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 목소리로 산 여자 — 열한 번째 이야기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고독이 있다. 선택한 고독과, 남겨진 고독. 마리아 칼라스의 파리는 그 두 가지가 뒤섞인 공간이었다. 무대를 잃었고, 오나시스를 잃었으며, 목소리마저 달라진 여인이 조르주 망델 거리 36번지에 혼자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고독 안에서도 마리아였다.
조르주 망델 거리 36번지
파리 16구, 조르주 망델 거리 36번지(36 Avenue Georges Mandel).
부유하고 조용한 파리 서쪽 주거 지역.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멀지 않고, 센 강이 가까운 곳. 높은 천장, 넓은 창문,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
마리아 칼라스는 1960년대 초부터 이 아파트에 살았다. 처음에는 오나시스와 함께하는 파리 생활의 일부로서 이 도시를 선택했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오페라계와 너무 가까웠다. 뉴욕은 미국이었다. 파리는 그 사이 어딘가, 마리아가 마리아로 있을 수 있는 도시였다.
오나시스가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한 뒤, 파리는 달라진 의미를 가졌다.
더 이상 오나시스와 함께하는 파리가 아니었다. 마리아 혼자의 파리가 되었다.
아파트는 우아했다. 높은 천장, 스타인웨이 피아노, 오래된 유럽식 가구들. 창밖으로는 파리의 지붕선이 보였다. 방 하나하나에 마리아의 삶이 쌓여 있었다. 무대 의상들, 음반들, 악보들, 오나시스에게 받은 것들.
그 공간이 마리아의 세계가 되었다.

하우스키퍼 브루나
마리아의 파리 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브루나 라졸리니(Bruna Laziollini).
마리아의 하우스키퍼이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마리아가 밀라노에서 살 때부터 함께한 여인이었다. 마리아가 파리로 이사했을 때 브루나도 함께 왔다.
브루나는 요리하고, 청소하고, 마리아의 일상을 관리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브루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마리아가 기분이 좋을 때, 브루나는 그 기쁨을 함께했다. 마리아가 힘든 날에, 브루나는 그 곁에 있었다. 말이 필요 없을 때 말하지 않았고, 필요할 때 말했다.
브루나가 마리아를 찍은 사진들이 있다. 아파트 안에서, 침대 위에서, 창가에서. 공식 사진사가 찍은 것이 아닌, 일상의 마리아가 담긴 사진들이다.
큰 안경을 쓰고 침대에 앉아있는 마리아. 맨얼굴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마리아. 개들 사이에 있는 마리아.
그 사진들 속에는 라 디비나가 없었다. 그냥 마리아가 있었다.
마리아는 브루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브루나는 나를 칼라스로 보지 않는다. 마리아로 본다. 그것이 내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개들과의 생활
파리 아파트에서 마리아와 함께한 또 다른 존재들이 있었다.
개들이었다.
마리아는 개를 사랑했다. 파리 생활 동안 여러 마리의 개를 키웠다. 푸들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름들이 전해진다. 피클(Pickle), 다이도(Dido), 예카(Yeka).
개들은 마리아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인간 관계가 마리아를 끊임없이 상처 입혔다. 어머니, 메네기니, 오나시스. 사랑했지만 상처받은 관계들. 그러나 개들은 달랐다. 조건 없이 곁에 있었다. 마리아가 라 디비나인지 아닌지를 개들은 몰랐다. 그냥 마리아 곁에 있었다.
마리아가 아침에 일어나면 개들이 달려왔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개들이 근처에 누웠다. 혼자 저녁을 먹을 때 개들이 옆에 있었다.
그 단순한 동반이 마리아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파리의 일상
마리아의 파리 일상이 어떠했는지는 브루나의 증언과 일부 지인들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다.
아침은 늦게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밤에 잠들기 어려워했고, 그 탓에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브루나가 커피를 준비했다. 마리아는 창가에 앉아 파리의 아침을 바라보았다.
오전에는 피아노 앞에 앉는 날들이 있었다. 악보를 폈다. 때로는 노래를 불러보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였다. 브루나만 들었다.
오후에는 때로 외출했다. 단골 레스토랑, 단골 카페. 파리의 오래된 음식점들에서 마리아는 아직 알아보는 손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그 외출이 점점 줄어들었다.
저녁에는 친구들이 찾아오는 날이 있었다. 프랑스 문화계의 인물들, 음악계의 지인들. 마리아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손님들이 떠난 뒤 혼자 남았다.
그 혼자 남음이 가장 긴 시간이었다.
외로움과 마약
이 시기 마리아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을 말해야 한다.
처방 약물에 대한 의존이었다.
고별 투어 시절부터 마리아는 수면 문제가 심각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길어졌다. 신체적 고통도 있었다. 피부근염으로 인한 근육 약화가 일상적인 불편함을 가져왔다.
의사들이 처방약을 주었다. 그 중에 만드락스(Mandrax)라는 수면 유도제가 있었다. 오나시스가 처음 소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의사의 처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음에는 잠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존이 생겼다.
그것이 마리아의 마지막 시절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마리아를 알았던 사람들은 이 시기의 마리아가 이전과 달랐다고 했다. 반응이 느려졌다. 집중이 어려웠다. 어떤 날에는 오전에 일어나지 못했다.
만드락스에 대한 의존이 마리아를 더욱 고립시켰다. 몸이 달라지면서 외출이 줄었다. 외출이 줄면서 고립이 깊어졌다. 고립이 깊어지면서 약에 더 의존했다.
그 악순환이 마리아의 마지막 해들을 물들였다.
심리학자 폴 윙크(Paul Wink)는 이 시기의 마리아를 이렇게 분석했다.
"마리아는 오페라 없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오나시스가 오페라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는 오나시스가 그 답이었다. 그러나 오나시스도 사라졌을 때, 마리아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 공허함이 그녀를 절망으로, 그리고 약으로 이끌었다."

그래도 음악은 있었다
파리의 어두운 시절에도 음악은 마리아를 떠나지 않았다.
아파트 안에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었다. 마리아는 그 피아노 앞에 자주 앉았다. 방에서 방으로 피아노를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정 각도에서, 특정 빛 아래에서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악보들을 펼쳤다. 이달고에게 처음 배웠던 아리아들. 라 스칼라에서 수십 번 노래했던 것들. 고별 투어에서 마지막으로 불렀던 것들.
마리아는 그 악보들을 읽었다. 그리고 때로 소리 없이 노래했다. 입술이 움직이고, 호흡이 악보의 리듬을 따라갔다. 소리는 나오지 않아도 음악은 있었다.
그것이 마리아의 방식이었다.
소리가 없어도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악은 머릿속에 있고, 몸 안에 있고, 손끝에 있다. 무대가 없어도, 청중이 없어도, 목소리가 달라져도.
마리아는 그것을 알았다.
어머니와의 영원한 단절
파리에서의 마리아를 이야기할 때, 어머니 에반겔리아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이 눈에 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끊겨 있었다.
마리아가 어머니와 공식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은 1950년대 초였다. 에반겔리아가 딸의 이름을 팔아 돈을 벌려 했다는 것이 계기였다. 마리아의 이름으로 쓴 책을 출판하고, 인터뷰를 하고, 딸의 사생활을 공개했다.
마리아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에반겔리아는 1971년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마리아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마리아를 냉혹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냉혹함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쌓인 상처. 사랑받지 못한 딸. 마리아가 아니라 마리아의 목소리를 원했던 어머니.
그 상처가 용서보다 더 강했다. 그것이 마리아의 잘못인가.
파리의 아파트에서 마리아는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으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뒤섞인 무언가인지.
마리아는 그 감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파리가 마리아에게 준 것
파리는 마리아에게 무대도, 오나시스도 주지 못했다. 목소리를 되돌려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파리가 마리아에게 준 것이 있었다.
익명성.
밀라노에서 마리아는 칼라스였다. 라 스칼라의 소프라노,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여왕.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알아보았고,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자리가 준비되었으며, 언론이 따라다녔다.
파리에서는 달랐다.
물론 파리도 칼라스를 알았다. 그러나 파리는 도시 자체가 너무 커서, 너무 많은 것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어서, 마리아가 평범한 파리 시민처럼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조용히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그 평범함이 마리아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라 디비나가 아닌 마리아로 있을 수 있는 도시. 그것이 파리였다.
마리아는 파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파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나는 그냥 이 아파트에 사는 여인이다. 그것이 때로는 가장 필요한 것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와의 기묘한 관계
오나시스가 재클린과 결혼한 뒤, 세 사람의 관계는 기묘한 삼각형이 되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결혼했지만 마리아와 계속 연락했다. 파리에 올 때 마리아를 만나려 했다. 그것이 재클린을 무시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오나시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나시스의 개인 비서였던 키키 페로우디 무트사트소스(Kiki Feroudi Moutsatsos)는 나중에 이렇게 증언했다.
"오나시스 씨는 재클린과 결혼한 뒤에도 마리아를 사랑했다. 그것은 그가 재클린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두 여인에게 다른 종류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마리아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공개적으로는 침묵했다. 사적으로는 그 연락을 완전히 끊지 않았다. 오나시스가 연락하면 받았다. 만나자고 하면 만났다.
그것이 약함이었는가. 아니면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인가.
재클린과 마리아는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기묘한 삼각형 안에서 두 여인은 오나시스라는 한 사람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재클린이 곁에 있었고 마리아는 파리 아파트에 혼자 있었다. 그것이 그 삼각형의 끝이었다.
오나시스의 죽음 이후
1975년 3월,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는 그 소식을 파리에서 들었다.
가까운 지인들이 마리아를 찾았다. 마리아는 그들을 만났다. 그러나 오나시스의 죽음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갔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했던 것은 나와 함께 있다."
그것이 마리아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이 담담하게 들리지만, 그 담담함이 무엇을 덮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오래전에 잃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다시 잃는 것. 법적으로 다른 여인의 남편이었지만 여전히 마리아의 삶 어딘가에 있었던 사람이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
오나시스의 죽음 이후 마리아의 외출이 더 줄었다. 브루나의 증언에 따르면 아파트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공간에서 마리아는 무엇을 했는가.
편지를 썼다. 오래된 사람들에게. 어릴 때 아테네에서 알았던 사람들, 이달고의 레슨실에서 함께였던 사람들, 라 스칼라의 무대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 편지들이 지금도 일부 보존되어 있다. 마리아의 손글씨로 쓰인 그 편지들 안에는 회고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악보가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읽는 마리아.
친구들이 기억하는 마리아
파리의 마지막 시절 마리아를 만났던 사람들의 증언들이 있다.
프랑스의 지인 하나는 이렇게 기억했다.
"마리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큰 눈, 그 높은 광대뼈. 그러나 그 눈 안에 있는 것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불꽃이 있었다. 파리의 마지막 시절에는 그 불꽃이 가끔 켜졌다가 꺼졌다. 그러나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벤초(Roberto Benço)는 마리아와 함께 피아노 앞에 앉은 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함께 했다. 마리아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 나는 손이 멈췄다. 그 목소리는 예전과 달랐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 그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 그 감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녀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피아노가 멈추고, 그냥 들었다. 그것이 가장 솔직한 반응이었다.
마리아는 그날 노래가 끝나고 말했다.
"이달고 선생님이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혼자 웃었다.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시도
파리에서 마리아는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성악 코치와 함께 작업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정기적으로. 새로운 발성 기법을 시도해보고, 달라진 신체 조건에서 어떻게 소리를 만들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어떤 날에는 희망적이었다. 소리가 나왔다. 예전과 달랐지만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었다.
어떤 날에는 절망적이었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반복이 마리아를 지치게 했다.
성악 코치 중 한 명이 말했다.
"마리아는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위대한 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슴 아픈 점이었다.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때마다 더 아팠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마리아가 평생 살아온 방식이었다. 뉴욕의 가난도, 아테네의 전쟁도, 어머니의 냉담함도 마리아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목소리를 잃는 것은 달랐다.
의지로 이길 수 없는 적을 만난 것이었다.
마지막 편지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쓴 편지들이 일부 공개되어 있다.
그 편지들에서 마리아는 여전히 미래를 이야기했다.
"내년 봄에는 다시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목소리가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요즘은 잠을 잘 잔다. 파리의 가을이 아름답다. 창밖으로 낙엽이 보인다."
"개들이 건강하다. 브루나도 건강하다. 나도 괜찮다."
그 편지들이 나온 것이 1977년 여름이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그 편지들을 읽으면 마리아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년 봄을 생각했다. 목소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파리의 가을 낙엽을 보았다.
그것이 마리아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은둔의 의미
마리아 칼라스의 파리 시절을 단순히 쇠퇴와 고독으로 읽는 것은 불완전한 독해다.
마리아는 은둔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은둔이 단순한 포기가 아니었다.
마리아는 파리에서 책을 읽었다. 음악을 들었다. 편지를 썼다. 피아노를 쳤다. 친구들을 만났다. 브루나와 이야기했다. 개들과 산책했다.
그것들이 화려하지 않았다. 라 스칼라의 커튼콜도, 오나시스 요트의 지중해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삶이었다.
은둔은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세상이 원하는 칼라스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마리아로 사는 것.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대에서 모든 것을 주었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줄 시간이다."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 그것이 파리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충분했는가. 그 시간이 마리아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는가.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마리아가 그 시간 안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다는 것, 미래를 생각했다는 것, 브루나와 개들과 함께했다는 것. 그것이 남아있다.
🎵 오늘 감상곡 : 파리에서 부른 노래
① 「마리아 칼라스 : 파리 콘서트 (1958년)」
칼라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실황
파리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이다. 아직 목소리가 달라지기 전, 그러나 이미 파리를 자신의 도시로 만들어가던 시절의 칼라스. 청중을 향한 마리아의 프랑스어 인사가 담겨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 도시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청중 앞에서 노래하는 칼라스.
② 비제 「카르멘」 중 '하바네라(Habanera)'
칼라스, 조르주 프레트르 지휘 (1964년 파리 녹음)
마리아가 파리에서 녹음한 가장 중요한 음반 중 하나다. 스페인 여인 카르멘의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아리아를 칼라스가 노래한다. 카르멘은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여인이다. 누구의 것도 되지 않으려는 여인. 그 카르멘을 노래하는 파리의 칼라스 안에서, 마리아 자신의 무언가가 들린다.
두 녹음을 들으면서 생각해보시길. 이 음악들이 녹음된 파리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다. 그 도시가 마리아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무대도 없고, 오나시스도 없고, 목소리도 달라진 그 도시에서 마리아가 여전히 찾아낸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파리는 마리아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도시는 마리아가 마리아로 있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다음 편 예고
제12편 | 칼라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
1977년 9월 16일 아침, 파리. 브루나가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그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쉰세 살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긴 목소리들이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칼라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 그 목소리가 왜 지금도 살아있는지를 이야기하는 마지막 편을 전합니다.
'음악 > 거장의 초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칼라스, 제12편 | 칼라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 (0) | 2026.05.08 |
|---|---|
| 칼라스, 제10편 | 목소리를 잃다 : 가장 잔인한 이별 (0) | 2026.05.06 |
| 칼라스, 제9편 | 오나시스 : 사랑인가 파멸인가 (0) | 2026.05.05 |
| 칼라스, 제8편 | 체중 감량과 목소리의 변화 : 아름다움의 대가 (1) | 2026.05.02 |
| 칼라스, 제7편 | 테발디와의 라이벌 : 두 개의 태양 (1) | 2026.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