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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고전음악산책

알렉상드르 타로 · 베르사유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5.

 

고전음악산책 · Album Essay

알렉상드르 타로 · 베르사유

Alexandre Tharaud — Versailles · Erato, 2019

ALEXANDRE
VERSAILLES
THARAUD
Versailles

피아노 · 알렉상드르 타로 (Alexandre Tharaud)
소프라노 · 사빈 드비에이유 (Sabine Devieilhe)
피아노 · 쥐스탱 테일러 (Justin Taylor)

레이블: Erato · 발매: 2019년 11월 15일
수록 시간: 약 77분 · 21곡

🏆 Gramophone Editor's Choice 2020

문이 열린다

베르사유 궁전이 텅 비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새벽 안개가 거울의 방 유리창에 스며들고, 아무도 없는 홀에 당신의 발소리만 울려 퍼지는 순간. 알렉상드르 타로는 이 앨범의 첫 곡을 연주할 때마다 바로 그런 감각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치 혼자서 베르사유에 서서, 문을 열고 저 거대하고 위압적인 방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요.

2019년 11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는 Erato 레이블을 통해 이 이례적인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루이 14세부터 16세까지, 즉 베르사유가 유럽의 심장이었던 시절 그 궁정을 수놓았던 작곡가들의 음악을 현대 피아노로 재현한 것입니다. 원래 쳄발로(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인 곡들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것은 하나의 번역이자, 한 시대에 대한 러브레터입니다.


연주자 · 알렉상드르 타로

1970년 파리에서 태어난 알렉상드르 타로는 오늘날 프랑스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가장 독창적인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한 뒤 국제 무대에 등장한 그는 처음부터 남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쿠프랭, 라모, 스카를라티 같은 바로크 레퍼토리부터 베토벤, 쇼팽, 브람스, 라흐마니노프를 거쳐 에릭 사티와 재즈 시대 파리의 음악, 심지어 프랑스의 전설적 샹소니에 바르바라(Barbara)에 이르기까지—25장이 넘는 독집 앨범은 그 어떤 피아니스트와도 겹치지 않는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타로는 Erato의 전속 아티스트로, 그의 음반들은 대부분 프랑스 음악 언론의 주요 상을 수상했습니다. 파리 필하르모니, 런던 위그모어 홀, 암스테르담 뮤지크헤바우, 도쿄, 서울 등 세계 최정상 무대에 정기적으로 서는 그는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기할 점은 그의 연주가 언제나 극도로 개인적이라는 것—그는 악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보와 대화를 나눕니다.

"나는 언제나 이 시대의 프랑스 음악에 끌렸습니다. 이 앨범은 그 시대 베르사유 작곡가들에게 바치는 헌정입니다. 짧은 소품들로 이루어진 한 다발의 꽃다발 같은 것이지요." — 알렉상드르 타로, 앨범 인터뷰 중

앨범 속 작곡가들 · 베르사유의 음악가들

이 앨범에는 모두 9명의 작곡가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과 함께, 타로가 발굴해낸 덜 알려진 거장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장-필리프 라모 (Rameau)
1683 – 1764 · 루이 15세 치세
프랑스 바로크의 정점. 건반 음악의 시인이자 오페라 개혁가. 〈새들의 귀환〉처럼 자연을 묘사하는 음화(音畵)의 대가.
프랑수아 쿠프랭 (François Couperin)
1668 – 1733 · 루이 14세 치세
'위대한 쿠프랭'으로 불린 루이 14세 궁정의 오르가니스트. 클라브생 모음곡의 섬세한 시정(詩情)으로 이름을 남겼다.
장-앙리 당글베르 (d'Anglebert)
1629 – 1691 · 루이 14세 치세
루이 14세의 궁정 쳄발리스트. 뤼리의 작품을 건반 편곡으로 남겼으며, 샤콘과 푸가의 대가.
조세 루아예 (Pancrace Royer)
1703 – 1755 · 루이 15세 치세
타로가 특별히 사랑하는 숨은 거장. 화려한 기교와 어두운 드라마성으로 가득한 그의 〈스키타이인의 행진〉은 이 앨범의 압권.
자크 뒤플리 (Jacques Duphly)
1715 – 1789 · 루이 15·16세 치세
프랑스 혁명 전야까지 활동한 쳄발리스트. 섬세한 서정성과 우아한 선율로 프랑스 건반 전통의 황혼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장-바티스트 뤼리 (Lully)
1632 – 1687 · 루이 14세 치세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 왕실 음악의 절대 군주가 된 작곡가. 〈터키 의식의 행진〉은 몰리에르의 희곡에 붙인 곡으로 유명.
클로드 발바스트르 (Claude Balbastre)
1724 – 1799 · 루이 15·16세 치세
혁명 전야까지 살았던 베르사유 마지막 세대 음악가. 타로가 최초로 현대 피아노 녹음을 시도한 작품 중 하나.
로베르 드 비제 (Robert de Visée)
c.1655 – c.1732 · 루이 14세 치세
기타와 류트의 거장으로 루이 14세가 총애한 음악가. 이 앨범에서 그의 〈사라방드〉는 섬세한 피아니즘으로 변모한다.

수록곡 전체 목록

# 곡명 · 작곡가 시간
1
Prélude — Premier livre de pièces de clavecin
라모 (Rameau)
★ 앨범의 문을 여는 곡
2:31
2
Le Rappel des oiseaux (새들의 귀환)
라모 (Rameau) — Second livre, Suite en mi
2:51
3
Sarabande
드 비제 (Robert de Visée)
2:24
4
Tambourin
라모 (Rameau) — Second livre, Suite en mi
1:11
5
L'Aimable (사랑스러운 여인)
루아예 (Pancrace Royer) — Premier livre
4:51
6
Gavotte et doubles (가보트와 변주)
라모 (Rameau)
★ 비평가 절찬 — 피아노의 모든 색채를 탐구
6:27
7
Sarabande: Dieu des Enfers (지옥의 신)
당글베르 (d'Anglebert)
2:18
8
La Marche des Scythes (스키타이인의 행진)
루아예 (Pancrace Royer)
★ 앨범 최고의 드라마 — 피아노가 전쟁을 연주한다
6:14
9
Viens, Hymen (오라, 히멘이여) — Les Indes Galantes
라모 (Rameau) · 사빈 드비에이유 (소프라노) 협연
3:22
10
Premier et deuxième Tambourins
루아예 (Pancrace Royer)
1:31
11
Les ombres errantes (방황하는 그림자들)
쿠프랭 (François Couperin) — Pièces IV, Ordre 25
4:48
12
Rondeau: La Pothoüin
뒤플리 (Jacques Duphly)
5:13
13
Les Sauvages (야만인들) — 피아노 2대
라모 (Rameau) · 쥐스탱 테일러 협연
1:59
14
Chaconne in C
당글베르 (d'Anglebert)
3:01
15
Cadmus: Ouverture (after Lully) (뤼리 편곡)
당글베르 (d'Anglebert)
3:21
16
Passacaille in B minor
쿠프랭 (François Couperin) — Pièces II, Ordre 8
★ 프랑스 바로크의 심연 — 장중하고 비장한 6분
6:20
17
Fugue grave
당글베르 (d'Anglebert)
3:21
18
La de Belombre — Troisième livre
뒤플리 (Jacques Duphly)
3:38
19
Marche pour la cérémonie des Turcs (터키 의식의 행진)
뤼리 (Jean-Baptiste Lully)
1:27
20
La Suzanne
발바스트르 (Claude Balbastre)
4:19
21
Variations sur Les Folies d'Espagne (스페인의 광기 변주곡)
당글베르 (d'Anglebert)
★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6분의 변주 대작
6:52

꼭 들어야 할 곡 · 감상 가이드

77분짜리 앨범 전체가 마치 베르사유 궁전 투어처럼 잘 설계되어 있어, 비평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가장 인상적인 다섯 곡을 엄선했습니다.

1
라모 — 새들의 귀환 (Le Rappel des oiseaux)
봄날 아침, 새들이 하나둘씩 돌아오는 장면을 음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타로의 피아노는 진주처럼 맑고 투명한 음색으로 이 섬세한 음화(音畵)를 살려냅니다. 바로크 음악이 낯선 분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입문 곡.
2
루아예 — 스키타이인의 행진 (La Marche des Scythes)
이 앨범 최고의 화제작. 저음부에서 으르렁대는 불길한 진행이 시작되는 순간, 청중은 잠시 이것이 바로크 음악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타로는 피아노의 저음역을 마치 쳄발로의 금속성 울림처럼 날카롭게 다루며, 무서운 야만의 군대를 소환합니다. 루아예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이 곡을 듣고 나서 달라질 것입니다.
3
라모 — 가보트와 변주 (Gavotte et doubles)
《인터내셔널 피아노》 지가 "피아노의 모든 터치와 색채를 총동원한다"고 극찬한 곡. 단순한 가보트 멜로디가 변주를 거듭하며 점점 깊어지고 풍부해지는 과정—타로의 해석은 이 6분이 결코 지루하지 않도록 만들어 줍니다.
4
쿠프랭 — 방황하는 그림자들 (Les ombres errantes)
"위대한 쿠프랭"의 마지막 건반 모음집에 수록된 신비로운 소품. 제목 그대로, 저승을 떠도는 영혼들의 속삭임 같습니다. 타로의 연주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조각합니다. 무언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느낌, 그 아름다운 쓸쓸함.
5
당글베르 — 스페인의 광기 변주곡 (Variations sur Les Folies d'Espagne)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약 7분짜리 변주 대작. '광기(Folies)'라는 이름이 붙은 유명한 스페인 선율 위에 당글베르가 펼쳐 놓은 무수한 변주들을 타로가 하나하나 해체하고 재조립합니다. 끝까지 들었을 때, 베르사유의 문이 조용히 닫히는 느낌이 듭니다.

음반을 마치며

알렉상드르 타로의 《베르사유》는 단순한 복원이 아닙니다.
쳄발로가 아닌 피아노로 이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과거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눈으로 과거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루이 왕들의 궁정에서 울렸던 음악이
타로의 손끝을 통해 오늘 우리의 귀에 닿을 때,
베르사유는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공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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