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의 질문
1990년대 초,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 대결을 벌였습니다.
딥 블루는 초당 2억 개의 체스 수를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체스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 수천 개의 과거 명국, 모든 말의 이동 규칙을 완벽하게 저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딥 블루는 체스에 관해 인간이 평생 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스파로프는 말했습니다.
"딥 블루는 체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계산할 뿐이다."
딥 블루가 1997년 결국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카스파로프의 말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정보를 처리하고 올바른 수를 계산하는 것과, 체스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AI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앎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교과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재현합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실제 삶의 문제에 적용하려고 하면 막힙니다. 반면, 점수는 다소 낮지만 핵심 개념들 사이의 연결을 파악하고, 새로운 상황에서도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느 학생이 더 많이 '아는' 것일까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정보와 지식, 지식과 지혜 — 이것들은 어떻게 다를까요? 앎에도 분명히 층위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층위의 지도를 함께 그려봅니다.
■ 생각의 실마리 : 데이터, 정보, 지식, 이해, 지혜
앎의 층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틀 중 하나가 DIKW 피라미드입니다. 데이터(Data), 정보(Information), 지식(Knowledge), 지혜(Wisdom)의 네 층위로 앎을 구분하는 이 모델은 정보과학과 철학 모두에서 널리 활용됩니다. 여기에 인식론적 관점에서 이해(Understanding)를 더해 다섯 층위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층위 : 데이터 (Data)
데이터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앎의 재료입니다. 아직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날것의 사실들입니다.
"37.8", "화요일", "붉은색", "1,200만",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맥락 없이는 무엇에 관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37.8은 체온일 수도 있고, 주가일 수도 있고, 어떤 물질의 녹는점일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의 데이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자동으로 지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터는 처리되고 맥락 안에 놓여야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층위 : 정보 (Information)
정보는 데이터에 맥락과 의미가 부여된 것입니다. "이 환자의 체온은 37.8도로 정상보다 약간 높습니다" — 이것이 정보입니다. 데이터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라는 맥락이 더해지면 정보가 됩니다.
정보는 데이터보다 훨씬 유용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과사전에는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지만, 백과사전 자체가 무언가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인터넷은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정보 저장소입니다. 하지만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층위 : 지식 (Knowledge)
지식은 정보들 사이의 패턴과 관계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여 내면화한 것입니다. 지식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합되고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체온이 37.8도라는 정보를 가지고, 다른 증상들과 연결하여 "초기 감기 증세로 보이며, 수분 섭취와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릴 때, 이것이 지식의 작동입니다. 데이터와 정보를 연결하고 의미를 추출하는 것이지요.
지식의 핵심적 특성은 **전이 가능성(Transferability)**입니다. 한 상황에서 배운 것을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정보와 지식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입니다.
네 번째 층위 : 이해 (Understanding)
이해는 지식보다 한 층위 높습니다. 지식이 '무엇'과 '어떻게'를 아는 것이라면, 이해는 '왜'를 아는 것입니다.
수학을 예로 들어봅시다. 피타고라스 정리, 즉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이라는 것을 암기한 사람은 이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왜 이 관계가 성립하는지, 기하학적으로 어떻게 증명되는지, 이것이 더 넓은 수학 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파악한 사람은 이것을 '이해합니다'.
이해의 핵심은 연결성입니다. 개별적인 지식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고, 그 관계의 그물망 전체를 볼 수 있는 것. 이해한 사람은 배운 것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새로운 문제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층위 : 지혜 (Wisdom)
지혜는 가장 높은 층위의 앎입니다. 지혜란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올바른 때에 올바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단순히 많이 안다거나 깊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삶의 경험과 성찰, 도덕적 판단, 장기적 안목이 통합된 것입니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반드시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지혜는 지식을 삶에 적용하는 능력, 특히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프로네시스(Phronesis)', 즉 실천적 지혜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으로, 책에서 배울 수 없고 오직 삶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서만 쌓입니다.

■ 지식의 유형 : 우리가 아는 다양한 방식
층위 외에도, 지식에는 종류의 차원이 있습니다. 같은 층위에 있더라도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앎이 존재합니다.
① 명제적 지식 vs 절차적 지식
명제적 지식은 "~라는 것을 안다"는 형태의 지식입니다.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다", "물은 H₂O다", "나폴레옹은 1769년에 태어났다", 이것들은 모두 명제적 지식입니다. 언어로 표현되고,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절차적 지식은 "~하는 방법을 안다"는 형태의 지식입니다. 자전거 타는 법, 악기 연주하는 법, 요리하는 법, 이것들은 언어로 완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세한 지침서를 읽어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지식은 몸에 배어들고, 반복적 실천을 통해 깊어집니다.
이 두 종류의 지식은 서로 다른 뇌 영역을 사용합니다. 해마(Hippocampus)는 명제적 지식의 형성에 중요하고, 기저핵(Basal Ganglia)과 소뇌(Cerebellum)는 절차적 지식과 더 관련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과거의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피아노 연주는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② 선험적 지식 vs 후험적 지식
선험적 지식(A priori knowledge)은 경험 없이도 순수한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수학과 논리학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는 것은 직접 모든 총각을 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총각의 정의 자체에 이미 미혼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후험적 지식(A posteriori knowledge)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커피는 쓰다", "지구는 약 46억 년이 됐다", "흡연은 폐암의 위험을 높인다" — 이것들은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하고 실험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칸트는 여기에 흥미로운 세 번째 범주를 추가했습니다. 선험적 종합 지식(A priori synthetic knowledge), 경험 없이도 알 수 있지만, 단순한 개념 분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말해주는 지식. 그는 수학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했습니다. "7+5=12"는 경험 없이 알 수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개념의 분석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을 주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철학에서 논쟁 중인 주제입니다.
③ 명시적 지식 vs 암묵적 지식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은 언어, 수식, 도표 등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매뉴얼, 교과서, 논문에 담긴 지식이 여기에 속합니다.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은 언어로 완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실천과 경험 속에 체화된 지식입니다. 마이클 폴라니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숙련된 장인이 재료를 손으로 만졌을 때 그 품질을 아는 것, 경험 많은 의사가 환자의 표정에서 어떤 이상을 감지하는 것, 오래된 부부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기분을 아는 것 — 이것들이 암묵적 지식입니다.
현대 조직론에서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의 경쟁력은 종종 매뉴얼에 담긴 명시적 지식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 조직 문화에 배어든 암묵적 지식에서 나옵니다. 이 지식은 쉽게 복사하거나 도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경쟁 우위가 됩니다.
■ 지식의 수준 : 블룸의 분류학
교육학에서 지식의 수준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로 가장 유명한 것이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의 교육 목표 분류학(Bloom's Taxonomy)입니다. 1956년 처음 발표되고 2001년 개정된 이 분류학은, 인지적 능력을 여섯 수준으로 나눕니다.
1수준 : 기억(Remembering) 사실, 개념, 절차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연도는 언제인가?" 정답을 말할 수 있다면 이 수준에 해당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이것 없이는 상위 수준이 불가능합니다.
2수준 : 이해(Understanding) 단순 암기를 넘어,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고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훈민정음 창제가 왜 중요했는지 설명하라"에 답할 수 있다면 이 수준입니다.
3수준 : 적용(Applying) 알고 있는 것을 새로운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수학 공식을 이 실제 문제에 적용하라"가 이 수준의 과제입니다.
4수준 : 분석(Analyzing) 정보를 구성 요소로 분해하고, 각 요소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논문의 논리 구조를 분석하고 약점을 찾아라"가 이 수준의 과제입니다.
5수준 : 평가(Evaluating) 기준에 근거해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 두 이론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가 이 수준의 과제입니다.
6수준 : 창조(Creating) 기존의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창의적 해법을 고안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이 수준입니다.
블룸의 분류학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우리 교육이 오랫동안 주로 1~2수준에 집중해왔다면, 진정한 앎은 3~6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여러 방식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중 특히 중요한 것이 지혜를 두 종류로 나눈 것입니다.
소피아(Sophia), 즉 이론적 지혜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에 대한 앎입니다. 수학, 철학, 자연 과학에서 추구하는 지식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한 앎입니다.
프로네시스(Phronesis), 즉 실천적 지혜는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책에서 배울 수 없습니다. 삶의 경험, 다양한 상황에서의 판단, 성찰을 통해서만 쌓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프로네시스는 단순한 기술적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덕적 성품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실천적 지혜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 특히 삶에서 의미 있는 지식은 도덕적 차원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길버트 라일 (1900~1976)
영국의 철학자 라일은 명제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의 구분을 'knowing that'과 'knowing how'로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라일이 비판한 것은 '기계 속의 유령(Ghost in the Machine)'이라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입니다. 마치 우리의 몸은 기계이고, 그 안에 마음이라는 유령이 들어앉아 지식을 소유하고 몸을 조종한다는 생각. 라일은 이것이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아는 사람의 지식은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된 명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몸의 움직임 자체에, 상황에 대한 반응 방식에 체화되어 있습니다. 'knowing how'는 'knowing that'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인 종류의 앎입니다.
라일의 통찰은 오늘날 구현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연구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앎은 순수한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 몸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전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워드 가드너 (1943~)
미국의 심리학자 가드너는 '다중 지능 이론(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을 통해 앎의 다양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지능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여덟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지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공간 지능, 신체-운동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이해 지능, 자연 지능 — 이 각각은 서로 다른 종류의 앎의 능력입니다.
가드너의 이론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언어 지능과 논리-수학 지능을 '진짜 지능', '진짜 지식'으로 여기고, 나머지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음악가가 음악을 통해 아는 것, 탁월한 운동선수가 몸으로 아는 것,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 — 이것들도 고유하고 가치 있는 앎의 방식이 아닌가요?
마이클 폴라니 (1891~1976)
암묵지 이론의 창시자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주장을 평생의 탐구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가 제시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천 개의 얼굴을 구분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막막합니다. 우리가 얼굴을 인식하는 방법은 언어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전거 균형을 잡는 법, 언어의 문법적 직관, 음악적 귀 — 이 모든 것이 암묵적 지식입니다.
폴라니의 통찰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명시적으로 표현 가능한 지식만을 진짜 지식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앎들 —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상황을 읽는 능력,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 — 은 상당 부분 암묵적입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한국 교육과 지식의 층위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오랫동안 블룸 분류학의 1~2수준, 즉 기억과 이해에 집중해왔습니다. 수능이라는 단일한 시험이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찾는 능력이 최우선시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이 가져온 부작용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기억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거나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 또는 직장에 들어간 후에 진정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반면, 핀란드 같은 나라의 교육은 4~6수준, 즉 분석, 평가, 창조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정답을 찾는 것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며,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훈련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비교로 끝낼 수 없습니다. 각 사회의 교육은 그 사회가 처한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앎의 층위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배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전문가의 앎과 초보자의 앎
같은 분야에 있더라도, 전문가와 초보자의 앎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단순히 아는 양의 차이가 아닙니다.
체스에서 초보자는 말의 현재 위치에 집중합니다. 전문가는 수십 수 앞을 예측하고, 전체 판의 흐름을 읽으며,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이것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르게 구조화된 지식을 가진 것입니다.
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대생은 교과서에서 배운 증상 목록을 기억합니다. 숙련된 의사는 환자의 표정, 목소리 톤, 걸음걸이까지 통합하여 직관적 판단을 내립니다. 이 판단은 의식적인 추론이 아니라 암묵적 지식의 작동입니다.
경험이 단순히 시간의 축적이 아니라 지식의 질적 변환을 가져온다는 것, 이것이 나이 든다는 것의 인식론적 의미입니다. 단 이 질적 변환은 경험을 수동적으로 쌓는 것만으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피드백이 경험을 지식으로, 지식을 이해로, 이해를 지혜로 변환시킵니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 층위 문제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우리는 달라진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무언가가 궁금하면 즉시 검색합니다.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를 더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인지과학자들은 우려를 표명합니다. '구글 효과(Google Effect)'라고 불리는 현상에 따르면, 정보를 언제든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 정보를 기억하려는 노력을 줄입니다. 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다른 지식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줄어들면, 정보는 있지만 지식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외부 기기에 의존하는 기억을 '확장 인지(Extended Cognition)'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 우리 인지의 일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외부 기기가 제공하는 것은 주로 데이터와 정보이며, 그것을 지식과 이해와 지혜로 전환하는 작업은 여전히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 앎의 층위를 높이는 실천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데이터와 정보의 수준을 넘어서 진정한 지식과 이해, 나아가 지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설명하기(The Feynman Technique)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즐겨 사용한 방법입니다. 어떤 것을 배웠다면, 그것을 어린아이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설명해보는 것입니다.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아직 이해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방법은 암기와 이해를 구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연결하기
새로운 정보를 배울 때,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이미 아는 것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무엇이 따라오는가?" "이것은 내 경험 중 어떤 것을 설명하는가?" 이 연결의 과정이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합니다.
적용하기
배운 것을 실제로 사용해보는 것입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경험하는 것이, 지식을 이해로 심화시킵니다.
성찰하기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왜 어떤 것은 잘 되고 어떤 것은 잘 되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 경험을 지식으로 만듭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당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하나 떠올려보세요. 그 앎은 블룸의 분류학에서 어느 수준에 해당합니까? 단순히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적용하고 평가하고 창조할 수 있는 수준인가요? 그 분야에서 당신에게 명시적 지식은 있지만 암묵적 지식이 부족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그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 다음 회 예고
앎의 층위와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앎에 개인이 어떻게 접근하는가, 즉 각자의 고유한 인식 방식을 탐구합니다.
EP.13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지식에 대한 개인적 접근
같은 책을 읽고도 어떤 사람은 깊이 감동받고 어떤 사람은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같은 강의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핵심을 꿰뚫고 어떤 사람은 표면만 스쳐 지나갑니다. 지식을 얻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나 자신의 인식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다음 편에서 함께 탐구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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