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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예술, 인간을 말하다

EP.02 동굴 속의 화가들 : 선사시대, 예술의 첫 불꽃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3. 30.

예술, 인간을 말하다

라스코 동굴 벽화

동굴 속의 화가들 : 선사시대, 예술의 첫 불꽃

지금으로부터 약 17,000년 전.

피레네 산맥 기슭, 지금의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깊은 동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햇빛이 완전히 사라진 곳, 짐승의 뼈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든 작은 등불 하나만이 어둠을 밀어냅니다.
그들은 이 캄캄한 지하 세계에서 무언가를 합니다.
붉은 황토와 검은 숯을 갈아 만든 안료를 손에 묻힙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석회암 벽면 위에 선을 긋기 시작합니다. 달리는 말. 뛰어오르는 들소. 서로 뒤엉킨 사슴 떼.
놀라운 것은 그 선들의 힘입니다. 단 몇 획으로 동물의 움직임과 무게감과 숨결까지 담아냅니다. 오늘날 어떤 훈련받은 화가가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생생하고 아름다운 그림들.
이것이 라스코 동굴벽화입니다.
그들은 왜 이 어두운 곳에서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예술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라스코와 알타미라 : 발견의 충격

라스코 동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40년의 일입니다. 프랑스 남서부의 한 마을에서 열여덟 살 소년 마르셀 라비다가 친구들과 함께 언덕을 걷다가 우연히 땅속으로 이어지는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그 구멍 속으로 내려간 소년들이 맞닥뜨린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습니다. 동굴 벽면 가득 펼쳐진 수백 점의 동물 그림들. 말, 들소, 사슴, 곰, 코뿔소. 어떤 것은 길이가 5미터를 넘는 대작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고고학자들이 달려왔고, 감정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약 17,000년 전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1만 2천 년 전, 바퀴를 만들기 1만 4천 년 전에 이미 인간은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라스코보다 더 이른 발견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입니다. 1879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마르셀리노 데 사우투올라가 발굴 작업을 하던 중, 함께 온 어린 딸 마리아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외쳤습니다.
"아빠, 황소들 봐!"
천장에는 색채까지 사용한 정교한 들소 그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학계는 이 발견을 믿지 않았습니다. 원시인이 이런 수준의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 당대의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우투올라는 위조자라는 누명을 쓴 채 세상을 떠났고, 알타미라 동굴이 진품으로 공식 인정된 것은 그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1902년이었습니다.
반 룬은 이 사실에 깊은 감회를 표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조상이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창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그런데 사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었다고.

알타미라 동굴 벽화

 


그들은 왜 그렸는가 : 세 가지 해석

수만 년 전 동굴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들은 글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확실한 답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반 룬은 이 세 가지 모두가 이후 예술사 전체에 면면히 이어지는 뿌리가 된다고 봅니다.
첫 번째 해석 : 주술과 의식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입니다. 동굴벽화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식의 일부였다는 것입니다. 사냥하고 싶은 동물을 먼저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에 창을 던지거나 상처를 표시함으로써 실제 사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림들이 주로 외부가 아닌 동굴 깊은 안쪽,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그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장식이었다면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치 성소처럼 격리된 곳에 있습니다. 또한 어떤 그림들에는 창에 맞은 것처럼 보이는 표시들이 동물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예술의 첫 번째 기능은 종교이자 과학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세계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첫 번째 시도였습니다.
두 번째 해석 : 소통과 기록
그림은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작동합니다.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정보 — 이 동물은 이렇게 생겼다, 저곳에 가면 이런 짐승을 만날 수 있다 — 를 그림으로 남겼을 가능성입니다. 일종의 시각적 언어, 문자 이전의 문자였다는 해석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부 동굴에서 손바닥 모양의 그림들이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벽에 손을 대고 그 주위에 안료를 불어 만든 손 실루엣들. 이것은 분명 사냥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더 근원적인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 있었다.
수만 년의 시간을 건너, 그 손바닥은 아직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세 번째 해석 : 순수한 표현 충동
어쩌면 가장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냥 그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고 싶은 욕망. 그것은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반 룬은 이 세 번째 해석에 특히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술의 가장 순수한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해야만 했던 것. 그 충동이 예술의 씨앗입니다.


손바닥 그림이 말하는 것

전 세계 선사시대 동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손바닥 실루엣입니다. 프랑스 쇼베 동굴, 스페인 알타미라, 아르헨티나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동굴들까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벽에 손을 대고 그 주변에 안료를 뿌려 손의 윤곽을 남기는 행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반 룬은 이것이 예술의 가장 원초적인 선언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살았다. 나는 여기에 내 흔적을 남긴다."
죽음을 알고, 시간이 흐름을 알고, 자신이 사라질 것을 알았기에, 인간은 흔적을 남기려 했습니다. 그 충동이 동굴벽화를 낳았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낳았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낳았고,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예술 작품을 낳았습니다.
모든 예술의 뿌리에는 이 손바닥이 있습니다.


선사시대 예술의 놀라운 수준

많은 사람들이 선사시대 예술을 '원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그 생각은 완전히 뒤집힙니다.
라스코 동굴의 말 그림들은 움직임의 역동성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 이후 수천 년의 그림들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생생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알타미라의 들소는 석회암 천장의 자연스러운 굴곡을 이용해 동물의 입체감을 살렸습니다. 평면이 아닌 3차원적 조각과 회화의 결합. 이것은 오늘날의 설치미술 개념과도 통합니다.
기법도 놀랍습니다. 단순히 손으로 칠한 것이 아닙니다. 빈 뼈를 붓대로 사용하거나, 안료를 입으로 불어 뿌리거나, 손가락·동물 털·이끼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안료도 정교하게 제조했습니다. 황철석·망간산화물·적철광·숯 등의 광물을 갈아 동물 기름이나 물에 개어 사용했습니다.
반 룬은 이 사실에서 중요한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인간의 예술 본능은 문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명 이전부터, 글자 이전부터, 도시 이전부터 인간은 이미 예술가였습니다. 예술은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문명을 만들어낸 힘 그 자체였습니다.


동굴 밖으로 : 신석기 예술로의 전환

약 1만 년 전, 인류는 서서히 농경과 정착 생활로 이행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환은 예술에도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구석기 동굴벽화가 자연 속 동물들의 생생한 포착에 집중했다면, 신석기 예술은 기하학적 문양과 추상으로 나아갑니다. 토기에 새겨진 소용돌이 무늬, 삼각형, 물결선들. 자연을 모방하는 것에서 자연을 추상화하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양식 변화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와 패턴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이 전환이 훗날 수학과 철학과 과학과 추상예술 모두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정착 생활은 최초의 건축을 낳았습니다. 영국의 스톤헨지, 몰타의 거석 신전들. 돌을 쌓아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인간은 이제 자연 속의 동굴을 떠나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건축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반 룬이 선사시대 예술에서 읽어낸 것

반 룬은 《The Arts》에서 선사시대 예술을 다루면서 한 가지 핵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술의 충동은 인간에게 타고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어느 특정 문명이 가르쳐준 것이 아닙니다. 먹고 자고 번식하려는 본능만큼이나 근원적인 충동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문화, 모든 시대에 예술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에서 희망을 읽습니다. 1937년, 예술을 불태우고 검열하고 통제하려는 세력들이 득세하던 시대에, 반 룬은 선사시대 동굴 속 손바닥 그림들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인간이 인간인 한,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수만 년 전 어두운 동굴 속에서 불빛 하나에 의지해 벽에 손을 댔던 그 무명의 인간이 이미 그것을 증명했다고.


이번 화 감상 추천

선사시대 예술의 정신과 맞닿은 음악들을 추천드립니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1913) : 원시적 생명력과 의식(儀式)의 에너지를 현대 음악으로 표현한 걸작. 초연 당시 파리 청중을 폭동에 가까운 소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벨라 버르토크, 《현악기·타악기·첼레스타를 위한 음악》 : 민속음악의 원시적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헝가리 작곡가의 대표작.

    •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2악장 : 고향과 뿌리에 대한 그리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를 음악으로 담아냈습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시간에는 인류 문명 최초의 거대 예술 프로젝트로 넘어갑니다. 사막 한가운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피라미드, 반영구적인 표정으로 수천 년을 응시해온 스핑크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경이로운 벽화들.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영원을 꿈꾼 이집트인들의 예술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P.03  나일강의 영원: 고대 이집트 예술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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