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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양 에세이/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패러다임의 탄생」 7화, 패러다임의 지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6. 10.

1610년 1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을 밤하늘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목성 주변에서 네 개의 작은 점이 날마다 위치를 바꾸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목성의 위성이라는 사실을 갈릴레오는 즉시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같은 망원경으로 같은 하늘을 바라본 다른 천문학자들 중 일부는 그 점들을 망원경의 결함이나 대기의 왜곡 탓으로 돌렸습니다. 같은 것을 보았지만, 전혀 다른 것을 인식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쿤은 여기서 매우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과학자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고. 언제나 패러다임의 안경을 통해 세계를 본다고. 그리고 패러다임이 다르면,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고.


보는 것은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흔히 눈으로 보는 것은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기처럼,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지과학은 오래전부터 이것이 착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의 시각은 단순한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뇌가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쿤은 이 인지과학의 통찰을 과학의 역사에 적용합니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관측소에서, 현장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빛이 들어오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개념적 틀 안에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행위입니다. 패러다임이 달라지면 같은 데이터가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게슈탈트 전환의 비유
쿤이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입니다.
오리처럼도 보이고 토끼처럼도 보이는 유명한 그림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리로 보일 때와 토끼로 보일 때, 망막에 맺히는 이미지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런데 보는 방식이 전환되는 순간, 그림 전체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오리의 부리였던 것이 토끼의 귀가 되고, 토끼의 눈이었던 것이 오리의 눈이 됩니다. 부분 부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한꺼번에 전환됩니다.
쿤은 패러다임 전환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새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과학자는 이전과 같은 자료를 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합니다. 산소 이론을 받아들인 화학자에게 연소 현상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믿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사건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설명이 바뀐 것이 아니라, 현상 자체가 다르게 보입니다.


천왕성 발견의 교훈
역사적 사례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천왕성은 1781년 윌리엄 허셜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이전에 적어도 열일곱 명의 천문학자들이 천왕성을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왜 천왕성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망원경은 충분히 성능이 좋았습니다. 눈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천왕성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패러다임은 태양계의 행성이 토성까지라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열일곱 명의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을 행성이 아닌 별로 기록했습니다. 혹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패러다임이 그것을 행성으로 볼 수 없게 막고 있었습니다.
허셜이 달랐던 것은 시력이 아니라 관점이었습니다. 그는 망원경으로 별들의 시차를 측정하는 연구를 하던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움직임이 이상한 천체를 발견하고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패러다임의 경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 것입니다.


패러다임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감추는가
패러다임은 과학자의 시야를 열어주는 동시에 닫습니다. 패러다임 덕분에 과학자는 관련 있는 것과 관련 없는 것을 구별하고, 중요한 신호와 배경 소음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유익한 기능입니다. 패러다임이 없다면 과학자는 무한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길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패러다임은 특정한 종류의 현상을 보이지 않게 만들거나, 보이더라도 의미 없는 것으로 처리하게 만듭니다. 패러다임의 예측과 맞지 않는 데이터는 측정 오류나 실험 실패로 처리되기 쉽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패러다임의 균열을 가리키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칙현상이 처음에는 좀처럼 인식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변칙현상은 패러다임의 안경을 쓴 눈에는 오류나 잡음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진짜 신호라는 것을 알아채려면, 패러다임의 틀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각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수십 년의 훈련으로 내면화된 패러다임의 안경은, 벗으려 해도 좀처럼 벗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즉 쿤이 말하는 "과학 공동체"의 내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서로를 인정하고, 어떻게 연구의 가치를 평가하고, 어떻게 공동체의 경계를 지키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8화 예고: 과학 공동체 :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 그들만의 언어와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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