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von Karajan — Adagio 2 · Deutsche Grammophon, 1995
ADAGIO
Karajan
2
Adagio 2
지휘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연주 · 베를린 필하르모닉 (Berliner Philharmoniker) 솔로이스트 · 카를하인츠 죌러, 미셸 슈발베, 토마스 브란디스, 게르하르트 슈템프닉
레이블: Deutsche Grammophon · 발매: 1995년 12월 1일 수록 시간: 약 76분 · 12곡
🏅 Deutsche Grammophon
느린 음악이 남기는 것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과, 천천히 흘러가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자국을 새기는 것. 클래식 음악에서 후자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아다지오(Adagio)'입니다. '느리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그러나 느림은 결코 심심함이 아닙니다. 느림은 깊이입니다.
1995년, 독일 그라모폰은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르모닉의 방대한 녹음 유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들만을 엄선하여 두 번째 모음집을 내놓았습니다. 1994년 출시된 첫 번째 《아다지오》가 큰 성공을 거두자 뒤이어 기획된 이 앨범에는 그리그부터 라벨까지, 12명의 작곡가가 남긴 가장 심오한 느린 음악들이 담겼습니다. 카라얀은 1989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이 음반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카라얀은 느린 악장을 지휘할 때 가장 카라얀다웠다. 그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을 지배했고, 오케스트라를 마치 숨쉬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다루었다. — 음악 평론가 미하엘 슈트루크-슐뢴 (Michael Struck-Schloen), 앨범 라이너 노트
지휘자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08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절대 군주였습니다. 세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네 살에 첫 연주회를 열었다는 신동이, 훗날 베를린 필하르모닉의 종신 수석 지휘자가 되고, 살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황제가 되고, 오페라와 교향악 전 분야에 걸쳐 900장이 넘는 음반을 남길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경력은 논쟁과 함께였습니다.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은 전후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고, 레너드 번스타인과의 예술적 대립, 베를린 필의 여성 연주자 채용 문제 등 끊임없는 갈등이 그의 생애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음악 앞에서 그는 누구보다 철저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레퍼토리를 암보(暗譜)로 지휘했고, 녹음 기술과 영상 매체를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도구로 적극 활용한 최초의 지휘자이기도 합니다.
1989년 7월, 그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녹음 세션을 마친 직후 잘츠부르크 자택에서 8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음악 곁을 지킨 것입니다. 그가 남긴 베를린 필과의 방대한 도이체 그라모폰 녹음들은 지금도 클래식 음반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앨범 속 작곡가들 · 12개의 느린 순간
이 앨범은 바로크부터 20세기 초까지, 300년의 음악 역사를 아우르는 12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곡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같은 감정의 언어를 말합니다. 바로 '느림의 아름다움'입니다.
에드바르 그리그 (Edvard Grieg)
1843 – 1907 · 노르웨이
북구의 시정(詩情)을 음악으로 빚어낸 낭만파의 거인. 그의 〈솔베이의 노래〉는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로 꼽힌다.
크리스토프 글루크 (Christoph W. Gluck)
1714 – 1787 · 오페라 개혁가
오페라를 화려한 성악 기교의 전시장에서 진정한 드라마로 되돌린 개혁가. 〈정령들의 춤〉은 그의 예술적 이상이 응축된 걸작.
오토리노 레스피기 (Ottorino Respighi)
1879 – 1936 · 이탈리아
로마 3부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근대 음악의 거장. 이 앨범에서는 류트를 위한 고대 음악을 현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작품이 수록.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1678 – 1741 · 바로크 이탈리아
〈사계〉의 작곡가. 이 앨범에는 〈겨울〉의 라르고와 이중 바이올린 협주곡의 라르고, 두 편의 느린 악장이 담겨 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Pyotr Tchaikovsky)
1840 – 1893 · 러시아 낭만파
러시아 낭만주의의 정수. 〈현을 위한 세레나데〉 3악장 엘레지아는 감상(感傷)이 아니라 진짜 슬픔으로 빚어진 음악이다.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 – 1957 · 핀란드
핀란드 민족 정신의 화신. 〈투오넬라의 백조〉는 죽음의 강을 홀로 떠도는 백조를 영어(英語) 혼의 음색으로 묘사한 걸작.
게오르크 헨델 (Georg Frideric Handel)
1685 – 1759 · 바로크 거장
〈메시아〉의 작곡가. 합주 협주곡 Op.6/12의 라르게토는 헨델 특유의 귀족적 우아함과 깊은 서정이 빛나는 소품.
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ín Dvořák)
1841 – 1904 · 체코
〈신세계 교향곡〉 2악장 라르고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류 보편의 향수를 담은 악장. 카라얀의 해석은 이 곡의 절대적 기준으로 남아 있다.
조르주 비제 (Georges Bizet)
1838 – 1875 · 프랑스
〈카르멘〉의 작곡가. 〈아를의 여인〉 모음곡의 아다지에토는 극적 긴장 속에 숨겨진 서정의 한 순간을 음악으로 포착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Mozart)
1756 – 1791 · 고전주의 정점
〈아다지오와 푸가 c단조〉는 모차르트의 어두운 면이 응축된 작품. 푸가의 엄격한 구조 속에 흐르는 비장한 아름다움.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 – 1937 · 프랑스 인상주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다. 황혼처럼 물드는 7분, 이것이 이 앨범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
수록곡 전체 목록
#곡명 · 작곡가시간
1
그리그: 페르 귄트 모음곡 2번 Op.55 — 4악장. 솔베이의 노래
Grieg: Peer Gynt Suite No. 2, Op. 55: IV. Solveig's Song
★ 앨범의 첫 문장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다림의 노래
5:59
2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정령들의 춤 (복된 영혼들의 춤)
Gluck: Orfeo ed Euridice — Dance of the Blessed Spirits
플루트 솔로: 카를하인츠 죌러 (Karlheinz Zöller)
★ 황금 플루트가 천국을 묘사한다
6:43
3
레스피기: 류트를 위한 고대 무곡과 아리아 3집 — 1. 이탈리아나
Respighi: Ancient Airs & Dances, Suite III, P.172: I. Italiana
3:37
4
비발디: 두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a단조 RV 523 — 2악장. 라르고
Vivaldi: Concerto for 2 Violins in A minor, RV 523: II. Largo
솔로: 토마스 브란디스 (Thomas Brandis)
3:36
5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48 — 3악장. 엘레지아 (라르게토)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Op. 48: III. Elegia. Larghetto elegiaco
★ 8분의 비가(悲歌) — 카라얀이 가장 사랑한 음악 중 하나
8:10
6
시벨리우스: 투오넬라의 백조 Op.22 No.2
Sibelius: The Swan of Tuonela, Op. 22 No. 2
잉글리시 혼 솔로: 게르하르트 슈템프닉 (Gerhard Stempnik)
★ 죽음의 강을 떠도는 백조 — 듣는 이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음악
7:50
7
비발디: 사계 중 〈겨울〉 f단조 RV 297 — 2악장. 라르고
Vivaldi: The Four Seasons, Winter, RV 297: II. Largo
바이올린 솔로: 미셸 슈발베 (Michel Schwalbé)
2:13
8
헨델: 합주 협주곡 12번 b단조 Op.6/12 — 3악장. 아리아와 변주. 라르게토
Handel: Concerto grosso No. 12 in B minor, Op. 6/12, HWV 330: III. Aria e variato. Larghetto
5:59
9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e단조 Op.95 〈신세계로부터〉 — 2악장. 라르고
Dvořák: Symphony No. 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II. Largo
★ 13분의 귀향(歸鄕) — 이 앨범 최장, 그리고 최대 명연
13:06
10
비제: 아를의 여인 모음곡 1번 — 3악장. 아다지에토
Bizet: L'Arlésienne Suite No. 1, WD 40: III. Adagietto
3:18
11
모차르트: 아다지오와 푸가 c단조 K.546
Mozart: Adagio & Fugue in C minor, K. 546
8:15
12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M.19a
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 19a
★ 앨범의 마지막 인사 — 황혼처럼 물드는 7분
7:08
총 수록 시간: 1시간 16분 01초
꼭 들어야 할 곡 · 감상 가이드
12곡 모두 명연이지만, 처음 이 앨범을 접하는 분들을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할 다섯 곡을 골랐습니다. 순서대로 들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희망에서 시작해 슬픔을 지나 고요한 받아들임으로 끝나는, 어떤 삶의 이야기.
1
그리그 — 솔베이의 노래 (Solveig's Song)
페르 귄트를 기다리며 평생을 홀로 보낸 여인 솔베이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기다림, 사랑, 그리고 시간—이 모든 것이 단 한 편의 멜로디에 담겨 있습니다. 카라얀은 이 곡을 극도로 느리게, 그리고 극도로 순수하게 연주합니다. 음악을 처음 접하는 분에게도, 오랫동안 들어온 분에게도 똑같이 가슴을 울리는 단 하나의 선율.
2
글루크 — 정령들의 춤 (Dance of the Blessed Spirits)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 에우리디체를 찾아 저승에 내려갔을 때, 그의 음악에 감동한 저승의 영혼들이 추는 춤입니다. 플루티스트 카를하인츠 죌러의 독주가 정말로 이 세상 것이 아닌 소리처럼 들립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소리가 흐를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6분 43초.
3
시벨리우스 — 투오넬라의 백조 (The Swan of Tuonela)
핀란드 신화 속 죽음의 강 투오넬라를 홀로 떠도는 백조. 잉글리시 혼이라는 악기가 내는 특유의 어둡고 깊은 음색이 이 신화적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7분 50초 동안 음악은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음악이 또 있을까요.
4
드보르자크 — 신세계 교향곡 2악장 라르고
이 음반의 절대적 주인공이자, 카라얀 최고의 드보르자크 해석으로 꼽히는 명연입니다. 영어 혼의 유명한 주제 선율이 시작되는 순간, 청중은 국적을 불문하고 어딘가 먼 곳—고향, 혹은 잃어버린 시간—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13분이 짧게 느껴지는 이 경험이야말로 카라얀의 마법입니다.
5
라벨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앨범의 마지막 곡. '죽은 왕녀'가 아니라 '왕녀의 죽음을 위한' 곡도 아니라, 라벨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냥 어감이 마음에 들었다"는 제목이지만, 그 음악이 자아내는 슬픔의 질감은 제목만큼이나 완벽합니다.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 황혼의 빛처럼 천천히 사라지며 앨범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음반을 마치며
빠른 세상에서 느린 음악을 듣는다는 것, 그것은 잠시 멈추는 연습입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이 빚어낸 이 12편의 아다지오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림 속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음반을 듣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하루가 저물어 가는 저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