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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세계문학 들여다 보기

사뮈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5. 10. 11.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부조리한 인간의 초상

20세기 연극의 패러다임을 바꾼 실존주의 걸작 『고도를 기다리며』

작가의 삶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부랑자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황량한 길가에서 결코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작가다. 그는 중산층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다. 대학에서 불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파리로 건너가 제임스 조이스의 비서로 일하며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2차 세계대전 중 베케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고, 나치를 피해 도피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심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어머니가 암으로 고통받다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자신도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이 시기에 그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쓰면 스타일 없이 쓸 수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고 그는 말했다.
1948년, 베케트는 어머니의 방을 방문했다가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 무력하다는 것,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나는 쓰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다. 이 작품에는 전쟁의 폐허, 존재의 무의미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비극적 희극이 담겨 있다.

명작 비하인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연극"이 혁명이 되다

1953년 파리의 작은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되었을 때, 관객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무대에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서 있고, 두 남자가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줄거리도 없고, 클라이맥스도 없으며, 해결도 없다. 어떤 관객들은 중간에 나가버렸고, 어떤 평론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두 번 일어난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곧 이 작품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 "아무것도 아닌" 연극에서 전후 유럽의 절망과 공허함을,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발견했다. 베케트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제거했다. 시간, 장소, 배경, 심지어 의미까지. 남은 것은 순수한 인간의 조건—기다림, 지루함, 무의미함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이었다.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베케트는 평생 대답을 거부했다. "내가 알았다면 작품 속에 말했을 것"이라고만 했다. 어떤 이들은 고도를 신(God-o)으로, 어떤 이들은 죽음으로, 어떤 이들은 의미나 구원으로 해석했다. 베케트는 이 모든 해석을 열어두었다. 중요한 것은 고도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끝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1969년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명예를 싫어했고, 고독을 사랑했으며, 끝까지 침묵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했다.

줄거리

1막. 첫 날. 황량한 시골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무렵.
두 명의 부랑자가 등장한다.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 애쓰고 있다. 블라디미르는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에스트라공이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고 있잖아." 블라디미르가 대답한다. "아, 그래."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어제 고도가 오늘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린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대화는 순환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시작한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에스트라공은 어젯밤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하지만 어디서 자고 누가 때렸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블라디미르는 성경 이야기를 꺼낸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 중 한 명은 구원받았다는 이야기. "왜 하나만?" 그는 묻는다. 하지만 답은 없다.
그들은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떠나지 못한다. 고도를 기다려야 하니까.
포조와 럭키가 등장한다. 포조는 뚱뚱하고 거만한 주인이고, 럭키는 목에 밧줄이 묶여 짐을 잔뜩 진 노예다. 포조는 럭키를 채찍으로 다루며 시장에 팔아넘기러 간다고 말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충격을 받지만, 포조는 태연하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닭다리를 먹고, 자신의 소유물을 자랑한다.
"춤춰!" 포조가 명령하자 럭키가 비틀거리며 춤춘다. "생각해!" 포조가 명령하자 럭키가 말한다.
럭키는 갑자기 끝없는 독백을 쏟아낸다. 문장은 길고 혼란스럽고 의미를 알 수 없다. 신, 인간, 돌, 시간, 슬픔에 대한 단어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다가 갑자기 멈춘다. 모두가 그를 제압하고 모자를 벗겨야 그가 멈춘다.
포조와 럭키는 떠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다시 혼자가 된다.
한 소년이 온다. 고도 씨의 심부름으로 왔다고 한다. 고도 씨는 오늘 못 오지만 내일은 틀림없이 온다고 전한다. 블라디미르가 묻는다. "고도 씨는 뭘 하시는 분이지?" 소년은 대답한다. "아무것도 안 하세요."
밤이 온다. 달이 뜬다. 두 사람은 간다고 말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막이 내린다.


2막. 다음 날. 같은 장소.
나무에 잎이 네다섯 개 돋아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변화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다시 온다. 에스트라공은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블라디미르는 기억하려고 애쓴다. "우리 어제 여기 왔었지?" "아니, 처음이야." "아니야, 우리 여기서 기다렸어. 기억 안 나?"
그들은 다시 시간을 때운다. 같은 대화를 반복한다. 떠나자고 말하지만 떠나지 못한다. 자살하자고 제안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나무에 목을 매려 하지만 나무는 너무 약하고 밧줄도 없다.
포조와 럭키가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변해 있다. 포조는 장님이 되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었다. 포조는 자신이 언제 시력을 잃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장님이 되었어.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나고, 어느 날 죽지. 같은 날에.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블라디미르가 묻는다. "어제 우리를 기억하십니까?" 포조가 소리친다. "난 어제를 기억 못 해! 내일도 잊을 거야! 당신들도, 나도, 모든 것도!"
포조와 럭키는 다시 떠난다. 쓰러지고, 일어나고, 비틀거리며 사라진다.
소년이 다시 온다. 어제 온 소년과 같은 소년인지 다른 소년인지 알 수 없다. 그는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고도 씨는 오늘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온다고.
블라디미르가 소리친다. "너 어제 온 소년이지?" 소년이 대답한다. "아니요, 처음이에요."
밤이 온다. 달이 뜬다.
블라디미르: "가자." 에스트라공: "가자." (무대 지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막이 내린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연극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진실이라고 베케트는 말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행복, 성공, 의미, 신, 죽음...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그것은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계속 기다린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떠나자고 매일 말하지만 떠나지 못한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하니까. 하지만 고도가 오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들도 모른다. 그저 기다림 그 자체가 삶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부조리하다. 하지만 우리 삶도 부조리하다. 우리는 태어난 이유를 모르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언젠가 죽는다는 것만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산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때우고, 내일을 기다린다.
베케트는 절망적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연민 어린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비참하지만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헤어지려다가 다시 만난다. 포조와 럭키조차 서로에게 묶여 있다. 주인과 노예라는 끔찍한 관계지만, 그것도 일종의 연결이다.
사뮈엘 베케트는 이 작품을 통해 말한다. 삶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고도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리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계속 함께한다. 그것이 인간이라고. 그리고 그 부조리한 기다림 속에서도 유머와 연민과 작은 온기가 있다고. "가자"고 말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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