임종 시 신부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정식 매장도 거부될 수 있었습니다. 몰리에르가 죽은 후 일어난 일이 증명하듯.
그럼에도 그는 연극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프랑스 문학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반 룬은 이 선택에서 예술적 소명의 본질을 봅니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안정, 가족의 기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어느 시점에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방랑 극단 시절 : 실패와 배움
몰리에르의 첫 번째 극단은 실패했습니다.
1643년 파리에서 시작한 브리야 극단(L'Illustre Théâtre)이 2년 만에 파산했습니다. 채무 때문에 몰리에르는 잠깐 감옥에까지 갔습니다. 파리를 떠났습니다.
이후 13년간 프랑스 지방을 떠돌았습니다. 방랑 극단. 작은 마을, 시골 축제, 지방 귀족의 성관을 전전하며 공연했습니다.
이 시간이 낭비였을까요. 반 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 13년이 몰리에르를 만들었습니다.
지방을 돌면서 그는 프랑스의 모든 계층을 만났습니다. 농부들, 상인들, 의사들, 법률가들, 지방 귀족들. 그들의 말투, 몸짓, 허영, 어리석음, 욕망을 관찰했습니다. 이 관찰이 그의 희극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연기를 완성했습니다. 배우, 연출가, 작가의 세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 자신의 극본을 직접 연기하고 직접 지시하는 것. 이 통합적 창작 방식이 몰리에르 극단의 힘이었습니다.
1658년,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루이 14세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왕이 웃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은 몰리에르의 극단은 파리에 정착했습니다.
희극이란 무엇인가 : 웃음의 철학
몰리에르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선택한 장르, 희극(Comédie)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예술의 위계에서 희극은 하위 장르였습니다. 비극이 왕과 영웅들을 다루는 고귀한 장르였다면, 희극은 평범한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다루는 낮은 장르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 이 위계가 굳어져 있었습니다.
몰리에르는 이 위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웃음이 가르침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 수단일 수 있다고. 도덕적 설교에 사람들은 귀를 닫지만, 웃음에는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그 열린 마음으로 진실이 들어옵니다.
이것이 그의 희극 철학이었습니다. 웃기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 관객이 웃다가 문득 자신을 보게 하는 것. 무대 위의 위선자, 구두쇠, 허영 덩어리, 어리석은 의사를 보며 웃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는 것.
반 룬은 이 기법에서 예술의 가장 영리한 설득 방식을 봅니다. 직접 비판하면 방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웃게 하면 방어벽이 내려갑니다. 그 순간 진실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몰리에르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타르튀프》 : 위선이 무대에 오르다
1664년, 《타르튀프(Tartuffe)》 초연.
이 희극의 주인공 타르튀프는 독실한 기독교인을 가장한 위선자입니다. 그는 오르공이라는 순진한 부유한 남자의 신뢰를 얻어 그의 집에 들어옵니다. 오르공의 재산을 노리고, 그의 아내를 유혹하려 합니다. 모든 악행을 신앙의 이름으로 감춥니다.
이 희극이 초연된 직후 파리 대주교가 이 작품을 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종교를 모독한다는 이유로. 왕도 처음에는 공연을 제한했습니다. 5년간 공연 금지.
그러나 몰리에르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차례 왕에게 청원을 올렸습니다. 자신이 공격한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 신앙을 가장한 위선이라고.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들이라면 이 희극을 보고 불쾌할 이유가 없다고.
1669년, 마침내 공연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리고 파리 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타르튀프》는 몰리에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타르튀프라는 이름이 이후 프랑스어에서 위선자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인들이 위선적인 사람을 보며 말합니다. 저 사람은 타르튀프야.
반 룬은 이 작품의 갈등에서 예술과 사회 권력의 영원한 싸움을 봅니다. 예술이 권력의 위선을 폭로할 때, 권력은 예술을 검열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억압될 수 있어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5년 후 막이 올랐고, 300년 후 타르튀프는 여전히 무대에 있습니다.
《돈 주앙》 : 자유사상가의 초상
《타르튀프》가 종교적 위선을 공격했다면, 같은 해 쓴 《돈 주앙(Dom Juan, 1665)》은 더 복잡한 인물을 다루었습니다.
돈 주앙은 방탕한 귀족입니다. 여성들을 정복하고 버립니다. 아버지를 무시합니다. 하인의 충고를 무시합니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옥으로 끌려갑니다.
이것만 보면 단순한 도덕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몰리에르의 돈 주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악인이지만 동시에 지적으로 가장 명료한 인물입니다. 그는 위선을 혐오합니다. 그가 공격하는 것들, 종교적 가식, 사회적 체면, 인습적 도덕, 이것들이 정말 타파해야 할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논리가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논리를 자신의 방종을 위해 사용할 뿐입니다.
이 인물이 왜 위험했을까요.
관객이 그에게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유로운 정신에. 그의 허영과 위선에 대한 경멸에. 그를 완전히 악인으로 볼 수 없는 그 애매함이 문제였습니다.
이 작품도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공연 후 몰리에르는 더 이상 이 작품을 공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두 번 다시 무대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반 룬은 《돈 주앙》에서 몰리에르의 가장 현대적인 면모를 봅니다.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 것. 악인에게도 진실의 한 면을 주는 것. 관객이 불편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이것이 몰리에르가 단순한 풍자 작가가 아닌 진정한 극작가인 이유입니다.
《수전노》 : 돈이 신이 된 세계
1668년 《수전노(L'Avare)》. 몰리에르의 가장 극단적인 희극 중 하나입니다.
아르파공은 돈을 사랑합니다. 아들과 딸의 결혼보다 자신의 재산 보호가 더 중요합니다. 하인들에게 밥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자신도 먹지 않습니다. 촛불도 아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황금 상자가 도난당하자 무대 위에서 절규합니다.
"도둑이야! 살인자야! 내 황금 상자! 내 보물! 내 전 재산!"
이 절규가 웃음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섬뜩합니다. 아르파공에게 황금 상자는 자식보다, 사랑보다, 삶 자체보다 소중합니다. 이것이 희극인가, 비극인가.
몰리에르는 어떤 상황이 웃긴지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진지해야 할 것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것, 또는 진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것. 아르파공이 황금을 자식처럼 대하는 것이 웃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웃기는 게 아닙니다. 돈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것이 웃깁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가.
반 룬은 《수전노》에서 몰리에르의 인간 관찰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을 봅니다. 아르파공은 단순한 구두쇠가 아닙니다. 그는 물질이 인간을 지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입니다. 그리고 이 알레고리가 350년이 지난 오늘도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신이 된 세계는 몰리에르 시대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혐오자》 : 몰리에르 자신의 초상
몰리에르의 희극들 중 가장 복잡하고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인간혐오자(Le Misanthrope, 1666)》.
주인공 알세스트는 위선을 혐오합니다. 사교계의 빈말, 거짓 친절, 인습적 예의범절. 그는 이것들을 참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때로는 잔인하게 진실만을 말합니다.
이것이 희극인가요. 맞습니다. 알세스트의 극단적인 솔직함이 웃음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분노가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가 증오하는 위선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의 친구 필랭트가 대비를 이룹니다. 필랭트는 사교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고. 알세스트의 완벽주의가 오히려 문제라고.
이 논쟁이 희극의 핵심입니다. 세상의 위선을 비타협적으로 거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불완전한 세상 안에서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작품에 몰리에르 자신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세스트에서 몰리에르를 봅니다. 위선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그 사회 안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총애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 궁정을 비판했던 사람.
반 룬은 이 작품에서 예술가의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를 봅니다. 사회를 비판하는 예술가가 동시에 그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완전히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완전히 안에 속할 수도 없는 경계. 그 경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예술이 나옵니다.
《상상의 병자》 : 마지막 희극의 아이러니
1673년, 몰리에르의 마지막 작품 《상상의 병자(Le Malade Imaginaire)》.
주인공 아르강은 건강염려증 환자입니다. 병이 없는데 병이 있다고 믿습니다. 의사들이 그 믿음을 이용해 돈을 받아냅니다. 그는 딸의 행복보다 의사 사위를 얻는 것에 집착합니다. 의사가 있으면 약값이 절약되니까.
이 희극에서 몰리에르는 당시 의학을 공격했습니다. 라틴어 주문 같은 처방, 피를 뽑는 사혈 치료, 관장약의 남용. 이것들이 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이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몰리에르 자신이 폐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병든 배우가 병든 척하는 환자를 연기하는 것. 이 아이러니가 너무 선명합니다.
그는 왜 공연을 멈추지 않았을까요.
반 룬은 씁니다. 아마도 몰리에르에게 멈추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공연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웃음을 주는 것이 그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병이 그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공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원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끝나는 것.
루이 14세와 몰리에르 : 왕과 예술가의 관계
몰리에르와 루이 14세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왕은 몰리에르를 아꼈습니다. 그의 극단을 후원했습니다. 《타르튀프》 금지 논란에서도 결국 왕의 개입으로 공연이 허락되었습니다. 왕이 직접 몰리에르의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공동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대등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후원자였고 몰리에르가 예술가였습니다. 몰리에르는 궁정의 취향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귀족을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몰리에르는 자신의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비판이 직접적이지 않고 우회적이었습니다. 특정 인물을 공격하지 않고 유형을 공격했습니다. 위선자, 구두쇠, 학식 허영꾼, 엉터리 의사. 이 유형들이 특정인을 가리키지 않기에 왕은 웃었고, 그러나 현실의 사람들은 자신을 거기서 보아야 했습니다.
반 룬은 이 전략에서 권력 아래서 살아야 했던 예술가의 지혜를 봅니다. 직접적인 공격은 파괴됩니다. 그러나 우회적인 진실은 살아남습니다. 몰리에르의 희극들이 300년 후 무대에 여전히 오르는 것이 이 지혜의 결과입니다.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 : 몰리에르와 그의 시대
몰리에르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세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비극 작가. 《르 시드(Le Cid, 1637)》가 대표작. 명예와 사랑이 충돌하는 스페인 기사 이야기. 이 작품이 프랑스 고전주의 비극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장 라신(Jean Racine, 1639~1699). 비극 작가. 몰리에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후계자. 《앙드로마크》, 《페드르》.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그의 비극들에서 인간 감정의 극단이 표현됩니다. 아름다운 시어, 심리적 깊이, 비극적 필연성.
몰리에르. 희극 작가. 이 세 사람이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연극의 세 장르를 완성했습니다. 코르네유의 웅장한 비극, 라신의 심리적 비극, 몰리에르의 날카로운 희극.
그러나 반 룬은 세 사람 중 몰리에르에게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코르네유와 라신의 비극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왕과 영웅과 신화적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17세기의 귀족 관객들을 위한 예술.
몰리에르의 희극은 다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구두쇠는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위선자는 어느 사회에나 있습니다. 엉터리 의사는 어느 문화에나 있습니다. 이 보편성이 몰리에르를 시대를 초월하게 만들었습니다.
희극과 비극 : 어느 것이 더 위대한가
반 룬은 몰리에르 챕터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희극과 비극, 어느 것이 더 위대한 예술인가.
전통적인 답은 비극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비극이 더 고귀한 장르로 여겨졌습니다. 고귀한 인물들의 추락, 운명과의 싸움, 카타르시스. 이것이 예술의 가장 고귀한 기능이라고.
몰리에르는 이 위계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사람들을 울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그리고 웃음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눈물을 통해 전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반 룬은 이 논쟁에서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몰리에르의 편을 듭니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비극보다 희극이라고. 왜냐하면 희극은 더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특정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수전노》는 모든 시대의 돈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타르튀프》는 모든 시대의 위선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몰리에르의 희극들이 오늘날에도 전 세계 무대에서 공연됩니다. 그것들이 그토록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몰리에르가 그 바뀌지 않는 본성을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몰리에르의 매장 : 마지막 싸움
몰리에르의 죽음과 매장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가 죽은 후 파리 대주교가 성지 매장을 거부했습니다. 배우는 파문 상태이므로.
아내 아르망드가 루이 14세를 찾아갔습니다. 왕이 대주교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야간에, 소규모로, 십자가와 종 없이. 성 요셉 묘지에 매장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밤의 행렬에 수백 명이 따라왔습니다. 사람들이 창문에서 불빛을 내보냈습니다. 자발적인 조문의 행렬.
교회가 거부한 것을 민중이 인정했습니다.
반 룬은 이 장면에서 예술의 가장 깊은 진실을 봅니다. 예술가의 가치는 제도가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부해도 수백 명이 밤의 거리를 따라왔습니다. 그것이 몰리에르의 진짜 매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100년이 지나 프랑스 혁명 후 그의 유해가 파리 팡테옹으로 이장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위인들이 잠드는 그곳으로. 배우이자 극작가이자 위선을 공격한 사람이 마침내 국가의 성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몰리에르는 결국 성지에 묻혔습니다. 처음 거부당했지만, 마지막에는 국가 자체가 그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반 룬이 몰리에르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몰리에르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성찰을 제시합니다.
예술가는 사회 속에서 살지만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몰리에르가 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살면서 그 궁정의 위선을 웃음으로 폭로했습니다. 교회의 시대에 살면서 교회의 이름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상업화되는 사회에서 살면서 돈에 지배당하는 인간을 희화화했습니다.
이 거울 앞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교회가 공연을 금지했습니다. 의사들이 반발했습니다. 귀족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바로 몰리에르가 원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보는 것의 불편함. 그 불편함이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반 룬은 1937년 몰리에르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타르튀프들이 다시 등장하고, 위선이 권력의 옷을 입고, 아르파공들이 국가를 운영하려 하는 시대. 그 시대에 몰리에르 같은 예술가가 필요합니다. 웃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무대 위에서 쓰러질 때까지 말하는 사람.
웃음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친근하기 때문입니다. 경계심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내려진 경계 사이로 진실이 들어옵니다.
몰리에르의 웃음이 350년 후에도 우리를 웃게 하고, 그 웃음 뒤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타르튀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르파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몰리에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몰리에르의 세계, 웃음과 위선과 인간의 본성을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장 밥티스트 뤼리, 《부르주아 귀족》 모음곡 : 몰리에르와 뤼리의 공동 작품인 이 코미디 발레의 음악. 몰리에르가 귀족 행세를 하려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을 웃음으로 그린 작품에 뤼리가 화려한 음악을 붙였습니다. 루이 14세 궁정에서 초연되었고, 왕 자신도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시대의 웃음과 음악이 하나가 된 순간입니다.
-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 《테 데움》 : 몰리에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의 대표작. 오늘날 유럽방송연합(EBU)의 시그널 음악으로 쓰이는 도입부가 특히 유명합니다.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의 화려함과 자신감이 음악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몰리에르가 웃음으로 그 시대를 보여주었다면, 샤르팡티에는 장엄함으로 그 시대를 담았습니다.
- 헨리 퍼셀, 《요정 여왕》 중 〈 이제 밤은 쫓겨나고 〉 : 몰리에르와 같은 시대 영국의 작곡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한 이 세미 오페라의 음악에서 몰리에르의 희극과 같은 정신이 들립니다.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 아름다운 것의 덧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것.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는 배우의 이야기를 봅니다. 중세에 교회가 연극을 금지하면서 무대에서 쫓겨났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시대에 다시 화려하게 귀환한 배우. 그 긴 여정 속에서 연극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배우라는 직업이 어떻게 사회 속에 자리를 잡아갔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37 : 배우가 다시 등장하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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