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하디 · 『이름 없는 주드』
🎵 차 한 잔, 그리고 피아노 한 곡과 함께 · Beethoven, Piano Sonata No.8 'Pathétique' Adagio cantabile
어떤 책은 한 사람의 작가를 침묵으로 몰아넣을 만큼 무거운 진실을 품고 있습니다. 1895년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한 주교에게 분서(焚書)당하고, 비평가들로부터 '추잡한 주드(Jude the Obscene)'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얻으며, 마침내 작가 자신을 평생의 절필로 이끈 한 권의 소설. 토머스 하디의 마지막 장편이자 그의 산문 인생을 마감 짓게 만든 작품, 바로 『이름 없는 주드(Jude the Obscure)』입니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시대에 따라 여러 번 바뀌어 왔습니다. 『미천한 사람 주드』, 『비운의 주드』, 『무명의 주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이름 없는 주드』까지. 제목 하나가 이렇게 거듭 다시 옮겨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Obscure'라는 한 단어 안에는 가난해서 이름이 없는 자, 시대의 빛이 닿지 않는 그늘에 묻혀 사는 자, 그리고 불운한 운명에 짓눌린 자라는 의미가 모두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단어가 곧 주드라는 인물의 일생이자, 하디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19세기 영국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저자 소개 · 토머스 하디 (Thomas Hardy)
토머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영국 도싯(Dorset)주 도체스터 동쪽의 작은 마을 하이어 보컴튼에서 태어나, 1928년 1월 11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후반의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조지 엘리엇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윌리엄 워즈워스를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의 영향 또한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출신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석공(石工)이자 지방의 작은 건축업자였고, 어머니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문학에 빠져들었던 어린 토머스는 학문적 재능을 보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채 16세에 정규 교육을 마치고 지역 건축가 제임스 힉스의 도제로 들어갑니다. 이때 그가 직접 다듬은 돌과 손에 익은 망치의 감각, 그리고 끝내 가지 못한 옥스퍼드를 향한 청년의 시선 — 이 모든 것이 훗날 『이름 없는 주드』의 씨앗이 되어 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1862년 런던으로 옮겨 간 그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근대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건축 사무소에서 제도사로 일했고, 그 사이에도 시 창작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등단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그는 일단 소설로 우회합니다. 1874년 발표한 『광란의 무리를 떠나』가 큰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 『귀향』(1878), 『캐스터브리지의 시장』(1886), 『숲의 사람들』(1887), 『더버빌가의 테스』(1891) 등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잇달아 펴냅니다.
하디의 거의 모든 작품은 영국 남서부의 가상 지방 '웨섹스(Wessex)' — 그의 고향 도싯 주를 모델로 한 — 를 무대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결코 지방 문학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좁은 농촌의 풍경 속에서 인간 보편의 운명, 가혹한 사회 제도, 그리고 시대의 통념과 부딪쳐 부서지는 개인의 비극을 그려냈습니다. 『테스』가 '타락한 여인'을 동정적으로 그려낸 죄로 거센 비난을 받았고, 그 비난은 1895년 『이름 없는 주드』에 이르러 정점에 달합니다. 결국 그는 이 작품을 끝으로 산문에서 손을 떼고, 본래의 꿈이었던 시 창작에만 평생을 바치게 됩니다. 이후 30년 가까이 그는 시인으로서 또 다른 정점에 올랐고, 1910년 메리트 훈장을, 1920년과 1925년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1928년 1월, 그는 두 번째 부인 플로렌스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를 읽어 달라 청한 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자리(Poets' Corner)'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장만은 고인의 뜻에 따라 도싯 스틴스퍼드의 첫 번째 부인 에마의 무덤 곁에 묻혔습니다. 한 거장이 마지막에 지닌 두 마음 — 시인의 영광과 고향의 정 — 이 그렇게 두 곳으로 나뉘어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소설 속의 주요 인물들
『이름 없는 주드』의 인물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시대의 두꺼운 벽 앞에 선 작은 존재들입니다. 그들 모두가 자기 나름의 이상을 품고, 자기 나름의 사랑을 하려 하지만, 끝내 그 시대가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려 했다는 이유로 무너져 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인물들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단순한 선악을 매길 수 없습니다. 그저 깊은 연민이 있을 뿐입니다.
주드 폴리(Jude Fawley)는 이 비극의 중심에 선 청년입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큰 고모 드루실라의 손에서 자란 가난한 시골 소년으로, 직업은 석공입니다. 그는 자기 손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책을 펼쳐 가며 독학으로 고전을 익혀 가는, 빛나는 지적 열망을 품은 청년입니다. 그의 꿈은 단 하나 — 영국 학문의 성지(聖地)인 크라이스트민스터(Christminster, 옥스퍼드를 모델로 한 가상 도시)에 입학해 학자가 되고, 더 나아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펜이 아니라 정과 망치였고, 그의 발 앞에 놓인 길은 학문의 회랑이 아니라 노동의 진창이었습니다. 그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평생을 떠돌게 됩니다.
수 브라이드헤드(Sue Bridehead)는 주드의 사촌이자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지적이고 자유롭고 종교적 회의에 사로잡힌 신여성(New Woman)의 전형으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 문학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모순적이며 잊을 수 없는 여성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위선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꿰뚫어 보면서도, 끝내는 자신이 가장 부정했던 그 제도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변모는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가슴 아픈 페이지를 만들어 냅니다.
아라벨라 돈(Arabella Donn)은 양돈업자의 딸로, 주드와 처음으로 결혼하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관능적이고 현실적이며 자기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해 순박한 주드를 결혼이라는 덫에 걸어 넣는 것도 그녀이고, 결혼이 시들해지자 호주로 떠나 버리는 것도 그녀이며, 마지막에 다시 나타나 주드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가는 것도 결국 그녀입니다. 다만 작가는 그녀를 결코 단순한 악녀로 그리지 않습니다. 가난한 시골 여인이 살아남기 위해 익혀야 했던 처세의 기술 — 그것이 이 인물에게 서린 또 다른 그늘입니다.
리처드 필롯슨(Richard Phillotson)은 주드의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이자, 훗날 수의 첫 남편이 되는 인물입니다. 한때는 그 자신도 크라이스트민스터로 떠나며 주드에게 학문에 대한 열망의 불씨를 심어 준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 또한 대학에 들지 못하고 시골 학교 교사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수보다 스무 살 가까이 연상이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아내의 자율성을 존중해 그녀가 떠나기를 원하자 놓아주는 — 빅토리아 시대 남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섬세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결정 때문에 그는 직업과 사회적 명예를 모두 잃게 됩니다.
'어린 아버지 시간(Little Father Time)'은 주드와 아라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호주에서 자라다 어느 날 주드와 수의 집으로 보내지는 이 어두운 눈빛의 소년은 또래답지 않게 침울하고 세상에 지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사람들에게 '늙은 아버지 시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한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인생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이 인물은 단순한 비극의 도구가 아니라 한 시대가 가난한 아이에게 무엇을 강요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 외에도 주드를 거두어 길렀으나 늘 그의 야망을 꺾으려 했던 큰 고모 드루실라(Drusilla), 가짜 약을 팔며 시골을 떠도는 돌팔이 의사 빌버트(Vilbert), 그리고 주드의 입학 신청서에 차가운 거절을 적어 보내는 크라이스트민스터의 학장까지 — 작은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이 비극이라는 거대한 직조물의 한 가닥 한 가닥을 이루고 있습니다.
줄거리 · 한 청년의 꿈이 부서져 가는 여섯 단락의 풍경
이야기는 영국 남서부 웨섹스의 작은 마을 메리그린에서 시작됩니다. 부모를 잃고 큰 고모의 빵집에서 자란 어린 주드 폴리는, 마을을 떠나 크라이스트민스터로 향하는 학교 선생님 필롯슨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학문의 도시로 떠나는 그의 모습이 이 어린 영혼에게 평생의 별이 되어 새겨진 것입니다. 주드는 그날부터 빵 배달을 다니며 짬짬이 그리스어 문법책과 라틴어 사전을 펼쳐 듭니다. 정규 교육은 없지만, 책 한 권 한 권을 정으로 돌을 쪼듯이 천천히 깎아 나가던 시절이었지요.
청년이 된 주드가 처음 만나는 인생의 함정은 학문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시골 길을 걷던 그는 양돈업자의 딸 아라벨라 돈을 마주칩니다. 관능적인 그녀의 매력에 휘말려 짧은 관계를 가진 주드에게, 그녀는 임신을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명예와 도리를 지키려 한 순박한 주드는 결혼을 결심하지만, 곧 임신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결혼이라는 제도의 끈은 그의 발목을 옭아맨 뒤였고, 책과 꿈으로 가득했던 그의 머릿속은 가난한 신혼의 다툼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머지않아 아라벨라는 그를 두고 호주로 떠나 버리고, 주드는 자살 시도까지 한 끝에 자신을 추스르고 마침내 오랜 꿈의 도시 크라이스트민스터로 향합니다.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주드는 석공으로 일하며 대학의 회색 돌담을 매일 바라봅니다. 그는 다섯 곳의 단과대학에 입학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돌아온 답장은 단 한 통 — "노동에 더 적합한 직업이 있을 것"이라는 차가운 거절뿐이었습니다. 학문의 성소(聖所)는 그가 다듬은 돌로 지어진 곳이건만, 정작 그의 발은 그 안으로 들여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무렵, 그는 사진 한 장으로만 알고 있던 사촌 수 브라이드헤드를 만나게 됩니다. 교회 용품 가게에서 일하는 이 지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인에게 주드는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큰 고모의 경고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쩐 일인지 주드는 자신의 옛 스승 필롯슨에게 수를 소개합니다. 사범학교 진학을 꿈꾸는 수가 보조 교사로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호의에서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 자신의 사랑을 자기 손으로 떠밀어 보낸 행위가 되었습니다. 필롯슨은 곧 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의리감에 사로잡힌 수는 그와 결혼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결혼 직후 수는 깨닫게 됩니다 —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주드이며, 필롯슨과의 부부 관계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이혼 청원을 받은 필롯슨은 사회적 비난과 직업의 상실을 모두 감수하면서 그녀를 놓아 줍니다.
한편 주드 또한 아라벨라와 정식으로 갈라서고, 마침내 수와 함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을 죽인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부가 아니면서 부부처럼 살아갑니다. 두 아이를 낳고, 호주에서 보내져 온 주드의 첫아들 '어린 아버지 시간'까지 함께 데리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셋이나 거느린 이들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 사회의 시선은 가혹했습니다. 주드는 일자리를 잃고, 가족은 마을에서 마을로 쫓겨다니며 정처 없이 떠돕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소설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가 펼쳐집니다. 어느 비 오는 날, 또다시 묵을 방을 구하지 못해 지친 가족이 임시 숙소에 들었을 때, '어린 아버지 시간'은 부모가 자기들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린 영혼은 두 동생을 손수 목매달고, 자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우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Done because we are too menny)." 한 어린아이의 이 한 마디는, 19세기 영국 사회가 가난한 가정에 가한 모든 압력을 응축한 가장 끔찍하고 가장 슬픈 절규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수는 무너집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이 가족을 죽였다고 믿게 되고, 한때 그토록 부정했던 결혼과 종교의 품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임신 중이던 셋째 아이마저 유산으로 잃은 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겠다며 첫 남편 필롯슨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그토록 사랑하지 않는다 외쳤던 남자, 그토록 부부 관계를 거부했던 그 남자에게로. 빅토리아 사회의 통념이 한 자유로운 여인의 영혼을 어떻게 비틀어 무너뜨리는지를, 작가는 더할 나위 없이 처절하게 보여 줍니다.
수를 잃은 주드는 다시 한번 아라벨라의 술수에 걸려, 술에 취해 있는 사이 그녀와 재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차가운 셋방에서 홀로 시름시름 앓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갑니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창밖 크라이스트민스터의 거리에서는 학위 수여식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평생 닿고자 했으나 끝내 닿지 못한 그 학문의 축제 소리가, 죽어가는 그의 머리맡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한편 아라벨라는 남편이 죽은 침대 곁에서 이미 다음 남편감을 물색하고 있었지요. 한 인간의 일생이 그렇게, 너무도 조용하게, 너무도 무참하게, 닫혀 갑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디는 이 작품을 통해 한 가난한 청년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던 세 개의 거대한 기둥 — 교육, 결혼, 종교 — 을 정면으로 겨누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출간 즉시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그를 절필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오늘 우리가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을 다시 펼쳐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째, '태어난 자리가 한 인간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사회는 정의로운가'라는 통렬한 질문입니다. 주드는 옥스퍼드의 어떤 학생보다도 절실하게, 그리고 어쩌면 더 깊이 있게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석공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는 그 회색 돌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학문이 특정한 계급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사회, 재능이 아닌 출신이 운명을 가르는 시대 — 하디는 그 차가운 진실을 결코 누그러뜨려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비판은 19세기 영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어디에서 태어났는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에, 주드의 좌절은 시대를 넘어 우리의 가슴을 친 것입니다.
둘째, '사랑이 식은 결혼에 평생을 묶어 두는 제도는 인간을 위한 것인가'라는 도전입니다. 하디는 결혼이라는 형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는 묻습니다 —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의무와 종교의 사슬만이 남아 두 사람을 묶어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주드와 아라벨라, 수와 필롯슨, 그리고 결혼이라는 형식을 거부했던 주드와 수까지 — 작가는 네 가지 형태의 부부 관계를 나란히 보여 주며, 어떤 결혼이 진정 인간을 살리고 어떤 결혼이 인간을 죽이는지를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합니다. 19세기에 '의문은 사람을 죽인다'고 일컬어진 결혼의 절대성을 그는 정면으로 의문에 부쳤습니다.
셋째, '당대의 종교가 정녕 인간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짓누르는가'라는 회의입니다. 주드는 어린 시절 깊은 신앙을 품고 성직자의 길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교회는 가난한 자에게 학문의 문을 닫고, 결혼이라는 형식에 매달려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며, 고통받는 가정을 외면하는 곳이었습니다. 더욱 비통한 것은 자유사상가였던 수가 마지막에 그 종교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녀의 회귀는 종교의 위로가 아니라 자기 학대에 더 가까웠습니다. 작가는 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인간을 짓누르는 종교의 모습을 우리 앞에 처참할 만큼 정직하게 펼쳐 보일 뿐입니다.
넷째, '운명은 어디까지가 운명이고, 어디부터가 사회의 죄인가'라는 깊은 사색입니다. 19세기 후반의 자연주의 문학은 인간이 유전과 환경의 산물임을 강조했고, 하디 또한 그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려 낸 주드의 비극은 단순히 운명에 휩쓸린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자신의 통념과 제도로 한 인간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발문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버지 시간'의 그 가슴 찢는 쪽지 — "우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 는 단지 한 어린아이의 절망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일조차 죄가 되게 만든 한 시대의 죄에 대한 묵묵한 증언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가장 깊은 곳에서 하디는 우리에게 '한 인간의 존엄'에 대해 말합니다. 주드는 끝내 학자가 되지 못했고, 끝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살지도 못했으며, 끝내 자식들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에서의 '성공'과는 가장 먼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를 결코 비루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 안에서, 자신의 가난 안에서, 자신의 굴욕 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은 한 인간의 모습 — 하디는 그 모습이야말로 빛나는 것이라고, 가만히 그러나 단호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어둠은 결코 절망의 어둠만은 아닙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한 인간이 끝까지 인간이고자 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가장 깊은 빛이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주드』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시대와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 그 잔향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참 동안 가슴 안에서 울리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울림을 견디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어쩌면 한 가지 깨달음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 한 시대의 그늘에서 사라져 간 모든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들 자신만의 이름과 빛과 존엄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이 시대를 지나서도 끝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차 한 잔과 함께, 그러나 조금은 마음을 단단히 여미고, 이 한 권의 책을 만나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 책으로 떠나는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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