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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적 권력의 원천

「권력의 지도」 36화,민족이란 무엇인가 : 상상된 공동체의 권력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10.

 

 
1830년 7월,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혁명에서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혁명의 상징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이었습니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습니다. 프리지아 모자를 쓰고 삼색기를 든 여성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군중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 주변에 노동자, 학생, 부르주아가 함께 있습니다. 그녀의 발밑에 시신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 그림이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프랑스 민족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그 그림 속에 없습니다. 있는 것은 다양한 계층의 개인들입니다. 노동자, 학생, 부르주아. 그들이 왜 함께 싸우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일까요.
바로 그것이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상입니다.
마이클 만은 민족주의가 19세기 가장 강력한 이념 권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이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만들어졌습니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진 행위자들에 의해.
이 만들어진 민족이 어떻게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집단적 이념이 되었는가. 이것이 36화의 핵심 질문입니다.


민족주의 이전의 세계 : 정체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민족주의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했을까요.
중세 유럽의 농민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정의했을까요.
아마도 첫 번째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종교적 정체성이 가장 넓은 공동체 감각을 제공했습니다. 십자군이 이슬람에 맞서 싸울 때 그것이 종교 정체성의 동원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어느 영주의 봉신이었습니다. 왕보다 영주와의 관계가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정치적 충성이 인격적 관계에 기반했습니다.
세 번째로 어느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생활 공동체가 가장 구체적인 정체성이었습니다. 평생 반경 50킬로미터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가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을까요. 아마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북부의 농민과 남부의 농민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서로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것이 민족주의의 역사적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민족적 정체성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 역사적 조건에서 다른 정체성들을 대체하며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이념 권력입니다.


베네딕트 앤더슨 : 상상의 공동체

1983년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를 발표했습니다. 민족주의 연구의 고전이 된 책이었습니다.
앤더슨의 핵심 주장이 있었습니다.
민족은 상상된 공동체입니다. 민족 구성원들은 대부분 서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합니다.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이 상상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요. 앤더슨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인쇄 자본주의(print capitalism)였습니다.
24화에서 살펴보았듯,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책과 신문을 대량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쇄업자들이 더 넓은 시장을 원했습니다. 라틴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자국어로 출판했습니다.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같은 언어로 된 신문을 읽는 수십만 명이 공통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아침에 같은 기사를 읽었습니다. 같은 사건에 반응했습니다. 직접 만난 적 없지만 같은 세계 안에 있다는 감각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이 민족 공동체를 상상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앤더슨의 통찰이 중요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쇄 자본주의가 민족주의의 충분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중국도 인쇄술이 일찍 발달했지만 민족주의가 유럽과 다른 패턴을 보였습니다. 인쇄술이 민족주의의 필요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완전합니다.
정치 권력, 경제 권력, 군사 권력이 함께 작동해야 했습니다.


에르네스트 겔너 :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다

앤더슨과 함께 민족주의 연구의 쌍두마차를 이루는 것이 에르네스트 겔너였습니다.
겔너의 핵심 주장이 앤더슨과 달랐습니다.
민족이 민족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다.
겔너의 설명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산업화가 민족주의를 필요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업 사회는 이전의 농업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읽고 쓸 수 있는 노동자. 표준화된 기술을 가진 노동자. 규칙과 지시를 이해하는 노동자.
그런데 이것이 지역 농촌 공동체의 전통 지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표준화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표준화된 교육을 위해 표준화된 언어가 필요합니다.
국가가 이것을 제공했습니다. 의무 교육. 표준 언어. 통일된 교과서.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언과 지역 문화가 억압되거나 통합되었습니다. 단일한 민족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브르타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배웠습니다. 독일 남부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표준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프랑스인이, 독일인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겔너의 분석이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이 어떻게 이념 권력(민족 정체성)을 만드는지를 보여준다고 봅니다. 산업화(경제 권력)가 표준화된 노동자가 필요했습니다. 국가(정치 권력)가 의무 교육을 통해 그것을 제공했습니다. 이 과정의 부산물이 민족 의식(이념 권력)이었습니다.
민족이 자연적으로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홉스봄과 레인저 : 전통의 발명

1983년 에릭 홉스봄과 테렌스 레인저가 편집한 『전통의 발명(The Invention of Tradition)』이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오래되어 보이는 많은 민족 전통들이 실제로 최근에 발명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왕실의 화려한 의식들 — 대관식, 기마 퍼레이드, 복잡한 예복 — 이 수백 년 전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19세기에 만들어졌거나 대대적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영국이 산업화와 사회적 변화의 충격 속에서 연속성의 감각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의식들을 발명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타탄 체크 킬트와 백파이프가 고대 켈트 전통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타탄 킬트가 18세기 말에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문화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일랜드 복식이었습니다. 낭만주의 작가들, 특히 월터 스콧이 스코틀랜드 민족 전통을 창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인도 국민회의당이 영국 식민 지배에 저항하며 힌두 전통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강조한 '전통들'이 많은 경우 19세기에 재발명되었거나 강조점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전통의 발명이 이념 권력의 의도적 생산임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민족 정체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특정 행위자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민족주의 운동가들, 국가 관료들, 낭만주의 작가들, 역사학자들 — 이들이 민족 신화와 전통을 창조하는 이념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언어의 정치학 : 방언이 어떻게 민족이 되는가

민족 형성에서 언어가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어도 자연스럽게 민족과 연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18세기 말 민족과 언어의 연결을 처음으로 체계화했습니다. 각 민족이 고유한 정신(Volksgeist)을 가지며 그것이 언어에 표현된다. 언어가 민족 정체성의 영혼이다.
이 이념이 강력한 정치적 함의를 가졌습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다. 같은 민족은 하나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민족 자결 원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독일어가 단일 언어인가요. 바이에른 방언과 하노버 방언이 같은 언어인가요. 슈바벤 방언과 베를린 방언이 서로 이해되는 언어인가요. 실제로 이 방언들이 너무 달라서 소통이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어란 무엇인가요. 표준 독일어는 자연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터의 성경 번역, 교육 행정가들의 결정, 인쇄업자들의 선택 — 이것들이 표준 독일어를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 이 모든 표준 언어들이 방언들 중 하나가 정치적·문화적 권위를 통해 표준이 된 것이었습니다. 다른 방언들이 억압되거나 주변화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언어 표준화가 경제 권력(인쇄 시장)과 정치 권력(국가 행정)이 이념 권력(민족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었다고 봅니다. 표준 언어가 단지 소통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누가 민족이고 누가 아닌지를 가르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역사의 신화화 : 민족은 과거를 필요로 한다

민족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민족이 공유하는 과거 — 신화, 영웅, 전투, 수난 — 가 필요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역사를 쓰는 것이 순수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작업이었습니다.
체코의 경우였습니다.
19세기 체코 민족 부흥 운동에서 프란티세크 팔라츠키가 체코 역사를 썼습니다. 그는 체코 역사를 슬라브 민족과 게르만 민족 사이의 영원한 투쟁으로 서술했습니다. 후스 혁명이 민족적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 역사 서술이 체코 민족 의식 형성에 결정적이었습니다.
핀란드의 경우였습니다.
1835년 엘리아스 뢴로트가 『칼레발라(Kalevala)』를 발표했습니다. 핀란드 민간 서사시를 수집하고 편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수집이 아니었습니다. 뢴로트가 구전 전통들을 하나의 서사로 재편집했습니다. 이것이 핀란드 민족의 서사시가 되었습니다.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 지배 아래 있던 시기에 핀란드어로 된 위대한 문학이 민족 정체성을 지켜주었습니다.
아일랜드의 경우였습니다.
19세기 아일랜드 민족 부흥 운동이 켈트 신화, 게일어, 아일랜드 풍속을 발굴하고 부흥시켰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아일랜드인들이 게일어 부흥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직접 게일어를 쓰지 않아도 게일어의 존재 자체가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 모든 과정에서 지식인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시인, 역사학자, 언어학자, 철학자들이 민족 신화를 만들고 민족 의식을 형성하는 이념 노동을 했습니다. 이것이 이념 권력 생산의 핵심이었습니다.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 감정의 정치화

민족주의가 단순한 정치 이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감정이었습니다. 낭만주의가 이 감정에 언어를 주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가 이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성에 따라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 보편적 인류가 공통의 이성을 가진다.
낭만주의가 이것에 반발했습니다. 이성보다 감정이 인간의 본질이다. 보편보다 특수가 가치 있다. 추상적 인류보다 구체적 민족이 의미 있다.
헤르더가 말했습니다. "세계 시민이 되는 것은 추상에 사랑을 주는 것이다.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인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이념이 민족 감정에 도덕적 무게를 주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되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고귀한 것이 되었습니다.
낭만주의 시인들이 민족의 자연 풍경을 노래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가 라인 강, 흑림, 중세 기사 성을 독일 민족의 영혼의 표현으로 만들었습니다. 스코틀랜드 낭만주의가 하이랜드 산악을 스코틀랜드 정체성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핀란드 낭만주의가 호수와 자작나무 숲을 핀란드 영혼의 표현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연 풍경이 민족 감정의 담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민족주의를 추상적 정치 원칙에서 심층 감정적 경험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 감정화가 민족주의를 이렇게 강력하게 만든 이유라고 봅니다. 이성으로 논증되는 정치 이념은 반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감정적 애착은 논리적 반박이 통하지 않습니다. 조국 산하에 대한 사랑, 조상들의 희생에 대한 경건함, 민족의 미래에 대한 열망 — 이것들이 이성 이전의 감정 차원에서 작동했습니다.


마이클 만의 민족주의 분석 : IEMP와 민족의 관계

마이클 만이 민족주의를 단순히 이념 현상으로 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이념 권력이지만 동시에 경제 권력, 군사 권력, 정치 권력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경제 권력과 민족주의였습니다.
산업화가 민족주의를 강화했습니다. 겔너가 보여주었듯. 그러나 민족주의도 경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민족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국가 경제학 체계(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 1841년)』에서 주장했습니다. 자유 무역이 이미 발전한 영국에게만 유리하다. 아직 발전 중인 나라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경제 발전이 민족 경쟁력의 문제다.
이것이 독일, 미국, 일본의 보호주의 산업 정책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민족주의 이념이 경제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군사 권력과 민족주의였습니다.
민족주의가 군사 동원 능력을 극적으로 높였습니다. 35화에서 살펴본 나폴레옹의 징병제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왕의 군대가 왕을 위해 싸웠습니다. 왕이 다른 왕과 타협하면 전쟁이 끝났습니다. 민족의 군대가 민족을 위해 싸웠습니다. 민족이 굴욕당했다고 느끼면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가 전쟁을 더 완전하고 더 지독하게 만들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이것의 극단이었습니다.
정치 권력과 민족주의였습니다.
민족주의가 국가 형성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가가 민족을 대표해야 한다는 원칙이 민족 국가의 이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어떤 민족이 여러 국가에 나뉘어 있었습니다. 폴란드인이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국가 안에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0개 이상의 민족을 포함했습니다.
이 불일치가 19세기와 20세기 정치의 핵심 갈등이 되었습니다. 민족을 재통합하려는 통일 운동. 분리하려는 독립 운동. 다른 민족을 통합하려는 제국주의. 이것들이 모두 민족-국가 경계의 불일치에서 나왔습니다.


시민적 민족주의 대 종족적 민족주의

민족이 무엇인지에 대한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가 있었습니다.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였습니다.
민족이 공통의 정치적 원칙에 동의하는 시민들의 공동체입니다. 혈통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정의됩니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가 이 방향이었습니다. 프랑스 민족은 자유, 평등, 형제애의 이념을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어디서 태어났든 상관없습니다.
이 이념이 포용적입니다. 이민자가 이념을 받아들이면 민족 구성원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프랑스 이념을 받아들이면 프랑스인이 됩니다.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였습니다.
민족이 공통의 혈통,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민족 구성원이거나 아닙니다. 독일 낭만주의 민족주의가 이 방향이었습니다. 독일인은 독일어를 모어로 쓰고 독일 문화를 공유하는 자입니다. 외국에서 태어나도 독일 혈통이면 독일인입니다.
이 이념이 배타적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혈통이 다르면 진정한 민족 구성원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이클 만은 두 유형이 현실에서 혼합되어 나타난다고 봅니다. 시민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도 실제로 종족적 배제를 실천했습니다. 프랑스가 시민적 공화국을 선언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서 유대인을 배제하는 반유대주의가 폭발했습니다.
종족적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가면 무엇이 됩니까. 다른 종족을 추방하거나 제거하는 논리입니다. 20세기의 집단 학살과 종족 청소가 종족적 민족주의의 극단입니다.
마이클 만이 『민주주의의 어두운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순수 민족 국가를 만들려는 충동을 만들 때 가장 위험한 폭력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주의의 역설들 : 해방과 억압의 동전의 양면

민족주의가 19세기에 해방의 이념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 지배에서 그리스 민족이 독립하는 것. 합스부르크 지배에서 헝가리 민족이 자치를 얻는 것. 러시아 지배에서 폴란드 민족이 해방되는 것.
이 민족주의가 아름다운 이념이었습니다.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마치니가 이탈리아 통일을 꿈꾸었습니다. 쇼팽이 폴란드 민족의 고통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주의가 억압의 이념이 되었습니다. 독립을 원하는 민족이 권력을 잡으면 이번에는 자신들 안의 소수 민족을 억압했습니다.
그리스가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한 후 그리스 내 무슬림 인구를 어떻게 대우했을까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로부터 자치를 얻은 후 헝가리 내 슬로바키아인과 루마니아인을 어떻게 대우했을까요.
해방된 민족이 자신 안의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역설. 이것이 민족주의의 구조적 역설입니다.
마이클 만이 이것을 이념 권력의 자기 모순으로 봅니다. 민족 자결의 원칙이 보편적이면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실제로 작동할 때 자민족에게는 적용하고 타민족에게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이 이중 잣대가 민족주의 갈등의 구조적 원인입니다.


국기, 국가, 국경일 : 민족주의의 의례와 상징

민족 정체성이 추상적 이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구체적 의례와 상징을 통해 일상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국기였습니다. 각 나라의 국기가 민족 정체성의 가장 가시적 상징이었습니다. 삼색기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담았습니다. 성조기가 미국 독립의 이념을 담았습니다. 일장기가 일본 황실의 권위를 담았습니다. 단순한 천 조각이 민족 정체성의 성물이 되었습니다. 국기를 훼손하는 것이 범죄가 되었습니다.
국가(國歌)였습니다. 음악이 민족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베르디의 오페라 — 이것들이 민족 감정의 음악적 표현이었습니다. 국가를 부를 때 가슴이 뛰는 경험. 이것이 이념이 신체 차원으로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국경일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바스티유 데이. 미국의 독립기념일. 한국의 광복절. 이 날들이 민족의 공통 기억을 재현하는 의례였습니다. 함께 기념하고 함께 경축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 공동체 감각을 만들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 상징들과 의례들이 이념 권력이 문화와 감정을 통해 재생산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이념이 의례에 체화될 때 지속적이 됩니다. 논리적 반박보다 감정적 동화가 더 강력합니다.


민족과 계급 : 마르크스의 실패한 예측

마르크스가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이론적 실패 중 하나였습니다.
마르크스가 예언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계급 정체성이 민족 정체성을 압도할 것이다. 독일 노동자와 영국 노동자가 독일 자본가보다 서로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전쟁 예산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독일 노동자들이 영국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대신 독일 민족을 위해 싸우기 위해 전선으로 갔습니다. 계급 의식이 민족 의식에 패배했습니다.
왜 민족이 계급보다 강했을까요.
마이클 만의 분석이 있습니다. 민족 정체성이 계급 정체성보다 더 많은 이익을 제공했습니다. 민족이 실제 혜택을 주었습니다. 시민권, 법적 보호, 사회 보험. 같은 민족 사람들이 서로 도왔습니다. 이 실질적 이익이 민족 정체성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민족 정체성이 계급 정체성보다 심리적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작동했습니다. 조상, 언어, 문화, 풍경에 대한 애착이 계급 이익보다 더 근원적인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것이 이념 권력의 복잡성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어떤 이념이 더 강한가는 단순히 어떤 이념이 더 진리에 가까운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이념이 더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 이익과 깊은 감정에 닿는가의 문제입니다. 민족주의가 계급주의보다 이 두 가지에서 더 강했습니다.


반둥과 탈식민 민족주의 : 민족주의의 해방적 가능성

민족주의가 억압의 도구였지만 동시에 해방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탈식민 운동들이 민족주의를 해방의 이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인도의 간디와 네루가 인도 민족 정체성을 영국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이념으로 동원했습니다. 베트남의 호치민이 베트남 민족주의를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는 이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아프리카의 독립 운동들이 각각의 민족 정체성을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유럽의 민족주의가 피식민 민족들에게 자결의 언어를 제공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민족 자결을 원한다면 식민지 민족들도 민족 자결을 원한다. 유럽의 이념이 유럽의 식민 지배에 반격하는 무기가 된 역설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것이 이념 권력의 예측 불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이념이 만들어진 맥락을 넘어 다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유럽 민족주의가 유럽 패권의 이념이었지만 동시에 유럽 패권을 무너뜨리는 이념이 되었습니다.


21세기의 민족주의 : 살아있는 유산

민족주의가 20세기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파괴력이 드러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가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 통합이 민족을 넘는 정체성을 만들 것이라고. 세계화가 민족 경계를 허물 것이라고.
그러나 민족주의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1세기에 민족주의가 다시 부상했습니다. 브렉시트가 영국 민족주의의 표현이었습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 민족주의의 표현이었습니다. 헝가리, 폴란드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집권했습니다. 중국의 강한 민족주의가 시진핑 시대에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왜 민족주의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마이클 만의 분석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집단 정체성의 욕구가 있습니다. 어디에 속한다는 감각, 자신보다 큰 무언가의 일부라는 감각, 공동체의 보호를 받는다는 감각. 민족이 이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세계화가 이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화가 경제적 불안을 만들었습니다. 문화적 균질화에 대한 저항을 만들었습니다. 정체성 상실에 대한 공포를 만들었습니다. 이 불안들이 민족 정체성으로의 회귀를 강화했습니다.
마이클 만은 민족주의가 없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민족주의인가입니다. 시민적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종족적 배타주의로서의 민족주의는 폭력과 학살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1830년 들라크루아의 그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녀가 누구입니까. 실제 인물이 아닙니다. 상상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끄는 군중은 실제입니다. 그들이 그녀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녀가 상징하는 것을 위해 죽었습니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이 그것을 덜 실재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상이 현실을 만듭니다. 민족을 상상할 때 민족이 생겨납니다. 그 민족을 위해 죽을 때 민족이 현실이 됩니다.
마이클 만이 민족주의를 이념 권력의 가장 강력한 현대적 표현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이념이 사람들을 전쟁으로 이끌고, 혁명을 일으키고,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념이 상상이었다고 해도. 아니, 상상이었기 때문에 더욱 강력했습니다.


다음 화 예고 37화, 독일·이탈리아 통일 : 민족국가 만들기,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과 권력의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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