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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세 개의 태양 아래에서: 류츠신과 우주의 진실

삼체 : 제8회. 작전명 '고금(古筝)', 운하 위의 학살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3.

파나마 운하.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80킬로미터의 인공 수로. 매일 수십 척의 거대한 선박들이 이 좁은 운하를 통과하며, 세계 무역의 가장 중요한 동맥 중 하나를 이룹니다. 그 운하의 가장 좁은 구간 중 하나가 '게일라드 컷(Gaillard Cut)'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협곡 같은 그 구간을, 거대한 선박들은 천천히, 마치 바늘귀를 지나는 실처럼 통과해 갑니다.

2007년 가을의 어느 새벽. 그 게일라드 컷을, 한 거대한 유조선이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배의 이름은 '재림자(Judgment Day)'. 길이 250미터, 만재 배수량 6만 톤의 거대한 선박이었습니다. 외관상 그것은 평범한 상업용 유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선체의 내부는, 사실 한 비밀 결사의 본부였습니다.

ETO의 강림파, 그 지도자 마이클 에반스의 부유한 왕국. 이 유조선의 내부에는 그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거대한 통신 시설, 자료 보관실, 그리고 그의 추종자 약 1,500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삼체 문명으로부터 도착한 모든 메시지의 원본 데이터가, 그 배의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한 작전 회의

며칠 전, 베이징의 한 비밀 회의실.

중국,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NATO의 군 정보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한 가지 단순하면서도 거의 불가능한 임무가 놓여 있었습니다.

마이클 에반스의 유조선을 무력화시키되, 그 내부의 모든 데이터를 손상 없이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전은 절대로 외부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전통적인 방법은 모두 검토되었고,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배를 장악하는 방법. 이것은 가장 명백한 선택이었지만, 가장 위험했습니다. 에반스의 추종자들은 모두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부 침입의 첫 신호를 감지하는 순간, 즉시 모든 데이터를 파괴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자료는 단지 종이 문서가 아니라, 매우 복잡한 암호화된 데이터였고, 일단 그들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손상시키면 복구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미사일이나 폭탄으로 유조선을 격침시키는 방법. 이것은 데이터를 확보할 가능성을 영원히 잃는 것이었습니다.

전자전을 동원하여 배의 통신을 마비시키는 방법. 그러나 에반스는 충분히 영리한 자였습니다. 그의 통신 시스템은 다층 보안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어떤 전자전도 일시적인 효과 외에는 거두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회의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두 가지 조건, 즉 '배의 무력화'와 '데이터의 보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 거친 형사가 손을 들었습니다. 사 다스(史强)였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군 장교들과 정보 책임자들은 그를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약 단속과 살인 사건을 수사해 온 한 명의 거리 형사가, 이런 작전 회의에서 무슨 의견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 다스는 차분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단순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죽을 수만 있다면,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존되지 않겠습니까?』

회의실이 잠시 침묵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공격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한 미국 장교가 천천히 답했습니다, 『생물학적 공격을 의미하는 겁니까? 가스나 독극물 같은?』

『그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사 다스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명백한 추적이 가능하고, 너무 잔혹한 방법입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가 한 단어를 발음했습니다.

『나노 비도(纳米飞刀).』

 

한 신소재의 비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서야 합니다. 작품의 가장 정교한 서사적 직조가 이 순간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왕먀오가 평생 연구해 온 분야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나노 재료 공학자였습니다. 그의 평생의 연구 주제는,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의 십만 분의 일에 불과하면서도 어떤 것도 자를 수 있는 강도를 가진 '나노 비도(飞刀)'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시야에 흐르고 있던 카운트다운. 그것은 정확히 이 나노 재료의 연구를 멈추지 않으면 작동하던 협박이었습니다. 삼체 문명이 그에게 이토록 절박하게 멈추라고 요구한 그 연구. 이제 그 이유가 드러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사 다스의 계획은 한 가지 단순하면서도 천재적인 아이디어 위에 서 있었습니다. 왕먀오의 나노 비도, 즉 머리카락 두께의 십만 분의 일에 불과한 그 실을, 운하의 양 절벽 사이에 가로로 펼쳐 놓는 것. 그리고 유조선이 그 위치를 통과하는 순간, 그 실들이 배를 자르고 또 자르도록 만드는 것.

나노 비도는 어떤 사이렌도 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폭발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실은 너무 가늘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너무 예리해서 강철 선체조차 마치 두부를 자르듯 통과해 갈 것이었습니다. 유조선의 거대한 몸은 그 실들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항해할 것이고, 배의 모든 부분이 동시에, 정확히 같은 순간에, 잘려 나갈 것이었습니다.

수직으로 펼쳐진 수십 가닥의 나노 비도. 그것이 배를 가로지르는 순간, 배 안의 모든 것은 마치 가는 칼날에 채워진 마늘이 잘려 나가듯, 정확한 단면들로 절단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면은 너무도 매끄러워, 절단 직후에도 모든 것이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 것입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학자의 양심

그러나 이 계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노 비도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도 똑같이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배 안에 있는 약 1,500명의 사람들, 그들도 정확히 같은 단면으로 절단될 것이었습니다. 어떤 비명도 없이, 어떤 고통도 없이, 그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을 듣고, 왕먀오는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신소재가,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방식으로 사용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의료용 수술 도구, 정밀 산업 가공, 우주 항공 분야의 혁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1,500명의 인간을 학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의 학자적 양심에 깊은 상처를 안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 다스에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1,500명입니다. 그 안에는 아이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사 다스는 그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정보 분석 결과, 배 안에는 실제로 미성년자가 약 50명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ETO 회원들의 자녀로, 부모와 함께 그 배 위에서 자라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들었을 때,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한 미국 장교의 발언

그때 한 미국 장교가 일어섰습니다. 그의 이름은 작품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그는 NATO의 정보 부서의 고위 관계자였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범죄 조직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그 정보를 자신들이 신봉하는 외계 권력에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번 작전을 실패한다면, 어떤 결과가 올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 것이고, 우리는 영원히 그들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 안에는, 인류가 다가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1,500명입니다. 50명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끔찍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70억의 인류와 비교하면, 어떤 숫자가 더 큰 것입니까?』

이 발언에 대해, 영국과 일본의 정보 책임자들이 동의를 표했습니다. 미성년자들이 죽는다는 사실은 분명 비극이지만, 그들의 부모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 배 위로 데려간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그 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인류 전체가 더 큰 위협 앞에 노출될 것이었습니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천천히 한 방향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무거운 사유

이 장면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윤리적 질문 중 하나입니다.

50명의 아이를 포함한 1,500명을 희생시켜, 70억의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한다. 이것은 정당한가.

지구의 윤리학에서, 이 질문은 다양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리주의자들은 더 큰 다수의 행복을 위해 작은 희생을 정당화합니다. 한 명의 생명도 1,500명의 생명도 70억의 생명도, 결국 같은 종류의 가치이며, 그 산술적 비교가 정당한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의무론자들은 다르게 답합니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1,500명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그들의 인격을 우리의 정보 확보를 위한 도구로 환원시키는 행위이며, 그것은 결과의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잘못된 것입니다.

이 두 입장 사이의 거리는, 인류의 윤리적 사유가 풀지 못한 가장 오래된 갈등 중 하나입니다. 류츠신은 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그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작품 속의 인물들은, 결국 공리주의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류츠신은 그것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보여줍니다. 인류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결국 이런 종류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정의 무게가, 결정을 내린 자들의 영혼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그날 새벽

작전의 날이 왔습니다.

게일라드 컷의 협곡, 그 가장 좁은 한 지점. 양쪽의 절벽 사이로 50미터의 거리. 그 사이에, 수십 가닥의 나노 비도가 0.5미터 간격으로 수평으로 펼쳐졌습니다. 가장 아래의 실은 수면에 거의 닿을 듯이, 가장 위의 실은 유조선의 최상층 구조물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그 사이의 모든 공간을, 보이지 않는 칼날의 격자가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새벽 5시 17분, 유조선 '재림자'가 그 지점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배의 갑판에는 몇 명의 선원들이 평소처럼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위험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배의 내부에서는, 약 1,500명의 ETO 회원들이 새벽의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자고 있었고, 일부는 일어나 차를 끓이고 있었고, 일부는 아침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배의 깊은 곳, 거대한 통신실에서는 한 인물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마이클 에반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책상 앞에 앉아, 4광년 너머로부터 도착한 최신의 메시지를 천천히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이 한 가지에 바쳤습니다. 인류라는 종을 끝내기 위해. 그가 어린 시절 본 검은 기름 속의 새들. 그 새들의 모습이, 그의 일생을 한 가지 방향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그는 자신의 모든 작업이 곧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0.5초의 침묵

5시 18분 30초.

유조선의 뱃머리가 첫 번째 나노 비도와 만났습니다. 어떤 소리도 없었습니다. 어떤 진동도 없었습니다. 그 실은 너무 가늘었고, 절단은 너무 매끄러웠습니다. 강철 선체는 마치 그 실을 마중하듯, 천천히 그것을 통과해 갔습니다.

배는 자신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작전의 설계자들은 이 점을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나노 비도가 절단할 때 일어나는 마찰력은 매우 작아, 6만 톤의 배는 그것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로 항해를 계속할 것이었습니다.

배의 모든 부분이, 차례로 그 실들을 통과해 갔습니다. 뱃머리에서 시작해, 갑판으로, 거주 구역으로, 통신실로, 엔진실로, 그리고 배꼬리까지. 약 40초가 걸렸습니다. 그 40초 동안, 배 안의 모든 것이 0.5미터 간격의 수평 절단면들로 잘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모든 구조물은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절단된 단면들이 너무 매끄러워, 마찰력과 중력의 균형으로 잠시 동안 모든 것이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마이클 에반스는 자신의 책상 앞에서 계속 메시지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의 몸은 이미 0.5미터 간격으로 절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절단면이 여전히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약 30초 동안, 거대한 유조선은 자신의 죽음을 모른 채 운하 위를 항해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기괴한 30초였을 것입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한 점에서 정확히 멈춰 서 있던 그 30초.

그리고 30초가 흘렀을 때, 그 균형은 무너졌습니다.

 

운하 위의 무덤

배가 자신의 무게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순간, 또는 항해의 작은 진동이 누적된 어느 한 점에서, 절단된 모든 것이 동시에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한 마리의 생명체가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50미터 높이의 거대한 선체가, 0.5미터 두께의 수평 조각들로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운하의 수면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갑판과 거주 구역과 통신실과 엔진실의 모든 구조물이,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매끄러운 조각들로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두부가 가는 칼날 격자에 의해 잘려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또는 거대한 종이 책이 자신의 책장 사이로 천천히 흩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운하의 수면은 그 거대한 죽음을 받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강철과 살과 가구와 책과 컴퓨터와 기억과 신념이, 모두 같은 매끄러운 단면으로 잘린 채로, 운하의 진흙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갔습니다.

한 학자의 침묵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유조선의 내부에 있던 거대한 데이터 저장소는, 정확히 사 다스가 예측한 대로 작동했습니다. 그것은 절단되기는 했지만, 그 절단면이 너무 매끄러워, 데이터 자체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특수 잠수부들이 운하의 진흙 속에서 그 데이터 저장 장치들을 차례로 회수해 갔고, 며칠 후 그것은 베이징의 한 비밀 연구소로 옮겨져 분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삼체 문명의 모든 메시지 원본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함대가 언제 어떤 경로로 도착할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들이 인류를 어떻게 처리할 계획인지.

그 모든 정보가, 1,500명의 죽음과 맞바꾼 결과로 인류의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왕먀오는, 작전의 성공 소식을 들은 그 순간 자신의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사 다스가 그에게 보낸 짧은 보고를 읽었습니다. '작전 성공. 데이터 확보. 사상자 1,495명.'

그는 한참 동안 그 숫자를 바라보았습니다. 1,495명. 그 안에는 어린 아이들이 50명 정도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의 연구. 그가 학자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낸 그 신소재. 그것이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손이 그 죽음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의 시야에 흐르던 카운트다운이 갑자기 멈췄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삼체 문명은, 또는 그들의 지구상 협력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연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너무 늦었던 것입니다.

 

한 시대의 끝

이 작전의 의미는, 단지 1,500명의 ETO 회원이 죽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시점까지 인류와 삼체 문명 사이의 갈등은, 어떤 의미에서 일방적이었습니다. 삼체 문명은 자신들의 기술로 인류의 시야에 카운트다운을 새겨 넣었고, 인류의 과학을 협박했고, 인류 내부의 협력자들을 조종했습니다. 인류는 그저 그것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을 통해, 인류는 처음으로 자신의 발톱을 보였습니다. 그것은 잔혹한 발톱이었습니다. 자신의 동족 1,500명을 학살해서라도,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는 발톱이었습니다. 그 발톱이 보여준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인류는, '벌레'라 불렸던 그 인류는,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종족이 아니라는 것.

이 작전의 또 다른 의미는, 인류 사회 내부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각인시켰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인류는, 다가올 4세기 반의 위기를 견디기 위해, 어떤 윤리적 한계도 넘어설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주의, 우리가 알고 있던 도덕적 한계, 우리가 알고 있던 휴머니즘. 이 모든 것은, 다가올 위기 앞에서 점차 사치가 되어 갈 것이었습니다.

 

사 다스의 시가

작전이 끝난 며칠 후, 사 다스는 왕먀오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처럼 시가를 깊이 빨며, 왕먀오의 사무실 창가에 기대어 섰습니다.

『교수님, 미안하오. 당신의 발명품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왕먀오는 한참 동안 답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학자로서, 내 연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 연구가 그런 방식으로 사용되리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사 다스는 시가의 연기를 길게 내뿜었습니다.

『교수님, 내가 한 가지 알려드리겠소. 우리는 곧 더 어려운 결정들을 내려야 할 것이오. 그 결정들 앞에서, 오늘의 1,500명은 작은 숫자처럼 보일 거요.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받아들여야 할 거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다음 시대요.』

이 짧은 대화가 작품 1부의 정신적 결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여,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잔혹함을 끌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잔혹함은, 적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 자신의 동료에게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한 가지 마지막 의문

회를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 작전이 성공한 후, 인류는 삼체 문명의 모든 메시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정보를 손에 넣은 인류는, 정말로 다가올 위협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4세기 반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인류가 삼체 문명을 능가하는 기술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작품 1부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답은, 인류를 가장 깊은 절망의 한가운데로 데려갑니다.

삼체 문명은 단지 자신들의 함대만을 발진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함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보낸, 또 다른 무기가 있었습니다.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장 작고 가장 무서운 존재. 양성자(陽性子) 한 개에 11차원을 펼쳐 만든 거대한 컴퓨터.

지자(智子).

 

다음 회 예고

양성자 한 개.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그 미세한 입자가, 어떻게 한 행성 전체의 과학기술을 마비시킬 수 있을까요. 11차원으로 펼쳐졌다가 다시 미시 세계로 접혀 들어가는 그 양성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지구를 향해 이미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지구에 도착하는 순간, 인류의 모든 입자 가속기에 침투하여, 과학자들에게 거짓 데이터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다음 회에서는 '지자(智子)'라는 경이로운 발명품의 탄생과, 그것이 인류 과학에 안긴 가장 깊은 절망의 풍경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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