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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세계문학 들여다 보기

윌리엄 S. 버로스『퀴어』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5. 10. 18.

욕망과 중독, 거부당한 사랑의 기록

마약과 동성애, 금기를 넘어선 한 남자의 절망적 추구 『퀴어』


작가의 삶

윌리엄 S. 버로스(William S. Burroughs, 1914~1997)는 비트 세대의 대부이자 20세기 미국 문학의 가장 급진적인 작가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마약 중독, 동성애, 범죄와 함께 살았다. 하버드를 졸업했지만 사회의 모든 규범을 거부했다.

1951년, 멕시코시티에서 버로스는 술에 취한 채 "윌리엄 텔 놀이"를 하다가 아내 조안 볼머의 머리에 총을 쏴 죽인다. 그는 과실치사로 기소되었지만 멕시코를 탈출해 남미로 떠난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버로스는 후에 말했다. "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안을 쏘지 않았다면."

『퀴어』(1985)는 1950년대에 쓰였지만 30년 이상 출판되지 못했다. 너무 솔직하고, 너무 적나라하며,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버로스 자신의 경험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멕시코시티와 남미에서의 마약 중독, 젊은 남자에 대한 집착, 거부당한 사랑.

버로스는 이 소설에 대해 말했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가장 추악한 종류의 사랑 이야기다." 그는 83세까지 살며 『네이키드 런치』, 『소프트 머신』 등 전위적 작품들을 남겼다. 죽을 때까지 그는 아웃사이더였고, 반역자였으며, 자신에게 정직한 작가였다.


명작 비하인드

30년 동안 숨겨진 원고

버로스는 『퀴어』를 1952년경에 완성했다. 하지만 출판하지 않았다. 아니, 출판할 수 없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더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동성애를 다루는 게 아니라, 집착, 거부, 굴욕, 절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버로스 자신도 이 원고를 보기 힘들어했다.

그는 이 소설을 서랍에 넣어두고 다른 작품을 썼다. 『정키』(마약 중독에 관한), 『네이키드 런치』(의식의 흐름 실험). 하지만 『퀴어』는 계속 그를 괴롭혔다.

1985년, 71세의 버로스는 마침내 이 소설을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서문을 쓴다. 그 서문은 고백이자 참회록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계속 울었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스럽다."

흥미롭게도 『퀴어』는 『정키』의 속편이다. 『정키』가 마약 중독에 관한 것이라면, 『퀴어』는 사랑 중독에 관한 것이다. 버로스는 말한다. 둘 다 중독이고, 둘 다 질병이며, 둘 다 파괴적이라고.

제목 'Queer'는 1950년대에는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말이었다. 버로스는 의도적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 자기 혐오와 도발을 동시에 담아서.


줄거리

1부: 멕시코시티의 망명자들

윌리엄 리(버로스 자신)는 멕시코시티의 바에 산다. 미국에서 도망쳐 온 망명자, 중독자,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

리는 마흔 살 가까운 남자다. 마약 중독자였고, 여전히 술에 취해 산다. 그는 젊은 남자들을 찾아다닌다. 욕망은 끝없지만 만족은 없다.

어느 날 그는 유진 앨러튼을 만난다. 스물 살 정도의 미국 청년. 전쟁에서 돌아와 멕시코에서 방황 중이다.

리는 단번에 앨러튼에게 집착한다. 처음에는 육체적 욕망이었지만, 곧 다른 것이 된다. 집착. 필요. 중독.

"나는 그를 원한다. 그가 필요하다. 마약처럼."

리는 앨러튼에게 접근한다. 술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앨러튼은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섹스를 한다. 하지만 앨러튼에게 그것은 그저 섹스일 뿐이다. 리에게는 사랑이지만.

2부: 거부의 고통

리는 점점 절망적이 된다.

앨러튼은 그와 시간을 보내지만 감정은 없다. 리의 돈을 받고, 술을 마시고, 가끔 섹스를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다.

리는 안다. 앨러튼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농담하고, 이야기하고, 자신을 드러낸다. 하지만 앨러튼은 침묵한다. 듣지만 응답하지 않는다.

리의 독백이 계속된다. 점점 더 절망적이고, 점점 더 광적이며, 점점 더 병적이 된다.

"나는 광대다. 그를 즐겁게 하기 위해 춤추는 광대. 하지만 그는 웃지도 않는다."

리는 앨러튼에게 매달린다. 자존심도, 체면도 없다. 그는 구걸한다. 사랑을, 관심을, 심지어 연민이라도.

앨러튼은 불편해한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다. 리의 돈이 필요하니까. 리는 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돈으로라도 그를 곁에 둘 수 있다면.

3부: 야헤 찾아 떠나는 여행

리는 계획을 세운다. 앨러튼과 함께 남미로 가기로.

명목은 야헤를 찾는 것이다. 환각 식물. 그것을 찾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로 간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다르다. 앨러튼과 함께 있기 위해서. 여행 중에는 리를 필요로 할 것이다. 돈도, 안내도, 보호도.

그들은 떠난다. 파나마, 에콰도르, 콜롬비아.

여행은 악몽이다. 더위, 질병, 위험. 하지만 리는 행복하다. 앨러튼이 곁에 있으니까.

밤마다 리는 앨러튼의 방문을 두드린다. 때로는 받아들여지고, 때로는 거부당한다. 받아들여질 때도 앨러튼은 차갑다.

리는 깨닫는다. 야헤는 핑계일 뿐이라고. 진짜 찾는 것은 야헤가 아니라 앨러튼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야헤보다 찾기 힘들다.

4부: 야헤 체험

마침내 그들은 야헤를 찾는다. 콜롬비아의 한 마을에서.

리는 야헤를 마신다. 강렬한 환각이 시작된다.

그는 본다. 자신의 내면을. 욕망, 공포, 집착, 절망.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환각 속에서 리는 깨닫는다. 자신이 찾는 것은 야헤가 아니라고. 앨러튼도 아니라고. 그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있었다. 아니,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야헤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만 더 명확하게 만든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사랑인가, 소유인가, 구원인가?"

5부: 끝

여행이 끝난다. 앨러튼은 떠난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해요. 학교에 가야 하고."

리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준비는 되지 않았다.

앨러튼은 간단히 인사하고 떠난다. 리에게 그것은 세상의 끝이지만, 앨러튼에게는 여행의 끝일 뿐이다.

리는 홀로 남는다. 멕시코시티의 바에서. 술과 마약과 욕망 속에서.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그저 멈춘다. 리의 삶처럼. 끝도 없고, 해결도 없고, 구원도 없이.


버로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

버로스는 파괴자이자 고백자였다.

그는 모든 금기를 파괴했다. 동성애, 마약, 범죄, 집착.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했다.

하지만 버로스가 진정으로 파괴하고 싶었던 것은 거짓 자아였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 체면 있는 외양, 정상적인 척하기. 그는 자신의 가장 추악한 부분까지 드러냈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도 말할 수 없는 욕망이 있는가? 숨기고 싶은 집착이?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가?

욕망의 본질

리의 욕망은 병적이다.

그는 앨러튼을 원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몸? 마음? 사랑? 소유?

버로스는 보여준다.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고. 가져도, 소유해도, 채워지지 않는다고.

리는 앨러튼과 섹스를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왜? 그가 원하는 것은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그것을 그 자신도 모른다.

버로스는 말한다. 욕망은 대상이 아니라 결핍에서 온다고. 리는 앨러튼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공허를 채우고 싶은 것이라고.

하지만 타인으로 자신을 채울 수는 없다. 이것이 욕망의 비극이다.

당신의 욕망은? 당신이 원하는 것, 정말 그것인가?

사랑과 중독

버로스는 『퀴어』를 사랑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고, 중독이며, 질병이다.

리는 앨러튼에게 중독되었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그는 앨러튼이 필요하고, 없으면 금단 증상을 겪으며, 점점 더 많이 원한다.

버로스는 묻는다. 사랑과 중독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랑은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중독은 자신의 고통을 완화하는 것이다. 리의 감정은 어느 쪽인가?

그는 앨러튼을 행복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필요에 압도되어 있다.

버로스는 말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중독이라고. 상대가 필요한 것, 상대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당신의 사랑은? 사랑인가, 중독인가?

거부의 굴욕

『퀴어』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끝없는 거부다.

앨러튼은 리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는 애매하고, 모호하며, 냉담하다.

리는 이 애매함 속에서 미쳐간다. 명확한 거부라면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남아 있으면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버로스는 보여준다. 거부의 고통을. 특히 부분적 거부, 조건부 수용, 냉담한 관용.

리는 굴욕당한다. 매일, 매 순간. 앨러튼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구걸하며, 광대처럼 행동한다. 자존심도, 체면도 없다.

버로스는 묻는다. 왜 우리는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계속 노력하는가?

어쩌면 거부가 욕망을 더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원하게 되는.

당신은? 당신도 당신을 거부하는 누군가에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동성애의 고독

1950년대, 동성애는 범죄였다.

리는 숨어 산다. 바에서, 술 속에서, 멕시코의 변두리에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체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버로스는 보여준다. 사회가 만든 고독을. 동성애자는 법적으로 범죄자이고, 도덕적으로 타락자이며, 의학적으로 환자였다.

리는 자기 혐오에 빠진다. 자신의 욕망을 혐오하고, 자신을 퀴어라고 부르며, 정상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저항한다. "나는 이것이다. 퀴어. 받아들일 수 없으면 엿먹어."

버로스 자신의 투쟁이 여기 있다. 자기 혐오와 자기 긍정 사이에서. 숨고 싶은 욕망과 드러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7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변했다. 하지만 얼마나? 여전히 '다른' 욕망은 비난받고, 숨겨져야 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다름'을 드러낼 수 있는가?

언어의 무력함

리는 끊임없이 말한다.

그는 이야기하고, 농담하고, 설명한다. 말을 통해 앨러튼과 연결되려 한다.

하지만 언어는 무력하다. 리가 아무리 말해도 앨러튼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버로스는 보여준다. 언어의 한계를. 가장 중요한 것들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알고 있다. 그 말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대신 그는 행동한다. 돈을 주고,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것도 충분하지 않다. 언어도, 행동도, 아무것도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

버로스는 말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고독하다고. 언어가 있어도, 함께 있어도, 결국 각자 자기 안에 갇혀 있다고.

당신은? 당신도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않은가?

야헤라는 탐색

리는 야헤를 찾아 남미로 간다.

야헤는 환각 식물이다. 하지만 리가 찾는 것은 환각이 아니다. 진실, 의미, 구원.

버로스는 평생 마약을 했다. 헤로인, 모르핀, 야헤, LSD. 왜? 도피? 아니다. 탐색이었다.

마약은 의식을 확장한다. 다른 현실을, 다른 자아를, 다른 가능성을 본다.

리는 야헤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앨러튼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하지만 깨달음이 해결책은 아니다. 리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여전히 혼자이며, 여전히 갈망한다.

버로스는 말한다. 진실을 보는 것과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고. 우리는 알면서도 바꾸지 못한다고.

당신은? 당신도 무언가를 찾아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찾아야 할 것은 자기 안에 있지 않은가?

껍데기를 벗은 자의 추락

버로스는 모든 껍데기를 벗었다.

사회적 체면: 동성애자, 마약 중독자, 살인자. 도덕적 가면: 집착, 욕망, 굴욕. 문학적 형식: 전위적, 실험적, 읽기 힘든.

그리고 그 대가는 고독이었다. 사회에서 추방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자기 자신에게도 낯설게 되었다.

하지만 버로스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진실이 체면보다 중요하다고. 설령 그 진실이 추악해도.

『퀴어』를 출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71세의 노인이 자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을 드러내는 것.

하지만 버로스는 했다. 왜? 누군가는 말해야 하기 때문에. 욕망의 진실을, 사랑의 추악함을, 인간의 나약함을.

당신은? 당신도 당신의 추악함을 드러낼 수 있는가? 아니면 평생 껍데기 속에 숨을 것인가?


버로스는 우리에게 가장 불편한 거울을 보여준다.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병적인지,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지.

그는 파괴한다. 사랑의 이상, 욕망의 순수성, 감정의 고귀함. 이 모든 환상을.

하지만 버로스는 단지 파괴하지 않는다. 그는 증언한다. 인간의 조건을. 욕망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사랑하지만 거부당하며, 연결되고 싶지만 고독한.

『퀴어』는 성공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실패한 사랑의 기록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실패 속에 진실이 있다.

리는 앨러튼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정직했다. 자신의 욕망에, 자신의 나약함에, 자신의 추악함에.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버로스는 말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추악함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정직이라고. 껍데기 없이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당신의 말할 수 없는 욕망은 무엇인가? 당신이 집착하는 것, 정말 그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공허를 채우려는 것인가? 당신도 거부당하면서도 매달린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추악한 진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버로스처럼 모든 껍데기를 벗고, 가장 수치스러운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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