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회적 권력의 원천

「권력의 지도」 1화 : 왜 마이클 만인가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3.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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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이클 만인가 — 우리가 몰랐던 질문

 

 

세상은 왜 지금 이 모양일까요.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합니다. 어떤 집단은 역사를 쓰고 어떤 집단은 역사에 쓰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남을 지배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 지배당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막연하게 불공평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 질문에 평생을 바친 학자가 있습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만(Michael Mann, 1942~)입니다. 그는 40년에 걸쳐 총 4권, 3000페이지에 달하는 『사회 권력의 원천(The Sources of Social Power)』을 완성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21세기 세계화 시대까지, 인류 5000년의 역사를 단 하나의 이론적 틀로 꿰뚫으려 한 야심작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마이클 만일까요. 권력을 설명하려 한 사람이 그뿐이었을 리 없습니다.


기존 이론들은 무엇을 놓쳤을까요

권력을 설명하는 이론은 많습니다.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세 가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말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경제라고요. 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국가도, 법도, 종교도, 이념도 — 결국 지배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상부구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가 역사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돈과 자본이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로마 제국은 왜 그렇게 오래 유지됐을까요? 로마의 군단병들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중세 십자군 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은 경제적 이익 때문이었을까요? 나치즘에 열광한 수백만 독일 시민들을 계급 이해관계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경제 환원론은 너무 많은 것을 놓칩니다.

베버(Max Weber)는 조금 더 정교합니다. 그는 권력이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이념에서도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근대 국가의 관료제와 합리적 지배 구조를 예리하게 분석했습니다. 국가는 단순한 계급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의 논리와 자율성을 가진 독립적 권력이라는 것입니다.

베버의 통찰은 마르크스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러나 베버의 분석은 주로 근대 서유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고대 문명이나 비서구 사회, 또는 군사 권력이 역사를 뒤바꾼 수많은 장면들을 설명하기에는 틀이 협소합니다.

푸코(Michel Foucault)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권력은 거창한 제도나 경제 구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병원, 감옥, 일상의 언어와 담론 속에 미세하게 퍼져 있습니다.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를 생산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탁월한 통찰입니다. 그러나 푸코의 권력론에는 치명적인 빈자리가 있습니다. 담론과 미시 권력에 집중하다 보니, 왜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를 정복하고, 왜 어떤 문명은 번성하고 다른 문명은 멸망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역사의 거시적 구조가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마이클 만의 도전

마이클 만은 이 세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그들이 각자 틀렸다기보다 각자 부분적으로 옳았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의 원천으로 권력 전체를 설명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출발점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입니다.

"사회는 단일한 전체가 아닙니다. 사회는 중첩되고 교차하는 복수의 사회공간적 권력망들로 구성됩니다."

사회를 하나의 체계나 구조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회는 여러 개의 권력망이 서로 얽히고 경쟁하며 만들어내는 역동적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망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이념(Ideological), 경제(Economic), 군사(Military), 정치(Political) — 이것이 그 유명한 IEMP 모델입니다.

이 네 가지 권력은 서로 독립적입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의 원인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념 권력이 앞서고, 때로는 군사 권력이 역사를 결정하고, 때로는 경제 권력이 모든 것을 재편합니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 어떤 권력이 주도권을 쥐느냐 — 그것이 역사를 만드는 핵심입니다.


왜 지금 이 책인가요

마이클 만의 이론이 출판된 것은 1986년(1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읽힙니다.

우리는 지금 동시에 여러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군사·경제 권력), 기후 위기(경제 권력의 실패), 종교 근본주의와 포퓰리즘의 귀환(이념 권력),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부상(새로운 형태의 권력). 이것들은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권력망이 다른 권력망과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한 현실입니다.

이것을 경제로만, 정치로만, 이념으로만 설명하려 하면 항상 무언가 빠집니다. 마이클 만은 빠진 것을 채울 틀을 줍니다.


이 시리즈를 읽는 법

앞으로 우리는 마이클 만과 함께 인류 5000년의 역사를 다시 읽어나갈 것입니다. 고대 신전에서 시작해서 21세기 빅테크까지. 매 화마다 하나의 시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질문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IEMP라는 지도 위에 올려놓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론보다 이야기가 먼저입니다. 개념보다 사건이 먼저입니다. 추상보다 구체가 먼저입니다. 마이클 만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언어로 다시 씁니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를 아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권력망 위에 서 있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그것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권력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 화 예고 2화: 이념 권력이란 무엇인가 — 신화·종교·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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