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의 질문
1847년 봄, 오스트리아 빈의 산부인과 병동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빈 종합병원에는 두 개의 산부인과 병동이 있었습니다. 제1병동은 의사와 의대생들이 담당했고, 제2병동은 산파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제1병동의 산모 사망률이 제2병동보다 무려 세 배에서 다섯 배나 높았습니다. 산모들은 제1병동에 배정된다는 말을 들으면 울며 제2병동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젊은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는 이 수수께끼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의사와 의대생들은 아침마다 해부 실습을 한 직후 손을 씻지 않고 바로 산모를 진찰했습니다. 산파들은 해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에게 염화칼슘 용액으로 손을 씻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극적이었습니다. 사망률이 열 배 이상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료 의사들이 그의 발견을 거부한 것입니다. 심지어 조롱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의 '상식'이 그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신사인 의사의 손이 더럽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교육받은 전문가인데, 그 손이 환자를 죽인다는 주장은 상식에 반하는 모욕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결국 제멜바이스는 동료들의 냉대와 조롱 속에서 정신이 무너졌고, 47세에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루이 파스퇴르와 조지프 리스터가 세균 이론을 확립하면서 제멜바이스의 발견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오늘날 손 씻기는 감염 예방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오류가 되고, 어제의 이단이 오늘의 상식이 됩니다.
그렇다면 상식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상식이 틀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알아챌 수 있을까요?
■ 생각의 실마리 : 상식이란 무엇인가
'상식(Common Sense)'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매우 자주 쓰이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상식이란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전문 교육이나 훈련 없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기본적인 믿음과 판단의 체계."
상식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상식은 공유됩니다. 특정 공동체나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둘째, 상식은 자명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게 맞아요?"라고 물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 자체가 상식의 특징입니다.
셋째, 상식은 암묵적입니다. 명시적으로 가르쳐지기보다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됩니다. 우리는 언제 상식을 배웠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넷째, 상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의 상식이냐에 따라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 상식의 역사적 변천 : 어제의 상식, 오늘의 오류
역사를 돌아보면, '상식'이라고 불렸던 것들이 얼마나 많이 틀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옛날 사람들이 무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최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이 시대의 상식이었습니다.
자연에 관한 상식의 변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상식이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태양. 이것이 지구가 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그들은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한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것도 상식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와 일상적 경험이 이것을 뒷받침했습니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사실 여부는 논란이 있지만)가 상징적인 것은, 그것이 이 '상식'을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의학적 상식의 변천
피를 빼는 것이 병을 고친다는 것은 2,000년 이상 의학의 상식이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19세기까지, 발열이나 감염에 대한 표준 치료는 정맥을 절개해 피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목감기로 사망한 것도, 당시 의사들이 대량 방혈 치료를 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치료'가 오히려 사망을 앞당긴 것입니다.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물질이라는 것도 19세기까지의 상식이었습니다. '원자(Atom)'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어로 '쪼갤 수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20세기에 원자핵이 발견되고, 그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으며, 더 나아가 쿼크라는 더 작은 입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상식은 무너졌습니다.
사회적 상식의 변천
사회적 상식의 변천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불과 100~200년 전까지만 해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상식'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열등하므로 투표권이나 고등 교육의 권리를 가질 필요가 없다. 특정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므로 지배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성애는 정신 질환이다.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 방법이다.
이것들이 그 시대에는 '상식'이었습니다. 교육받은 지식인들도, 선량한 사람들도 이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들이 명백히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문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서, 100년 후의 사람들이 똑같이 충격을 받을 만한 '상식'이 있지는 않을까?

■ 상식의 기능 :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
상식이 틀리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상식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은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① 인지적 효율성
우리의 뇌는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결정을 내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입을지, 어떤 경로로 출근할지,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하루가 부족합니다. 상식은 자주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자동적 판단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인지적 에너지를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② 사회적 조율
상식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암묵적 규칙의 토대입니다. 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 줄을 서는 것, 대화 중에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는 것, 이런 행동 규범들이 상식으로 공유될 때, 사회는 매끄럽게 작동합니다. 모든 것을 명시적 계약으로 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공유된 상식 덕분입니다.
③ 판단의 기준점
전혀 모르는 영역에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상식은 첫 번째 기준점이 됩니다. 물론 이 기준점은 전문 지식에 의해 수정되어야 하지만, 완전한 무지의 상태보다는 낫습니다.
■ 상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상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권위와 반복
어떤 주장이 권위 있는 존재 (전문가, 종교 지도자, 국가, 미디어) 에 의해 반복적으로 말해질 때, 그것은 점차 상식이 됩니다. 특히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이 과정은 더 빠르게 일어납니다.
집단적 경험의 축적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경험이 상식으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불에 손을 대면 뜨겁다"는 상식은 수백만 명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이런 종류의 상식은 매우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적 경험도 편향을 가집니다. 어떤 집단이 특정 경험을 하지 못했거나, 특정 경험이 그 집단의 상식 형성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그 상식은 불완전합니다.
미디어와 교육
현대 사회에서 상식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디어와 교육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 이것들이 우리의 상식을 형성합니다.
이것이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상식이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그 상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첫걸음입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토머스 리드 (1710~1796)
스코틀랜드 철학자 토머스 리드는 '상식 철학(Common Sense Philosophy)'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그는 데카르트와 흄의 회의주의에 맞서, 상식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자 기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리드에게 상식은 단순한 무비판적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지 능력과 직관으로, 이것 없이는 어떤 추론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 "내가 과거에 경험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타인도 나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다" — 이런 상식적 믿음들은 증명할 수 없지만,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리드의 통찰은 중요합니다. 모든 상식을 의심해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상식적 믿음을 출발점으로 삼아야만 지식 탐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 (1891~1937)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그람시는 상식을 '헤게모니(Hegemony)'의 핵심 도구로 분석했습니다. 그에게 상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피지배 계급의 상식으로 내면화될 때, 지배는 강제 없이 자발적 동의를 통해 유지됩니다.
예를 들어, "부자는 노력했기 때문에 부유한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는 믿음이 상식이 될 때,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그람시에게 비판적 지성인의 역할은 바로 이 상식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파시스트 감옥에서 『옥중수고』를 쓰면서 이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상식의 해체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889~1951)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상식의 토대를 독특한 방식으로 분석했습니다. 그에게 상식적 믿음들, 예를 들어 "나는 두 손을 가지고 있다"거나 "지구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같은 것들은 증명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증명이 이루어지는 **'토대'**입니다. 마치 강의 바닥을 이루는 단단한 암반처럼, 상식적 믿음들은 그 위에서 다른 지식 탐구가 이루어지는 기반입니다. 이 기반 자체를 끊임없이 의심하면 어떤 탐구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동시에 이 토대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강의 흐름에 따라 강바닥의 모양도 바뀐다." 오늘의 확실한 토대가 내일은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1884~1962)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바슐라르는 '인식론적 장애(Épistémological Obstacle)'라는 개념을 통해 상식이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에게 과학의 발전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존의 상식과 직관을 극복하는 단절의 과정입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상식은 때로 과학적 진리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열은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 흐른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그 이면의 열역학적 원리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물질이 대부분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단단한 책상을 두드리는 우리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바슐라르의 통찰은 교육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진정한 과학 교육은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식의 장애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상식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지식론의 시각으로 살펴봅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성공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강력한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식은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이냐에 대한 특정한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이 가정 자체를 검토해본 적이 있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이것은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둔 상식입니다. 어느 정도의 경험과 연륜에 대한 존중은 가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나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자동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강해야 하고, 여자는 부드러워야 한다." 이 상식은 얼마나 생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고, 얼마나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까요? 이것이 상식이 된 역사적 과정은 무엇이며, 누구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일까요?
"열심히 일하면 보상을 받는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상식입니다. 하지만 구조적 불평등이 개인의 노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 상식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동기를 부여하는 긍정적 믿음인가, 아니면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데올로기인가?
이 질문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상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상식은 의문을 품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의료 현장의 상식
의학 분야에서는 상식이 얼마나 빨리 뒤집힐 수 있는지를 특히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위궤양의 원인은 스트레스와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것이 의학적 상식이었습니다. 1984년 배리 마셜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세균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을 때, 의학계는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위는 산성이 너무 강해서 세균이 살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셜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세균을 마셨고, 위궤양이 생겼다가 항생제로 치료했습니다. 그는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위궤양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입니다. 하지만 그 상식이 확립되기까지 기존 상식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식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은 새로운 상식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팔로워가 많으면 영향력이 있다", "AI가 말하면 믿을 만하다" — 이것들이 빠르게 상식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상식들도 비판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정보가 인터넷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참은 아닙니다. 팔로워가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주장이 더 옳은 것은 아닙니다. AI가 자신있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 새로운 상식들은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비판적 검토 없이 받아들여지면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 상식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방법
상식을 의심하라는 것이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 없이는 일상적 삶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상식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도 위험합니다.
현명한 태도는 '비판적 수용'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도움이 됩니다.
이 상식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이 오랜 경험의 축적인지, 권위에 의한 반복인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이 상식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어떤 상식이 특정 집단에게 체계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한다면, 그것은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상식으로 포장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면 어떤 반응이 오는가? 합리적 토론과 반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가, 아니면 "그건 상식 아닌가요?"라는 말로 토론 자체가 차단되는가?
이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있는가? 어떤 상식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상식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오늘 하루 동안 당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그 중 하나를 골라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은 왜 당연한가? 이것이 항상,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나에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 다음 회 예고
상식의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이제 1부의 두 번째 장으로 들어갑니다. 지식 자체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들 시간입니다.
EP.11 지식이란 무엇인가: 2,500년의 질문
"나는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주장하는 것일까요? 플라톤에서 현대 인식론까지, 인류가 '지식'을 정의하기 위해 기울인 2,500년의 노력을 함께 따라가봅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이유를 탐구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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