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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거장의 초상

칼라스, 제2편 |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 : 목소리를 발견하다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4. 28.

칼라스, 목소리로 산 여자 : 두 번째 이야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스승이 있다. 기술을 가르치는 스승과, 이미 있는 것을 꺼내주는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는 후자였다.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는 그런 스승을 만날 자격이 있는 제자였다.


이달고라는 사람

엘비라 데 이달고(Elvira de Hidalgo).
1891년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발라게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스무 살 무렵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10여 년간 밀라노 라 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코번트 가든을 누빈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다.
이달고의 목소리는 가볍고 날쌘 것으로 유명했다. 로시나, 루치아, 조르다. 기교가 요구되는 역할들을 그녀는 우아하게 소화했다. 그러나 성악가로서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30년대 중반부터 이달고는 무대에서 내려오기 시작했고, 교육자로 방향을 틀었다.
아테네 왕립 음악원에서 성악 교수직을 맡은 것은 그 연장선이었다.
이달고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대에서 배운 것들을 전달했다. 단순히 발성 기술이 아니었다. 오페라 인물을 이해하는 법, 이탈리아어의 음악적 특성, 무대 위에서 청중과 소통하는 방식. 이달고의 레슨은 성악 수업이면서 동시에 오페라 전체에 대한 교육이었다.
그러나 이달고는 선택적이었다. 재능에 따라, 가능성에 따라, 그 학생에게 필요한 것에 따라 다르게 접근했다.
마리아 칼라스를 처음 만났을 때, 이달고는 달랐다.
"그 아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꺼내는 것."

엘비라 데 이달고

 
 

첫번째 레슨

마리아가 이달고의 레슨실에 처음 들어선 날.
아테네 왕립 음악원의 복도는 항상 피아노 소리와 성악 연습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소리들 사이를 지나 이달고의 레슨실 문을 열었을 때, 마리아는 잠시 멈췄다.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피아노 한 대, 악보들이 쌓인 선반, 창문 하나. 이달고는 피아노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들어오는 학생을 바라보는 이달고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았다.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정확했다.
마리아는 그 시선 앞에 섰다.
이달고가 말했다. "불러보아라."
곡을 정해주지 않았다. 반주도 없이. 그냥 노래하라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당황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노래했다.
노래가 끝났다. 이달고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앉아라."
그것이 전부였다. 그날 이달고의 레슨이 시작되었다.


이달고가 들은 것

마리아의 목소리에서 이달고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마리아의 목소리는 기술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있었다. 음역에 따라 소리의 질이 달랐다. 낮은 음은 어둡고 풍부했지만, 높은 음으로 올라갈수록 소리의 성격이 달라졌다. 균질하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거칠었다.
그것만 보면 문제가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달고는 그 너머를 들었다.
"기술적 문제는 고칠 수 있다. 내가 들은 것은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 안에는 음악이 아니라 인간이 있었다. 그것은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달고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음악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모든 소리에는 기술적 층위와 표현적 층위가 있다. 기술적 층위는 음정의 정확함, 음색의 균질함, 발성의 안정성이다. 표현적 층위는 그 소리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성악가들은 많다. 그러나 기술과 표현이 동시에 높은 수준에 있는 성악가는 드물다. 그리고 가장 드문 것은, 기술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표현은 이미 완성에 가까운 성악가다. 마리아가 그런 경우였다.
이달고는 그것을 알아봤다.


하루 여덟 시간

이달고의 레슨이 시작되면서 마리아의 삶은 달라졌다.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혹독한 훈련을 요구했다. 하루 최소 여덟 시간의 연습. 발성 연습, 음계 연습, 아리아 연습, 이탈리아어 공부. 그리고 이달고가 지정해주는 음반을 듣는 것.
음반 듣는 것이 연습의 일부였다는 것이 특이했다.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과거와 당대 최고 소프라노들의 음반을 가져다주었다. 아멜리타 갈리-쿠르치, 에르네스티나 슈만-하인크, 로사 폰셀. 그 목소리들을 들으면서 이달고는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 갈리-쿠르치가 무엇을 하는지 들어라. 음정이 아니라 색깔을 들어라. 저 음이 어떤 감정의 색깔인지."
그것은 단순히 모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음표가 아니라 의미를 듣는 것. 소리가 아니라 언어를 듣는 것.
마리아는 그 방식을 빠르게 흡수했다.
훗날 칼라스는 이달고의 교육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달고 선생님은 내게 음악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그 차이가 모든 것이었다."
 

Gaspare Spontini의 오페라 "La Vestale"에서 줄리아 역을 맡은 마리아 칼라스, 1954

벨칸토의 세계

이달고가 마리아에게 가르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다.
벨칸토(Bel canto).
벨칸토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다. 18세기와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핵심적인 노래 철학이자 기법이다.
벨칸토의 핵심은 성량보다 선율이었다. 크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부르는 것. 강하게 내뱉는 것이 아니라 선율이 유려하게 흐르도록 하는 것. 고음을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자연스럽게 위로 떠오르는 것.
20세기 초반부터 오페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커지고, 공연장이 넓어지면서 성악가들은 더 크고 강한 소리를 내도록 훈련받았다. 벨칸토의 세밀하고 유연한 기법이 잊혀가고 있었다.
이달고는 그것을 마리아에게 가르쳤다. 잊혀가던 것을 되살리는 것. 이달고 자신이 그 전통 안에서 훈련받은 성악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리아는 벨칸토를 배우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왜 다른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어둠과 밝음의 폭, 낮은 음역의 풍부함과 높은 음역의 광채. 그것들이 결함이 아니라 벨칸토에서 말하는 음색의 다양성과 닿아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벨칸토를 가르쳐주셨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의 목소리라는 것을."


이탈리아어를 배우다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이탈리아어를 완벽하게 배울 것을 요구했다.
이탈리아어는 모음이 풍부한 언어다. 각 모음의 색깔이 다르고, 그 색깔이 음악과 결합할 때 특별한 효과를 낸다. '아(a)'의 열림과 '이(i)'의 날카로움과 '오(o)'의 깊음이 선율과 만날 때, 단어의 의미와 음악적 의미가 동시에 전달된다.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이탈리아어 가사를 분석하게 했다. 이 단어가 이 음표 위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작곡가는 왜 이 부분에서 이 모음을 선택했는가. 텍스트와 음악의 관계를 읽는 것.
마리아는 그것을 배우면서 오페라를 다른 층위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음악만도 아니고 텍스트만도 아닌, 그 두 가지가 하나가 되는 지점. 그 지점에 오페라의 본질이 있다는 것.
훗날 칼라스가 무대에서 노래할 때, 비평가들이 가장 자주 언급한 것이 있었다. 텍스트를 음악으로 만드는 능력.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가 음악적 의미를 가지고 발음되는 것. 그것이 이달고에게 배운 것이었다.


혹독함과 헌신 사이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혹독했다.
칭찬이 인색했다. 잘했을 때 잘했다고 하는 법이 없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같은 구절을 수십 번 반복하게 했다. 마리아가 지쳐서 더 이상 못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도 이달고는 한 번 더를 요구했다.
다른 학생들이라면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리아는 떠나지 않았다.
마리아가 이달고의 혹독함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달고의 요구가 마리아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려는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차가움이 마리아를 향하지 않은 것과 달리, 이달고의 혹독함은 정확히 마리아를 향해 있었다.
이달고는 인색한 칭찬 대신 다른 방식으로 마리아에게 신뢰를 표현했다. 더 어렵고 더 높은 레퍼토리를 주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그것을 이해했다.
"이달고 선생님은 내게 잘했다고 하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새 악보를 가져오실 때마다 나는 알았다. 그것이 칭찬이라는 것을."


스승이 제자에게 준 것

이달고와 마리아의 관계는 단순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섰다.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벨칸토, 이탈리아어, 악보 해석. 그것들은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달고가 마리아에게 준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자신을 믿는 것.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낀 소녀. 뚱뚱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은 소녀. 자신의 목소리가 균질하지 않아 결함이 있다고 여겼던 소녀. 그 소녀에게 이달고는 말했다. 그 불균질함이 결함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그 어둠과 밝음의 폭이 네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라고.
이달고가 나를 믿는다면, 나도 나를 믿을 수 있다고.
그 믿음이 마리아 칼라스를 만든 것이었다.
훗날 칼라스는 이달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내게 음악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음악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나머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가 출연한 영화 '노르마'

오늘 감상곡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장면(Mad Scene)' — 마리아 칼라스, 베를린 RIAS 방송 실황 (1955년)

 
이달고가 마리아에게 처음 악보를 가져다주었던 곡들 중 하나. 루치아는 스코틀랜드의 귀족 가문 여인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헤어지고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다가 결국 정신을 잃는다.
광란의 장면은 그 정신을 잃은 루치아가 무대에 나타나는 장면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장면 중 하나이지만, 기술 이전에 그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칼라스의 루치아는 단순히 광란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루치아가 정신이 무너지는 그 순간을 살아낸다. 그것이 이달고가 마리아에게 가르쳐준 것의 완성이었다.
 
 
📌 다음 편 예고
제3편 | 전쟁 속의 노래 : 아테네 시절
도시에 군인들이 들어찼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두려움이 거리를 덮었다. 그 전쟁의 한복판에서 열여덟 살의 마리아는 처음으로 오페라 극장의 정식 무대에 섰다. 전쟁은 음악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것들은 마리아의 삶을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다음 편에서는 나치 점령 하의 아테네에서 칼라스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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