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의 질문
1906년,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숲속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를 붙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 반대편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다람쥐는 항상 나무 반대편으로 움직여 사람과 나무 사이에 있으려 합니다. 이때 사람이 다람쥐 주위를 '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
사람은 분명히 나무를 한 바퀴 돕니다. 그러나 다람쥐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항상 다람쥐의 앞면을 보게 됩니다. 다람쥐를 중심으로 본다면 사람은 다람쥐를 돌지 않은 것이 됩니다.
제임스의 답은 이렇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가는 '돈다'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실제적인 차이가 없는 질문은 공허한 것입니다."
이것이 실용주의의 핵심입니다.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추상적인 현실과의 대응이나 체계 내의 정합이 아닙니다. 그것이 실제 삶에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가, 즉 실용적 효과가 진리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진리는 유용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정치 지도자가 대중을 조종하기에 편리한 거짓말도 '유용'하므로 진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사는 탈진실(Post-truth) 시대는 어쩌면 실용주의의 타락한 형태인지도 모릅니다.
실용주의 진리 이론의 심오한 통찰과 그 위험한 함정, 그리고 우리 시대의 탈진실 현상을 오늘 함께 탐구합니다.
■ 실용주의 진리 이론 : 유용함이 진리다
배경 : 왜 실용주의가 등장했는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의 철학자들은 유럽의 추상적 형이상학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진리를 '현실과의 대응'이나 '믿음들의 정합'으로 정의하는 것은 지나치게 추상적입니다. 그것은 실제 삶과 유리된 철학적 유희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이 물은 것은 이것입니다. "이 진리 논쟁이 실제로 무슨 차이를 만드는가?" 만약 두 가지 서로 다른 이론이 실제 삶에서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 '진짜 진리'인지를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찰스 샌더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가 실용주의의 세 기둥입니다. 그들은 각각 다소 다른 강조점을 가졌지만, 핵심 통찰은 공유했습니다. 진리는 추상적 형이상학의 문제가 아니라, 탐구와 행동의 실천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퍼스의 실용주의 : 탐구의 수렴
찰스 샌더스 퍼스는 실용주의의 창시자입니다. 그의 진리 이론은 가장 조심스럽고 과학 친화적입니다.
퍼스에게 진리란 충분히 오랜 탐구의 끝에서 모든 탐구자들이 최종적으로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과학을 생각해봅시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방법,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지만, 충분한 증거와 반증의 과정을 통해 점점 같은 결론으로 수렴합니다. 물의 분자 구조가 H₂O라는 것, 지구가 약 46억 년 됐다는 것 — 이런 결론들은 독립적인 탐구자들이 서로 다른 경로로 도달한 공통된 결론입니다. 퍼스에게 이 수렴이 진리입니다.
이 정의는 진리를 무한히 지연되는 이상으로 만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탐구가 완결되기 전까지는 무엇이 진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퍼스는 이것이 오히려 정직한 태도라고 봤습니다. 진리는 우리가 지금 달성한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것입니다.
제임스의 실용주의 : 유용한 것이 참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퍼스보다 더 급진적입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이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유용하게 되는 방식이다. 마치 옳은 것이 우리의 행동 방식이 유용하게 되는 방식인 것처럼."
어떤 믿음이 참인 이유는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검증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이기 때문에 유용하다"가 아니라, "유용하기 때문에 참이다"라는 것입니다.
제임스는 종교적 믿음에도 이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신을 믿는 것이 삶에서 의미와 힘을 준다면, 그 믿음은 실용적으로 참입니다. 신의 존재를 추상적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방향입니다.
이 주장은 매력적이지만 즉각적인 비판을 불러옵니다. 어떤 믿음이 유용하다고 해서 참이 되는가? 위로를 주는 거짓말도 '유용'하므로 참인가?
제임스는 이 비판을 예상했습니다. 그에게 '유용함'은 단기적 편의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삶의 효과입니다. 거짓말이 단기적으로 위로를 주더라도 장기적으로 신뢰를 파괴한다면 진정으로 유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분이 항상 명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듀이의 실용주의 : 도구주의
존 듀이는 실용주의를 도구주의(Instrumentalism)로 발전시켰습니다. 그에게 지식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진리는 탐구가 성공적으로 완수될 때 그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믿음들입니다.
듀이는 고정된 진리 대신 '탐구(Inquiry)'를 중심에 놓습니다. 탐구는 문제 상황에서 시작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 탐구 과정에서 검증된 믿음이 지식입니다.
듀이의 접근은 교육 철학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배움을 삶과 연결하라", "경험을 통해 배워라" — 이런 교육 원칙들이 듀이의 실용주의적 지식론에서 나옵니다.
■ 실용주의 진리 이론의 강점
실용주의는 이전 이론들이 놓친 중요한 것들을 포착합니다.
① 지식의 역동성
대응 이론과 정합 이론은 진리를 다소 정적으로 봅니다. 어떤 명제가 현실과 대응하면 참이고, 체계와 정합하면 참입니다. 하지만 실용주의는 진리가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검증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과학은 이 역동성을 잘 보여줍니다. 과학적 진리는 한번 확립되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탐구와 실험이 기존 진리를 수정하거나 대체합니다. 이것이 결함이 아니라 과학의 힘입니다. 실용주의는 이 역동적 진리 개념을 잘 포착합니다.
② 삶과 지식의 연결
실용주의는 진리를 추상적 형이상학에서 해방시켜 삶의 실천과 연결시킵니다. "이것이 참인가?"라는 질문은 "이것을 믿으면 어떤 차이가 생기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지식을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삶의 지침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어떤 지식이 삶에서 검증되고 작동하는가가 핵심입니다.
③ 과학적 방법과의 친화성
퍼스의 실용주의는 특히 과학적 탐구의 정신과 잘 맞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결과에 따라 수정하는 과학적 방법은 실용주의적 탐구와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또한 실용주의는 과학적 합의를 진리의 기준으로 봅니다. 독립적인 탐구자들이 같은 결론으로 수렴하는 것이 그 결론이 진리에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 실용주의 진리 이론의 문제점
하지만 실용주의도 심각한 비판에 직면합니다.
비판 1 : 유용하지만 거짓인 것들
많은 믿음들이 유용하지만 거짓입니다.
현재의 의학 기준으로 보면 오류이지만, 수백 년간 유용하게 작동했던 의학적 믿음들이 있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은 당시 항해와 달력에 충분히 유용했습니다. 이것들이 유용했다는 사실이 그것들을 참으로 만드는가요?
더 극단적인 예로, 독재 정권이 퍼뜨리는 민족주의적 신화들은 종종 사회 결속과 동원에 매우 '유용'합니다. 그것들이 유용하기 때문에 참인가요?
비판 2 : 서로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른 진리
무엇이 '유용'한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릅니다. 같은 믿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유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한 사람에게는 참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인가요?
제임스는 이것을 어느 정도 인정했습니다. 종교적 믿음은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참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리의 개인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 방향으로 가면 공유된 진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비판 3 : 과거 진리의 문제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것은 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일어난 것으로, 지금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명제가 오늘날 참인 이유가 그것을 믿는 것이 지금 유용해서인가요?
역사적 진리, 수학적 진리처럼 유용성과 무관해 보이는 진리들을 실용주의가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비판 4 : 버트런드 러셀의 신랄한 비판
러셀은 제임스의 실용주의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제임스에 따르면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유용하다면 그것이 참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요?"
러셀은 유용성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것이 유용한지를 아는 것 자체가 이미 세계에 대한 진리 지식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유용성은 진리에 의존하지, 진리가 유용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탈진실의 시대 : 실용주의의 타락인가
탈진실이란 무엇인가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그 정의는 이렇습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에 호소하거나 개인적 믿음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
탈진실의 시대에는 사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가, 무엇이 그들의 정체성과 부합하는가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역사 내내 선전과 선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등장이 탈진실을 전례 없는 규모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탈진실과 실용주의의 관계
탈진실이 제임스의 실용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봅시다.
표면적으로 탈진실은 실용주의의 악용처럼 보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이 나에게 유용하므로 참이다"라는 논리가 탈진실의 심리적 토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나 감정적 기대를 확인해주는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반하는 정보는 '가짜 뉴스'로 거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임스가 의도한 실용주의와 다릅니다. 제임스에게 '유용함'은 단기적 심리적 편의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삶의 효과였습니다. 또한 퍼스의 실용주의는 과학적 탐구의 정신, 즉 증거에 의한 수정 가능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탈진실은 오히려 실용주의의 정반대입니다. 진정한 실용주의는 자신의 믿음이 작동하지 않을 때, 즉 현실과 충돌할 때 그 믿음을 수정합니다. 하지만 탈진실적 사고는 현실이 자신의 믿음과 충돌해도 현실을 부정합니다.
탈진실의 심리적 메커니즘
탈진실이 작동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인지과학이 잘 설명해줍니다.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 우리는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성적 추론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감정과 욕구에 의해 인도된 추론입니다.
역화 효과(Backfire Effect):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증거가 제시될 때 오히려 그 믿음이 더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정정 정보가 오히려 원래 잘못된 믿음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탈진실 환경에서 팩트체킹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만 최근 연구에서는 역화 효과의 광범위한 적용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정체성 보호 인지(Identity-protective Cognition):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과 연결된 믿음들은 증거에 기반한 수정에 매우 저항적입니다. 믿음을 바꾸는 것이 자아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탈진실의 구조적 원인
탈진실은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적 원인들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참과 거짓보다 참여와 분노를 최적화합니다.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이 더 많이 공유됩니다. EP.14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더 빠르게 퍼집니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의 하락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EP.15에서 탐구한 것처럼, 제도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될 때 사람들은 대안적 정보 출처를 찾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권위를 얻습니다.
정보 과잉도 역설적으로 탈진실에 기여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를 때,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과 감정에 의존합니다.

■ 합의 이론 : 또 다른 진리의 길
실용주의와 탈진실 사이에서, 또 다른 진리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합의 이론(Consensus Theory)입니다.
핵심 주장
합의 이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진리는 이상적인 조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탐구자들이 합리적 논의를 통해 도달한 합의이다."
이것은 단순히 다수결이 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 강압, 편견이 배제된 이상적인 토론 상황에서 합리적 논거만으로 이루어지는 합의가 진리에 가장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성
합의 이론의 가장 정교한 버전은 EP.18에서 소개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이성(Communicative Rationality)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버마스에게 진리는 '이상적 담화 상황(Ideal Speech Situation)'에서 성립합니다. 이 상황의 조건은 이렇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평등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더 나은 논거만이 설득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권력, 지위, 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주장은 비판적 검토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 이상적 상황은 현실에서 완전히 달성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버마스에게 이 이상은 우리가 실제 담화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기준으로 기능합니다.
합의 이론의 강점과 문제점
합의 이론은 지식의 사회적 성격을 잘 포착합니다. 과학적 합의, 민주적 결정, 법적 판례 — 이것들은 모두 사회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진리입니다.
하지만 비판도 있습니다. 합의 자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광범위한 합의가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경우가 많습니다. 지구 중심설, 의학적 방혈 치료, 특정 인종의 열등성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그 예입니다.
또한 현실의 담화 상황은 항상 권력 불균형을 포함합니다. 하버마스의 이상적 담화 상황은 규범적 이상이지, 현실 기술이 아닙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윌리엄 제임스 (1842~1910)
미국 실용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적 저술가였습니다. 그의 강연과 저서들은 실용주의를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제임스에게 진리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정된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계속 검증되고 수정되는 것입니다.
그의 종교 철학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더라도, 신을 믿는 것이 삶에서 의미와 힘을 준다면 그 믿음은 '진리의 권리를 가진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논란이 많은 주장이지만, 믿음의 실용적 차원을 포착합니다.
존 듀이 (1859~1952)
듀이에게 진리는 탐구의 결과입니다. 문제 상황이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그 해결에 기여한 믿음들이 검증된 것입니다.
교육 철학자로서 듀이는 이것을 교육에 적용했습니다. 진정한 학습은 실제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추상적 명제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오늘날에도 혁신적 교육의 토대로 남아있습니다.
리처드 로티 (1931~2007)
미국의 신실용주의 철학자 로티는 가장 급진적인 실용주의자입니다. 그는 진리 개념 자체를 해체하려 했습니다.
로티에게 진리는 다음 두 가지 의미에서만 유용합니다. 첫째, "그것은 참이다"는 단순히 "나는 그것을 믿는다"를 강조한 표현입니다. 둘째, 어떤 믿음을 일시적으로 확정된 것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관행의 표현입니다.
로티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 대신, 특정 공동체와 실천 안에서 무엇이 잘 작동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상대주의처럼 보이지만, 로티는 연대와 공동체적 실천이 진리의 추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로티의 입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진리 개념을 포기하면 어떻게 억압적 관행을 비판할 수 있는가? 공동체의 실천이 잘못되었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비판하는가?
해나 아렌트 (1906~1975)
아렌트는 진리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이성적 진리(Rational Truth), 즉 수학적, 철학적 진리와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 즉 역사적 사건에 관한 진리입니다.
그녀에게 사실적 진리는 특히 취약합니다. 이성적 진리는 논증으로 반박할 수 있지만, 사실적 진리는 단순히 부정하거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으로 공격받습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 정권이 사실적 진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히틀러 독일과 스탈린 소련에서 역사는 다시 쓰였습니다. 아렌트에게 사실적 진리를 지키는 것은 정치적 자유의 핵심 조건입니다.
오늘날 탈진실 시대에 아렌트의 통찰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습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탈진실 시대의 한국
한국도 탈진실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완전히 다른 '사실'을 주장하는 집단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촛불 집회, 코로나 방역, 검찰 개혁 — 이런 사건들을 둘러싸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서사들이 충돌합니다. 각 진영은 자신의 서사를 '진실'로, 상대방의 서사를 '가짜 뉴스'로 규정합니다.
이 상황에서 공유된 사실적 토대의 부재가 민주적 대화를 어렵게 만듭니다. 가치관의 차이는 협상과 타협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실 자체가 다르다면 대화의 공통 기반이 없어집니다.
실용적 진리의 긍정적 측면
하지만 실용주의적 진리 이해가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공중 보건 분야에서 실용적 진리 이해는 매우 유용합니다. "이 백신이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임상 시험이라는 실용적 탐구를 통해 검증됩니다. 이것이 퍼스의 의미에서 진리입니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수법이 효과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학습 결과라는 실용적 기준을 통해서입니다. 이론적으로 아름다운 교수법이 실제 학습 효과가 없다면, 그 교수법의 우월성 주장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균형 잡힌 진리 추구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극단을 피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절대적 진리를 확신하는 독단주의를 피해야 합니다. 역사는 그 확신이 얼마나 많이 틀렸는지를 보여줍니다. 겸손과 수정 가능성이 건강한 진리 추구의 조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각자의 진실이 있다"는 극단적 상대주의도 피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권력만이 남는 세계로 이어집니다. 공유된 사실과 검증 가능한 진리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서야 합니다. 진리를 겸손하게 추구하되, 그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것. 수정 가능하되 증거에 따라 수정하는 것.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되 모든 주장이 동등하다고 보지 않는 것.
이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와 지적 정직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시리즈 전체가 훈련하려는 것입니다.
■ 진리 이론의 종합 : 어디에 서야 하는가
우리는 EP.23과 EP.24에서 네 가지 주요 진리 이론을 살펴봤습니다.
대응 이론: 진리는 현실과의 대응이다. 정합 이론: 진리는 믿음 체계 내의 정합이다. 실용주의 이론: 진리는 실천적 효과로 검증된다. 합의 이론: 진리는 이상적 조건에서의 합리적 합의이다.
각 이론은 진리의 중요한 측면을 포착하면서도 각각의 한계를 가집니다. 이 이론들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으로 볼 때, 더 풍요로운 진리 이해가 가능합니다.
경험적 사실에서는 대응이 핵심입니다. 이론적 체계에서는 정합이 핵심입니다. 실천적 검증에서는 실용적 효과가 핵심입니다. 사회적 지식 생산에서는 합리적 합의가 핵심입니다.
어쩌면 진리는 너무 복잡한 개념이어서 하나의 이론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 진리를 단순화하여 독단에 빠지는 것보다 지적으로 더 정직한 태도입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당신이 최근에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라고 확신했지만, 나중에 그것이 생각보다 복잡하거나 다른 측면이 있었음을 발견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에서 어떤 진리 이론이 작동하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오늘날 탈진실 환경에서, 당신 자신이 동기화된 추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다음 회 예고
진리의 본질을 두 편에 걸쳐 탐구했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가 직면한 진리의 가장 심각한 위기로 들어갑니다.
EP.25 탈진실의 시대: 우리는 왜 거짓을 믿는가
"사실은 신성하다." 이 오래된 저널리즘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습니다. 음모론이 주류로 진입합니다. 과학적 합의가 정치적 의견처럼 취급됩니다. 왜 우리는 이 시대에 거짓을 이토록 쉽게 믿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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