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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거장의 초상

칼라스, 제7편 | 테발디와의 라이벌 : 두 개의 태양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2.

칼라스, 목소리로 산 여자 : 일곱 번째 이야기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1950년대 오페라 세계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었다.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 두 목소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 다른 빛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그 두 빛이 만드는 긴장이 오페라 역사상 가장 뜨거운 라이벌 관계를 만들었다.


테발디라는 사람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
1922년 이탈리아 페사로(Pesaro) 출신. 칼라스보다 한 살 위였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어린 시절, 음악이 그녀의 세계였다. 목소리를 발견한 것은 십대 시절이었다. 파르마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전쟁이 끝난 직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테발디의 목소리는 칼라스와 달랐다. 근본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테발디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풍요로웠다. 꿀처럼 흐르는 선율, 균질하고 안정된 음색, 어느 음역에서도 흔들림 없는 안정감. 듣는 순간 즉각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 기교보다 자연스러움, 강렬함보다 서정성이 테발디의 것이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테발디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말이 테발디의 커리어를 열었다. 토스카니니의 한 마디가 이탈리아 음악계 전체에 전달되었다. 테발디의 이름이 하루아침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 테발디가, 칼라스와 같은 시대, 같은 무대, 같은 레퍼토리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 레나타 테발디

두 목소리의 차이

두 소프라노의 목소리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 라이벌 관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테발디의 목소리는 균질함이 핵심이었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같은 색깔, 같은 따뜻함이 유지되었다. 그 균질함이 테발디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었다. 처음 듣는 사람도 아름답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다양성이 핵심이었다. 음역에 따라 색깔이 달랐고, 인물에 따라 목소리의 성격이 바뀌었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양성 안에 표현의 깊이가 있었다.
두 목소리를 나란히 들으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테발디의 목소리는 아름다운 날의 햇살 같다. 따뜻하고, 밝고, 균일하게 퍼진다. 그 빛 아래 있으면 행복하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폭풍 전야의 하늘 같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고,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 목소리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름이 팬들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했다.


라 스칼라 대 메트로폴리탄

두 소프라노의 라이벌 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은 무대에서였다.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두 소프라노가 같은 시즌에 공연하는 일이 생겼다. 같은 극장, 다른 공연. 청중들은 선택해야 했다. 어느 소프라노의 공연 티켓을 살 것인가.
그것이 라이벌 관계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두 소프라노 모두 라 스칼라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종의 영역 분할이 일어났다.
칼라스는 라 스칼라를 중심으로 유럽을 지배했다.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칼라스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비스콘티, 세라핀, 그리고 라 스칼라의 청중들이 칼라스 편이었다.
테발디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더 강한 위치를 가졌다. 미국 청중들은 테발디의 즉각적인 아름다움에 더 빠르게 반응했다. 테발디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목소리가 메트의 거대한 홀에서 완벽하게 울렸다.
두 소프라노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각자의 왕국을 가졌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팬들의 전쟁

두 소프라노의 라이벌 관계가 가장 격렬하게 표현된 것은 정작 소프라노들 자신이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였다.
이탈리아에서 칼라스 팬과 테발디 팬은 두 개의 진영을 이루었다. 같은 극장에서 두 소프라노가 번갈아 공연하는 날이면, 극장 로비에서 팬들이 설전을 벌였다. 어느 소프라노가 더 위대한가. 어느 목소리가 진정한 오페라의 본질에 가까운가.
그 설전이 언론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잡지들이 두 소프라노를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다. 편집자들이 그 편지들을 지면에 실었다. 논쟁이 논쟁을 낳았다.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두 소프라노가 같은 시즌에 공연할 때, 청중들은 어느 공연에 가느냐로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표명하는 것처럼 여겼다. 칼라스를 좋아하는 것과 테발디를 좋아하는 것은 취향의 선언이었다.
칼라스 팬들은 말했다.
"테발디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음악이 없다. 표현이 없다. 아름다운 소리기계다."
테발디 팬들은 말했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불균질하고 거칠다. 왜 불완전한 것을 위대하다고 하는가. 테발디야말로 완벽한 오페라 목소리다."
두 진영은 타협하지 않았다.


샴페인과 코카콜라

칼라스가 테발디에 대해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 발언으로 기록된 그 말.
기자가 물었다.
"칼라스 씨, 당신 자신과 테발디를 비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칼라스가 답했다.
"테발디와 나를 비교하는 것은 샴페인과 코카콜라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나는 샴페인입니다."
이 말이 전 세계 신문에 실렸다. 오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발언을 알게 되었다. 칼라스는 오만하고 독설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칼라스가 이 말을 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칼라스는 샴페인과 코카콜라를 우열 관계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음료라는 것이었다. 비교 자체가 의미 없는 두 가지 다른 것.
"나는 테발디의 목소리를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소프라노라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을 내가 테발디를 코카콜라라고 불렀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그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 해석이 두 소프라노의 라이벌 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기자들 앞에 선 마리아 칼라스

테발디의 반격

테발디는 칼라스의 샴페인 발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코카콜라가 아니다. 나는 오렌지주스다. 적어도 나는 진짜 과일로 만들어졌다."
이 말도 신문에 실렸다. 오페라를 몰라도 이 두 소프라노의 설전은 알 수 있었다.
테발디는 평소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음악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인터뷰에서 논쟁적인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칼라스의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았다.
테발디는 칼라스와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칼라스와 나는 다른 소프라노다.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그러나 칼라스가 공개적으로 나를 언급하는 방식은 동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제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절제된 말 안에 감정이 있었다.
테발디는 칼라스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한 직업적 라이벌 관계를 넘은 것이었다는 것도.


무대 위에서의 충돌

두 소프라노가 직접적으로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1951년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의 오페라 시즌에서 두 소프라노가 같은 극장에 초청받았다. 테발디가 먼저 공연하고, 이어서 칼라스가 공연하는 일정이었다.
테발디의 공연이 끝났다.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브라질 오페라 팬들이 테발디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다음은 칼라스의 차례였다.
칼라스가 무대에 서자 청중의 일부에서 야유가 나왔다. 테발디 팬들의 조직적인 방해였다. 칼라스가 노래하는 동안 일부 청중이 소음을 내고, 야유를 보냈다.
칼라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 소음과 야유 속에서 칼라스는 계속 노래했다. 그리고 노래가 진행될수록 야유는 줄어들었다. 칼라스의 목소리가 그 소음을 이겼다. 공연이 끝났을 때 박수가 나왔다.
칼라스는 공연 후 이 사건에 대해 말했다.
"무대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노래를 멈추는 것은 내가 결정한다."
그 말이 칼라스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자존심이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어왔는지도.


두 소프라노를 갈라놓은 것들

두 소프라노의 라이벌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었다.
성격.
칼라스는 솔직하고 직접적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완곡함이 없었다. 그것이 독설로 들리기도 했고, 용기 있는 솔직함으로 들리기도 했다.
테발디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언론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했다. 그 절제가 우아함으로 보이기도 했고,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외모.
칼라스는 체중 감량 이후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화려한 드레스, 세련된 스타일. 무대 밖에서도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테발디는 외모에 덜 신경을 썼다. 음악이 전부라는 태도. 그것이 순수함으로 보이기도 했고, 무관심함으로 보이기도 했다.
사생활.
칼라스의 사생활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메네기니와의 결혼, 오나시스와의 관계. 그것들이 칼라스의 이름을 오페라 팬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게 했다.
테발디는 조용한 개인 생활을 유지했다. 음악 이외의 영역에서 화제가 되는 일이 드물었다.
이 모든 차이들이 두 소프라노를 단순한 음악적 라이벌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적 대결 구도로 만들었다. 예술 대 상업, 진실 대 아름다움, 극적 표현 대 순수한 음악성. 두 소프라노는 자신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대결의 상징이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가 동료 공연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의 라 스칼라의 토스카

같은 역할, 두 개의 세계

두 소프라노가 같은 역할을 어떻게 다르게 소화했는지를 들어보면 이 라이벌 관계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비올레타 역.
비올레타는 파리의 사교계 여인으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폐결핵으로 죽어간다.
칼라스의 비올레타에서 청중이 먼저 느끼는 것은 인물이다. 이 여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사랑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병이 깊어가면서 그녀의 내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기술이 아니라 인물이 먼저 온다.
테발디의 비올레타에서 청중이 먼저 느끼는 것은 음악이다. 벨리니의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운 음악이 테발디의 목소리를 통해 어떻게 흘러나오는지. 인물 이전에 음악이 먼저 온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베르디는 비올레타라는 인물을 통해 음악을 쓰고, 동시에 음악을 통해 비올레타를 표현했다. 칼라스는 인물에서 출발해 음악에 도달했고, 테발디는 음악에서 출발해 인물에 도달했다. 두 방향이 모두 베르디가 원한 것의 일부에 닿아 있었다.
그 두 가지가 동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이, 오히려 청중에게 오페라가 얼마나 넓은 세계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칼라스가 라 스칼라를 떠난 날

1958년, 칼라스와 라 스칼라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로마 오페라에서의 공연 도중, 칼라스가 1막 후 무대를 떠나버린 사건이었다. 목소리 컨디션이 극도로 나빴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자리에는 이탈리아 대통령 지오반니 그론키(Giovanni Gronchi)도 참석해 있었다.
이탈리아 언론이 폭발했다. 칼라스를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무책임하다, 오만하다, 관객을 무시한다. 칼라스의 이미지가 이탈리아에서 크게 손상되었다.
그 사건 이후 칼라스와 라 스칼라의 관계도 끝으로 향했다.
기린겔리 예술 감독과의 갈등이 폭발했다. 계약 조건 문제, 공연 일정 문제, 칼라스가 원하는 역할과 기린겔리가 원하는 역할의 차이. 그 모든 것이 쌓여 결국 두 사람은 결별했다.
1958년 이후 칼라스는 라 스칼라 무대에 서지 않았다.
칼라스 없는 라 스칼라.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 자리를 채우는 데 테발디가 더 많이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칼라스의 시대가 가고 테발디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그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칼라스의 무대 활동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칼라스가 남긴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리아 칼라스와 루키노 비스콘티

 


두 소프라노가 서로를 보는 방식

두 소프라노는 서로에 대해 무엇을 생각했는가.
공개적인 발언들과 달리, 두 소프라노는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에 대해 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칼라스는 사적인 자리에서 테발디의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테발디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있다."
부러움과 자존심이 공존하는 말이었다. 라이벌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테발디는 칼라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칼라스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 중 하나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칼라스처럼 노래하고 싶지 않다. 나는 테발디로 노래하고 싶다."
자신의 방향을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라이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두 소프라노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존중하는 방식이 공개적 발언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화해, 그리고 그 이후

칼라스와 테발디의 라이벌 관계가 영원한 적대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하다.
1968년, 두 소프라노는 뉴욕에서 한 파티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서로를 의식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다가갔다.
테발디였다.
테발디가 칼라스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소프라노는 수십 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만남 이후 두 소프라노는 공개적으로 서로를 적대적으로 언급하는 일이 줄었다. 완전한 화해인지, 아니면 단순한 휴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여인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수십 년의 라이벌 관계 끝에 이루어졌다는 것.


두 개의 태양이 남긴 것

칼라스와 테발디의 라이벌 관계가 오페라 세계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첫째, 다양성의 가능성. 오페라 소프라노가 하나의 유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두 소프라노가 보여주었다. 칼라스의 방식과 테발디의 방식 모두 위대할 수 있다는 것.
둘째, 논쟁의 가치. 두 소프라노를 둘러싼 팬들의 논쟁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오페라가 단순히 조용히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논쟁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셋째, 기준의 상승. 두 소프라노가 경쟁하면서 각자 더 높은 수준을 향했다. 라이벌 관계가 예술가를 성장시킨다는 것의 가장 좋은 예.
칼라스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77년이었다. 테발디는 20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두 소프라노가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는 그 라이벌 관계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두 개의 태양이 같은 하늘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두 빛이 서로를 경쟁하면서, 오페라라는 하늘을 더 밝게 만들었다는 것.


칼라스와 테발디, 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오늘은 두 소프라노가 같은 곡을 어떻게 다르게 노래하는지를 직접 들어보는 것을 권한다.
베르디의 「오텔로」 4막, 데스데모나의 아리아 '버드나무 노래(Canzone del salce)'와 '아베 마리아(Ave Maria)'.
데스데모나는 억울하게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여인이다. 그 죽음을 앞에 두고 노래한다. 이 아리아는 음악적으로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극적으로 가슴 아프다.
두 소프라노가 이 역할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가 두 목소리의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들려준다.


① 마리아 칼라스 : 오텔로 데스데모나

 
칼라스의 데스데모나에서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목소리 안에 있다. 그 감정들이 선율 속에 스며들어 있어서, 청중은 데스데모나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음악으로 듣는다.


② 레나타 테발디 : 오텔로 데스데모나

 
테발디의 데스데모나에서는 음악의 아름다움이 먼저 온다. 그 아름다운 선율 안에서 데스데모나의 슬픔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아름답게 슬프다.


두 녹음을 나란히 들어보시길. 같은 악보에서 이렇게 다른 두 세계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두 세계가 모두 베르디가 원한 것의 일부에 닿아 있다는 것. 어느 것이 더 좋은가를 판단하기보다, 두 소프라노가 각자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두 개의 태양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 다음 편 예고
제8편 | 체중 감량과 목소리의 변화 : 아름다움의 대가
1953년, 칼라스는 결심했다. 무대 위의 비올레타가 실제로 아파 보여야 한다고. 노르마가 여신처럼 보여야 한다고. 그 결심이 30킬로그램의 감량을 가져왔다. 세상은 새로운 칼라스에 열광했다. 그러나 음악계는 다른 것을 들었다. 아름다움을 얻은 자리에서 목소리의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다음 편에서는 그 변신의 진실과, 칼라스가 치른 대가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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