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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론/1부. 아는이와앎

EP.17 지식의 경계는 어디인가: 지식의 범위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5. 12.

■ 오늘의 질문

1900년 4월 27일,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 즉 켈빈 경은 왕립연구소 강연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물리학에서 새로 발견될 것은 없다. 남은 것은 더욱 정밀한 측정뿐이다."

그로부터 5년 후,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25년 후,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토대를 뒤흔들었습니다. 켈빈이 '완성됐다'고 선언한 물리학은 사실 가장 극적인 혁명의 전야에 있었습니다.

역사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1899년 미국 특허청장 찰스 듀엘은 "발명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명되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19세기 중반의 화학자들은 원소 주기율표가 완성되면 화학의 지식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선언들이 번번이 틀린 것은 단순히 그 사람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식의 경계를 확정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 방향의 질문도 있습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도 과연 옳은가요? 신의 존재, 의식의 본질, 도덕적 진리, 타인의 내면, 이것들은 원칙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지식의 경계 밖에 있는 것인가요?

지식의 범위를 묻는 것은 지식론의 가장 심오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지도를 그리고, 그 경계를 탐구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 생각의 실마리 : 지식의 범위란 무엇을 묻는가

지식의 범위(Scope of Knowledge)를 묻는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포함합니다.

첫째, "우리는 원칙적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인식론적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어떤 종류의 것들이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어떤 것들은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가?

둘째, "특정 지식 영역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가?" 이것은 각 학문 분야의 경계 문제입니다. 과학은 무엇을 다루고 무엇을 다루지 않는가? 역사는 어디까지 역사인가? 수학은 현실 세계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알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지식 영역의 범위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직 우리의 방법론이 발전하지 않아서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현재 알지 못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미래에 알게 될 수 있지만, 후자는 아무리 지식이 발전해도 알 수 없습니다.


■ 알 수 없는 것의 종류들

지식의 경계 밖에 있다고 주장되는 것들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 알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인지를 따져보겠습니다.

① 의식과 주관적 경험

철학에서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가 명명한 이 문제는 이것입니다. 뇌의 물리적 과정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 즉 '빨강의 느낌', '고통의 아픔', '기쁨의 감각'을 만들어내는가?

신경과학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될 때 어떤 경험이 일어나는지를 점점 더 정확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 물리적 과정이 주관적 경험을 낳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타인의 의식도 비슷한 문제입니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실제로 의식적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원칙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빨강을 보고, 고통을 느끼고, 기쁨을 경험하는지를 직접 접근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을 '타자의 마음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라고 합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방법론이 발전하면 언젠가 알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 열린 질문입니다.

② 신의 존재와 형이상학적 실재

신이 존재하는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물질 너머에 또 다른 실재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탐구 대상이었습니다.

과학적 방법으로는 이 질문들에 직접 답하기 어렵습니다. 신의 존재는 실험으로 확인하거나 반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 질문들이 과학의 범위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신의 존재는 반증 가능하지 않으므로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종류의 앎의 방식, 예를 들어 종교적 경험, 직관, 계시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③ 도덕적 진리

"살인은 잘못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적 사실처럼 알 수 있는 것인가요?

도덕 실재론자들은 도덕적 진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이성과 직관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도덕 반실재론자들은 도덕적 판단은 사실 주장이 아니라 감정이나 선호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이 경우 도덕적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범주 오류입니다.

이 논쟁은 도덕적 진리가 지식의 범위 안에 있는지 자체를 묻는 것입니다.

④ 미래

미래는 알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부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일 태양이 뜰 것을 우리는 매우 높은 확률로 압니다. 물리 법칙에 따라 계산된 행성의 위치를 수백 년 앞까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과 관련된 미래는 원칙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결과에 극적인 차이를 낳습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 이런 시스템에서 미래는 원칙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⑤ 과거의 재구성

역사적 과거는 직접 관찰할 수 없습니다.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을 통해 재구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록은 선택적이고, 유물은 불완전하며, 해석은 현재의 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지식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시대의 사건들, 패배자들의 이야기, 사적인 생각들 — 이것들은 알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더 발전된 방법론으로 언젠가 알 수 있는 것인가?


■ 각 지식 영역의 범위와 경계

지식의 일반적 범위 외에도, 각 지식 영역은 자신만의 고유한 범위와 경계를 가집니다.

자연과학의 범위와 경계

자연과학의 범위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자연 현상으로 한정됩니다. 이것이 자연과학의 강점이자 한계입니다.

강점: 반복적인 실험과 관찰로 검증된 지식은 매우 높은 신뢰성을 가집니다.

한계: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은 자연과학의 범위 밖입니다. 신의 존재, 의미와 목적의 문제, 도덕적 가치 — 이것들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 직접 다룰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경계 사례들이 있습니다. 의식은 자연 현상인가, 아니면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인가? 양자역학에서 관찰자의 역할은 물리학과 철학의 경계를 어떻게 흐리는가? 이런 질문들이 자연과학의 범위 문제를 날카롭게 만듭니다.

역사의 범위와 경계

역사는 과거의 인간 경험을 다룹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어디인가요?

시간적 경계: 얼마나 최근의 사건까지 역사인가? 어제의 사건도 역사인가? 일반적으로 역사는 직접 경험한 현재와 구분되는 과거를 다룬다고 하지만, 이 경계는 매우 흐릿합니다.

대상의 경계: 역사는 기록된 것만 다루는가? 문자가 없던 시대의 사회도 역사의 대상인가? 구전 전통, 물질 문화, 인류학적 증거를 통해 선사 시대를 '역사'로 다룰 수 있는가?

해석의 경계: 역사가가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해석을 제공할 때, 그것은 여전히 역사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수학의 범위와 경계

수학은 가장 확실하고 광범위한 지식처럼 보입니다. 수학적 진리는 논리적으로 필연적이며,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수학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1931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충분히 복잡한 수학 체계 안에서는, 그 체계 안에서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수학 자체가 자기 자신의 완전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학은 현실 세계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도 흥미로운 범위 질문입니다. 수학은 현실을 기술하는 데 놀랍도록 효과적입니다. 물리 법칙들이 수학적 언어로 표현됩니다.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이것을 "수학의 불합리한 효과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순수하게 추상적으로 발전된 수학이 물리적 현실을 그토록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가? 이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예술의 범위와 경계

예술 지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예술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담고 있는 것을 언어로 완전히 번역할 수 없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전달하는 것을 과학적 분석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술의 한계인가요? 아니면 예술이 다른 종류의 앎을 제공한다는 증거인가요?

예술 지식의 독특한 범위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 감정적 진실, 상징과 은유를 통한 의미 전달에 있습니다. 이것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하기 어렵지만,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일 수 있습니다.


■ 과학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가 : 과학주의의 한계

많은 현대인들은 과학이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입장을 과학주의(Scientism)라고 합니다.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주어지면, 과학이 인간 경험의 모든 측면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입장에 대한 비판을 살펴봅시다.

의미와 목적의 문제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우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과학적 방법으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이것들은 과학의 범위 밖의 질문입니다.

물론 과학주의자들은 이 질문들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주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이 질문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 의미와 목적의 감각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가치의 문제

"무엇이 좋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이 질문들은 과학이 직접 답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말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더 바람직한지는 가치 판단이며, 이것은 과학의 범위 밖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G. E. 무어는 이것을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불렀습니다. 자연적 사실에서 도덕적 가치를 직접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경쟁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에서 "경쟁은 좋다"는 가치를 직접 도출할 수 없습니다.

수학적 한계 : 괴델의 충격

앞서 언급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과학주의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합니다. 수학조차도 자기 자신의 완전성을 증명할 수 없다면, 과학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를 잃습니다. 어떤 형식 체계도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다면, 지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칸트는 지식의 범위 문제를 인식론의 핵심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그의 답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경험 가능한 현상(Phenomena)의 세계만을 알 수 있습니다. 경험 너머의 물자체(Ding an sich, Noumenon)는 원칙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칸트에게 신의 존재, 자유의지, 영혼의 불멸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들은 이론 이성의 범위 밖에 있습니다. 이성이 이 주제들을 다루려 할 때 불가피하게 모순(이율배반, Antinomy)에 빠집니다.

예를 들어, 세계에는 시작이 있는가 없는가? 시작이 있다면 그 시작 이전은 무엇인가? 시작이 없다면 무한한 과거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성은 이 질문에 긍정과 부정 양쪽을 동등하게 논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문제가 이론 이성의 범위 밖에 있다는 증거라고 칸트는 봅니다.

하지만 칸트는 이것이 신이나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단지 이론적 지식의 범위 밖에 있을 뿐이며, 실천 이성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를 포퍼 (1902~1994)

포퍼의 반증주의는 과학 지식의 범위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과학적 이론은 반증 가능해야 합니다. 즉 어떤 관찰이나 실험이 그 이론을 틀렸다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은 과학의 범위 밖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반증도 이 이론들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퍼는 이것을 비판했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사실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포퍼의 기준도 논란이 없지 않습니다. 수학은 반증 가능하지 않지만 분명히 지식입니다. 역사적 사건은 반복 실험이 불가능하지만 역사 지식은 존재합니다. 반증 가능성이 과학 지식의 필요조건인지에 대해 철학자들의 논쟁은 계속됩니다.

콜린 맥긴 (1950~)

영국의 철학자 맥긴은 신비주의(Mysterianism)라는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의식의 어려운 문제는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로 인해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맥긴의 논증은 이렇습니다. 뇌가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뇌가 가진 것과 다른 종류의 개념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개념은 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뇌가 의식을 만드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개념적 한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맥긴은 이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지 능력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오만보다,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겸손이 더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니콜라스 레셔 (1928~)

미국의 철학자 레셔는 '인지적 한계(Cognitive Limits)'에 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지식의 범위 문제를 정교하게 분석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종류의 무지를 구분합니다. '아는 무지(Known Unknowns)'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들입니다. 어두 물질이나 암흑 에너지의 본질처럼,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지만 아직 답을 모르는 것들입니다.

'모르는 무지(Unknown Unknowns)'는 훨씬 더 도전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것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기 전에 항생제의 개념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하는 질문들의 영역이 있습니다.

레셔에게 지식의 발전은 단순히 아는 것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동시에 모른다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과정입니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무지의 영역이 열립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의학 지식의 범위 : 몸과 마음의 경계

현대 의학은 주로 신체의 생물학적 기제를 다룹니다. 하지만 인간의 건강은 신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리적 상태, 사회적 관계, 삶의 의미와 목적, 이것들이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학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외로움을 치료하는 것이 의학의 역할인가요?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의사의 임무인가요? 이 경계 질문들은 의학 지식의 범위에 관한 중요한 지식론적 논쟁을 담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완전한 안녕 상태"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는 의학의 범위를 크게 확장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안녕을 어떻게 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법률 지식의 범위 : 법이 다루지 않는 것들

법은 사회적 행동의 경계를 설정합니다. 하지만 법이 다루지 않는 광대한 영역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냉담하게 대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대부분 법적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자녀를 무관심하게 키우는 것도 법의 경계를 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법률 지식의 범위는 '허용'과 '금지'를 다루지만, '좋음'과 '나쁨'을 완전히 포괄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도덕적으로 나쁠 수 있고,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 도덕적으로 옳을 수 있습니다. 이 간극이 법 지식의 범위 문제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인문학 지식의 범위 : 측정할 수 없는 것들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은 종종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 생산하는 지식은 과학이나 기술처럼 측정하고 수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ROI(투자 수익률)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문학 지식이 가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우리에게 주는 것, 역사 공부가 제공하는 시각, 철학이 훈련시키는 사고 능력 — 이것들은 측정하기 어렵지만 우리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칩니다.

지식의 범위를 측정 가능한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측정할 수 없지만 소중한 것들을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지식론적 문제입니다.

AI 시대의 지식 범위

인공지능은 지식의 범위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합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인식하며,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특정 문제를 풉니다.

그렇다면 AI가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관적 경험, 감정적 이해, 맥락에 대한 직관, 의미의 감각 — 이것들은 현재의 AI가 진정한 의미에서 갖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AI는 사랑 시를 쓸 수 있지만, 사랑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AI는 고통에 관한 글을 분석할 수 있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AI 지식의 근본적 한계인가요, 아니면 미래에 극복될 기술적 한계인가요? 이 질문이 앞으로 수십 년간 지식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 지식의 경계를 받아들이는 태도

지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좌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적 성숙의 표시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은 패배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의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 탐구의 출발점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지적 겸손을 가능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오만은 종종 다른 앎의 방식을 배제하고,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설명하려는 오류를 낳습니다.

경이로움(Wonder)을 유지하게 합니다.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세계를 더 풍요롭고 신비롭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면, 세계는 얼마나 단조로울까요?

다양한 앎의 방식을 존중하게 합니다. 과학이 알 수 없는 것을 예술이 알 수 있고,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직관이 닿을 수 있으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음악이 전달할 수 있습니다.

계속 탐구하게 합니다. 지식의 경계는 고정된 벽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지평선입니다. 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새로운 방법론과 개념적 혁신으로 알 수 있게 되는 역사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당신이 "이것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원칙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좌절감을 주는가요, 아니면 경이로움을 주는가요? 그 감정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까?

 


■ 다음 회 예고

지식의 범위와 경계를 탐구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앎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요소로 들어갑니다.

EP.18  어떻게 아는가의 문제 (1): 이성과 논리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이 말을 확실성과 신뢰성의 표시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완벽한 추론이 완전히 틀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이성의 놀라운 힘과 그 숨겨진 한계를 다음 편에서 함께 탐구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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