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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세계문학 들여다 보기

러시아의 들판에서 한 시대를 만나다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7.

이반 투르게네프 · 『사냥꾼의 수기』

 

🎵 차 한 잔, 그리고 피아노 한 곡과 함께 · Tchaikovsky, The Seasons Op.37 No.10 'October — Autumn Song'

 

한 권의 책이 한 시대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거창한 사상서도, 격렬한 격문도 아닌, 그저 어느 한가한 사냥꾼이 들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 내려간 스케치 모음집이 — 한 제국의 가장 거대한 제도를 흔들고, 마침내 4천만 명의 농노들을 자유의 땅으로 걸어 나가게 만들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런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1852년 봄, 러시아에서 출간된 한 권의 작은 책이 바로 그 일을 해냈습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가 거대한 장편의 산을 올리기 직전, 한 사람의 작가가 펴낸 이 스물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고, 한 시대를 움직였습니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Записки охотника)』가 바로 그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작가가 단 한 번도 농노제를 비판하는 직접적인 문장을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저 한 사냥꾼의 시선으로, 자신이 들판에서 만난 농민들의 얼굴과 손과 목소리를, 한 폭 한 폭의 풍경화처럼 정성껏 그려 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조용한 시선이 오히려 어떤 격문보다도 깊이 시대를 흔들었습니다. 농민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그들에게도 지혜가 있고 슬픔이 있고 시인의 마음이 있다는) 너무도 단순하면서도 너무도 오래 잊혀 왔던 진실 하나를, 이 책은 들판의 산딸기 향기에 실어 조용히 들려주었습니다.

저자 소개 ·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1818년 11월 9일(구력 10월 28일), 러시아 중부 오룔(Орёл) 지방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1883년 9월 3일 프랑스 파리 근교 부지발에서 척추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65년의 생애 동안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함께 떠받친 거장으로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방탕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해 가던 퇴역 기병 장교였고, 어머니는 수많은 농노를 거느린 전제 군주적 성격의 영주였습니다. 어머니의 폭력적인 가풍 속에서 어린 투르게네프는 자기 영지의 농노들이 학대받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목격하며 자랐습니다. 그가 평생 농노제에 대한 깊은 분노와, 동시에 농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게 된 까닭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영지 스파스코예-루토비노보(Спасское-Лутовиново)와 그 둘레의 들판은, 훗날 『사냥꾼의 수기』의 거의 모든 풍경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한 뒤, 1838년부터 그는 독일 베를린 대학에 유학하여 헤겔 철학과 서구 사상을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평생의 친구가 될 미하일 바쿠닌, 비사리온 벨린스키 등 러시아 서구주의자들과 교유했고, 이 시기에 그의 정신은 결정적으로 '서구파(Западники)'의 자리에 자리잡습니다. 1843년 서사시 『파라샤』로 등단해 평론가 벨린스키의 극찬을 받았고, 같은 해 평생의 사랑이자 영혼의 동반자가 될 프랑스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를 만납니다. 그녀와의 깊은 정신적 유대는, 그의 평생을 따라다닌 '낯선 둥지에서의 삶'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1847년 잡지 『동시대인(Современник)』에 발표한 단편 「호리와 칼리니치」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의 이름을 단숨에 러시아 문단의 중심으로 올렸습니다. 이 작품을 비롯한 스물다섯 편의 단편을 모은 『사냥꾼의 수기』가 1852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작품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정부 당국은 같은 해 4월, 작가가 쓴 고골 추도사를 빌미로 그를 한 달간 감금하고 1년 반 동안 자신의 영지에 연금시켰습니다. 그러나 책은 이미 들불처럼 퍼져 나간 뒤였고, 마침내 1861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해방령을 내릴 때, 자신의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가운데 하나가 『사냥꾼의 수기』였다고 토로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한 권의 문학이 한 제국의 제도를 움직인, 보기 드문 사례였습니다.

이후 그는 『루딘』(1856), 『귀족의 둥지』(1859), 『전날 밤』(1860), 『첫사랑』(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처녀지』(1877) 등, 한 시대의 러시아 청년들의 영혼을 가장 섬세하게 그려 낸 일련의 장편들을 잇달아 펴내며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연대기 작가'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은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문학에 도입하며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깊은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의 생애 후반은 대부분 비아르도 부인의 곁, 프랑스에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플로베르, 모파상, 헨리 제임스, 조르주 상드 등 서구의 거장들과 교유하며, 러시아 문학을 처음으로 서구에 소개한 가장 중요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1883년 9월, 그는 비아르도 부인의 별장 부지발에서 눈을 감았고, 유언에 따라 유해는 러시아로 옮겨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볼코프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작품 속의 주요 인물들

『사냥꾼의 수기』는 한 사람의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이끄는 장편소설이 아닙니다. 스물다섯 편의 짧은 스케치마다 전혀 다른 농민들이 잠시 무대에 올라 자기 몫의 빛을 발하고는 사라져 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곧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들판 그 자체이자, 그 들판 위에 살아간 무명(無名)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빛나는 얼굴 몇몇을 짚어 보겠습니다.

'나'(화자)는 사냥을 좋아하는 한 젊은 지주(地主)입니다.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 해도 좋을 이 인물은, 그러나 결코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 않습니다. 그는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자신이 들판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자신이 한때 농노들을 어떻게 멸시했는지, 그 부끄러움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 받아 적겠노라 다짐하는, 이 정중하고도 겸허한 시선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호리(Хорь)칼리니치(Калиныч)는 첫 단편 「호리와 칼리니치」의 두 농노입니다. 둘 다 같은 영주의 농노이지만 너무도 다른 두 인간이지요. 호리는 영지의 숲 깊은 곳에 자기 농가를 일구고 사는 단단하고 실용적인 영혼의 농민입니다. 가축을 잘 기르고, 셈에 밝으며, 사회를 비판할 줄도 아는, 마치 한 사람의 작은 철학자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와 대조되는 칼리니치는 시인의 영혼을 지닌 농민입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새의 노래를 알아들으며, 약초의 효능을 꿰뚫고, 기도를 잊지 않는, 들판 그 자체가 사람이 된 듯한 인물이지요. 작가는 이 두 농민의 모습을 통해(농노라는 한 단어로 4천만 명을 묶어 부르는 일이 얼마나 거대한 폭력인지를) 단 한 줄의 비판도 없이, 그저 그 둘의 살아 있는 얼굴만으로 말없이 일러 줍니다.

카시얀(Касьян)은 「아름다운 칼들의 카시얀」에 등장하는 떠돌이 농민입니다. 작은 키에 야릇한 눈빛을 지닌 이 노인은, 사냥을 죄로 여기고 모든 살아 있는 것에 깊은 연민을 보내는 자연 철학자입니다. 짐승을 죽이는 일이 슬프고, 풀 한 포기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그의 말은,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한 농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화자는 그 앞에서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의 말투는 전혀 농민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의 말은 사려 깊었으며 신중했고, 흥미로웠다. 나는 이제까지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비류크(Бирюк)는 「영지 관리인 비류크」의 주인공인 산림지기입니다. '비류크'란 러시아어로 '외톨이 늑대' 혹은 '음울한 사람'을 뜻하는 별명입니다. 자기 임무에 무서울 만큼 충실한 이 산림지기는, 영주의 숲에서 나무를 훔치는 가난한 농민이라면 누구도 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비 오는 밤, 그가 한 농민을 붙잡아 자신의 오두막으로 끌고 와 추궁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 무서운 사내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약한 자에 대한 깊은 동정심과 자기 자신의 고독에 대한 처연한 슬픔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류크는 결국 잡았던 농민을 풀어 줍니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야코프(Яков)는 「가수들」의 주인공입니다. 이 짧은 단편은 시골 선술집에서 두 농민이 노래 시합을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화려한 기교로 노래하고, 야코프라는 다른 한 사람은, 그저 자신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한 줄기 슬픔을 노래합니다. 그 노랫소리를 들은 선술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술 취한 마부도, 늙은 농부도, 떠돌이 거지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은, 러시아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작가는 이 한 장면으로, 농민의 영혼이 얼마나 깊은 예술의 그릇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 외에도 「베진 초원」에서 여름밤 들판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무서운 옛이야기를 나누는 다섯 명의 농가 소년들, 페댜, 파블루샤, 일류샤, 코스챠, 바냐의 천진하고도 영민한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등장하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더없이 의연하고 단정한 농민들의 모습은, 어떤 영웅의 죽음 묘사보다도 깊은 감동을 남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 몫의 이름과 자기 몫의 영혼을 지닌 채, 들판에서 잠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들판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줄거리 · 한 사냥꾼의 노트에 적힌 25편의 풍경

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줄거리'라는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가는 이야기도 없고,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 절정과 결말로 치닫는 구조도 없습니다. 다만 한 사냥꾼이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동안 러시아 중부 오룔 지방의 들판과 숲을 떠돌며 만난 사람들의 풍경, 그 스물다섯 폭의 작은 풍경화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한 폭 한 폭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한 시대의 거대한 초상화 한 폭을 이루게 되지요. 가장 사랑받는 몇 편의 풍경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 편 「호리와 칼리니치」는 화자가 우연히 만난 한 영주의 두 농노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화자는 폴루티킨이라는 이름의 작은 영주의 손님이 되어 사냥에 나섰다가, 영주의 농노 호리와 칼리니치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게 됩니다. 단단하고 실용적인 호리의 농가에서, 그리고 시 같은 영혼을 지닌 칼리니치의 오두막에서, 화자는 자신이 평생 '농노'라는 한 단어로 묶어 멸시해 왔던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채롭고 깊이 있는 영혼을 지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이 첫 편에서, 자신의 평생의 주제를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길로 펼쳐 보입니다.

가장 사랑받는 단편 가운데 하나인 「베진 초원」은 여름밤의 풍경을 그립니다. 사냥에서 길을 잃은 화자는 한 들판에 이르러,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말을 지키는 다섯 명의 농가 소년들과 마주칩니다. 일곱 살에서 열네 살까지의 이 어린 목동들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마을에 떠도는 무서운 옛이야기들, 물의 정령 루살카의 노래, 숲의 도깨비 레쉬의 발소리, 죽은 자의 영혼이 들판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들려줍니다. 별이 가득한 여름 밤하늘 아래, 강아지의 짖음과 말의 콧김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그 깊은 정적 속에서, 한 어린 영혼이 자기 마을의 옛 신화를 다른 어린 영혼에게 전해 주는 그 풍경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그려 낸 가장 시적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한 페이지입니다.

「가수들」은 한적한 시골의 선술집에서 일어난 한 노래 시합의 이야기입니다. '땜장이' 야시카와 '경쾌한 사내'라 불리는 두 농민이, 단지 농민들 앞에서 누가 더 잘 노래하는지를 겨루기 위해, 마주 앉습니다. 먼저 노래한 '경쾌한 사내'는 화려한 기교로 모두를 매혹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입을 연 야시카는, 기교 없는 한 줄기 단순한 가락 속에 자신의 모든 슬픔과 모든 그리움을 실어, 마치 자기 영혼을 통째로 길어 올려 사람들 앞에 놓아 보이듯이 노래합니다. 그 순간, 선술집 안의 모든 사람이, 마부도, 술꾼도, 떠돌이 거지도, 화자도,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눈물을 흘립니다. 한 농민의 노랫소리가 한 시대의 모든 슬픔을 그 자리에 불러 모으는 듯한,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입니다.

「영지 관리인 비류크」는 비 오는 어느 늦은 밤, 길을 잃은 화자가 한 산림지기의 오두막에 묵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비류크라는 별명을 가진 이 음울한 산림지기는, 영주의 숲을 지키는 일에 무서울 만큼 엄격합니다. 그가 한 가난한 농민을 나무 도둑이라며 붙잡아 와 자신의 오두막에 가두어 놓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화자는 비류크의 외양 뒤에 숨겨진, 굶주린 어린 자식들과,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에 대한 처연한 사연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비류크는 잡아 두었던 농민을 풀어 줍니다. 그것이 자신의 일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한 가난한 자의 굶주린 가족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에. 한 줄의 비판도 없이, 한 시대가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서로의 적으로 만드는지를(그 부조리를) 작가는 이 작은 풍경 하나로 단호히 그려냅니다.

이 외에도 한 노쇠한 시골 의사의 회한을 담은 「시골 의사」, 종교적 영성과 자연 철학으로 화자를 놀라게 하는 한 떠돌이 노인의 이야기 「아름다운 칼들의 카시얀」, 죽음 앞에서 더없이 의연하고 단정한 농민들의 모습을 그린 「죽음」, 한때 영주였으나 지금은 거의 잊혀진 두 늙은 귀족의 우정을 그린 「체르토프하노프와 네도퓌스킨」,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적인 산문 「숲이여, 광야여!」까지, 스물다섯 폭의 풍경이 차례로 펼쳐집니다. 어느 한 편도 거대한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얼굴, 한 마을의 풍경, 한 계절의 빛깔이, 정성스레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 스물다섯 폭의 작은 그림이 모여, 한 시대의 거대한 초상이 우리 앞에 완성되어 있음을.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을 통해 결코 '농노제 폐지'라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격문을 쓴 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그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그의 글을 그 어떤 격문보다도 깊고 오래가는 울림으로 만든 비밀이기도 합니다. 한 권의 작은 풍경화집이 한 시대를 움직인 그 비밀 안에,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고자 한 여러 갈래의 메시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보는 일', 이것이 모든 변혁의 가장 깊은 첫 단추라는 메시지입니다.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4천만 농노들은, 귀족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영지에 딸린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거대한 부조리를 흔들기 위해 그 어떤 정치적 주장도 펼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호리와 칼리니치를, 카시얀과 비류크를, 야시카와 다섯 명의 어린 목동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영혼으로 그려 냈을 뿐입니다. '농노'라는 한 단어 아래 한꺼번에 묶여 있던 4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책 안에서는 하나하나 자기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한 번 한 사람으로 본 이상, 그를 더 이상 재산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둘째, '문학은 외치지 않고도 시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깊은 신념입니다. 작가는 단 한 번도 격렬한 비판의 문장을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농민들의 지혜와 슬픔과 시인의 영혼을, 깊은 정성으로 그려 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조용한 정성이, 그 어떤 폭력적인 외침보다도 더 깊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았습니다. 황제까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이 책의 힘은 결코 분노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연민과 진실한 시선의 힘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움직이고 싶거든, 분노보다 연민이, 외침보다 진실이 더 멀리 간다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가만히 일러 줍니다.

셋째, '자연은 한 시대의 가장 정직한 증인'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러시아의 들판 그 자체입니다. 봄날 새벽의 자작나무 숲, 한여름 정오의 메마른 광야, 가을 저녁의 붉은 노을, 겨울 밤하늘의 거대한 별들. 작가는 이 자연의 풍경을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그러나 그 어떤 풍경화보다도 정직하게) 그려 냅니다. 그리고 그 자연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존엄과 비참이 동시에 펼쳐지지요. 자연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에게 똑같은 햇살을 내리고, 똑같은 비를 뿌릴 뿐입니다. 그 거대한 평등 앞에서, 인간이 만든 신분과 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작고 부끄러운 것인지가, 한 그루 자작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너무도 분명해집니다.

넷째, '무명(無名)의 사람들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일'이 곧 문학의 가장 거룩한 임무라는 메시지입니다. 한 시대를 움직인 황제와 장군들의 이름은 역사책에 또렷이 새겨집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떠받쳤던 수천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 , 들판에서 일하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죽어 간 무명의 사람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습니다.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을 통해, 호리와 칼리니치, 카시얀과 비류크, 야시카와 페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우리 앞에 정성스레 새겨 두었습니다. 그들이 결코 '재산'이나 '농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한 사람의 영혼이었음을, 이 책은 영원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가장 깊은 곳에서 작가는 '우리 모두는 같은 들판에 살고 있다'는 보편적 진실을 들려줍니다. 이 책이 그저 19세기 러시아 농노제에 대한 고발문에만 머물렀다면, 농노제가 폐지된 1861년 이후 이 책의 생명도 함께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농노 해방령이 내려진 지 16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이 책이 한 시대의 한 제도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이름 없이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영혼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선이 있으며, 그들에게 이름과 빛을 돌려주어야 할 누군가의 정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한 들판 위에서, 한 햇살 아래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19세기 러시아의 한 사냥꾼이 들판에서 발견한 그 진실은, 오늘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사냥꾼의 수기』는 결코 빨리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한 편 한 편이 짧기에 도리어, 한 편을 읽고 잠시 책장을 덮고, 그 짧은 풍경의 여운이 가슴 안에서 가만히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다시 다음 편을 펼쳐 읽기에 가장 어울리는 책입니다. 차이콥스키의 〈사계〉 가운데 '10월 - 가을의 노래' 한 곡을 곁에 두시고, 러시아 들판의 자작나무 숲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우리는 호리의 단단한 미소와,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야시카의 슬픈 노랫소리와,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비 오는 밤 비류크의 처연한 시선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실 무렵, 한 사냥꾼이 우리의 어깨 위에 남기고 간 그 깊은 시선의 무게가, 부디 오래도록, 우리 자신의 들판을 다시 바라보는 데에 함께해 주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 책으로 떠나는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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