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간을 말하다」EP.29

1519년, 멕시코 고원.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테노치티틀란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언덕을 넘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거대한 호수 위에 도시가 있었습니다.
수로가 도시를 가로지르고, 수백 개의 카누가 오갔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습니다. 시장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코르테스의 부관 베르날 디아스는 훗날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경이로움에 말을 잃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본 것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과도 달랐다."
이 도시의 인구는 20만 명. 당시 런던의 인구보다 많았습니다. 파리와 맞먹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이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반 룬은 이 장면 앞에서 오랫동안 침묵합니다. 예술사가로서 그가 말해야 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챕터에서 아름다움은 파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위대한 예술이 존재했고, 그 예술이 사라졌습니다. 이 사실을 외면하면 신세계의 예술을 절반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콜럼버스 이전의 세계 : 또 다른 문명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유럽인들은 이 대륙을 '신세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향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놀랍도록 다양한 문명들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아즈텍, 유카탄 반도의 마야, 안데스 산맥의 잉카. 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문화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반 룬은 이 다양성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그는 씁니다. 유럽 예술사가 연구해온 전통들,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르네상스. 이 모든 것들이 세계 예술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태평양 반대편에서, 대서양 너머에서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서로 전혀 모르는 채로.
이 챕터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예술은 보편적인가. 인류는 공통된 미적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예술은 완전히 문화 특수적인가.
아메리카의 예술들을 보면 이 질문에 복잡한 답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마야 : 시간을 계산한 문명의 예술
반 룬은 마야 문명을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그 정교함과 완성도에서 그리스 문명과 견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마야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형성되어 기원후 250~900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멕시코 남부,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 수십 개의 도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치첸이트사, 팔렝케, 우스말, 코판, 티칼.
마야의 건축은 경이롭습니다.
치첸이트사의 쿠쿨칸 피라미드.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이 석조 구조물은 춘분과 추분에 놀라운 현상을 보여줍니다. 오후 늦게 태양빛이 피라미드 모서리에 닿으면 계단 위로 삼각형의 빛과 그림자가 생겨납니다. 마치 깃털 달린 뱀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이것이 의도된 설계입니다. 마야 건축가들이 태양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건물을 배치했습니다.
이 건물 하나만으로도 마야의 천문학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마야인들은 365일 태양력과 260일 의식력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이 두 달력이 동일한 날짜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52년. 그들은 이 주기를 달력의 한 바퀴로 보았습니다.
마야의 문자 체계도 주목해야 합니다. 약 800개의 글리프로 이루어진 이 문자는 소리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복잡한 체계입니다. 마야인들은 이 문자로 천문학 계산, 역사 기록, 신화, 의례 절차를 기록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문자 체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신부 디에고 데 란다가 1562년 마야 문서들을 모아 불태웠습니다.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수천 년의 지식이 그 불꽃 속에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마야 문서는 단 네 권입니다.
반 룬은 이 사실 앞에서 분노를 감추지 않습니다. 그는 씁니다. 예술을 불태우는 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고. 그것은 기억의 살인이라고. 한 민족의 수천 년 축적된 지식과 아름다움을 없애는 것. 이것이 예술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큰 폭력입니다.
마야 조각과 회화 : 인간과 신 사이
마야 예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조각입니다.
팔렝케 궁전의 부조들. 파칼 왕의 석관 덮개. 코판의 계단에 새겨진 글리프와 인물상들. 이 조각들에서 마야인들이 인체를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야의 인체 표현은 그리스와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가 이상화된 자연스러운 인체를 추구했다면, 마야는 의도적으로 인체를 변형했습니다. 귀족들은 이마를 납작하게 만드는 두개골 변형을 아름다움의 표시로 여겼습니다. 눈을 사시로 만드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야의 미의 기준이 우리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반 룬은 이 차이에서 중요한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 문화가 자신만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발전시킵니다. 그 기준이 우리에게 낯설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닙니다. 마야인들에게 납작한 이마가 아름다웠다면, 그것이 그들의 예술에서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 룬은 보편성도 봅니다. 마야 벽화들, 특히 보남팍(Bonampak)에서 발견된 벽화들을 보면 인간의 표정과 감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투의 공포, 포로의 절망, 승리자의 의기양양함. 이 감정들은 어느 문화권에서 보아도 이해됩니다. 감정의 언어는 보편적입니다.
아즈텍 : 태양을 위한 예술
아즈텍 문명. 14세기에 멕시코 고원에 등장한 이 문명은 불과 200년 만에 중앙 멕시코 전체를 지배하는 제국이 되었습니다.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텍스코코 호수 위에 건설된 인공 섬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거대한 신전 구역, 템플로 마요르가 있었습니다. 이중 피라미드 꼭대기에 두 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비의 신 틀랄록을 위한 것, 다른 하나는 전쟁의 신 위칠로포치틀리를 위한 것.
아즈텍 예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태양석(Sun Stone)입니다.
지름 3.6미터, 무게 24톤의 이 거대한 원형 석조물은 아즈텍의 우주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태양신의 얼굴. 그 주위로 네 개의 이전 태양 시대를 나타내는 패널. 그 바깥으로 현재의 시대를 나타내는 날짜 기호들. 그리고 가장 바깥에 두 마리의 불 뱀이 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달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의 지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하나의 원 안에 담은 것.
반 룬은 이 태양석 앞에서 마야의 피라미드 앞에서와 같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수학과 천문학과 예술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했는지. 그 통합이 돌 위에 새겨진 것.
그러나 아즈텍 예술에는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인신 공양. 아즈텍인들은 태양이 계속 뜨기 위해서는 인간의 피를 바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신전 꼭대기에서 포로들의 심장을 꺼내 태양에 바치는 의식이 행해졌습니다.
반 룬은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으로 아즈텍 문화 전체를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는 결론 내립니다. 아름다운 예술과 잔인한 의식이 같은 문화 안에 공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즈텍 문명의 복잡성이고, 이것이 인간 문명 전체의 복잡성이기도 합니다.

잉카 : 황금과 돌의 제국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위대한 문명이 있었습니다. 잉카.
기원후 1400년대에 절정에 달한 잉카 제국은 오늘날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 북부를 포함하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광대한 영토를 하나의 제국으로 유지하기 위해 잉카인들은 4만 킬로미터가 넘는 도로망을 건설했습니다.
잉카 건축의 특징은 돌입니다.
마추픽추. 해발 2,400미터의 안데스 산 정상에 세워진 이 도시를 보면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어떻게 이 높이까지 거대한 돌들을 옮겼는지. 어떻게 시멘트 없이 이토록 정밀하게 돌을 맞추었는지.
잉카의 석조 기술은 경이롭습니다. 어떤 벽의 돌들은 면도날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밀하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밀함이 오히려 내진 설계가 됩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돌들이 약간씩 움직이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5,000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잉카의 황금 공예도 주목해야 합니다.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화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태양신 인티의 땀이었습니다. 신성한 재료였습니다. 쿠스코의 코리칸차, 즉 태양 신전은 내부가 온통 황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벽, 바닥, 천장. 심지어 정원에도 황금으로 만든 옥수수, 라마, 꽃들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모두 녹였습니다.
반 룬은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표현합니다. 예술적으로 정교한 황금 작품들이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서 황금 덩어리로 녹아내렸습니다. 물질의 가치가 예술의 가치를 압도한 순간. 이것은 단순한 약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문명의 기억을 녹이는 행위였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예술 : 다양성의 대륙
아즈텍, 마야, 잉카라는 세 대제국만이 아메리카 예술의 전부가 아닙니다.
북아메리카에도 풍성한 예술 전통들이 있었습니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마운드 빌더(Mound Builders) 문화. 거대한 흙더미로 기념물을 세운 이 문화는 오하이오의 그레이트 서펜트 마운드(Great Serpent Mound)를 남겼습니다. 약 400미터 길이의 뱀 모양으로 이어지는 이 흙 구조물은 항공에서만 전체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오늘날에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남서부 지역의 푸에블로 문화.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의 절벽에 만들어진 메사 버드(Mesa Verde) 주거지들. 자연 절벽의 움푹 들어간 공간에 수백 개의 방을 만든 이 건물들은 건축적 지혜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태평양 북서부의 토템폴 문화. 틀링깃, 하이다, 친족 부족들이 만든 이 높은 나무 기둥들은 가문의 역사와 신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예술 형식이었습니다. 독수리, 곰, 범고래, 천둥새. 이 동물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듭니다.
반 룬은 이 북아메리카 예술들에서 공통된 하나의 특성을 봅니다. 자연과의 깊은 연결. 아즈텍과 잉카의 도시 문명들이 자연을 정복하려 했다면, 북아메리카의 많은 문화들은 자연 속에 스며드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차이가 예술에도 반영됩니다. 압도하는 기념물이 아닌,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예술.

정복 : 예술의 파괴
1519년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1532년 피사로가 잉카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스페인은 아메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에 일어난 일을 반 룬은 냉정하게 기록합니다.
신전들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가톨릭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같은 돌을 사용해서. 멕시코시티의 대성당은 템플로 마요르를 부수고 그 돌로 지었습니다.
황금 공예품들이 녹았습니다. 마야 문서들이 불탔습니다. 아즈텍의 부호 체계를 아는 사제들이 죽었습니다. 잉카의 구전 전통을 담당하는 아마우타들이 사라졌습니다.
전염병이 나머지를 했습니다. 천연두, 홍역, 독감. 유럽인들이 가져온 이 질병들에 면역이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급속도로 죽어갔습니다. 일부 추정에 의하면 정복 후 100년 사이에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의 90퍼센트가 사라졌습니다.
예술가들도 죽었습니다. 그들의 기술을 전수받을 다음 세대가 사라졌습니다. 전통이 끊겼습니다.
반 룬은 이것을 예술사의 관점에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봅니다. 단순히 물건들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기술과 세계관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예술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씁니다. 역사에서 문명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파괴가 이토록 철저해야 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더 많은 것을 보존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인류 예술사의 가장 큰 손실 중 하나입니다.
혼합 : 파괴 후에 남은 것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파괴와 동시에 혼합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의 기독교 예술과 아메리카 토착 예술이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멕시코의 교회 건축들을 보면 이 혼합이 선명합니다. 유럽 바로크 양식의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장식에 아즈텍 모티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꽃 문양, 옥수수 패턴, 태양 상징. 원주민 장인들이 유럽 교회를 짓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장식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Virgen de Guadalupe). 1531년 원주민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했다고 전해지는 이 성모 이미지는 멕시코 문화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기독교와 아즈텍의 종교성이 만난 지점. 이 이미지를 통해 원주민들은 새로운 신앙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페루의 쿠스코 대성당 내부에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인데, 예수와 제자들이 식탁 위에 먹는 것이 기니피그입니다. 잉카 문화에서 기니피그는 축제 음식이었습니다. 원주민 화가가 유럽 성경 장면을 자신들의 문화로 번역한 것입니다.
반 룬은 이 혼합의 예술에서 인간 문화의 회복력을 봅니다. 파괴가 있었지만 완전한 소멸은 없었습니다. 억눌렸지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술의 생명력입니다.
반 룬이 아메리카 예술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아메리카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예술의 보편성과 다양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 챕터를 쓰면서 유럽 중심적 예술사의 한계를 깊이 인식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평생 연구한 예술,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그것들은 인류 예술의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대서양 너머에서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충동으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만들려는 충동. 이것은 보편적입니다. 마야 신전이나 그리스 파르테논이나, 아즈텍 태양석이나 로마 판테온이나, 모두 같은 충동에서 나왔습니다. 자신보다 큰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것. 시간을 넘어 기억을 남기려는 것. 세계의 질서를 아름다운 형태로 표현하려는 것.
그러나 그 충동이 표현되는 방식은 문화마다 달랐습니다. 마야의 달력적 정밀함, 아즈텍의 우주론적 상징성, 잉카의 석조 완벽함,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연과의 공명. 이 모든 방식들이 옳았습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다른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반 룬은 1937년 이 책을 쓰면서 식민주의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세계를 살았습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합니다. 더 강한 것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정복한 것이 정복당한 것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사라진 마야 문서들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그 알 수 없음이 인류 예술사의 가장 큰 공백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아있는 것들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마추픽추의 돌들을,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를, 박물관에 보존된 아즈텍 조각들을. 그리고 이 예술들을 만든 사람들의 후손들을. 그들의 살아있는 문화 전통을.
예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압받아도, 파괴되어도, 시간이 지나도. 그것은 다른 형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계속됩니다. 아메리카의 예술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아메리카 문명의 신비로움과 예술적 깊이를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카를로스 차베스, 교향시 《신포니아 인디아》 : 멕시코의 작곡가 차베스가 아즈텍과 마야의 음악 전통을 현대 교향악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 원주민 리듬과 선율이 20세기 오케스트라 안에서 살아납니다. 정복 이전 아메리카의 소리가 어떠했을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피아노 소나타 1번》 : 아르헨티나 작곡가가 남아메리카 원주민 음악의 리듬과 에너지를 현대 피아노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 잉카 문명의 안데스적 힘과 생명력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폭발합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옵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눈과 귀가 동시에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회화와 조각이 혁명을 겪는 동안, 음악에서도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중세의 단선율이 다성음악으로, 교회 음악이 세속 음악으로, 악보가 인쇄되어 대중화되는 과정. 눈이 세계를 새롭게 보기 시작할 때 귀도 세계를 새롭게 듣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음악이 어떻게 그림과 함께 피어났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30 : 눈과 귀의 각성: 새로운 눈이 보는 법을 배웠을 무렵 새로운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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