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17일, 쿠웨이트시티.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OAPEC) 회의가 열렸습니다.
결의가 통과되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지원국들에게 석유 수출을 금지한다.
다음날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쟁은 욤 키푸르 전쟁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했습니다.
아랍 국가들이 석유를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미국에서 주유소 앞에 긴 줄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몇 블록. 나중에는 몇 킬로미터. 가솔린이 배급되었습니다. 홀수일에는 홀수 번호판, 짝수일에는 짝수 번호판 차만 주유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강 경제가 멈추었습니다.
누가 세계를 움직이는가.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핵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땅 밑에 있는 검은 액체였습니다.
마이클 만은 석유 위기를 경제 권력이 새로운 행위자들에 의해 역전되는 방식의 가장 극적인 사례로 봅니다. 이전까지 서방 강대국들이 세계 자원을 통제했습니다. 1973년 자원을 가진 나라들이 그 통제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 시도가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바꾸었습니다.

1장. 석유가 세계를 어떻게 만들었나 : 현대 문명의 혈액
석유를 이해하지 않으면 현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산업 혁명이 석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문명이 석유로 작동했습니다.
자동차. 항공기. 플라스틱. 비료. 의약품. 현대인의 삶에서 석유와 무관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석유의 지리학이 있었습니다. 세계 석유의 대부분이 중동에 있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전 세계 매장량의 약 60~70퍼센트.
그런데 석유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들이 중동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서유럽, 일본이었습니다.
이 지리적 불일치가 세계 정치의 핵심 구조였습니다.
초기 석유 산업의 지배 구조였습니다. 20세기 초중반 석유 산업을 일곱 자매(Seven Sisters)가 지배했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의 후신들. 엑슨, 모빌, 셰브론, 텍사코, 걸프, 영국석유(BP), 로열 더치 셸.
이 회사들이 중동 국가들과 불평등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생산량을 정했습니다. 가격을 정했습니다. 이익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익이 서방 회사들에게 갔습니다.
1950년대 일반적인 계약이 있었습니다. 생산 이익을 50대 50으로 나눈다. 이것이 진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어떻게 계산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마이클 만은 초기 석유 질서를 경제 권력이 기술과 자본을 통해 자원 보유국을 착취하는 고전적 신식민주의 구조로 봅니다. 자원이 그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원에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외국 기업들이었습니다.

2장. OPEC의 탄생 : 자원 민족주의의 조직화
석유 보유 나라들이 권력을 어떻게 되찾으려 했을까요.
OPEC(석유 수출국 기구,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이 1960년 창설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5개국으로 시작.
목적이 있었습니다. 석유 가격을 안정시킨다. 회원국들의 공동 이익을 보호한다. 서방 회사들의 일방적 가격 결정에 맞선다.
초기에 OPEC이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회원국들이 각자의 이해가 달랐습니다. 서방 석유 회사들이 훨씬 강했습니다.
이란 석유 국유화 사건(1951~1953년)이 선례였습니다. 이란 총리 모사데흐가 영국 소유 앵글로-이란 석유 회사(나중의 BP)를 국유화했습니다. 이란 석유는 이란 것이다.
영국이 경제 제재로 대응했습니다. 1953년 CIA와 MI6이 쿠데타를 조직했습니다. 모사데흐가 축출되었습니다. 팔라비 왕이 복권되었습니다. 석유 회사가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이 교훈을 주었습니다. 혼자 싸우면 진다. 단결이 필요하다.
리비아의 카다피였습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 석유 회사들에 협상 조건을 높이라고 압박했습니다. 개별 회사들이 리비아 없이 다른 곳에서 석유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협상력이 달랐습니다.
카다피가 더 큰 이익 분배를 얻어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따랐습니다.
1973년까지 상황이 무르익었습니다. 석유 수요가 높아졌습니다. 미국의 국내 석유 생산이 1970년 정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방이 점점 더 중동 석유에 의존했습니다.
마이클 만은 OPEC 창설을 경제 권력이 분산된 개별 행위자들에서 조직적 집합 행위자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봅니다. 개별 산유국이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합적으로 그들이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통제했습니다. 조직이 이 통제를 실질적 경제 권력으로 만들었습니다.

3장. 1973년 위기 : 석유 무기의 발사
1973년 10월 6일, 욤 키푸르(속죄의 날).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되찾으려는.
이스라엘이 초기에 밀렸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긴급 무기를 공급했습니다.
아랍 세계가 분노했습니다. OAPEC(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이 행동했습니다.
10월 17일 석유 금수 조치였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지원국들에게 석유 수출 금지. 매월 5퍼센트씩 생산량 감축.
효과가 즉각적이었습니다.
유가가 3개월 만에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올랐습니다. 400퍼센트 상승.
미국에서 주유소 대기 줄. 유럽에서 일요일 자동차 운행 금지.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도로에 자동차가 없었습니다.
정치적 효과도 있었습니다. 미국이 아랍-이스라엘 분쟁 중재를 적극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키신저가 중동 셔틀 외교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일부 영토에서 철수했습니다.
1974년 3월 금수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가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왜 이 충격이 컸을까요.
서방 경제가 석유 의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값싼 석유가 영원할 것이라고. 갑자기 그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더 깊게는, 천연 자원 보유국이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들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이 제3세계 전체에 충격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1973년 위기를 경제 권력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역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으로 봅니다. 군사력, 기술, 금융 모두 서방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가진 나라들이 이 모든 것을 잠시 무력화했습니다.
4장. 자원 민족주의의 물결 : 세계 각지로 퍼지다
1973년 석유 위기가 자원 민족주의 운동을 가속했습니다.
자원 민족주의가 무엇인가. 자국의 천연 자원은 자국민 것이라는 원칙. 외국 기업이 그것을 착취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자원 통제를 통해 발전 자금을 마련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국유화였습니다. 아람코(Arabian American Oil Company). 미국 회사들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합작. 1970년대 사우디가 지분을 점차 늘려 1988년 완전 국유화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국유화였습니다. 1976년 석유 산업 완전 국유화. 페트로베네수엘라(PDVSA) 창설.
구리 국유화였습니다. 칠레 아옌데 정부가 1971년 구리 광산을 국유화했습니다. 이것이 칠레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피노체트 쿠데타(1973년)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CIA가 개입했습니다. 미국 구리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신국제경제질서(NIEO) 요구였습니다. 1974년 유엔 총회에서 개발도상국들이 결의를 통과시켰습니다. 자원에 대한 영구적 주권. 다국적 기업 규제. 더 공정한 무역 조건. 기술 이전.
이것이 제3세계의 경제 권력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NIEO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선진국들이 거부했습니다. 경제 권력을 가진 나라들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만은 자원 민족주의를 경제 권력의 분산 시도가 부분적으로 성공하고 부분적으로 저항받는 과정으로 봅니다. 자원 통제는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기술, 금융, 시장 접근 없이 자원 통제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5장. 오일 쇼크의 경제 효과 : 스태그플레이션과 황금기의 종말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 석유 위기가 황금기를 끝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었습니다. 경제학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습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에서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반비례했습니다. 실업이 높으면 인플레이션이 낮고.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실업이 낮고.
따라서 정책이 단순했습니다. 실업이 높으면 경기 부양.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긴축.
그런데 1970년대 실업도 높고 인플레이션도 높았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케인스주의 처방이 맞지 않았습니다. 경기 부양하면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긴축하면 실업이 더 높아졌습니다.
왜 스태그플레이션이 생겼을까요. 석유 가격 상승이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만들었습니다. 생산 비용이 오르니 모든 것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석유 의존 산업들이 위축되어 실업이 증가했습니다.
이것이 수요 측 문제가 아니라 공급 측 문제였습니다. 케인스주의가 수요 측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었습니다. 공급 측 충격에 준비가 없었습니다.
황금기의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값싼 에너지가 황금기 번영의 물질적 기반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갑자기 비싸졌습니다.
복지 국가가 압박을 받았습니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세수가 줄었습니다. 실업이 늘어나면서 복지 지출이 늘었습니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제 권력의 구조적 변화가 기존 이념(케인스주의)의 유효성을 파괴한 방식으로 봅니다. 이론이 특정한 조건을 전제로 합니다. 조건이 바뀌면 이론이 실패합니다. 이것이 케인스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방식이었습니다.

6장. 1979년 제2차 오일 쇼크 : 이란 혁명과 에너지 안보
1979년, 두 번째 충격이 왔습니다.
이란 혁명이었습니다. 이란에서 팔라비 왕조가 무너졌습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이 승리했습니다.
이란이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이었습니다. 혁명으로 이란 석유 수출이 중단되었습니다.
유가가 다시 급등했습니다. 배럴당 12달러에서 35달러로.
왜 이란 혁명이 일어났을까요. 43화에서 살펴보았듯 팔라비 왕이 CIA 쿠데타로 복권된 후 미국의 지원 아래 독재를 이어갔습니다. 석유 수익이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급격한 서구화가 전통적 이슬람 사회와 충돌했습니다.
호메이니가 이 모든 분노를 결집했습니다. 제국주의 미국. 이슬람을 배신한 팔라비. 부를 독점한 엘리트.
이란 혁명이 이념 권력과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이 충돌한 결과였습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1979년이었습니다. 67화에서 살펴보았듯. 미국이 중동 에너지 자원에 접근하는 소련을 두려워했습니다.
카터 독트린이 선언되었습니다. 미국이 페르시아 만에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에너지 안보가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중동 정치에 대한 미국 개입의 구조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1979년 위기를 경제 권력(석유), 이념 권력(이슬람 혁명), 군사 권력(소련 팽창)이 동시에 충돌한 지점으로 봅니다. 이것이 미국이 중동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 구조였습니다.

7장. 에너지 정치의 지속 : 석유가 만드는 세계
석유 위기 이후 에너지가 국제 정치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중동 개입이 구조화되었습니다. 카터 독트린이 레이건을 거쳐 이후 모든 대통령에게 이어졌습니다. 페르시아 만의 석유 접근을 보호한다.
이것이 걸프전(1991년), 이라크 전쟁(2003년)의 구조적 배경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유가 없었다면 이 개입들이 있었을까요.
페트로달러 시스템이었습니다. 1973년 위기 이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비공식 협약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우디가 석유를 달러로만 판매한다. 미국이 사우디 왕가의 안전을 보장한다.
이것이 달러 패권을 강화했습니다. 석유가 달러로 거래되니 세계 모든 나라가 달러를 보유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그 달러를 사우디 석유를 사기 위해 원했습니다.
러시아의 석유 무기화였습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을 외교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유럽이 러시아 가스에 의존했습니다. 러시아가 이 의존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려 했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것이 결정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에너지 정치의 지속을 경제 권력이 군사 권력과 이념 권력을 통해 국제 정치를 구조화하는 방식의 현재진행형 사례로 봅니다. 석유가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그것이 국제 질서의 구조적 기반입니다.

8장. 재생 에너지와 새로운 전환 : 에너지 권력의 미래
석유 위기가 또 다른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에너지 전환을 촉진했습니다.
단기 반응이었습니다. 1970년대 에너지 효율 증대. 핵 에너지 확대. 석유 외 에너지원 개발.
미국이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건설했습니다. 노르웨이가 북해 석유를 개발했습니다. 영국이 북해 유전을 개발했습니다. 서방의 중동 의존도가 어느 정도 낮아졌습니다.
장기 반응이었습니다. 태양광, 풍력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기 투자가 수십 년 후 기술 성숙으로 이어졌습니다.
셰일 혁명이었습니다. 2010년대 미국에서 셰일 오일과 가스 생산이 폭발했습니다. 수압 파쇄(fracking) 기술.
미국이 다시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중동 의존도가 극적으로 낮아졌습니다. OPEC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중동 지정학을 바꾸었습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오바마, 트럼프 모두 이 방향이었습니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이었습니다. 화석 연료가 기후 변화의 주요 원인.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지정학을 만들고 있습니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차. 이 기술들의 핵심 소재가 리튬, 코발트, 희토류입니다. 이것들의 지리학이 새로운 자원 정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지배합니다.
마이클 만은 에너지 전환을 경제 권력의 물질적 기반이 변화할 때 국제 질서 전체가 재편되는 과정의 진행 중인 사례로 봅니다. 석유 시대가 만든 권력 구조가 재생 에너지 시대에 변화할 것입니다. 그 변화가 어떤 새로운 패권을 만들 것인가.

9장. 마이클 만의 분석 : 경제 권력의 역전이 보여주는 것
마이클 만이 석유 위기에서 읽어내는 핵심 분석들이 있습니다.
경제 권력이 단일하지 않습니다. 기술, 자본, 금융이 한 종류의 경제 권력입니다. 자원이 다른 종류입니다. 시장이 또 다른 종류입니다.
1973년 이전 서방이 기술과 자본에서 우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자원에서 열세였습니다. 그 열세가 결정적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경제 권력이 복수(複數)임을 보여줍니다. 어느 한 차원에서 강해도 다른 차원에서 취약할 수 있습니다.
집합 행동이 권력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개별 산유국들이 힘이 없었습니다. OPEC이라는 집합 행동이 권력을 만들었습니다. 게임 이론적으로 이것이 카르텔이었습니다. 카르텔이 시장 지배력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경제학이 보여주는 집합 행동의 힘입니다. 작은 행위자들도 조직적으로 행동할 때 강한 상대에 맞설 수 있습니다.
경제 충격이 이념 혁명을 촉발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의 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위기가 신자유주의에 공간을 주었습니다. 73화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경제 현실이 변하면 이념이 따라갑니다. 이것이 역방향 IEMP 흐름입니다. 보통은 이념이 경제를 형성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제 현실이 이념을 바꾸기도 합니다.
자원 지배가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OPEC이 1973년 큰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영구적이지 않았습니다. 대체 에너지 개발. 효율성 향상. 셰일 혁명. 이것들이 OPEC의 영향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권력이 한 종류의 자원에 의존할 때 그 자원이 대체되면 권력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경제 권력의 역사적 패턴입니다.
마이클 만의 결론이 있습니다.
1973년 석유 위기가 세 가지를 바꾸었습니다.
첫째, 경제 권력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원 보유국이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둘째, 황금기 케인스주의의 한계를 드러내어 신자유주의 혁명의 길을 열었습니다.
셋째, 에너지 안보가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됨으로써 중동이 국제 정치의 영구적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이 세 변화가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구조적 기반 중 하나입니다.

1973년 10월의 주유소 줄.
미국인들이 서있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때로 싸웠습니다. 주유를 못 받고 돌아갔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의 시민들이 중동의 결정 앞에 무력했습니다.
이것이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이 수십 년간 미국 정치를 형성했습니다. 에너지 독립. 중동 개입. 핵 에너지. 연비 기준. 이것들이 모두 1973년의 그림자였습니다.
마이클 만이 석유 위기에서 마지막으로 읽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경제도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제가 자원, 시장, 기술의 국제적 연결 안에 있습니다. 그 연결 안에서 의존성이 생깁니다. 의존성이 취약성이 됩니다. 취약성이 권력 관계를 만듭니다.
석유 위기가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희토류, 반도체, 배터리 소재가 새로운 의존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취약성이 새로운 권력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다음 화 예고 73화, 신자유주의의 탄생 : 이념이 경제 권력을 탈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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