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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27 : 빛을 담은 물감 : 유화의 발명, 회화가 세계를 품다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1.

「예술, 인간을 말하다」EP.27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년) — 런던 내셔널 갤러리

1434년, 플랑드르 브뤼헤.
한 남자가 작은 나무 패널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붓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붓에 묻히는 것은 달걀 노른자에 갠 안료가 아닙니다. 아마인유(linseed oil)에 녹인 안료입니다.
그는 천천히, 층층이 칠합니다. 첫 번째 층이 마르면 그 위에 두 번째 층을. 두 번째 층이 마르면 세 번째 층을. 각 층이 얇고 반투명합니다. 빛이 각 층을 통과하여 아래층에서 반사되어 돌아옵니다.
완성된 그림을 봅니다.
방 안이 살아있습니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그 빛이 신부의 하얀 옷에 부딪혀 반짝입니다. 벽에 걸린 볼록 거울 안에 방 전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샹들리에의 초 하나하나가 빛을 발합니다. 바닥의 나무 결이 느껴집니다. 창밖 오렌지가 주황빛으로 빛납니다.
이것은 그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실제 방입니다. 그 방 안에 실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그가 완성한 그림은 《아르놀피니의 결혼》입니다.
반 룬은 이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멈춥니다. 그리고 씁니다. 회화의 역사에서 이 그림 이전과 이 그림 이후가 있다고. 유화가 가능하게 한 것은 단순히 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화폭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빛과 공기와 질감과 깊이까지.


얀 반 에이크 《터번을 쓴 남자의 초상 (자화상 추정)》(1433년) — 내셔널 갤러리, 런던

유화 이전 : 프레스코와 템페라의 세계

유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유화 이전의 회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주요 기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프레스코(Fresco). 젖은 석회 위에 안료를 칠하는 방식. 석회가 마르면서 안료가 벽 자체와 화학적으로 결합합니다. 매우 내구성이 강합니다. 1,000년이 지나도 색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젖은 석회 위에 빠르게 작업해야 합니다. 수정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빛의 미묘한 효과나 섬세한 디테일 표현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벽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템페라(Tempera). 달걀 노른자에 안료를 개어 사용하는 방식. 주로 나무 패널 위에 그렸습니다. 프레스코보다 더 정밀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빠르게 마르기 때문에 층층이 겹치는 작업이 어렵습니다. 색조의 전환이 급격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면이 달걀 특유의 매트한 질감을 가집니다. 빛이 안에서 발하는 것 같은 깊이감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반 룬은 이 두 기법이 중세 예술에 완벽하게 적합했다고 봅니다. 중세 예술가들이 추구한 것은 신성한 진리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빛이 안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 공간의 깊이감, 물체의 질감.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콘의 황금 배경은 현실 공간이 아닌 영원을 표현했습니다. 그 목적에 템페라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오면서 화가들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빛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인간의 피부가 실제로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전달하는 것. 이 새로운 목표를 위해 새로운 기법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유화였습니다.


로히르 판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려짐》(1435년)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유화의 원리 : 왜 기름인가

안료를 기름에 개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가장 중요한 차이는 건조 속도입니다. 템페라는 빠르게 마릅니다. 유화는 천천히 마릅니다. 이것이 화가에게 시간을 줍니다. 작업 중에도 수정이 가능합니다. 색과 색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습니다. 점진적인 명암 전환이 가능해집니다.
두 번째 중요한 특성은 투명성입니다. 기름에 녹은 안료는 얇게 펴 바르면 반투명합니다. 이 투명한 층들을 겹치면 빛이 각 층을 통과하여 아래에서 반사되어 돌아옵니다. 이 효과를 글레이징(glazing)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그림 표면에서 빛이 발하는 것 같은 깊이감이 생겨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이 재료 안에서 살아납니다.
세 번째는 질감의 다양성입니다. 기름에 개인 안료는 두껍게 바를 수도 있고 얇게 바를 수도 있습니다. 두껍게 바르면 물감 자체의 질감이 살아납니다.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라고 합니다. 붓 자국이 남고, 물감이 쌓이고, 촉각적인 질감이 생겨납니다.
반 룬은 이 기술적 특성들이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것들은 화가들이 전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피부의 투명함, 벨벳의 깊은 색감, 금속의 반짝임, 물의 흐름, 안개 속의 풍경. 유화는 세계의 시각적 풍요로움 전체를 화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얀 반 에이크 : 유화를 완성한 사람

유화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오랫동안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연구는 좀 더 복잡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기름에 안료를 개어 사용하는 방법은 반 에이크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에도 기름을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중세 필사본에도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 에이크는 이 기법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어떤 기름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처리하여 사용하는지를 터득했습니다. 건조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 여러 층을 겹치는 방법, 글레이징 기법을 완성했습니다.
바사리는 반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고 썼습니다. 이것은 과장이지만, 반 에이크가 유화를 예술적으로 완성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전의 기름 사용이 실험적 수준이었다면, 반 에이크에게서 유화는 완전한 예술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반 에이크의 형 휘베르트 반 에이크(Hubert van Eyck)와 함께 완성한 《겐트 제단화(Ghent Altarpiece, 1432)》. 이 작품에서 유화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닫았을 때와 열었을 때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이 12개 패널의 제단화는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진짜 경이로움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시작됩니다.
각 인물의 피부를 보면 그 투명함에 놀라게 됩니다. 혈관이 비칠 것 같은 피부. 털이 한 올 한 올 보이는 수염. 보석이 실제로 반짝이는 것 같은 왕관. 천이 실제로 무게가 느껴지는 옷. 이것들이 유화 기법으로 가능해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볼록 거울.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 방 전체를 담은 작은 원형 거울. 이 거울 안에 10개의 장면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정밀함은 유화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반 룬은 반 에이크를 북유럽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선구자로 봅니다. 이탈리아가 원근법으로 공간을 정복했다면, 플랑드르는 유화로 빛을 정복했습니다. 두 혁명이 합쳐졌을 때 서양 회화의 황금기가 왔습니다.


플랑드르 : 유화의 고향

왜 유화가 이탈리아가 아닌 플랑드르에서 완성되었을까요.
반 룬은 이 질문에 흥미로운 답을 제시합니다.
플랑드르, 즉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 지역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번성하는 상업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브뤼헤, 겐트, 앤트워프. 이 도시들이 북해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영국의 양모, 발트 해의 곡물, 지중해의 향신료가 이곳을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이 상업적 번영이 새로운 종류의 예술 후원자를 낳았습니다. 이탈리아처럼 교회와 귀족이 주요 후원자였지만, 플랑드르에서는 부유한 상인 계층이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상인들이 원한 것은 이탈리아의 귀족들이 원한 것과 달랐습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기념하는 그림을 원했습니다. 자신들의 집, 자신들의 물건, 자신들의 얼굴.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표현. 이 요구가 플랑드르 화가들로 하여금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기술을 극한까지 발전시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플랑드르의 기후도 한몫했습니다. 북유럽의 흐리고 습한 날씨. 이탈리아처럼 밝고 강한 햇빛 아래서 벽에 빠르게 프레스코를 그리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환경. 실내에서 패널 위에 천천히, 정밀하게 작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환경. 이 환경이 유화의 발전에 적합했습니다.
반 룬은 이 배경에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봅니다. 예술 기법은 진공 속에서 발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회가 어떤 것을 원하느냐, 어떤 환경에서 작업하느냐가 예술 기법의 발전 방향을 결정합니다. 플랑드르 상인들의 현실적 요구와 북유럽의 자연 환경이 유화를 낳았습니다.


플랑드르 화가들의 눈 :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

반 에이크와 함께 플랑드르 회화의 황금기를 만든 화가들을 살펴봅니다.
로히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 반 에이크와 함께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두 거봉 중 하나. 반 에이크가 세계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면, 베이던은 인간의 감정 표현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그의 《십자가에서 내려짐(Descent from the Cross, 1435)》을 봅니다. 열 명의 인물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시신 주위에 있습니다. 각 인물의 표정과 몸짓이 살아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실신합니다. 막달레나가 손을 비틉니다. 요한이 마리아를 부축합니다.
이 그림에서 감정이 전염됩니다. 보는 사람도 울고 싶어집니다. 그것은 도상학적 설명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인물들의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유화가 만들어낸 섬세한 표정 묘사가 이 감정 전달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한스 멤링(Hans Memling, 1430~1494). 브뤼헤에서 활동한 독일 출신 화가. 그의 그림들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성인들이 피렌체의 초원에 서 있는 듯한 장면들. 플랑드르의 기법과 이탈리아의 이상미가 결합된 독특한 세계.
피터르 크리스투스(Petrus Christus, 1415~1475). 반 에이크의 제자로 추정되는 이 화가가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그림들이 어떻게 이탈리아로 흘러들어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5세기 중반 이탈리아 화가들이 플랑드르 기법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반 룬은 이 화가들을 통해 플랑드르 회화의 공통적 특성을 정리합니다.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관심. 어떤 사물도 너무 작거나 너무 일상적이어서 그릴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는 태도. 성인의 망토를 묘사하는 것과 그 망토 아래 보이는 마루 바닥의 나무 결을 묘사하는 것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믿음.
이 태도가 훗날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정물화와 풍경화로 이어집니다.


이탈리아로 건너간 유화 : 두 전통의 만남

15세기 중반, 유화 기법이 플랑드르에서 이탈리아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파의 경로는 복잡합니다. 무역을 통해 플랑드르 그림들이 이탈리아로 수입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상인들이 브뤼헤에서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이탈리아로 가져왔습니다. 이탈리아 화가들이 직접 플랑드르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플랑드르 화가들이 이탈리아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화가들이 플랑드르 기법을 처음 접했을 때의 반응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피렌체의 화가들은 소묘(disegno)를 최고로 여겼습니다. 선과 형태, 원근법과 구성. 이것이 회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색채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랑드르의 유화를 보자 다른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선이 아닌 빛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것. 형태의 윤곽선이 아닌 색과 명암의 점진적 변화로 형태를 만드는 것.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 1430~1479)가 이 전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시칠리아 출신의 이 화가가 어떻게 플랑드르 기법을 배웠는지는 논쟁이 있습니다. 나폴리에서 플랑드르 그림들을 보고 독자적으로 유화를 터득했다는 설, 직접 플랑드르를 방문했다는 설. 어쨌든 그는 1475년 베네치아에 나타나 유화 기법을 보여주었고, 베네치아 화가들이 이를 흡수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유화가 만들어낸 변화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가 유화로 전환하면서 베네치아 회화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빛이 대기 속에서 진동합니다. 피렌체 회화의 날카로운 선 대신 빛과 색이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쌉니다. 이것이 베네치아 화파의 탄생이었습니다.
반 룬은 이 만남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이탈리아의 소묘 전통과 플랑드르의 유화 기법이 결합되었을 때 서양 회화의 가장 풍성한 표현 언어가 탄생했습니다. 두 전통의 장점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1495~98년) —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레오나르도와 유화 : 스푸마토의 탄생

이탈리아 화가들 중 유화의 가능성을 가장 깊이 탐구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였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유화의 느린 건조 속도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는 그림을 매우 천천히 그렸습니다.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에 걸쳐. 각 층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층을 극도로 얇게 바르며 형태를 조금씩 다듬었습니다.
이 방법에서 탄생한 기법이 스푸마토(sfumato)입니다.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이라는 뜻입니다. 형태의 윤곽선이 명확하지 않고 주변 공기 속으로 서서히 녹아드는 기법. 실제로 우리가 물체를 볼 때 그것의 가장자리가 항상 선명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멀리 있는 것, 그늘진 것, 빛이 적은 것의 가장자리는 모호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시각적 진실을 회화로 표현했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왜 신비로운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입꼬리가 올라간 것인지 아닌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가 의도적으로 그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스푸마토.
이 기법은 템페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유화의 느린 건조 속도와 층층이 쌓는 방식만이 이 효과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반 룬은 스푸마토를 레오나르도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봅니다. 명확함이 아닌 모호함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 세계는 날카로운 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빛과 그림자의 점진적인 전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화가 그 진실을 표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베네치아의 색채 혁명 : 조르조네와 티치아노

베네치아에서 유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피렌체가 소묘를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베네치아는 색채를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콜로리토(colorito). 색채가 곧 형태입니다. 선이 아닌 색과 빛의 관계가 화면을 구성합니다.
이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 것이 조르조네(Giorgione, 1477~1510)였습니다.
조르조네는 수수께끼 같은 화가입니다. 젊은 나이에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작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오늘날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가 베네치아 회화에 가져온 변화는 분명합니다.
《폭풍우(La Tempesta, 1508)》. 이 그림 앞에 서면 이상한 감각이 들어옵니다. 무슨 내용의 그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 남자가 서 있고, 한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배경에 도시와 폭풍이 있습니다. 주제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입니다. 폭풍 전의 그 특유한 공기. 빛이 이상하게 들어오는 그 순간. 불안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감각. 이것을 색채와 빛으로만 표현한 것이 조르조네의 혁명이었습니다.
티치아노(Titian, 1488~1576). 베네치아 색채 혁명의 완성자. 그는 90년 가까이 살면서 유화 기법을 극한까지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붓 자국이 살아있습니다. 안료가 두텁게 쌓이고, 붓이 지나간 흔적이 남고, 그 흔적들이 모여 형태를 만듭니다. 가까이서 보면 추상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완전한 형태가 살아납니다.
반 룬은 티치아노의 후기 작품들에서 유화 기법이 도달한 최고 지점을 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마네, 세잔, 반 고흐로 이어지는 서양 회화 전체의 씨앗을 봅니다. 티치아노가 붓 자국을 남기기로 결정했을 때, 인상주의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티치아노 《바쿠스와 아리아드네》(1520~23년) — 내셔널 갤러리, 런던

유화가 바꾼 것들 : 새로운 가능성의 목록

유화의 등장이 회화에 가져온 변화를 반 룬은 구체적으로 정리합니다.
이동 가능성. 프레스코는 벽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캔버스나 패널 위의 유화는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원자의 저택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술 시장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주제의 확장. 벽에 그려야 하는 프레스코는 종교적·공공적 주제에 적합했습니다. 그러나 이동 가능한 유화 패널은 더 개인적이고 사적인 주제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이 장르들이 유화와 함께 발전했습니다.
빛의 표현.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 같은 효과, 카라바조 이후 명암법(chiaroscuro)의 극적 발전. 이것이 유화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질감의 표현. 비로드의 깊은 색감, 금속의 차가운 반짝임, 과일의 촉촉함, 노인의 주름진 피부. 유화만이 이 모든 질감들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수정의 자유. 작업 중에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층 위에 층을 쌓으며 조금씩 완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더 복잡하고 섬세한 구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반 룬은 이 목록을 보면서 유화가 단순한 기법의 변화가 아니었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화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근본적으로 넓혔습니다. 새로운 도구는 새로운 예술을 낳습니다. 유화가 낳은 예술이 이후 300년 서양 회화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북유럽과 이탈리아 : 두 르네상스의 만남

유화가 이탈리아로 전파되는 과정은 단순한 기법 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 문화의 만남이었습니다.
북유럽 플랑드르의 회화 전통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 전통. 이 두 전통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원근법, 인체 해부학, 기념비적 구성, 철학적 내용, 신화와 역사 주제.
플랑드르: 빛의 표현, 질감의 묘사, 일상의 세부 관찰, 개인 초상화, 상징적 정물.
이 두 전통이 만나 서로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이탈리아 화가들이 플랑드르의 빛 표현을 배웠습니다. 플랑드르 화가들이 이탈리아의 구성과 인체 표현을 배웠습니다.
16세기를 거치면서 이 두 전통은 하나로 합류했습니다. 유화 기법을 기반으로 원근법적 공간,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인체, 극적인 빛과 그림자, 섬세한 질감 표현, 다양한 주제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서양 회화의 완성된 언어가 탄생했습니다.
반 룬은 이 만남을 예술사의 가장 창조적인 대화 중 하나로 봅니다. 서로 다른 두 전통이 만나 어느 쪽과도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때, 그것이 가장 위대한 예술의 조건 중 하나입니다.


반 룬이 유화의 발명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유화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도구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합니다.
도구가 예술을 결정하는가. 아니면 예술이 도구를 선택하는가.
반 룬의 답은 둘 다라는 것입니다. 유화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모나리자》의 스푸마토도, 렘브란트의 빛도,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의 촉촉한 피부도 없었을 것입니다. 도구가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도구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같은 유화를 사용해도 누구는 평범한 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모나리자》를 그립니다. 도구를 통해 세계를 보는 눈, 그것을 표현하는 손,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신. 이것이 예술가입니다.
반 룬은 얀 반 에이크가 기름에 안료를 갰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합니다. 아마도 그는 더 나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더 실제에 가까운 빛을, 더 감동적인 색채를. 그 소망이 새로운 기법을 찾게 했고, 그 기법이 전에는 불가능했던 아름다움을 낳았습니다.
더 나은 것을 원하는 마음.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모든 기술적 혁신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모든 예술적 혁명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유화는 그 마음이 낳은 가장 위대한 결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결실이 얀 반 에이크에서 시작하여 레오나르도, 티치아노, 렘브란트, 베르메르, 루벤스, 벨라스케스, 고야, 마네, 세잔, 반 고흐, 피카소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방울의 기름이 강이 되었습니다. 그 강이 서양 회화의 역사입니다.


🎵 이번 화 감상 추천

유화가 표현한 빛과 색채의 세계를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조스캥 데 프레, 미사 《팡쥬 링구아》 : 플랑드르 출신의 작곡가가 만든 이 미사곡은 얀 반 에이크와 같은 시대, 같은 문화권에서 나온 음악입니다. 유화의 층층이 쌓이는 글레이징 기법처럼, 여러 성부가 겹쳐지며 빛을 발하는 다성음악. 플랑드르 예술의 섬세한 완벽함이 음악으로 표현됩니다.

    •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오르간을 위한 리체르카레 : 베네치아 색채 혁명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베네치아 작곡가의 작품. 티치아노의 유화가 색채로 빛을 만들었듯, 이 오르간 음악은 음색으로 빛을 만듭니다. 같은 도시, 같은 정신에서 나온 두 예술의 대화.

    •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곡 《물의 반영》 : 빛이 물 위에서 반사되는 순간을 음악으로 포착한 이 인상주의 피아노 소품은 유화가 추구한 빛의 표현이 음악에서 완성된 것처럼 들립니다. 얀 반 에이크가 유화로 포착하려 했던 그 빛의 떨림이 피아노 음표로 살아납니다.


✏️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르네상스 회화의 공장이라 불린 이탈리아 화방(bottega)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 세 거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들이 만든 르네상스 회화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스승의 작업실에서 도제로 시작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들이 된 그 이야기. 이탈리아의 그림 공장이 문을 열던 그 찬란한 순간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EP.28 : 이탈리아의 그림 공장이 문을 열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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