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 라인강에 뛰어든 날
강물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더 오래, 더 깊이 얼어 있었다. 1854년 2월 27일, 슈만은 라인강 다리 위에 섰다.

목소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1840년대 후반부터 슈만의 내면에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귀울림이었다. 밤이 되면 어디선가 음이 들렸다. 특정한 음 하나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는 것. 슈만은 처음에 그것을 음악가의 직업병이라 여겼다. 음악을 다루는 사람에게 귀울림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귀울림은 점점 커졌다. 단순한 음 하나가 아니라, 화음이 들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그 화음이 선율이 되어 흘렀다. 슈만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밤마다 천사들이 음악을 가져온다. 아름답고 놀라운 음악. 그러나 악마들도 함께 온다. 그들은 내가 그것을 받아 적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처음에 그는 그 목소리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느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슈만은 몇 편의 작품을 빠르게 완성했는데, 그 중에는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도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들은 점점 더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던 자리에 이제는 날카롭고 불쾌한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소음은 점점 목소리가 되었다.
슈만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는 목소리들.
뒤셀도르프의 음악감독
1850년, 슈만은 클라라와 아이들을 데리고 뒤셀도르프로 이사했다. 그곳 시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음악감독 자리를 맡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두 사람은 설렜다. 슈만에게는 자신의 음악적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개적인 무대가 생긴 것이고, 클라라에게는 라인강변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에서의 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슈만은 지휘자로서의 자질이 연주자나 작곡가로서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는 내성적이었고, 리허설에서 단원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악단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단원들 사이에서는 음악감독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슈만은 그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거기에 건강이 겹쳤다. 간헐적인 귀울림과 집중력 저하, 손의 미세한 떨림. 지휘봉을 잡은 슈만의 손이 흔들리는 것을 단원들이 눈치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853년에는 결국 시 당국으로부터 지휘봉을 내려놓으라는 압박을 받았다. 사실상의 해고였다.
그 해 가을, 브람스가 찾아왔다. 슈만은 브람스를 만나 잠시 빛을 되찾은 듯 보였다. 「새로운 길」을 쓰고, 브람스와 함께 음악을 나누는 그 몇 주 동안 슈만은 다시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브람스가 떠나고 겨울이 찾아오자, 목소리들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1854년 2월, 붕괴
1854년 2월, 슈만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환청은 이제 낮에도 찾아왔다. 음악이 들렸다가 소음이 들렸다가, 목소리가 들렸다가. 슈만은 잠을 자지 못했다. 밤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악보 앞에 앉았는데, 어떤 날은 천사가 가져온 선율을 받아 적었고, 어떤 날은 악마가 들려주는 불협화음에 손을 떨었다고 일기는 전한다.
클라라는 곁에서 지켜봤다. 그녀는 당시 임신 상태였고, 이미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연주 여행도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슈만의 상태가 너무 걱정되어 그녀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2월 10일 무렵, 슈만은 클라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 내 안에 있는 것이 나를 해칠까 봐 두렵소. 당신 곁에 있으면 당신을 다치게 할 것 같아서 무서워."
클라라는 그 말을 듣고 의사를 불렀다. 슈만을 방에서 혼자 두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클라라가 잠시 방을 비운 사이, 슈만은 집을 나갔다.
2월 27일 저녁, 슈만은 얇은 잠옷 차림으로 라인강 철교 위에 섰다. 그는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강물에 던졌다. 그리고 뛰어내렸다.
다행히 근처에서 뱃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다. 차가운 라인강 물속에서 슈만은 끌어올려졌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뱃사람들이 슈만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 클라라는 현관에서 그를 맞았다. 슈만의 몸은 젖어 있었고, 얼굴은 공허했다. 클라라가 훗날 일기에 남긴 그날의 기록은 읽기가 힘들 정도로 담담하다. 담담함 이면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있는 그런 담담함.
스스로 선택한 격리
라인강에서 건져진 다음 날, 슈만은 스스로 요청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싶다고.
당시 주변 사람들은 이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의사들은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회복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권했다. 클라라는 남편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슈만은 고집했다. 자신이 집에 있으면 클라라와 아이들을 다치게 할 것 같다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 두렵다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슈만이 마지막으로 온전히 발휘한 이성의 결단이었다.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그 위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격리를 선택한 것. 플로레스탄도 오이제비우스도 아닌, 슈만 자신이 내린 결정.
1854년 3월 4일, 슈만은 본(Bonn) 근교의 엔데니히(Endenich)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클라라는 그를 병원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슈만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엔데니히의 나날들
엔데니히 정신병원은 라인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인도적인 치료 환경을 갖춘 곳으로 알려져 있었고, 원장 리하르트 박사는 슈만에게 작곡을 계속할 수 있도록 피아노를 제공했다.
슈만의 상태는 들쑥날쑥했다.
좋은 날에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고, 악보를 들여다보고, 사전을 펼쳐 지명을 찾아보기도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슈만은 병원에서도 세상의 것들에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창밖의 나무들을 보고 식물 이름을 외웠고, 방문한 사람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쁜 날에는 완전히 달랐다. 목소리들이 돌아왔고, 슈만은 방 한구석에 웅크렸다. 음식을 거부하는 날도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슈만은 클라라에게 편지를 썼다. 간헐적으로, 상태가 나쁘지 않은 날에.
"클라라, 나는 당신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하루 종일 바라봅니다. 당신의 손이 건반 위에 놓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는 괜찮소.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주오."
그러나 슈만은 돌아오지 않았다.
클라라를 오지 못하게 한 이유
엔데니히 시절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슈만이 클라라의 면회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클라라는 수차례 병원을 찾으려 했다. 브람스도 함께 가려 했다. 그러나 슈만은 의사를 통해, 또는 편지를 통해 면회를 사양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의사들은 면회가 환자를 흥분시킬 수 있다는 의학적 이유를 들기도 했지만, 슈만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도 분명했다.
왜였을까.
몇 가지 해석이 있다.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클라라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 클라라를 보면 돌아가고 싶어지고, 그러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 혹은 클라라가 자신을 보러 오는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기를, 음악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마음.
슈만이 남긴 기록만으로는 그 진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클라라에게 어떤 고통이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편이 살아 있고, 기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으며, 편지까지 보내오는데, 정작 얼굴은 볼 수 없다는 것. 클라라는 그 2년 반 동안 슈만의 병원을 찾지 못한 채,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고, 아이들을 키우고, 브람스와 편지를 나누며 기다렸다.
마지막 며칠
1856년 여름, 슈만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는 연락이 왔다.
음식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식이 오락가락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가족에게 빨리 오라고 전했다.
클라라는 달려갔다. 브람스도 함께였다.
7월 27일, 클라라는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남편을 보았다.
슈만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은 극도로 야위어 있었고,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클라라가 손을 잡았다. 슈만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클라라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분명히 알아보았다. 그의 눈이 말했다. 비록 입술이 말할 수 없었어도."
1856년 7월 29일, 로베르트 슈만은 눈을 감았다. 마흔여섯 살이었다.
클라라는 그 자리에 있었다. 브람스도 있었다. 슈만은 혼자가 아니었다.
반지를 던진 이유
슈만이 라인강에 뛰어들기 전, 손에서 반지를 빼 강물에 던진 것을 기억하는가.
훗날 사람들은 그 행동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했다. 클라라와의 결별을 상징한 것이라는 해석,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려 한 것이라는 해석, 아니면 그저 광기의 순간에 나온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해석.
그러나 어떤 연구자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슈만이 그 반지를 강에 바쳤다는 것. 라인강은 슈만에게 단순한 강이 아니었다. 그는 뒤셀도르프에 살면서 강변을 자주 산책했고, 라인강을 소재로 한 교향곡을 썼으며, 그 강의 전설과 신화를 사랑했다. 슈만이 가장 사랑한 시인 하이네도, 라인강을 배경으로 한 로렐라이의 신화를 시로 남겼다.
어쩌면 슈만은 그 강에 자신의 일부를 돌려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음악가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살았던 시간의 흔적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자신 안에 온전히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지막으로 그것을 강에 맡겼는지도.
물론 이것은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그러나 슈만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라, 그 물음 앞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일지 모른다.
천재성과 광기 사이
슈만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종종 천재성과 광기의 관계를 묻고 싶어진다. 슈만이 그토록 섬세하고 내면적인 음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불안정한 정신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그 정신적 불안정이 없었다면 더 많은, 더 위대한 음악을 남겼을 것인가.
이 물음에는 정답이 없다. 그리고 정답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슈만은 자신의 내면이 가진 모순과 고통을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그것을 음악의 언어로 변환했다는 것이다.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를 발명했을 때처럼, 시인의 사랑을 썼을 때처럼, 어린이 정경의 트로이메라이를 남겼을 때처럼. 그는 자신의 상처를 음악의 재료로 삼았고, 그 음악은 지금도 듣는 사람의 내면에 빛을 보낸다.
슈만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음악의 가장 높은 목적은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 빛을 보내는 것이다."
라인강에 뛰어든 그 날 이후 슈만은 다시는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내면에 그 빛을 보내고 있다.
오늘 감상곡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WoO 23
Schumann: Violin Concerto in D minor - Gidon Kremer (Live recording)
이 곡은 슈만이 엔데니히에 입원하기 직전, 정신이 무너져가던 1853년 가을에 완성한 마지막 대작이다. 슈만 사후 클라라와 브람스는 이 곡의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다. 슈만의 마지막 상태를 반영한 곡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곡은 슈만이 죽은 지 80년이 지난 1937년에야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1악장의 도입부를 들으면 무언가 불안하고 불완전한 느낌이 든다. 선율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은, 방향을 잃은 것 같은 그 감각. 그것이 슈만의 마지막 목소리다.
그러나 2악장의 느린 선율은 다르다. 거기에는 고요함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고요함. 엔데니히 병원 창밖으로 라인강이 보이는 방 안에서, 슈만이 마지막으로 간직하려 했던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연주를 추천한다. 크레머는 이 곡의 불완전함을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그 불완전함 안에 오히려 더 깊은 것이 있다는 듯,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다음 편에서는 슈만이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던 클라라 슈만의 삶과 예술적 위상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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