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의 질문
똑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 전혀 다른 감상을 나누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한 사람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주인공의 고독이 너무 잘 표현됐어요"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글쎄요, 저는 별로였어요. 너무 느리고 지루했어요"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화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이런 경험은 어떻습니까. 형제자매끼리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같은 집에서 자랐는데도 서로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 어릴 때 참 행복했지"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그랬나? 나는 그때가 참 힘들었는데"라고 말합니다. 누가 맞는 것일까요? 아니면 둘 다 맞는 것일까요?
이 질문들은 단순한 취향의 차이나 기억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식론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와 닿아 있습니다.
"아는이(knower)는 누구인가?"
지식을 탐구할 때, 우리는 흔히 지식 그 자체(무엇이 참인가, 어떻게 증명되었는가) 에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IB 지식론이 다른 철학 교육과 구별되는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이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입니다. 지식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식은 항상 누군가가 아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에 따라 지식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1부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지식을 얻는 주체, 즉 개인으로서의 아는이란 무엇인가.

■ 생각의 실마리 : 아는이란 무엇인가
'아는이(knower)'라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흔히 쓰지 않는 말이니까요. 영어로는 'knower', 즉 '아는 자', '인식 주체'를 뜻합니다. 철학에서는 오랫동안 '인식 주체(epistemic subject)'라는 말을 써왔습니다.
아는이란 간단히 말해, 지식을 얻고, 보유하고, 활용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지식론에서 가장 먼저 탐구해야 할 것은 이 아는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는이의 성격이 앎의 성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는이는 결코 빈 그릇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때,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깨끗한 그릇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이미 수많은 것들이 담긴 그릇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 자란 환경, 받은 교육, 겪은 경험, 가진 감정, 사용하는 언어, 속한 문화, 이 모든 것이 이미 그릇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는 이 이미 채워진 그릇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존의 것들과 섞이고, 굴절되고, 때로는 변형됩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배경 지식(Background Knowledge)' 또는 '인지적 틀(Cognitive Framework)'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인식할 때, 이미 가지고 있는 틀을 통해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 개인으로서의 아는이를 형성하는 요소들
그렇다면 개인으로서의 아는이는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크게 다섯 가지 요소를 살펴봅시다.
① 생물학적 조건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 안에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특정 범위의 빛과 소리만 감지할 수 있습니다. 개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를 듣고, 독수리는 인간보다 훨씬 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시력을 가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이 세상 전체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세상을 인식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 자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패턴을 찾으려는 경향, 인과관계를 추론하려는 본능,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성질,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는이로서 갖는 생물학적 조건입니다.
② 개인적 경험
같은 사건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과 역사책에서 읽은 사람이 '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활성화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가난을 몸으로 겪은 사람과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 '빈곤'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개인적 경험은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의 질과 깊이를 바꿉니다. 그리고 때로는 경험이 지식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새로운 경험을 왜곡하여 인식하게 만드는 것처럼요.
③ 감정 상태
우리는 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흐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뇌 손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환자들은 오히려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느 약속을 우선시할지 같은 사소한 결정도 감정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정은 지식의 적이 아닙니다. 감정은 우리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무엇을 기억할지를 결정하는 데 깊이 관여합니다. 감정과 인식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깊이 얽혀 있습니다.
④ 언어와 문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닙니다. 언어는 사고의 틀 자체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는 '눈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파악하는 능력이지요. 이 개념을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어 화자들은 '눈치'라는 언어적 도구를 통해 인간관계의 특정 측면을 더 정밀하게 인식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권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그 문화 안에서 자란 사람의 인식 틀을 형성합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과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은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봅니다.
⑤ 교육과 훈련
우리가 받은 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심어줍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철저히 훈련받은 사람은 모든 주장에 대해 증거를 요구하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인문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은 텍스트의 맥락과 해석에 예민해집니다. 음악을 오래 공부한 사람은 일반인이 듣지 못하는 미세한 음의 차이를 인식합니다.
교육은 아는이의 감수성과 민감도를 특정 방향으로 발달시킵니다. 그것은 특정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다른 것들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 아는이의 역설 : 개인성이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등장합니다.
한편으로, 개인으로서의 아는이가 갖는 고유한 배경과 경험은 지식의 풍요로움을 만들어냅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봄으로써, 어느 한 사람이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더 넓고 깊은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다양성이 인식론적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고유한 배경은 편향과 맹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EP.05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각자의 렌즈는 특정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하는 동시에, 다른 것들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문가의 맹점(Expert Blind Spot)'이라는 현상입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수록,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전문 지식이 초보자의 시각을 가로막습니다. 수십 년간 의학을 공부한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전문적 관점에서 정확하게 분석하지만, 환자가 일상의 언어로 호소하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연구한 학자는 그 분야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제들을 의심하지 못합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던지는 순진한 질문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존 로크 (1632~1704)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의 마음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백지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깨끗한 백지 상태이며, 이후의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 그 위에 쓰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험론(Empiricism)의 핵심 주장입니다.
로크의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 동등하다는 것을 함의했기 때문입니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태어날 때부터 더 우월한 지식을 타고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차이는 이후의 경험과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로크의 인식론은 그래서 정치적으로도 평등주의적 함의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로크의 백지설을 수정합니다. 인간은 완전히 백지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능력 등 일부 인지적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습니다. 경험이 전부는 아닌 것이지요.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칸트는 로크와 다른 방향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은 맞지만, 그 경험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틀(Framework)'이 미리 주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간, 공간, 인과율 같은 개념들입니다.
칸트에게 인간의 마음은 백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을 특정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 미리 갖춰진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 틀을 통해서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물자체, Ding an sich)' 볼 수 없고, 항상 이 틀을 통해 걸러진 세상을 볼 뿐입니다.
이 통찰은 매우 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틀이 구성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메를로-퐁티 (1908~1961)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아는이를 단순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을 가진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순수한 이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세상과 접촉하면서 압니다.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머릿속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을 기억합니다. 장인은 재료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의 감촉으로 압니다. 우리가 공간 속에서 방향을 잡을 때, 그것은 논리적 계산이 아니라 몸이 공간을 느끼는 것입니다.
메를로-퐁티에게 아는이는 추상적인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몸을 가지고 세상 안에 깃들어 있는 존재입니다. 이 관점은 오늘날 인지과학과 구현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나는 어떤 아는이인가 : 자기 탐구
이 질문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봅시다. 나는 어떤 배경을 가진 아는이인가? 나의 앎을 형성한 결정적인 경험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언어와 문화의 틀 안에서 세상을 보는가?
예를 들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교육받고 한국 문화 안에서 자란 사람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아는이입니다. 유교적 가치관이 깊이 배어있는 인간관계 인식, 빠른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세대 간 단절을 경험한 역사 감각,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적 자아 사이의 긴장,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인식 틀을 구성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고유한 관점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이 틀만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앎을 제한합니다.
의사, 판사, 역사가의 딜레마
개인으로서의 아는이 문제는 특히 전문가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합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할 때, 자신이 훈련받은 의학적 패러다임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증상을 해석합니다. 그 해석이 때로는 환자의 실제 경험과 어긋날 수 있습니다.
판사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자신의 사회적 배경과 개인적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판사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은 단순한 법 해석의 차이만이 아닙니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할 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관점에서 그것을 봅니다. 같은 역사적 사건이 시대마다 다르게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전문가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이로서의 자신을 의식하는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전문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인식과 지적 겸손
결국 개인으로서의 아는이를 탐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더 잘 아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어떤 렌즈를 끼고 있는지, 내 앎의 어떤 부분이 보편적이고 어떤 부분이 나만의 특수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아는 것.
이것을 철학에서는 '인식론적 자기 인식(Epistemic Self-Awareness)'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숙한 아는이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단순히 자신의 성격이나 감정을 알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이로서의 자신을, 즉 자신이 어떻게 알고, 무엇을 모르며, 어디서 왜곡이 일어나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나는 어떤 아는이인가? 나의 앎을 형성한 가장 결정적인 경험 세 가지는 무엇인가? 그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특별히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고, 반대로 보지 못하게 가리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진정한 지식 탐구의 시작입니다.
■ 다음 회 예고
개인으로서의 아는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혼자 알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집단 ( 가족, 사회, 문화, 국가, 시대) 의 구성원으로서 압니다. 그 집단이 우리의 앎을 어떻게 형성하고, 확장하고, 때로는 제한하는가?
EP.07 우리는 함께 무엇을 아는가: 집단 지식의 힘과 위험
혼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단 안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게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집단 지식의 놀라운 힘과 그 이면의 위험을 다음 편에서 함께 탐구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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