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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적 권력의 원천

「권력의 지도」 70화, 복지 국가 : 정치 권력이 경제를 길들이다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22.

1942년 11월, 런던.

윌리엄 베버리지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전시 영국이었습니다. 폭탄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보고서를 읽으려고 줄을 섰습니다.

베버리지 보고서였습니다. 부제가 있었습니다. "사회 보험과 관련 서비스들."

그것이 무엇을 약속했을까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시민을 돌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버리지가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거인을 정의했습니다. 결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 이것들을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서가 63만 부 팔렸습니다. 전시 배급이 있는 나라에서.

1945년 전쟁이 끝났습니다. 영국에서 총선거가 있었습니다. 처칠이 졌습니다. 전쟁 영웅이 평화의 선거에서 졌습니다.

노동당이 이겼습니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으로.

이것이 복지 국가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복지 국가를 정치 권력이 자본주의 경제 권력의 논리를 제어하려 한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지속적인 시도로 봅니다. 그것이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타협이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과도한 측면을 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타협이 20세기 중반 서방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1장. 왜 복지 국가가 탄생했나 : 세 가지 압력


복지 국가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역사적 압력이 결합했을 때 가능해졌습니다.

첫째, 대공황의 충격이었습니다. 1929~1939년 대공황이 자유 시장의 실패를 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실업률 25퍼센트. 은행 줄도산. 굶주림.

자유 시장이 스스로 회복된다는 고전 경제학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케인스가 이론을 제공했습니다. 시장이 완전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부 지출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경기 침체 때 적자 지출을 해야 한다.

둘째,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이었습니다. 전쟁이 국가의 경제 개입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정부가 경제를 계획하고 조정하면 놀라운 생산 증가가 가능했습니다. 전후에 이 능력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동시에 전쟁이 사회 계층을 섞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싸웠습니다. 귀족들도 싸웠습니다. 폭격이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를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이 공유된 고통이 사회 연대 의식을 강화했습니다.

전쟁 후 병사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더 나은 사회를 요구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싸웠다고. 더 공정한 사회를. 기회가 평등한 사회를.

셋째, 공산주의의 위협이었습니다. 소련이 존재했습니다. 유럽 공산당들이 강력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지배 계급이 두려워했습니다. 사회 개혁 없이는 노동자들이 공산주의로 기울 것이라고. 어느 정도 양보가 필요했습니다.

복지 국가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개혁한 것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이 세 압력의 결합을 경제 권력의 실패(대공황), 군사 동원의 경험(전쟁), 이념 경쟁의 압박(공산주의)이 함께 작동했을 때 정치 권력이 경제 구조를 바꾸는 공간이 열린다는 것으로 봅니다.


2장. 케인스 혁명 : 경제학이 바뀌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년).

그가 20세기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케인스 이전의 경제 사상이었습니다. 고전 경제학이 시장이 자기 조정 능력을 가진다고 믿었습니다.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간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회복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완전 고용이 자연스럽게 달성된다.

실업이 있으면 임금이 내려간다. 임금이 내려가면 기업이 더 고용한다. 실업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케인스가 이것을 반박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장기적 자기 조정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굶는다.

케인스의 핵심 주장이었습니다.

경제가 균형 상태에서 완전 고용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균형이지만 좋은 균형이 아닙니다.

이 균형에서 탈출하려면 외부 충격이 필요합니다. 그 충격이 정부 지출이 될 수 있습니다.

승수 효과. 정부가 100을 지출하면 그 돈이 순환하면서 200, 300의 경제 활동을 만든다. 처음 지출의 몇 배의 효과.

정책 함의가 있었습니다. 경기 침체 때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적자 재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합니다. 경기가 회복되면 흑자로 돌아온다.

1936년 케인스의 걸작이었습니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케인스를 이념 권력이 경제 권력의 작동 방식을 재정의하는 방식의 가장 중요한 사례로 봅니다. 케인스가 새로운 경제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이 정책을 정당화했습니다. 정책이 경제 구조를 바꾸었습니다. 이념이 현실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3장. 복지 국가의 내용 : 무엇을 만들었나


복지 국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었을까요.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통된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사회 보험이었습니다. 실업 보험. 노령 연금. 산재 보험. 의료 보험. 이것들이 시장이 제공하지 않는 보호를 국가가 제공했습니다.

시장에서 개인이 실직, 노화, 질병의 위험에 혼자 대처해야 했습니다. 복지 국가가 이 위험을 사회화했습니다. 모두가 조금씩 내고 위험이 닥칠 때 보호받는다.

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NHS)가 상징이었습니다. 1948년 설립. 모든 사람이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소득, 재산, 지위에 관계없이.

아나이린 베번이 설계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질병은 개인의 실패가 아닙니다.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공공 교육의 확장이었습니다. 무료 의무 교육. 장학금 제도로 가난한 학생들도 대학에 갈 수 있게.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었습니다.

공공 주택이었습니다. 특히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 임대 주택.

노동 시장 규제였습니다. 최저 임금. 노동 시간 제한. 안전 규정. 노조 권리 보장.

이것들이 함께 사회 안전망을 만들었습니다. 시장에서 실패해도 완전히 추락하지 않도록.

마이클 만은 복지 국가의 내용을 정치 권력이 시민들의 집합적 선택을 통해 시장 결과를 교정하는 메커니즘으로 봅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공정성을 위해 개입했습니다.


4장. 스칸디나비아 모델 : 사민주의의 완성형


복지 국가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를 취했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모델이 상징이었습니다. 사회민주당이 1932년부터 1976년까지 44년간 집권했습니다.

이 긴 집권이 무엇을 만들었을까요.

계급 타협이었습니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노동이 양보를 했습니다. 파업을 자제했습니다. 임금을 집중 협상으로 결정했습니다. 효율성을 수용했습니다.

자본이 양보를 했습니다. 높은 세금을 받아들였습니다. 강한 노조를 인정했습니다. 광범위한 복지를 지지했습니다.

국가가 중재했습니다. 이것이 살트셰바던 협약(1938년)으로 시작된 스웨덴 모델이었습니다.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낮은 불평등. 높은 사회 이동성. 높은 생활 수준. 그리고 동시에 경쟁력 있는 경제.

볼보, 이케아, 에릭슨, 사브. 스웨덴이 복지 국가이면서 동시에 혁신적 기업들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핀란드의 교육 혁명이었습니다. 1970년대 핀란드 교육 개혁.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교육을. 엘리트 학교 없이. 교사를 높이 평가하고 잘 훈련시키는.

결과가 PISA 테스트에서 세계 최상위권이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계급 타협이 이념 권력과 경제 권력이 상호 이익의 방향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봅니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 가능했습니다. 효율성과 평등이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5장. 황금기 : 자본주의의 가장 번영한 시대


1945~1973년을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이 30년간 서방 선진국들에서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숫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유럽 GDP가 연평균 5퍼센트 성장했습니다.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낮았습니다. 1퍼센트대. 생산성이 빠르게 올랐습니다. 실질 임금이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 세대에서는 꿈꾸지 못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왜 황금기가 가능했을까요. 여러 요인이 있었습니다.

전후 재건 수요. 파괴된 유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요가 생겼습니다.

마셜 플랜. 미국의 지원이 재건을 가속했습니다.

케인스주의 정책. 정부가 총수요를 관리하면서 경기 침체를 완화했습니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선순환. 포드주의가 임금을 높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이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복지 국가가 황금기에 기여했을까요. 논쟁이 있습니다.

복지 국가 비판자들이 말합니다. 황금기는 복지 국가 때문이 아니라 전후 특수 상황 때문이었다.

복지 국가 지지자들이 말합니다. 사회 안전망이 소비를 안정시켰다. 공공 교육이 인적 자원을 개발했다. 높은 세금이 독점을 억제했다. 이것들이 황금기에 기여했다.

마이클 만은 황금기를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이 케인스주의 틀 안에서 상호 이익의 방향으로 통합된 결과로 봅니다. 완전한 설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6장. 복지 국가의 정치 경제 : 왜 지속 가능했나


복지 국가가 왜 몇십 년간 지속되었을까요. 왜 자본가들이 이것을 받아들였을까요.

이것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본의 이익과 일치했습니다. 건강한 노동자가 더 생산적입니다. 교육받은 노동자가 더 혁신적입니다. 안정적 소비자가 있어야 기업이 팔 곳이 있습니다. 사회적 평화가 사업에 좋습니다.

헨리 포드가 이것을 알았습니다. 노동자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어야 자신의 제품을 살 수 있다는.

복지 국가가 소비 기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공산주의 경쟁이 압박했습니다. 66화에서 살펴보았듯 소련이 존재하는 동안 서방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했습니다. 공산주의보다 나은 조건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이 경쟁이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구조적 조건이었습니다.

계급 타협의 제도화였습니다. 강력한 노조. 복지 프로그램. 케인스주의 정책. 이것들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노조가 임금을 높였습니다. 높은 임금이 소비를 늘렸습니다. 높은 소비가 기업 이윤을 유지했습니다. 기업 이윤이 세금을 내었습니다. 세금이 복지를 지원했습니다. 복지가 노동자들의 안정을 주었습니다. 안정이 노동 생산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이 체계가 경제 성장을 전제로 했습니다. 성장이 줄어들면 세수가 줄었습니다. 복지 지출은 그대로이거나 늘었습니다. 재정 압박이 생겼습니다.

마이클 만은 복지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이 제도들이 어떤 행위자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느냐의 문제로 봅니다. 노동자에게는 명확한 이익이었습니다. 자본가에게는 단기적 비용이지만 장기적 이익이었습니다. 국가에게는 정당성이었습니다. 이 세 집단이 모두 이익을 얻는 한 체계가 유지되었습니다.


7장. 복지 국가의 한계와 비판 : 어디서 문제가 생겼나


복지 국가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오른쪽에서의 비판이었습니다.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습니다.

높은 세금이 투자를 위축시킵니다. 기업이 세금이 낮은 나라로 이전합니다. 복지 의존성이 노동 유인을 줄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밀턴 프리드먼, 하이에크가 이 비판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73화에서 살펴볼 신자유주의의 기초였습니다.

왼쪽에서의 비판도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했습니다.

복지 국가가 자본주의 착취를 완화할 뿐 근본을 바꾸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혁명적 의식을 흡수합니다. 자본주의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조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복지 국가가 가족 내 성별 분업을 전제로 했습니다. 남성이 일하고 여성이 집안을 돌본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이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복지 설계가 바뀌어야 했습니다.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복지 국가가 민족 동질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민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경계가 논쟁이 되었습니다. 누가 복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1970년대 위기였습니다. 석유 파동이 왔습니다. 성장이 멈추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졌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케인스주의 정책이 이것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복지 재정 압박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반격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만은 복지 국가의 한계를 모든 역사적 타협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 변할 때 도전을 받는다는 것으로 봅니다. 황금기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조건이 변했을 때 타협이 흔들렸습니다.


8장. 마이클 만의 분석 : 복지 국가가 보여주는 것


마이클 만이 복지 국가에서 읽어내는 핵심 분석들이 있습니다.

정치 권력이 경제 권력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복지 국가가 자본주의를 없애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파괴적인 측면들을 완화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역사적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강한 노동 운동. 경쟁하는 이념(공산주의). 경제 성장의 지속. 이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타협이 가능했습니다.

타협이 이념과 물질 이익 모두에 기반해야 합니다. 복지 국가가 이념(연대, 평등, 사회적 시민권)과 물질 이익(소비 기반, 사회 안정) 모두에 기반했습니다. 이 이중 기반이 타협을 지속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념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익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이 결합해야 합니다.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결국 제약합니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을 때 국가의 규제 능력이 제한됩니다. 세계화가 복지 국가를 압박한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복지 국가가 민족 국가 수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국제화되면서 민족 국가의 통제 능력이 줄었습니다.

마이클 만의 결론이 있습니다.

복지 국가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평등과 불안정을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5~1975년의 황금기가 복지 국가 없이 가능했을까요.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교훈을 남겼습니다.

평등과 성장이 트레이드오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적절한 수준의 재분배가 성장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비 기반을 넓혀 성장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이 교훈이 73화에서 살펴볼 신자유주의의 도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1945년 여름, 영국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6년간 싸웠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

베버리지가 약속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노동당이 이겼습니다. 복지 국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십 년 후 그 병사들의 손자들이 NHS에서 태어났습니다. 무료로. 공립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실직했을 때 실업 수당을 받았습니다. 늙어서 국민연금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항상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1945년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싸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이클 만이 복지 국가의 역사에서 읽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 제도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특정한 정치적 투쟁을 통해.

그리고 그것이 유지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복지 국가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그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다음 화 예고 71화, 1968년 : 이념 권력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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