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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세 개의 태양 아래에서: 류츠신과 우주의 진실

삼체 : 프롤로그. 한 중국인 엔지니어가 우주의 어둠을 그려내기까지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25.

2015년 8월 23일, 미국 스포캔(Spokane)에서 열린 제73회 세계 SF 컨벤션(Worldcon)의 시상식장. 휴고상(Hugo Award) 장편소설 부문 수상자가 호명되었습니다.
『The Three-Body Problem』, 작가 류츠신(刘慈欣).
장내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휴고상이 제정된 1953년 이래, 아시아 작가의 작품이 장편소설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영어로 쓰여지지 않은 작품으로는, 사실상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영어권 SF의 본거지에서, 중국이라는 비교적 낯선 나라의 발전소 엔지니어가 쓴 작품이.
수상 소감은 영상으로 대신 전달되었습니다. 류츠신 본인은 그날 산시성(山西省) 양취안(阳泉)의 자택에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평범한 출근날의 옷차림으로, 평범한 거실에서, 카메라를 향해 담담히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세계가 그의 이름을 외치는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그저 한 사람의 중국인 기술자였습니다.

발전소의 기술자, 우주를 꿈꾸다

류츠신은 1963년 6월, 베이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년은 베이징이 아닌 산시성의 한 탄광 도시에서 보내졌습니다. 문화대혁명의 풍랑이 거세지자, 그의 부모는 어린 아들을 시골의 친척에게 맡겼습니다. 양취안의 그 작은 도시에서, 소년 류츠신은 별을 올려다보며 자랐습니다.
그가 SF와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초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 밑에 숨겨져 있던 한 권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 중국어판이었습니다. 문혁 기간 동안 '부르주아 문학'으로 낙인찍혀 사실상 금서로 분류되었던 책. 그 한 권이 한 소년의 우주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학에서 그는 수력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산시성 냥쯔관(娘子关) 발전소의 컴퓨터 엔지니어로 부임했습니다. 그가 SF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발전소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였습니다. 낮에는 제어실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밤에는 우주를 떠도는 함대와 외계 문명에 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발전소의 거대한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쓸 때, 자신은 그 진동이 마치 우주의 맥박처럼 느껴졌다고. 그래서 자신의 SF에는 늘 거대한 기계, 거대한 구조물, 거대한 침묵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삼체』의 탄생

『삼체』 3부작의 첫 권이 중국에서 출간된 것은 2008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SF 잡지 『과환세계(科幻世界)』에 2006년부터 연재되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을 때, 중국 SF계에서는 이미 화제가 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세계적인 현상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부 『암흑의 숲』은 2008년에, 3부 『사신의 영생』은 201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3부작이 완결되었을 때, 류츠신은 중국 SF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연 작가로 평가받게 됩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다리를 놓은 사람은 미국의 SF 작가이자 번역가인 켄 리우(Ken Liu, 刘宇昆)였습니다. 그 자신이 휴고상 수상 경력의 SF 작가이기도 한 켄 리우는, 2014년 11월 1부의 영어판을 출간했습니다. 번역은 단순한 옮김이 아니라, 작품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구조까지 일부 조정하는 정교한 작업이었습니다. 앞서 1회차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문화대혁명 장면을 작품 맨 앞으로 옮긴 것도 이 과정의 결과였습니다.
영어판이 출간되자마자, 세계는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세계가 응답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재임 시절, 휴가 중에 『삼체』 1부를 읽었습니다. 훗날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자신에게 "엄청난 상상력의 작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일과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일이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느껴졌다는 농담을 덧붙이면서. 그는 류츠신에게 직접 연락하여 후속편의 원고를 미리 보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출간 전이라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원고였지만, 작가는 결국 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독서 목록에 이 작품을 올렸습니다. 조지 R. R. 마틴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학술적인 반응도 뒤따랐습니다. 『삼체』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자, 우주사회학(cosmic sociology)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시한 작품으로 분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옥스퍼드와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이 작품은 SF 강의의 교재가 되었고, 천체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작품 속 사상에 관해 논평을 쏟아냈습니다.

 
2019년에는 넷플릭스가 시리즈 제작에 착수했고, 2024년 3월 『The 3 Body Problem』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왕좌의 게임』의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 B. 와이스가 총괄을 맡은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텐센트가 별도의 시리즈를 제작하여, 중국 원작에 충실한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삼체』 3부작은 자음과모음 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간되어 SF 독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화제를 이어 왔습니다.
 

왜 지금, 『삼체』를 읽는가

이 연재의 기획 의도는 단순한 줄거리 소개가 아닙니다.
『삼체』는 SF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류라는 종족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 들어 있습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생존의 윤리란 가능한가. 우주가 정말로 그토록 어두운 숲이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 숲을 걸어가야 하는가. 사랑은 그 어둠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멸망의 원인이 되는가.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류츠신이 그려내는 우주의 풍경은,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자원이 한정된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두 문명. 서로의 의도를 완벽히 알 수 없는 두 지성체. 신뢰가 가능한가, 아니면 선제적 공격만이 합리적인가. 이것은 우주의 이야기인 동시에, 지난 세기 인류가 통과해 온 냉전의 이야기이며,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연재에서 저는 『삼체』 3부작을 총 30회에 걸쳐 함께 읽어 나가고자 합니다. 단순히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숨겨진 과학 개념(삼체 문제, 양자 얽힘, 차원 축소, 광속 비행)과, 류츠신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을 함께 짚어 볼 것입니다. 또한 이 작품이 중국 현대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동아시아적 비관주의와 서구적 휴머니즘 사이에서 작품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류츠신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SF를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SF는 우리가 일상에서 결코 묻지 못하는 질문을 묻게 합니다. 우주의 크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시간의 깊이 앞에서, 우리의 사랑과 미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런 질문들은 SF가 아니면 던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들을 함께 던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음 회부터,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1967년 베이징의 한 운동장에서, 스무 살의 한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잃는 그 여름의 정오에서부터.
 

다음 회 예고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한 천체물리학자가 죽고, 그의 딸은 평생 인류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예원제. 훗날 그녀의 손가락 하나가, 인류 전체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제1회에서는 예원제의 비극과, 대흥안령 산맥 깊은 곳에 자리한 비밀 기지 '홍안(红岸)'의 정체, 그리고 4광년 너머에서 도착한 한 통의 경고문을 만나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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