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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세계문학 들여다 보기

나탈리 사로트의 『향성』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21.

 

오늘은 조금 특별한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939년, 파리의 한 작은 출판사에서 조용히 세상에 나온 책이 있습니다. 초판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평론가들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훗날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흐름을 바꿔놓는 한 권이 되리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나탈리 사로트의 『향성』, 원제 'Tropismes'입니다.

 

'향성'이라는 말, 조금 낯설게 들리실 겁니다. 이 말은 원래 생물학 용어입니다. 식물이 햇빛을 향해 줄기를 뻗고, 뿌리가 중력을 따라 땅속으로 파고드는 현상, 그러니까 외부의 자극에 반응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그 미세한 떨림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그런데 사로트는 이 식물학 용어를 들고 와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식의 표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정체불명의 떨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파동, 그것이 바로 사로트가 말하는 '향성'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기묘한 발상을 한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나탈리 사로트는 1900년, 러시아 이바노보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나탈리아 체르니아크. 유대계 러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두 살 무렵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제네바로, 파리로, 그리고 다시 러시아로 옮겨 다니는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결국 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는 파리의 아버지 집에서 자라게 되지요.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했고, 소르본에서 영문학을,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그리고 베를린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야말로 유럽 지성의 한복판에서 자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변호사 자격을 얻어 법률가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세 딸을 낳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부르주아 가정의 안주인이었지요.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표면 아래에서, 사로트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나누는 그 무의미해 보이는 잡담,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그 짧은 시선, 손님을 맞이하며 짓는 그 어색한 미소, 그 모든 것의 아래에서 무언가가, 정말로 무언가가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녀는 1932년부터 짧은 글들을 쓰기 시작합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그 내면의 움직임을 어떻게든 언어로 붙잡아두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렇게 7년에 걸쳐 쓴 스물네 편의 짧은 글이 모여서, 1939년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향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간 시기가 너무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해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거든요. 유럽 전체가 전쟁의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시기에, 인간 내면의 미세한 떨림 따위에 누가 관심을 기울이겠습니까. 게다가 사로트 자신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점령기 동안 숨어 지내야 했고, 가짜 신분증으로 가정교사 일을 하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이 작은 책을 다시 펼쳐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이르러 알랭 로브그리예, 미셸 뷔토르, 클로드 시몽 같은 작가들과 함께 '누보 로망', 그러니까 '새로운 소설' 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지요. 사로트는 1956년 평론집 『의혹의 시대』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제 더 이상 발자크처럼 쓸 수는 없다. 인물도, 줄거리도, 심리 묘사도, 모두 의심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이 책 속에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할까요. 사실 이 질문 자체가 조금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향성』에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거의 등장하지 않거든요. 그저 '그녀', '그', '그들', '사람들', 이렇게 익명의 존재들이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질 뿐입니다.

카페 진열창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뭔가를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가족들.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여자들. 어두운 복도에서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어린아이. 응접실에서 차를 따르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부인. 책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인생에 대해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 지식인 남자. 늙은 부모를 찾아와 안부를 묻는 자식.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로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들의 외모나 직업이나 성격이 아닙니다. 이들이 마주칠 때, 말을 주고받을 때, 시선이 부딪힐 때, 바로 그 순간에 그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들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짧고 빠른 떨림,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그 미세한 적의와 두려움과 끌림, 사로트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책의 첫 장면을 한번 떠올려 보시죠. 어느 도시의 한 거리.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습니다. 그들은 가게 진열창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말입니다. 그 표면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입니다. 작고 끈적끈적한 무엇이 그들을 그곳에 붙들어 매고 있습니다. 사로트는 이 사람들을 마치 작은 곤충들처럼 묘사합니다. 따뜻한 빛 아래 모여든 벌레들처럼, 그들은 서로의 살갗에, 서로의 시선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향성입니다.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그 보이지 않는 힘 말입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한 노인이 그의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는 손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친절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 친절함 속에서, 그 다정한 말투 속에서, 무언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손녀는 알아챕니다. 어린아이는 어른들보다 더 예민하니까요. 할아버지의 그 부드러운 손길 속에, 그 인자한 미소 속에, 무언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자신을 어떤 틀 안에 가두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따뜻함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마치 끈끈이에 붙은 작은 나비처럼.

 

또 다른 장면. 한 응접실입니다. 부인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작가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그러자 미묘한 긴장이 흐릅니다. 한 부인이 미소를 짓습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그런 미소 말입니다. 다른 부인이 그 미소를 봅니다. 그러고는 자신도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녀는 입을 엽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적당히 세련된 문장, 적당히 교양 있어 보이는 의견뿐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안에서는, 그 말을 내뱉는 그 순간에도, 무엇인가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다른 부인을 깎아내리고 싶은 충동,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명치 부근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로트는 이런 장면들을 끝없이 보여줍니다. 한 남자가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친구의 집 초인종을 누릅니다. 문이 열립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데 그 반가운 인사 속에서, 그들 사이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누가 더 먼저 말을 꺼낼 것인가. 누구의 화제가 더 흥미로워 보일 것인가. 누가 더 우월한 위치에 설 것인가. 그들은 의식하지 못합니다. 의식한다면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들의 몸은, 그들의 시선은, 그들의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한 늙은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녀의 자식들이 그녀를 찾아옵니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압니다. 자식들이 그녀의 죽음을,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식들도 자신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다정하게 말합니다. 더 살뜰하게 어머니를 보살핍니다. 그러나 그 다정함 속에는, 그 살뜰함 속에는, 무언가 미끈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느끼면서도 모른 척합니다. 모른 척해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는 어떤 광고판을 봅니다. 별것 아닌 광고입니다. 그런데 그 광고를 보는 순간,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집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기억, 어떤 후회, 어떤 두려움. 그는 그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저 무언가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는 계속 걷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향성』은 이런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각각의 짧은 글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한 방울의 물처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미생물들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던, 보지 않으려 하던 그 세계 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로트가 이 향성들을 묘사할 때 자주 동물이나 곤충, 식물의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책 속에서 인간들은 종종 끈끈이에 붙은 파리가 되고, 햇빛을 찾아 몸을 비트는 식물이 되고, 먹이를 발견한 해파리가 되어 촉수를 뻗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안에 있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 원초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드러내려는 시도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지만,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이런 식물적이고 동물적인 움직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흔히 말하는 줄거리가 없습니다. 시작도 없고, 절정도 없고, 결말도 없습니다. 한 인물이 다음 장에 다시 나오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저 익명의 사람들이 잠깐씩 등장했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면, 묘한 느낌이 남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졌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이런 향성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깨달음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 우정이라고 불렀던 것, 미움이라고 불렀던 것, 그 모든 감정의 표면 아래에서,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미세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었던가.

 

사로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 의식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분명히 거기 있는 것을 쓰고 싶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향성』은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입니다. 의식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거기 있는,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책입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익숙한 소설의 문법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천천히, 마치 향수의 향기를 음미하듯이 한 편씩 읽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사로트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가장 내밀한 풍경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무엇이 정말로 오갔는지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표면의 말들 아래에서, 미소 아래에서, 시선 아래에서, 무엇이 움직였는지를 말입니다. 어쩌면 그때 여러분은 사로트가 말한 향성을,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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