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

1600년,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캔버스 앞에 서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그는 그림 안에 촛불 하나를 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림 속 빛의 원천 하나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킵니다.
완성된 그림을 봅니다.
세관 앞에 앉아 있는 마태오. 그 옆으로 예수가 들어옵니다. 예수의 손가락이 마태오를 가리킵니다. 빛이 그 손을 따라 마태오의 얼굴에 쏟아집니다. 주위는 어둠입니다. 극단적인 명암. 드라마틱한 순간.
그런데 이 그림의 사람들이 이상합니다. 그들은 성경 속 존재들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로마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태오는 세리입니다. 진짜 세리처럼. 더러운 손, 찌든 얼굴, 탁한 눈. 예수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젊은 남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손짓에서 모든 것이 바뀝니다.
성당을 찾은 로마 시민들이 이 그림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들은 처음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성한 이야기가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옷차림으로, 자신들의 얼굴로 표현된 것. 천상의 것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
반 룬은 이 순간을 바로크 예술의 탄생이라고 봅니다. 하늘이 땅으로 쏟아지는 순간. 신성함이 일상 속으로 침투하는 순간. 그리고 그 침투가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비로 표현되는 순간.
이것이 바로크였습니다.

바로크란 무엇인가 : 이름의 역설
바로크(Baroque)라는 말의 어원은 논쟁 중입니다. 포르투갈어로 불규칙한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바로코(barroco)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완벽하게 둥글지 않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온 진주.
이 이름이 처음 사용될 때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18세기 고전주의자들이 17세기 예술의 과잉을 비판하면서 쓴 말이었습니다. 너무 복잡하다. 너무 감정적이다. 너무 화려하다. 균형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압니다. 그 과잉이 바로크의 강점이었다는 것을.
반 룬은 바로크를 정의하면서 르네상스와의 대비를 먼저 설정합니다.
르네상스는 균형을 원했습니다. 조화, 명확한 구성, 이상화된 형태, 절제된 감정.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라파엘로의 성모들이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듯.
바로크는 움직임을 원했습니다. 비틀린 자세, 포착된 순간, 폭발하는 감정, 극적인 빛, 압도하는 규모. 베르니니의 조각들이 살아 움직이듯, 루벤스의 그림들이 넘쳐흐르듯.
왜 이 전환이 일어났을까요.
반 룬은 두 가지 이유를 봅니다. 하나는 반종교개혁의 전략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에 맞서 신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감각을 자극하고 감정을 흔드는 예술을 원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17세기의 시대 정신이었습니다. 갈릴레오의 발견으로 우주가 무한히 넓어지고, 신대륙의 발견으로 세계가 확장되고, 종교 전쟁으로 삶이 불안정해진 시대. 이 불안과 경이로움이 바로크 예술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카라바조 : 빛으로 혁명을 일으킨 사람
바로크 회화의 혁명을 가장 먼저, 가장 급진적으로 일으킨 사람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였습니다.
그의 삶은 그림만큼 드라마틱했습니다. 밀라노 출신. 젊은 시절 로마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술집을 전전했습니다. 그의 천재성이 발견되어 후원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1606년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였습니다. 로마에서 도망쳐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를 떠돌았습니다. 사면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로마로 돌아가던 중 1610년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나이 서른아홉.
이 짧고 격렬한 삶이 미술사를 바꿨습니다.
카라바조의 혁신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테네브리즘(Tenebrism). 어둠 속에서 강렬한 빛이 특정 부분만을 비추는 기법. 배경이 완전한 어둠입니다. 그 어둠에서 인물들이 빛으로 솟아오릅니다. 이 극단적인 명암 대비가 보는 사람을 즉각적으로 그림 속 순간으로 끌어당깁니다.
두 번째, 철저한 사실주의. 카라바조는 이상화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성인들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의 사도들은 거친 손과 더러운 발을 가진 노동자들입니다. 마리아는 창녀처럼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모델을 거리에서 찾았습니다. 실제 사람들, 실제 얼굴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신성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추상적인 신학이 감각적 경험이 되었습니다. 신자들이 처음으로 성경 속 장면에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거친 손의 마태오는 로마 거리의 세리였습니다. 즉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 마태오를 부른 예수는 그들도 부를 수 있었습니다.
반 룬은 카라바조의 이 혁신에서 예술의 가장 강력한 힘을 봅니다. 거리를 좁히는 것. 신성한 것과 일상적인 것 사이의 거리. 그림 속 세계와 보는 사람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좁아질 때 예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경험이 됩니다.
카라바조는 거의 즉각적으로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방식을 따른 화가들을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유럽 전역에서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이 번졌습니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 : 조각을 살아있게 만든 천재
바로크 조각의 세계에서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미켈란젤로 이후 가장 위대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베르니니와 미켈란젤로는 다릅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돌 안에 갇혀 있습니다. 《미완성 노예들》에서처럼, 인물들이 대리석 안에서 빠져나오려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내면의 힘이 돌과 싸우는 긴장감.
베르니니의 조각은 돌을 이겼습니다. 그의 인물들은 이미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움직입니다. 날아오릅니다.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아폴로와 다프네(Apollo and Daphne, 1622~1625)》를 봅니다.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에서 대리석이 나뭇잎이 되고, 머리카락이 되고, 공기가 됩니다. 손가락 끝이 이미 나뭇가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나무껍질이 허리에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돌로 가능한가.
《성녀 테레사의 환희(Ecstasy of Saint Teresa, 1647~1652)》. 스페인 신비가 성녀 테레사가 천사의 황금 화살에 찔리는 환시를 묘사한 이 작품은 바로크 조각의 정점입니다. 테레사는 황홀경에 빠져 눈을 감고 있습니다. 천사는 장난스럽게 화살을 들고 있습니다. 두 인물 주위에 청동 광선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극장의 무대처럼 설계된 공간 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양쪽 박스석에는 조각된 귀족 가족들이 이 장면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집니다.
베르니니는 또한 건축가였습니다. 로마 성 베드로 광장의 열주(Colonnade). 타원형으로 광장을 감싸는 284개의 기둥들. 베르니니는 이것을 가톨릭 교회의 두 팔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자들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팔.
그리고 성 베드로 성당 내부의 발다키노(Baldacchino). 제단 위를 덮는 거대한 청동 천개. 높이 29미터. 이 거대한 구조물의 네 개의 뒤틀린 기둥이 바로크 건축의 에너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기둥이 뒤틀립니다. 뒤틀림이 운동감을 만듭니다. 운동감이 생명을 만듭니다.
반 룬은 베르니니를 르네상스 이후 최대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예술이 가진 위험성도 지적합니다. 베르니니의 그림들 앞에서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감각이 너무 강하게 자극됩니다. 이것이 반종교개혁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신자들이 생각하기보다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베르니니는 그것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이것이 그의 위대함이면서 동시에 그가 속한 시대의 한계였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 생명력의 화가
바로크 회화의 가장 빛나는 이름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입니다.
플랑드르 출신의 이 화가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공장처럼 운영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조수들이 그의 밑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루벤스 자신은 주요 부분, 특히 얼굴과 손을 직접 그렸습니다. 이 생산 방식으로 그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주요 박물관들에 루벤스 작품이 없는 곳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루벤스는 단순한 공장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외교관이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여러 나라에서 왕실의 외교 사절로 활동했습니다. 7개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예술가이자 외교관이자 인문주의자.
루벤스의 그림들을 보면 공통된 특성이 느껴집니다.
생명력. 그의 인물들은 살아있습니다. 근육이 움직이고, 살이 진동하고, 피가 돌고 있습니다. 그는 인체의 풍성함을 찬양했습니다. 특히 여성의 몸.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통통한 루벤스의 여인들이 당대에는 아름다움의 이상이었습니다. 건강하고 풍요롭고 생명력 넘치는 몸.
《레우키포스의 딸들의 납치(The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 1617~1618)》. 두 신화 영웅이 두 여인을 말 위에 납치하는 이 장면은 혼돈의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인물들이 뒤엉키고, 말들이 뛰어오르고, 색채가 폭발합니다. 이것을 정지된 화면으로 보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삼미신(The Three Graces)》. 아름다움, 기쁨, 번영의 세 여신이 원을 이루며 춤을 추는 이 그림은 루벤스 예술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풍성한 몸, 따뜻한 살결, 기쁨의 춤. 삶이 아름답다는 선언.
반 룬은 루벤스에서 바로크 예술의 긍정적 측면을 봅니다. 카라바조가 어둠 속의 빛을 표현했다면, 루벤스는 빛 속의 풍요를 표현했습니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삶의 아름다움을 축제처럼 표현하는 것. 이것이 플랑드르 특유의 생명 긍정이었습니다.
루벤스는 또한 위대한 제자들을 남겼습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가 그 중 가장 중요합니다. 반 다이크가 영국 왕실의 화가가 되면서 루벤스의 영향이 영국으로 흘렀습니다. 그리고 반 다이크의 우아한 초상화 양식이 이후 영국 초상화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벨라스케스 :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스페인의 바로크 회화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입니다.
그의 삶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세비야에서 태어나 스물네 살에 마드리드로 가서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안정된 삶이 그에게 관찰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대상을 보는 것. 왕의 얼굴을 수십 년에 걸쳐 그리는 것. 그 반복 속에서 보는 행위 자체에 대한 깊은 탐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Las Meninas, 1656)》을 봅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이 그림 앞에 서면 이상한 감각이 듭니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가 불분명합니다.
그림의 중앙에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가 있습니다. 주위에 시녀들과 난쟁이들이 있습니다. 왼쪽에 캔버스 앞에 선 벨라스케스 자신이 있습니다. 뒤쪽 벽의 거울에 왕과 왕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바깥에, 우리 관람자들이 있는 자리에 왕과 왕비가 실제로 서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울에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벨라스케스는 누구를 그리고 있었을까요. 왕과 왕비를.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초상화인가, 아니면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인가. 그리고 그림 밖의 우리는 왕과 왕비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인가.
이 그림이 제기하는 철학적 질문들이 500년간 미술사가들과 철학자들의 탐구 대상이었습니다. 미셸 푸코는 이 그림에 대한 분석으로 《말과 사물》을 시작했습니다.
반 룬은 《시녀들》에서 벨라스케스의 핵심 관심사를 봅니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관계. 그림이란 무엇인가. 화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현실과 재현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 질문들이 이후 서양 회화 전체를 통해 반복해서 제기됩니다. 인상주의의 빛의 탐구, 세잔의 시점 문제, 피카소의 큐비즘. 이 모든 것들의 먼 조상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 서 있습니다.
렘브란트 :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빛
네덜란드의 바로크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은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입니다.
렘브란트는 칼뱅주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습니다. 교회 예술 위탁이 없는 사회. 그의 후원자는 암스테르담의 상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자신들의 초상화, 길드의 집단 초상화, 그리고 역사화와 종교화.
렘브란트는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을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카라바조가 빛을 극적 효과를 위해 사용했다면, 렘브란트는 빛을 심리적 탐구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의 자화상 연작이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렘브란트는 평생 10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청년에서 노인까지. 성공한 시절과 파산한 시절. 아내가 살아있을 때와 아내를 잃은 후.
이 자화상들은 자기 홍보가 아닙니다. 자기 탐구입니다. 빛이 자신의 얼굴 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얼굴 안에서 내면의 삶을 포착하려는 것.
말년의 자화상들이 특히 경이롭습니다. 두꺼운 임파스토, 거친 붓 자국, 어두운 배경. 그러나 그 거칠음 속에서 빛이 납니다. 눈에서. 이마에서. 단순히 반사광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의 빛입니다. 삶의 무게를 담은 얼굴에서 빛나는 인간의 존엄성.
《야경(Night Watch, 1642)》은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암스테르담 민병대 대장과 그의 부대원들의 집단 초상화. 그러나 이 그림은 집단 초상화의 관행을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전통적인 집단 초상화에서 모든 인물이 같은 비중으로 표현됩니다. 각 인물이 명확하게 보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낸 사람들이 자신이 그림에 제대로 그려졌는지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는 이것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움직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어떤 인물은 밝고, 어떤 인물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떤 인물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한 인물은 전혀 식별이 불가능합니다.
후원자들이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적 진실이 후원자의 요구보다 중요하다고.
이 결단이 그의 경제적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파산했습니다. 그러나 《야경》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 초상화로 남았습니다.
반 룬은 렘브란트의 삶에서 예술가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예술적 비전과 시장의 요구 사이에서 비전을 선택한 것. 경제적 성공을 희생하고 예술적 진실을 택한 것. 이것이 쉬운 선택이 아님을 렘브란트의 말년이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야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파산한 화가의 그림이 400년 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심장에 걸려 있습니다.
바로크 건축 : 공간이 설득하다
바로크 예술의 또 다른 거대한 영역은 건축입니다.
반종교개혁 시대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교회를 지을 때 분명한 목적을 가졌습니다. 신자들이 교회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압도되어야 했습니다. 이 건물의 웅장함이 신앙의 웅장함을 표현해야 했습니다.
로마의 일 게수(Il Gesù) 성당이 그 첫 번째 완성형이었습니다. 1584년 완공. 예수회의 본부 성당. 넓은 단일 네이브, 측면 예배당들,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 이 구조가 이후 바로크 교회 건축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천장 프레스코가 특히 중요합니다.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가 1679년에 완성한 일 게수의 천장 프레스코 《예수 이름의 승리》. 이 그림에서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쏟아져 내려오며 죄인들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인물들과 구름들이 천장 프레임을 넘어 실제 건축 공간 안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림과 건축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신자가 아래를 보다가 위를 올려다볼 때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입니다. 실제로 열린 하늘처럼 보이는 천장.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광장. 타원형의 이 광장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외부에서 광장으로 걸어 들어올 때 처음에는 열주들이 좁게 보입니다. 그러다가 중심 광장에 도달하면 갑자기 공간이 열립니다. 감싸입니다. 이 공간적 경험이 의도된 것입니다. 교회의 포용을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
반 룬은 바로크 건축에서 공간이 설득의 도구가 된 것을 봅니다. 아름다움이 신자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 자체가 신앙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축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크 건축이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했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탄생 : 오페라의 등장
바로크 시대는 음악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오페라의 탄생이었습니다.
1600년경 피렌체. 카메라타(Camerata)라고 불리는 인문주의자들의 모임이 고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려는 시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음악과 연극의 결합. 극적인 텍스트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
최초의 오페라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 그러나 진정한 오페라의 탄생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와 함께였습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L'Orfeo, 1607)》. 이 작품에서 음악이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드라마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오르페오가 에우리디케를 잃었을 때의 슬픔, 하데스에게 애원할 때의 절박함, 에우리디케를 다시 잃었을 때의 절망. 이 감정들이 선율과 화성과 리듬으로 표현됩니다.
몬테베르디는 또한 마드리갈의 언어를 혁명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8권의 마드리갈 책들은 르네상스 마드리갈에서 바로크 음악으로의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첫 권들은 르네상스 양식입니다. 마지막 권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새로운 불협화음들, 새로운 리듬 패턴들, 극적인 표현의 강화.
반 룬은 몬테베르디를 음악의 카라바조로 봅니다.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형식적 규칙보다 감정적 진실을 우선시하는 것. 이상화된 아름다움보다 실제 경험을 표현하는 것. 기술보다 표현력을.
바로크 시대의 그림자 : 30년 전쟁
바로크 예술의 화려함 뒤에는 깊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30년 전쟁(1618~1648).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만들어낸 분열이 결국 전쟁으로 터졌습니다. 가톨릭 세력과 개신교 세력의 충돌. 독일이 주 전장이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도시들이 불타고, 농토가 황폐화되고, 문명이 후퇴했습니다.
이 전쟁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복잡했습니다.
한편으로 전쟁이 예술 후원을 파괴했습니다. 많은 독일 도시들에서 예술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이 전쟁을 피해 다른 나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 바로크 예술의 어두운 에너지를 이해하게 합니다. 카라바조의 어둠, 렘브란트의 침묵, 바로크 음악의 비탄. 이것들이 아무 이유 없는 과잉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죽음과 불안으로 가득한 시대의 감정적 반응이었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 조약이 근대 국제 질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국가 주권의 원칙, 종교적 관용, 국가 간 협상의 틀. 이 새로운 질서 위에서 바로크 예술의 다음 단계가 펼쳐졌습니다.
반 룬이 바로크 시대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바로크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이 시대 예술의 핵심 정신을 정리합니다.
바로크는 과잉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과잉이었습니다.
르네상스가 이상을 표현했다면, 바로크는 현실을 표현했습니다. 완벽한 균형 속의 신성한 존재들이 아닌, 어둠과 빛이 충돌하는 공간 속의 실제 인간들. 카라바조의 거친 손의 사도들, 렘브란트의 주름진 자화상들, 루벤스의 풍성한 인체들. 이것들이 바로크의 인간주의였습니다.
바로크는 또한 감각을 신뢰했습니다. 이성으로 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감각으로 신을 경험하는 것.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 앞에서 그 황홀경을 몸으로 느끼는 것. 바로크 교회에 들어섰을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 오페라에서 아리아의 선율이 가슴을 울리는 것.
반 룬은 이것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었다고 봅니다. 예술은 머리가 아닌 몸 전체로 경험됩니다. 바로크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앎이 카라바조의 빛으로, 베르니니의 조각으로, 루벤스의 색채로, 몬테베르디의 선율로 표현되었습니다.
1937년 반 룬이 이 챕터를 쓸 때, 유럽의 또 다른 격변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더 선명합니다. 이것이 카라바조가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이 어두운 시대에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를 켜는 것. 그것이 카라바조가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이 언제나 하는 것입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바로크 시대의 극적인 에너지와 깊이를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오페라 《오르페오》 중 〈강력한 정신이여, 강인한 신이여〉 : 오르페오가 지하 세계의 신에게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이 아리아는 음악이 감정을 담아낸 최초의 위대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카라바조가 빛으로 극적 순간을 포착했듯, 몬테베르디가 선율로 극적 감정을 포착했습니다.
- 헨리 퍼셀,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 중 〈디도의 탄식〉 : 영국 바로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버림받은 디도가 죽음을 맞으며 부르는 이 아리아에서 하강하는 반복 저음 위에 선율이 흐릅니다. 렘브란트의 말년 자화상들이 가진 것과 같은 고요한 위엄이 음악 속에 있습니다.
- 아르칸젤로 코렐리, 합주 협주곡 Op.6 No.8 〈크리스마스 협주곡〉 : 바로크 기악 음악의 가장 아름다운 형식, 합주 협주곡의 완성형. 베르니니의 건축이 공간을 통해 경험을 만들어내듯, 이 음악은 소리의 구조를 통해 빛의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마지막 파스토랄레 악장에서 베들레헴의 밤이 열립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바로크 시대의 가장 독특한 빛을 보여준 곳으로 넘어갑니다.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혁명을 일으켰을 때, 그 빛이 알프스 너머 네덜란드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칼뱅주의 네덜란드에서 그 빛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성인도 신화도 아닌, 빵 한 조각과 레몬 하나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렘브란트의 제자들이 만든 세계,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네덜란드 화파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34 : 빛과 일상: 네덜란드파의 그림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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