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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21 인간의 재발견 : 르네상스 정신, 세계의 중심이 바뀌다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4. 22.

1401년, 피렌체.
도시 당국이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세례당 북쪽 문의 청동 부조를 누가 만들 것인지를 가리는 대회. 일곱 명의 젊은 조각가들이 참가했습니다. 주제는 성경의 한 장면, 아브라함의 이삭 제사.
심사가 끝났습니다. 최종 후보는 두 명. 로렌초 기베르티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기베르티의 부조는 우아하고 조화롭습니다. 인물들이 자연스럽고, 공간이 깊이감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브루넬레스키의 부조는 더 역동적이고 극적입니다. 그러나 기베르티가 이겼습니다.
패배한 브루넬레스키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로마의 폐허들을 측정하고 스케치했습니다. 판테온의 돔, 콜로세움의 아치, 고대 신전들의 비례. 그는 고대인들이 무엇을 알았는지를 배우려 했습니다.
돌아온 브루넬레스키는 1420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반 룬은 이 이야기에서 르네상스 정신의 본질을 봅니다. 패배를 학습으로 바꾸는 것. 과거로부터 배워 미래를 만드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이성과 기술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르네상스였습니다.


성 베드로성당. 미켈란젤로가 설계, 1546~1564년에 세워졌다

르네상스란 무엇인가 : 재탄생의 의미

르네상스(Renaissance). 프랑스어로 재탄생(再誕生).
무엇의 재탄생인가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탄생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복고(復古)가 아닙니다. 과거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배워 현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는 16세기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는 중세를 '야만의 시대'로 보고,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 고대의 위대함이 되살아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시각은 편향되어 있습니다. 중세가 야만이 아니었음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입니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무언가 새롭고 혁명적인 것을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반 룬은 르네상스의 핵심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진 것.
중세 세계관에서 모든 것의 중심은 신이었습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을 섬기고 내세를 준비하기 위해 사는 존재였습니다. 예술은 신을 찬양하는 것이었고, 학문은 신학을 보조하는 것이었고, 인간의 몸은 죄의 그릇이었습니다.
르네상스는 이것을 뒤집었습니다. 인간이 중심입니다. 인간의 몸은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놀라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가치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인문주의(Humanism)라고 합니다.


왜 이탈리아인가 : 르네상스의 토양

르네상스가 왜 하필 이탈리아에서, 왜 14~15세기에 시작되었을까요. 반 룬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 고대의 유산. 이탈리아 땅 어디를 파도 고대 로마의 흔적이 나옵니다. 신전, 조각상, 필사본. 이탈리아인들은 일상적으로 고대와 함께 살았습니다. 로마의 폐허 사이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고대를 가까이 느꼈습니다. 게다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비잔틴 학자들이 그리스 고전 필사본들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피난해 왔습니다. 잊혀졌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이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두 번째, 경제적 번영.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었습니다. 메디치 가문 같은 부유한 상인 가문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 부가 예술 후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술가들이 교회의 주문만이 아닌 개인 후원자들의 주문을 받아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술의 주제와 내용을 혁명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세 번째, 도시국가의 경쟁. 피렌체와 베네치아와 밀라노는 서로 경쟁했습니다.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더 아름다운 성당, 더 훌륭한 예술가, 더 빛나는 궁전을 가지는 것이 도시의 위신이었습니다. 이 경쟁이 예술 발전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도시국가 경쟁이 파르테논을 낳았듯이,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경쟁이 르네상스를 낳았습니다.
반 룬은 이 세 조건이 동시에 충족된 것이 르네상스 탄생의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적 뿌리, 경제적 여유, 그리고 경쟁적 자극. 이 세 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예술은 폭발합니다.


인문주의 : 르네상스 정신의 뿌리

르네상스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문주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주의는 반(反)신학이 아닙니다. 초기 인문주의자들은 대부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거부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 스콜라 철학의 경직된 방법론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고, 삼단논법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 하고, 인간의 직접적 경험보다 교부들의 주석을 우선시하는 태도.
인문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을 직접 연구하자. 자연을 직접 관찰하자. 고전 텍스트를 라틴어 원문으로 직접 읽자. 중간의 권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원천으로.
이 직접성의 원칙이 예술에서는 자연 관찰로 나타났습니다. 인체를 직접 보고 그리는 것. 빛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는 것.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는 것. 이것이 르네상스 회화의 혁명적 특성, 원근법(perspective)과 명암법(chiaroscuro)의 기원입니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그는 '인문주의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간단했습니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리비우스처럼 우아하고 명확한 라틴어를 쓰자. 중세 스콜라 철학의 난해한 라틴어가 아닌, 고대인들이 쓴 살아있는 라틴어. 언어를 바꾸는 것이 사고를 바꿉니다. 사고가 바뀌면 예술이 바뀝니다.
콜루초 살루타티, 레오나르도 브루니, 포조 브라촐리니. 이 피렌체의 인문주의자들이 수도원 도서관 먼지 속에 잠자던 키케로의 편지들,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 논문,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발굴했습니다. 잊혀졌던 고대의 목소리들이 되살아났습니다.
반 룬은 이 텍스트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책 한 권이 세계관을 바꿀 수 있습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재발견되었을 때, 그 안에 담긴 원자론과 유물론은 기독교 세계관에 조용한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신이 아닌 물질이 세계의 근본이라는 생각. 이것이 이후 과학혁명의 지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회화의 혁명 : 원근법의 탄생

르네상스가 미술에 가져온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의 발명입니다.
1420년대, 피렌체.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하나의 실험을 했습니다. 피렌체 세례당을 정확하게 그린 패널 그림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림의 반대쪽에서 구멍을 통해 보면 거울에 비친 그림이 보이고, 거울을 치우면 실제 세례당이 보입니다. 두 장면이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이것이 최초로 수학적으로 정확한 원근법이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원근법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평행한 선들은 멀어질수록 하나의 점, 소실점(vanishing point)으로 모입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 위에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왜 혁명인가요.
중세 회화에는 원근법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인물은 크게, 덜 중요한 인물은 작게 그렸습니다. 배경은 황금색 평면이었습니다. 공간의 깊이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중세 화가들이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목표를 추구했습니다.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화가들은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인간이 실제로 경험하는 공간과 빛을 그림 안에 담는 것.
원근법은 이 목표를 실현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이 도구를 손에 넣은 화가들의 그림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림 속 공간이 실제 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 룬은 원근법의 발명을 단순한 기술적 혁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관의 혁명이었습니다. 중세 예술이 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았다면, 르네상스 예술은 인간의 눈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원근법은 관찰자인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습니다. 모든 선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그 점이 바로 보는 인간의 눈입니다. 이것이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리기 전에, 예술이 이미 인간을 지각의 중심에 놓은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 : 불가능을 가능으로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원근법의 발명자이자 르네상스 건축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피렌체 대성당의 돔(Duomo)입니다.
피렌체 대성당은 1296년에 착공되어 오랫동안 지붕이 없었습니다. 돔이 놓여야 할 자리가 지름 43미터, 높이 55미터. 이 거대한 공간을 어떻게 덮을 것인가. 100년 동안 아무도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로마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는 판테온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판테온의 방법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습니다. 판테온은 원형 기반 위의 반구형 돔이지만, 피렌체 대성당의 돔 기반은 팔각형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기술로는 그 높이에 비계(scaffolding)를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의 해법은 천재적이었습니다. 외부 돔과 내부 돔의 이중 구조. 두 돔 사이의 공간에 비계 없이 돔 자체가 스스로를 지지하며 올라가는 방식. 벽돌을 헤링본 패턴으로 쌓아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법. 이 모든 것이 당대의 건축 관행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1436년 완공. 높이 114미터. 이 돔은 완공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세계 최대의 돔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보다 크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아름답게는 만들 수 없다."
반 룬은 브루넬레스키의 돔에서 르네상스 정신의 가장 완전한 구현을 봅니다. 과거로부터 배우되 과거를 뛰어넘는 것. 이성과 기술이 신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더 장엄하게 실현하는 것.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


알베르티 : 르네상스의 이론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 반 룬이 특별히 주목하는 르네상스의 핵심 인물입니다.
알베르티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건축가, 화가, 조각가, 시인, 수학자, 철학자, 법학자, 음악가, 체조 선수, 승마 전문가. 그는 말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과장이 아닌 것이, 알베르티 자신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회화론(Della Pittura, 1435)》을 썼습니다. 원근법의 수학적 이론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이 책은 이후 모든 르네상스 화가들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건축론(De Re Aedificatoria)》.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를 연구하고 발전시킨 이 책은 르네상스 건축 이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알베르티의 핵심 개념은 '우니베르살 오모(uomo universale)', 즉 보편인간(Universal Man)입니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완전한 인간.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믿음. 배우고자 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확신.
이 개념이 르네상스 문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 천재들이 화가이면서 조각가이면서 건축가이면서 시인이면서 과학자였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알베르티가 이론화한 보편인간의 이상을 실제로 구현하려 했습니다.
반 룬은 알베르티의 보편인간 개념에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중세는 인간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성직자, 기사, 농부. 이 역할은 신이 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베르티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태어날 때 결정된 것이 아니라, 배움과 노력으로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이것이 근대적 자아의 탄생입니다.


메디치 가문 : 예술을 만든 돈

르네상스가 꽃피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돈과 후원입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 피렌체 최대 은행의 주인. 교황청의 재정을 관리하는 이 은행이 유럽 전역에 지점을 두었습니다. 코시모의 부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부를 예술에 쏟아부었습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건축과 장식, 산 로렌초 성당의 건설,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키에 대한 후원. 그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술을 이해하는 후원자였습니다. 도나텔로와 친구였고, 건축 프로젝트에 직접 의견을 내었습니다.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 '위대한 로렌초(il Magnifico)'라 불린 이 사람은 정치가이자 시인이자 예술의 열렬한 후원자였습니다. 그의 정원에서 젊은 미켈란젤로가 고대 조각들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로렌초는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게 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와 위대한 후원자의 만남. 이것이 르네상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반 룬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서 예술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예술은 공중에서 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적·경제적 조건 속에서 태어납니다. 메디치 가문의 부가 없었다면 피렌체 르네상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 룬은 동시에 경계합니다. 돈이 예술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조건을 만들 뿐입니다. 그 조건 위에서 피어나는 것은 예술가의 천재성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돈이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다비드상, 대리석, 도나텔로 작, 1408~149년경, 피렌체, 이탈리아. 바르젤로 국립 박물관

도나텔로 : 조각의 혁명

르네상스 조각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은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입니다.
그의 청동 《다윗상》을 봅니다. 1440년대 작품. 골리앗을 죽인 직후의 다윗 소년. 그는 완전히 나체입니다. 고대 그리스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독립적인 나체 조각상. 중세 내내 금기시되었던 것이 다시 예술이 된 순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다윗의 자세입니다. 콘트라포스토. 그리스 조각에서 배운 이 자세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한쪽 발에 체중이 실리고, 골반과 어깨가 반대 방향으로 기울며, 전체 몸이 S자 곡선을 이룹니다. 이 소년은 지금 막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 합니다.
파도바의 가타멜라타 기마상. 1453년. 로마 제국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실물 크기의 청동 기마 조각. 베네치아 용병 대장 가타멜라타를 기념하는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제입니다. 성인이나 신화 인물이 아닌, 실존한 현대인의 기마상. 인간이 예술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반 룬은 도나텔로에서 르네상스 예술의 근본 정신을 봅니다. 인간의 몸에 대한 긍정. 현실 인물에 대한 관심. 그리고 과거로부터 배워 현재를 새롭게 만드는 것. 도나텔로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을 공부한 것은 그것을 모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정신을 자신의 시대로 가져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신플라톤주의 : 르네상스의 철학적 뼈대

피렌체의 코시모 데 메디치는 1462년, 피렌체 교외 카레지 빌라에 플라톤 아카데미(Platonic Academy)를 설립했습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가 이 아카데미를 이끌었습니다.
피치노는 플라톤의 전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결합하는 신플라톤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신플라톤주의의 핵심은 아름다움에 관한 것입니다. 물질세계의 아름다움은 신적인 아름다움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향해 올라가는 길입니다. 아름다운 인체,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예술.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계단입니다.
이 철학이 르네상스 예술에 결정적인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인체를 그리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한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불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영혼의 상승입니다.
보티첼리의 《봄(Primavera)》과 《비너스의 탄생》이 이 철학의 그림 언어입니다. 이교 신화의 여신이 기독교 화가의 그림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은 신플라톤주의적 해석 덕분입니다. 비너스는 단순한 이교 여신이 아닙니다. 그녀는 신적인 사랑과 아름다움의 화신입니다.
반 룬은 신플라톤주의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영적으로 정당하다는 철학적 선언. 이것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그토록 자유롭게 인체를 그리고, 신화를 그리고, 세속적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르네상스 예술가의 탄생 : 장인에서 천재로

중세의 예술가는 장인이었습니다. 길드에 소속된, 교회나 귀족의 주문을 받아 일하는 익명의 장인.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않았고, 개인적 표현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는 달랐습니다. 그는 천재(Genio)였습니다. 신이 내린 특별한 재능을 가진 개인.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요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개인적 비전을 추구하는 존재.
이 전환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5세기를 거치면서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화가는 더 이상 화가 길드의 일원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자, 시인, 과학자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Lives of the Artists)》은 이 변화의 증거입니다. 1550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플리니우스 이후 처음으로 예술가들의 생애를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조토에서 미켈란젤로까지, 각 예술가의 삶, 성격, 작업 방식, 위대한 업적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예술가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반 룬은 이 전환에서 근대적 개인주의의 탄생을 봅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역사를 만든다는 인식. 천재적 개인의 능력과 비전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믿음. 이것이 르네상스가 근대성의 출발점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반 룬이 르네상스 정신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르네상스 정신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지금도 말을 건네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가 아닙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자신의 재발견입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믿음이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반 룬은 1937년에 이 책을 쓰면서, 유럽이 다시 인간을 부정하는 세력들에게 위협받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개인을 국가와 민족 앞에 무릎 꿇게 했습니다. 개인의 이성과 양심보다 집단의 권위가 우선이었습니다. 예술은 선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반 룬이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강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선언이었습니다. 인간은 다시 한번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어두운 시대가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고. 브루넬레스키가 패배 후 로마로 가서 더 위대한 무언가를 준비했듯이.
그리고 반 룬의 이 믿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르네상스로 돌아와야 합니다. 피렌체의 봄날, 도나텔로의 다윗이 서 있는 그 광장으로.
거기서 인간의 재발견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르네상스 정신의 빛나는 아침을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조스캥 데프레, 《아베 마리아》 : 르네상스 음악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이 다성 모테트에서 중세 성가의 엄숙함과 르네상스적 인간적 서정이 완벽하게 결합됩니다. 마르틴 루터가 "신이 만든 음악"이라고 불렀습니다.

    • 팔레스트리나,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 : 르네상스 교회 음악의 정점. 여러 성부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브루넬레스키의 돔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룹니다. 인간의 목소리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입니다.

    •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중 서곡 :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선 작곡가. 이 최초의 위대한 오페라의 서곡에서 르네상스가 이룩한 것과 바로크가 향할 곳이 동시에 들립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르네상스의 심장, 피렌체로 들어갑니다. 왜 피렌체였는가. 이 작은 도시에서 인류 예술사의 가장 눈부신 한 장이 펼쳐진 이유는 무엇인가. 아르노강 변에 서서 구름처럼 솟아오른 돔을 바라보며, 이 도시의 거리를 걷던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와 도나텔로와 마사초를 만나보겠습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22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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