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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20 중세의 황혼 : 고딕 시대의 종말, 새로운 세계의 여명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4. 21.

지오토 《그리스도를 애도함 (피에타)》(1304~06년) —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

1348년, 피렌체.

봄이 왔습니다. 그러나 꽃 냄새 대신 다른 냄새가 도시를 덮었습니다.

흑사병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피렌체 시민의 절반이 죽었습니다. 조반니 보카치오는 목격한 것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형제가 형제를 버렸다고. 거리에는 시신이 쌓였고, 수레꾼들이 죽은 자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성당의 종이 울렸지만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럽 전체에서 2,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 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신에게 물었습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그리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중세의 세계관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세상을 완벽하게 질서 지운다는 믿음. 교회가 신과 인간을 올바르게 연결한다는 믿음. 이 두 믿음이 흑사병의 충격 앞에서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반 룬은 이 순간을 중세 예술의 끝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세계관이 흔들릴 때, 인간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새로운 눈이 르네상스를 낳았습니다.


스크로베니 예배당 내부 전경 — 지오토 프레스코 전체

무너지는 중세 : 세 가지 충격

고딕 시대의 종말은 한 번의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거대한 충격이 겹쳐지면서 중세 세계는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

첫 번째 충격, 흑사병(1347~1351).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전염병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퍼졌습니다. 크리미아에서 배를 탄 쥐들이 이탈리아 항구로 가져온 것. 불과 4년 만에 유럽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인구 감소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회 구조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노동력이 귀해지면서 농노들의 협상력이 높아졌고, 봉건제가 흔들렸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달라진 세상에서 달라진 방식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두 번째 충격, 교회의 위기. 14세기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가는 굴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왕권에 종속된 교황. 이어서 두 명, 심지어 세 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하는 대분열(Great Schism)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진짜 교황인가.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같은 개혁자들이 교회 부패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세 번째 충격, 백년전쟁(1337~1453).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이 긴 전쟁은 프랑스 국토를 황폐화했습니다. 잔 다르크의 등장, 그녀의 처형, 그리고 프랑스의 최종 승리. 이 전쟁은 중세 기사도의 종말을 알리는 동시에 근대적 민족 국가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반 룬은 이 세 충격이 합쳐져 만들어낸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들이 내세보다 이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고. 신의 섭리보다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이 전환이 예술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가 고딕 종말기 예술의 핵심입니다.


죽음의 무도 : 흑사병이 낳은 예술

흑사병이 유럽 예술에 남긴 가장 직접적인 흔적은 새로운 주제의 탄생입니다.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해골이나 죽은 자가 교황, 황제, 기사, 상인, 농부 등 모든 신분의 살아있는 사람들을 이끌고 춤을 추는 장면. 이 이미지가 14~15세기 유럽 전역의 교회 벽화, 목판화, 필사본에 넘쳐났습니다.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렬했습니다. 죽음 앞에 신분이 없다. 교황도, 황제도, 농부도 모두 죽음의 춤에 이끌려 가야 한다. 흑사병은 이 진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증명했습니다. 부유한 자의 집도, 가난한 자의 오두막도, 왕의 궁전도, 사제의 성당도 모두 흑사병 앞에서 무력했습니다.

파리 이노상 묘지의 죽음의 무도 프레스코화. 바젤의 목판 시리즈. 한스 홀바인의 나중 판화 시리즈. 이 작품들은 중세 예술에서 보기 드문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보여줍니다. 두려움이 아닌 직시.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반 룬은 죽음의 무도에서 중세 예술의 마지막 위대한 주제를 봅니다. 천국과 지옥을 그리던 중세 예술이 죽음 그 자체를 직시하기 시작한 것. 내세의 이야기가 아닌 이 세상에서의 죽음. 이 전환이 예술을 현실 쪽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조토 :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거인

고딕 시대의 종말을 논할 때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한 인물이 있습니다.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

조토는 중세 화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르네상스의 예언자입니다. 그는 고딕 시대의 비잔틴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비잔틴 회화에서 인물들은 황금 배경 위에 납작하게 표현됩니다. 공간이 없습니다. 부피가 없습니다. 감정이 없습니다. 그것이 신성한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토는 이것을 바꾸었습니다.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1304~1306년에 조토가 그린 이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들을 보면 숨이 멎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마리아의 생애를 담은 38개의 장면들. 그런데 이 성경의 인물들이 다릅니다.

그들은 부피가 있습니다. 옷이 실제 몸을 감싸는 것처럼 주름이 집니다. 그들은 공간 속에 있습니다. 인물들 뒤에 배경이 있고, 앞과 뒤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감정이 있습니다.

《유다의 입맞춤》. 유다가 예수에게 배신의 입맞춤을 하는 순간. 유다의 얼굴과 예수의 얼굴이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표정은 결의와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것. 예수의 눈은 유다를 똑바로 바라봅니다. 책망도 아니고 애원도 아닌, 모든 것을 아는 자의 고요한 눈빛.

이 두 얼굴의 만남. 이것은 비잔틴 예술에서는 불가능한 표현입니다. 신성한 존재는 감정을 초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토는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감정을 부여했습니다. 배신당한 슬픔,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깊은 사랑.

단테는 조토에 대해 썼습니다. 《신곡》 연옥편에서 조토가 치마부에의 명성을 능가했다고.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인정인지는, 단테가 얼마나 인색하게 칭찬했는지를 알 때 더 분명해집니다.

반 룬은 조토를 모든 서양 회화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의 이후 모든 서양 회화는 조토가 열어놓은 방향, 즉 공간 속의 인간, 감정을 가진 인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시모네 마르티니 《수태고지》(1333년) —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 : 인간을 발견한 문학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회화만이 아닌 문학에서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그는 스스로를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고대 로마 문학을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했습니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리비우스. 이 고대인들에게서 그는 중세 신학이 억압한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태도가 인문주의(Humanism)의 시작이었습니다.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연작 《칸초니에레》. 라우라라는 실제 여성을 향한 사랑을 노래한 이 시들은 트루바두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훨씬 개인적이고 심리적입니다. 사랑하는 감정, 질투, 후회, 그리움. 이 감정들이 섬세하게 분석됩니다. 내면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은 것.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외곽 빌라에 모인 열 명의 남녀가 열흘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는 틀로 구성된 《데카메론》. 100개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성인이나 기사가 아닙니다. 상인, 성직자, 귀부인, 농부. 평범한 인간들이 사랑하고, 속이고, 웃고, 울고, 살아가는 이야기들.

반 룬은 《데카메론》을 중세 문학과 근대 문학의 경계에 놓인 걸작으로 봅니다. 이 이야기들에는 도덕적 교훈이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이 있을 뿐입니다. 교회가 금지하는 것들이 이 이야기들 안에서 웃음과 함께 다루어집니다. 이것이 중세 문학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부르고뉴 공국의 예술 : 고딕의 마지막 불꽃

고딕 시대의 마지막 화려한 불꽃은 의외의 곳에서 피어났습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위치한 부르고뉴 공국이었습니다.

14~15세기 부르고뉴 공작들, 특히 '호담공' 필립(Philippe le Hardi)과 '선량공' 필립(Philippe le Bon)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예술 문화를 후원했습니다. 그들의 궁정에서 고딕 예술의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형태들이 탄생했습니다.

클라우스 슬뤼테르(Claus Sluter, 1340~1406). 부르고뉴 공작의 조각가. 그의 대표작 《모세의 우물(Well of Moses)》은 고딕 조각의 정점이자 르네상스 조각의 예고입니다. 디종 근교 샹몰 수도원에 만들어진 이 조각군에서 여섯 명의 구약 예언자들이 실물 크기로 서 있습니다. 모세, 다윗, 예레미야, 스가랴, 다니엘, 이사야.

이 인물들 앞에 서면 충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살아있습니다. 모세의 수염이 바람에 날리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의 얼굴에는 진짜 피로와 슬픔이 새겨져 있습니다. 각 인물이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유형화된 성인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상입니다.

반 룬은 슬뤼테르를 조토와 나란히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가교 위에 세웁니다. 이탈리아에서 조토가 회화에서 혁명을 일으켰다면, 북유럽에서 슬뤼테르가 조각에서 같은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두 혁명이 서로를 모르고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같은 시대적 변화가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같은 방향을 향한 것입니다.


국제 고딕 양식 : 귀족의 꿈

14세기 말~15세기 초, 유럽 전역에 걸친 귀족 문화의 공통 양식이 형성되었습니다. 국제 고딕 양식(International Gothic Style).

이 양식의 특징은 화려함과 섬세함입니다. 금박 배경, 우아하게 흐르는 선, 정교한 장식 문양, 아름다운 귀족 남녀. 현실의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눈을 돌려 이상화된 귀족 세계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예술.

《베리 공의 기도서(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1410년대 랭부르 형제(Limbourg Brothers)가 제작한 이 채색 필사본은 국제 고딕 양식의 최고 걸작입니다. 12개월의 달력 그림들이 특히 유명합니다. 각 달에 해당하는 귀족들의 활동과 농민들의 노동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월의 연회, 5월의 기마 행렬, 10월의 파종, 12월의 사냥.

이 그림들의 배경은 정확한 풍경입니다. 파리의 성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늘에는 황도십이궁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정밀한 현실 관찰이 이 작품을 단순한 장식 필사본 이상으로 만듭니다. 중세 예술가들이 세상을 실제로 보는 눈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반 룬은 국제 고딕 양식의 이중성을 지적합니다. 한편으로는 과거를 향한 예술입니다. 흑사병과 전쟁의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화려한 귀족 세계의 꿈을 그리는 것.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한 예술이기도 합니다. 정밀한 현실 관찰, 풍경의 발견, 일상적 삶에 대한 관심. 이것들이 이후 플랑드르 회화와 르네상스 미술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얀 반 에이크 : 고딕의 끝에서 새 시대를 열다

고딕 시대의 종말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

반 에이크는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방 출신의 화가입니다. 기술적으로 그는 중세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을 보면 이미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음을 느낍니다.

《겐트 제단화(Ghent Altarpiece)》. 1432년 완성된 이 다폭 제단화는 서양 회화사의 이정표입니다. 닫혔을 때와 열렸을 때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이 제단화는 총 12개의 패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앙 패널의 어린양에게 바치는 경배 장면. 수백 명의 인물들이 초원 위에서 황금빛 어린양을 향해 나아가는 이 장면은 중세 신학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의 기법은 전혀 중세적이지 않습니다.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초상화처럼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밭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의 정확한 묘사입니다. 하늘은 실제 하늘입니다. 빛이 실제 빛처럼 인물들 위에 떨어집니다.

반 에이크는 유화 기법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안료를 기름에 개어 사용하는 이 기법이 이전의 템페라나 프레스코와 다른 것은 색채의 투명함과 깊이입니다. 여러 층의 유약을 겹쳐 바르면서 빛이 그림 안에서 살아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르놀피니의 결혼》. 1434년. 두 인물이 방 안에 서 있습니다. 그들 뒤의 볼록 거울 속에 방 전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거울 속에는 화가 자신도 보입니다. 이 그림 안의 그림, 반영 속의 반영. 이 지적 장치가 단순한 기교가 아닙니다. 예술가가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이것을 보았다. 나는 이것을 만들었다.

반 룬은 반 에이크에서 중세와 르네상스가 하나의 몸 안에 공존하는 것을 봅니다. 신학적 주제를 그리면서 동시에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눈. 종교적 상징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상인의 방 안에 있는 나무 상자와 샹들리에와 창밖 오렌지를 그리는 눈. 이 두 눈이 공존하는 순간이 바로 중세의 끝이고 르네상스의 시작입니다.


고딕 후기의 음악 : 아르스 노바의 혁명

14세기 음악에서도 고딕 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시작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아르스 노바(Ars Nova, 새로운 예술).

프랑스의 음악가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가 1322년에 쓴 논문의 제목에서 온 이 개념은 이전의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 옛 예술)와 구별되는 새로운 음악 양식을 가리킵니다.

아르스 노바의 핵심 혁신은 리듬입니다. 이전의 다성음악이 3박자 위주였다면, 아르스 노바는 2박자 리듬을 도입했습니다. 신성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3이 아닌, 불완전한 인간을 상징하는 2. 이 선택 자체가 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음악이 신의 완전함보다 인간의 현실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1377). 아르스 노바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그는 음악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stre Dame)》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다성 미사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속 음악도 작곡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롱도, 비를레. 교회 음악과 세속 음악을 동등하게 다룬 최초의 작곡가 중 하나.

반 룬은 마쇼에서 중세 음악과 르네상스 음악의 전환점을 봅니다. 신을 위한 음악과 인간을 위한 음악이 동등한 지위를 얻기 시작한 것. 이 전환이 이후 세속 음악의 폭발적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잔 다르크 : 중세의 마지막 영웅

고딕 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한 인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

17세의 농가 소녀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백년전쟁으로 거의 패망 직전에 몰린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명령. 그녀는 갑옷을 입고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었고, 샤를 7세를 왕으로 대관시켰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 화형당했습니다. 스물 살이 되기 전에.

잔 다르크의 이야기는 예술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반 룬은 잔 다르크를 중세 정신의 마지막 완성으로 봅니다.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개인이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은 중세 신학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교회 권위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그녀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화형에 처한 것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중세적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잔 다르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수백 년에 걸쳐 무수한 예술 작품을 낳았습니다. 실러의 희곡, 베르디의 오페라, 버나드 쇼의 연극, 칼 드레이어의 영화. 중세의 마지막 영웅이 근대 예술의 가장 영원한 주제 중 하나가 된 것.

반 룬은 이 아이러니에서 예술의 힘을 봅니다. 역사는 잔 다르크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녀를 영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예술이 역사보다 오래 사는 방식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 중세의 공식적 종말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 군대가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1,000년의 동로마 제국이 끝났습니다. 중세 세계의 동쪽 기둥이 무너진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중세의 공식적인 종말로 봅니다. 물론 역사는 깔끔한 날짜로 끊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1453년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비잔틴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피난하면서 그리스 고전 필사본들을 가져왔습니다. 이 텍스트들이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갔고, 그리스 사상의 직접적인 접촉이 르네상스를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중세의 파괴가 르네상스의 자양분이 된 것입니다.

같은 해,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 인쇄기를 완성했습니다. 지식의 복제와 유통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사본 시대가 끝나고 인쇄본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나의 기술적 혁신이 이후 종교개혁, 과학혁명, 계몽주의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반 룬은 1453년을 하나의 문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순간으로 봅니다. 중세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근대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 문 너머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태어나고,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앞에 서고, 코페르니쿠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 룬이 고딕 시대의 종말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고딕 시대의 종말을 단순한 끝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전환입니다.

중세는 신이 중심인 세계였습니다. 모든 예술이 신을 향했고, 모든 삶이 내세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고딕 대성당은 이 세계관의 가장 웅장한 표현이었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 신성한 빛으로 가득 찬 내부,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는 조각들.

그러나 흑사병이 3분의 1의 인구를 앗아가고, 교회가 부패하고,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인간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세만을 바라보는 대신 이 세상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의 섭리를 기다리는 대신 인간의 능력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조토가 성인들의 얼굴에 인간의 감정을 새겼을 때, 반 에이크가 상인의 방 안에 있는 사물들을 정확하게 그렸을 때, 페트라르카가 자신의 내면을 시로 표현했을 때, 이미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반 룬은 말합니다. 중세가 위대했던 것은 그것이 신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위대한 것은 그것이 인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위대함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시간이 바로 고딕 시대의 종말, 그 황혼의 시간이었습니다.

황혼은 어둠이 아닙니다. 그것은 낮과 밤 사이, 가장 아름다운 빛이 하늘을 물들이는 순간입니다. 고딕의 황혼이 그러했습니다. 가장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 가장 섬세한 필사본 채색화, 가장 인간적인 조각들이 이 황혼의 빛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황혼이 지나면, 르네상스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고딕 시대의 황혼과 새 시대의 여명을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기욤 드 마쇼, 《노트르담 미사》 : 1364년경 작곡된 이 작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다성 미사입니다. 중세의 엄숙함과 아르스 노바의 새로운 리듬이 공존하는 이 음악에서 고딕 시대의 황혼이 들립니다.

    • 베르디, 오페라 《잔 다르크》 서곡 : 중세의 마지막 영웅 잔 다르크를 소재로 한 이 오페라는 한 시대의 끝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교차하는 드라마를 음악으로 담아냅니다.

    •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 13세기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 세속 시들을 텍스트로 한 이 현대 작품은 중세 인간들이 신학 너머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삶을 노래했는지를 폭발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딕 성당 안의 기도와 광장 위의 웃음이 하나의 시대 안에 공존했음을 증언합니다.


다음 화 예고

 중세의 황혼이 걷히고 드디어 르네상스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인간이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시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이 부활하고, 예술가가 처음으로 신이 아닌 인간을 닮은 영웅이 되는 시대. 르네상스란 무엇인가, 그 정신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P.21  인간의 재발견: 르네상스 정신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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