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 목소리로 산 여자 : 세 번째 이야기
전쟁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전쟁 속에서도 노래했다. 배가 고파도 노래했고, 도시에 군인들이 가득해도 노래했다. 그 노래가 생존이었는지, 저항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의 본능이었는지. 마리아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1940년, 아테네에 전쟁이 왔다
1940년 10월 28일 새벽 3시.
이탈리아 대사가 그리스 총리 이오안니스 메탁사스에게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이탈리아 군대가 그리스에 진입할 수 있도록 허가하라는 것이었다. 메탁사스의 대답은 한 단어였다.
"오히(Óchi)." 아니요.
그날이 그리스에서는 지금도 '오히의 날'로 기념된다. 침략에 맞서 거부한 날.
그러나 1941년 4월, 나치 독일이 개입했다. 독일군의 힘 앞에 그리스군은 버티지 못했다. 1941년 4월 27일, 독일군이 아테네에 입성했다. 아크로폴리스에 나치 깃발이 걸렸다. 그리스는 나치 독일, 이탈리아, 불가리아의 분할 점령 아래 놓였다.
열여덟 살의 마리아는 그 아테네에 있었다.

점령된 도시의 풍경
독일군이 들어온 아테네는 달라졌다.
거리에 군인들이 있었다. 그리스어가 아닌 언어들이 들렸다.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시장에서 식량이 사라져갔다. 독일 점령군이 그리스의 식량과 자원을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아테네에 기근이 왔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 그리스에서 기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를 10만 명에서 30만 명 사이로 추산한다. 아테네 거리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배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무엇이든 했다.
마리아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반겔리아는 생존에 능한 여인이었다.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살아남은 사람답게, 전쟁의 아테네에서도 그녀는 방법을 찾았다. 점령군 장교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그것이 때로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의 목소리가 있었다.
에반겔리아는 딸의 목소리가 이 상황에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리아가 노래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연결하려 했다.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었다.
마리아는 나중에 이 시기를 이야기할 때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나는 먹기 위해 노래했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살기 위해 노래했다. 그것도 사실이다. 두 가지가 같은 시기에 같은 무대에서 일어났다."
아테네 왕립 오페라의 무대
1940년대 초, 마리아는 아테네 왕립 오페라(Athens Royal Opera)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아테네 왕립 오페라는 그리스 최고의 오페라 단체였다. 전쟁 중에도 공연을 계속했다. 도시가 점령당한 상황에서 오페라가 계속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점령군들도 문화 행사를 필요로 했다. 전쟁 중 오페라는 그런 역할을 했다.
마리아는 그 무대의 작은 역할들을 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역이었다. 합창단 일원으로 무대에 섰고, 작은 배역을 받았다. 이달고의 레슨실에서 훈련한 것들을 실제 무대에서 적용하는 기회였다. 연습실과 실제 무대는 달랐다. 오케스트라가 있었고, 다른 가수들이 있었고, 무대 장치가 있었다. 그 전체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했다.
마리아는 빠르게 배웠다.
1941년, 마리아는 아테네 왕립 오페라에서 처음으로 주요 역할을 맡았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에서 산투차(Santuzza) 역이었다. 그 오페라에서 산투차는 버림받은 여인이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그 분노와 슬픔 속에서 복수를 선택하는 인물. 극적 강렬함이 요구되는 역할이었다.
열여덟 살이었다.
열여덟 살 소녀가 배신당한 여인의 분노와 슬픔을 노래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어렵다. 아직 삶의 경험이 부족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경험이 있었다. 다른 종류의 경험이.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 아버지와의 이별,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 그것들이 삶의 경험이었다. 그 경험이 산투차라는 인물과 만났을 때, 기술을 넘어선 무언가가 나왔다.
공연이 끝난 뒤 아테네 왕립 오페라의 관계자들은 놀랐다. 이 어린 소프라노가 누구인가.

토스카, 그리고 독일 장교들
1942년, 마리아는 아테네 왕립 오페라에서 또 다른 주요 배역을 맡았다.
푸치니의 「토스카(Tosca)」.
토스카는 오페라 가수인 여주인공으로, 이 오페라에서 사랑, 자존심, 배신, 폭력이 교차한다. 악당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연인을 인질로 잡고 토스카에게 굴욕을 강요한다. 토스카는 결국 스카르피아를 죽인다.
마리아가 아테네에서 처음 토스카를 불렀을 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객석에 독일 점령군 장교들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아테네 오페라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점령군들이 공연을 보러 왔다.
마리아는 그들 앞에서 노래했다.
토스카가 폭군 스카르피아를 죽이는 장면. 억압자에게 저항하는 여인의 이야기. 그것을 독일 점령군 앞에서 노래하는 것의 아이러니를 마리아는 알았을 것이다.
그것이 저항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 칼라스는 그 시절의 토스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대 위에서 나는 토스카였다. 그리스의 마리아도, 전쟁의 공포도,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토스카만 남았다. 그것이 오페라가 내게 준 것이었다. 무엇이든 잊게 해주는 것."
점령군과의 불편한 관계
마리아 칼라스의 전쟁 시절에서 가장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마리아는 나치 점령 기간 동안 공연을 계속했다. 그 공연들 중 일부는 점령군 장교들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에반겔리아는 딸의 커리어를 위해 점령군 고위 장교들과의 접촉을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전후에 마리아를 오랫동안 따라다닌 비판 중 하나였다.
그리스의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마리아가 점령군에 협력했다고 비난했다. 전쟁 중 공연을 한 것이 점령의 정당화에 기여했다고.
마리아는 그 비판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살기 위해 노래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인들을 위해서도 노래했다. 객석에는 그리스인들도 있었다. 전쟁 중에 오페라를 보러 온 그리스 사람들에게, 그 두 시간만큼은 전쟁을 잊게 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이 문제는 카라얀의 나치 입당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판단을 할 자격이 그 상황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는가.
답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그 상황 안에 있었던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를 이해하려 하는 것이 더 정직한 접근일 것이다.
굶주림과 음악 사이
전쟁 중 아테네의 기근은 마리아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식량이 부족했다. 마리아와 에반겔리아, 야키니 세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매일의 문제였다. 에반겔리아는 이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았다. 마리아의 공연으로 얻는 보수, 점령군 장교들과의 사교적 관계를 통해 얻는 식량. 그것들이 세 사람을 살게 했다.
마리아는 나중에 이 시기를 이야기할 때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나는 배가 고팠다. 항상. 그러나 노래 연습은 멈추지 않았다. 배고픔보다 음악이 더 필요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었다."
굶주린 상태에서도 연습을 계속했다. 이달고의 레슨은 계속되었다. 아테네 왕립 오페라의 공연도 계속되었다. 몸이 지쳐도, 배가 고파도,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약함이었는지 강함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절의 경험이 마리아의 목소리 안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굶주림의 기억, 전쟁의 공포,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 그것들이 마리아가 이후 무대에서 노래할 때 표현의 원천이 되었다.

어머니와의 균열
전쟁 시절 아테네에서 마리아와 에반겔리아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에반겔리아는 마리아의 커리어를 관리하고 싶었다. 오디션 자리를 잡고, 인맥을 관리하고, 마리아가 어디서 누구와 공연하는지를 결정하려 했다. 마리아는 그것을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했다.
마리아는 열아홉, 스무 살이 되면서 자신의 음악적 판단을 갖기 시작했다. 이달고에게 배우면서 오페라를 이해하는 눈이 생겼고, 실제 공연을 통해 경험이 쌓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판단을 신뢰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재능은 인정했지만, 마리아의 결정권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어느 날 리허설에서 있었던 일이 전해진다. 에반겔리아가 리허설장에 나타나 마리아의 노래 방식에 대해 지시하려 했다.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여기는 어머니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에반겔리아는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선을 그었다. 그 균열이 전쟁이 끝나도 치유되지 않았고, 결국 평생의 상처가 되었다.
이름을 바꾸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마리아는 결심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세실리아 소피아 안나 칼로게로풀루스. 그것이 마리아의 법적 이름이었다. 긴 그리스식 성을 가진 이름. 이탈리아어로 발음하기 어렵고, 국제적인 무대에서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
마리아는 아버지의 성 칼로게로풀루스를 줄여 칼라스(Callas)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름도 마리아(Maria)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었다. 하나의 선언이었다.
뉴욕의 이민자 딸 세실리아 칼로게로풀루스가 아닌, 오페라의 세계로 나아가는 마리아 칼라스.
아버지의 성을 유지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뉴욕에 남아있는 아버지, 어머니와 헤어져 혼자인 아버지. 마리아는 그 이름 안에 아버지와의 연결을 남겨두었다.
세실리아 칼로게로풀루스는 마리아 칼라스가 되었다.
전쟁이 남긴 것
아테네 시절이 마리아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가.
기술적으로는 이달고에게 배운 벨칸토와 오페라 해석의 기초. 경험으로는 아테네 왕립 오페라에서의 수십 편의 공연들. 그리고 삶으로는 전쟁과 굶주림과 점령과 생존.
그 삶이 마리아의 목소리 안으로 들어갔다.
칼라스의 노래가 다른 소프라노들과 달랐던 이유를 설명할 때, 많은 음악 비평가들이 감정의 진실성이라는 단어를 쓴다. 칼라스의 목소리 안에 있는 것이 연기된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된 감정 같다는 것이었다.
그 경험된 감정이 어디서 왔는가.
아테네의 전쟁 시절에서 온 것이었다. 굶주림의 기억에서.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점령된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본능에서.
비올레타가 사랑을 잃는 슬픔, 산투차가 배신당하는 분노, 토스카가 압제에 저항하는 결기. 그것들은 마리아에게 낯선 감정이 아니었다. 다른 형태로, 다른 이름으로 이미 마리아 안에 있었다.
전쟁이 마리아를 파괴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리아를 만들었다. 그것이 비극인지 아름다움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마리아 칼라스라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감상곡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어머니도 모르세요(Voi lo sapete, o mamma)' — 마리아 칼라스,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1953년 녹음)
마리아가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주요 배역을 맡았던 오페라가 바로 이것이었다.
산투차의 아리아 '어머니도 모르세요'는 버림받은 여인의 고백이다.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지만 배신당한 것, 그래도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 감정의 복잡함을 산투차는 어머니에게 고백한다.
칼라스가 이 아리아를 부를 때, 목소리 안에 있는 것이 기교 이상이다. 십대 시절부터 알아온 배신과 상실의 감각,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받지 못하는 현실의 간격. 그것이 산투차의 고백과 만나는 것이다.
이 아리아를 들으면서 생각해보시길. 아테네의 전쟁 속에서 처음으로 이 역할을 노래했던 열여덟 살 마리아를.
📌 다음 편 예고
제4편 | 메네기니와의 결혼 : 후원자인가, 사랑인가
1947년, 마리아는 베로나에 있었다. 악보 가방 하나를 들고, 빈주머니로. 그곳에서 한 남자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스물여덟 살 차이. 그리고 열여섯 해의 결혼.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필요였는지, 아니면 그 두 가지가 구분되지 않는 것이었는지. 다음 편에서는 마리아의 첫 번째 결혼과 그 결혼이 칼라스를 세계로 내보낸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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