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07 황금의 시대 — 페리클레스, 아테네를 예술로 빚다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4. 5. 17:04

황금의 시대 — 페리클레스, 아테네를 예술로 빚다


기원전 449년, 아테네 민회.

한 남자가 단상에 올라섭니다. 키가 크고 머리가 길쭉한 이 남자를 아테네 사람들은 뒤에서 '양파 머리'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면 아무도 웃지 못했습니다.

페리클레스. 아테네의 실질적 지도자.

그는 민회를 향해 선언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의 배상금으로 조성된 델로스 동맹 기금을 아크로폴리스 재건에 사용하겠다고. 동맹국들의 돈을 아테네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이 대담한, 어쩌면 뻔뻔한 제안에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학교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것입니다."

그 돈으로 파르테논이 세워졌습니다. 그 돈으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공연되었습니다. 그 돈으로 페이디아스의 조각상들이 탄생했습니다.

반 룬은 페리클레스를 단순한 정치가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 후원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권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 도시를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려 한 사람.


페리클레스 흉상

페리클레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495년경 태어난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명문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외삼촌은 페르시아에 맞선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 정치적으로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는 평생 민주주의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30년 가까이 아테네를 이끌었습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매년 선출되는 장군직을 연임하면서 사실상의 지도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은 두려움이 아닌 설득에서 나왔습니다. 민회에서의 연설, 논리, 비전. 투키디데스는 그를 가리켜 이름은 민주주의자지만 실질은 아테네 제일의 시민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개인적 삶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밀레투스 출신의 여성 아스파시아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았습니다. 아스파시아는 뛰어난 지성과 언변으로 유명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녀에게 가르침을 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페리클레스의 집은 아테네 지식인들의 살롱이었고, 아스파시아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반 룬은 이 사실에서 페리클레스 시대의 또 다른 면모를 읽어냅니다. 예술과 철학이 꽃피는 곳에서는 여성의 지성도 함께 빛났다는 사실을.


아크로폴리스 재건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 프로젝트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군이 아테네를 점령하고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을 불태웠습니다. 그 폐허 위에 페리클레스는 새로운 꿈을 그렸습니다. 인류가 지금껏 본 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성역을 만들겠다는 꿈.

기원전 447년,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총감독은 조각가 페이디아스. 건축가는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 페리클레스는 이 프로젝트에 아테네 최고의 예술가들을 모두 투입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건축물들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주신전이자 아테네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프로필라이아는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웅장한 관문이었습니다. 에레크테이온은 올리브 나무와 아테나 여신의 전설이 깃든 성스러운 신전으로, 지붕을 여섯 명의 여인상 기둥, 카리아티드가 떠받치는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작은 신전이었습니다.

반 룬은 이 건축물들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계획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면서 시선이 닿는 각도,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비례, 언덕 위에서 바라보이는 아테네 시가지와의 조화.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페이디아스 — 신의 얼굴을 만든 남자

페리클레스의 아크로폴리스 재건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였습니다.

그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장식 전체를 설계하고 감독했습니다. 신전 외부를 둘러싼 메토페(metope) 부조들, 페디먼트(삼각형 박공)의 거대한 조각군, 그리고 신전 내부 기둥 위를 둘러싼 160미터 길이의 프리즈(frieze). 이 모든 조각들이 페이디아스의 손에서, 혹은 그의 지휘 아래 탄생했습니다.

프리즈에는 4년마다 열리는 파나테나이아 축제의 행렬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마병들, 마차를 탄 귀족들, 제물을 끌고 가는 사람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무려 378명의 인물과 245마리의 동물이 등장하는 이 행렬은 신화가 아닌 당대 아테네 시민들의 삶을 담았습니다. 신전의 조각이 처음으로 현실의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입니다.

페이디아스의 대표작은 두 점의 거대한 아테나 조각상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내부의 아테나 파르테노스(높이 12미터, 상아와 황금)와, 아크로폴리스 야외에 세워진 아테나 프로마코스(높이 9미터, 청동). 아테나 프로마코스는 높이가 워낙 높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수니온 곶의 선원들도 햇빛에 빛나는 창끝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페이디아스는 말년에 불행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정적들이 그를 신성 모독죄로 고발했습니다.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방패에 자신과 페리클레스의 얼굴을 조각했다는 혐의였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사망했습니다. 반 룬은 이 비극적 결말에서 예술가와 권력의 영원한 긴장 관계를 봅니다. 위대한 예술을 가능하게 한 권력이, 동시에 위대한 예술가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아이러니.


소포클레스와 비극 — 페리클레스 시대의 또 다른 파르테논

페리클레스 시대의 위대함은 건축과 조각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인류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비극들이 초연되고 있었습니다.

소포클레스. 기원전 497년에 태어나 90세까지 살며 123편의 비극을 썼습니다. 그 중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단 7편. 그러나 그 7편만으로도 소포클레스는 서양 문학의 영원한 거장입니다.

《오이디푸스 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의 비극. 운명과 자유의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간극.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이 그 진실에 의해 파멸하는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 작품을 비극의 완벽한 전범으로 꼽았습니다.

《안티고네》.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려다 왕의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의 이야기. 국가의 법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기원전 5세기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법정과 의회와 광장에서 반복되는 물음입니다.

반 룬은 소포클레스의 비극들이 파르테논과 동일한 정신에서 탄생했음을 강조합니다. 완벽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성과 감성의 균형.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 이것이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가 세계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소크라테스 — 아고라의 철학자

파르테논이 세워지고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공연되던 그 시간, 아테네 광장 아고라에는 항상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납작한 코에 불룩한 배, 허름한 옷차림. 그러나 그가 입을 열면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물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을 하나하나 파고들어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산파술, 즉 대화를 통해 진리를 끌어내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예술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술에 대해 복잡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름다움을 진리와 선의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이 감각적 쾌락을 통해 이성을 흐릴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이상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한 것은 이 경계심의 극단적 표현이었습니다.

반 룬은 이 긴장에서 페리클레스 시대의 복잡성을 읽어냅니다. 예술의 황금기가 동시에 예술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된 시대였다는 역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페이디아스와 아름다움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크라테스가 같은 광장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긴장 자체가 또 하나의 위대함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예술 — 시민이 만든 아름다움

페리클레스 시대를 다른 어느 시대와도 다르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의 주체가 왕이나 신관이 아닌 시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파르테논 건설 비용은 국가 재정에서 나왔고, 그 국가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아테네였습니다. 민회가 예산을 승인했고, 시민들이 선출한 관리들이 공사를 감독했습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연극 공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유한 시민들이 공연 비용을 부담하는 코레기아 제도를 통해 시민들이 예술을 후원했습니다. 관람은 무료였습니다. 가난한 시민도 국가에서 지급하는 관람료 보조금으로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 룬은 이 구조에서 페리클레스 시대의 진정한 혁명을 봅니다. 예술이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공공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것이었습니다. 바빌론의 이슈타르 문은 왕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르테논은 아테네 시민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돈을 냈고, 그들이 보았고, 그들이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황금기의 끝 — 펠로폰네소스 전쟁

모든 황금기에는 끝이 있습니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 전쟁은 27년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2년 뒤인 기원전 429년, 페리클레스는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페르시아를 피해 성안으로 몰려든 피난민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창궐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파르테논의 완공을 보았지만, 자신이 꿈꾼 아테네의 영광이 전쟁 속에 스러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반 룬은 이 결말에서 역사의 냉혹한 아이러니를 발견합니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그리스의 학교로 만들겠다며 동맹국들의 자금을 끌어모은 그 제국주의적 야심이, 결국 그리스 세계의 동족 간 전쟁을 불러왔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문명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을 자초했습니다. 예술의 황금기와 정치적 비극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습니다.


반 룬이 페리클레스 시대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페리클레스 시대를 논하면서 한 가지 보편적인 진실을 이끌어냅니다.

위대한 예술은 위대한 꿈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위대한 꿈은 항상 위험을 동반합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인류의 학교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꿈이 파르테논을 낳았고,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낳았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꿈이 제국주의적 오만을 낳았고, 동맹국들의 반발을 낳았고, 전쟁을 낳았습니다.

예술의 역사는 이런 역설들로 가득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가장 복잡한 인간적 상황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페이디아스는 옥중에서 죽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습니다. 소포클레스는 전쟁의 참화를 목격하며 《오이디푸스 왕》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파르테논은 남았습니다. 비극은 남았습니다. 철학은 남았습니다.

반 룬은 조용히 말합니다. 황금기는 사라지지만, 황금기가 만들어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페리클레스의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에 끝났지만, 그 아테네가 인류에게 남긴 아름다움은 2,500년 후 오늘에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이 권력보다, 전쟁보다, 시간보다 오래 살아남는 이유입니다.


이번 화 감상 추천

페리클레스 시대의 웅장함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 자유와 이상을 위해 싸우다 쓰러진 영웅의 이야기. 페리클레스의 삶과 아테네의 황금기, 그리고 그 비극적 종말의 정서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서곡 — 그리스 신화의 세계가 살아 숨 쉬는 이 작품에서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의 밝고 생동감 넘치는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파르테논과 비극의 세계에서 잠시 눈을 돌려, 그리스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신전만이 그리스 예술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손에 쥐는 항아리, 식탁 위의 그릇, 귀에 거는 귀고리, 입으로 가져가는 숟가락. 일상의 모든 물건이 예술이 되었던 시대. 그리스인들은 왜 쓰는 것조차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는지, 그 아름다운 집착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P.08 — 일상이 예술이 되다: 항아리, 그릇, 귀고리, 숟가락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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