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의 질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은 극단적인 회의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모든 주장은 동등하게 의심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피론은 이 철학을 너무 철저하게 실천하여 달려오는 수레를 피하지 않았고, 절벽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항상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위험을 피하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겠지만, 핵심을 포착합니다. 진리를 완전히 부정하면 삶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반대 극단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적 진리를 알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 이데올로기적 광신도들이 그렇습니다. 이 확신이 얼마나 많은 폭력과 고통을 낳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진리에 대한 두 극단(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주의와 모든 것을 확신하는 독단주의)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서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찾으려면 먼저 물어야 합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이것은 참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확히 무슨 주장을 하는 것인가요? '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호해집니다.
오늘부터 두 편에 걸쳐 진리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첫 번째 편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직관적인 두 이론, 대응 이론과 정합 이론을 살펴봅니다.
■ 생각의 실마리 : 진리 이론이 필요한 이유
"하늘은 파랗다"는 것은 참입니다. "2+2=5"는 거짓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왜 전자는 참이고 후자는 거짓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바로 진리 이론입니다.
진리 이론(Theory of Truth)은 '참'이라는 개념 자체를 분석합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어떤 주장이 참이 되는가? 진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리는 하나인가, 아니면 여럿인가?
이 질문들이 순수 철학적 유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과학, 역사, 도덕, 정치 모든 영역에서 지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논쟁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서술이 충돌할 때, "진리는 하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각자의 관점에서 다른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충돌을 완전히 다르게 다룹니다.
주요 진리 이론으로는 대응 이론, 정합 이론, 실용주의 이론, 합의 이론이 있습니다. 오늘은 처음 두 이론을 깊이 살펴봅니다.

■ 첫 번째 이론 : 대응 이론 (Correspondence Theory)
핵심 주장
대응 이론의 핵심은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어떤 명제는 그것이 기술하는 사실과 대응할 때 참이다."
"눈은 희다"는 명제는 실제로 눈이 희기 때문에 참입니다. "눈은 검다"는 명제는 실제 눈의 색과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입니다.
진리란 언어(또는 생각)와 세계 사이의 대응 관계입니다. 우리의 주장이 실제 세계의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할 때 그 주장은 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 진리 개념과 가장 가깝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다", "현실에 맞는 주장" — 이런 표현들이 대응 이론의 직관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대응 이론은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진리 이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반대로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다."
이 정의가 대응 이론의 원형입니다. 말과 현실의 일치가 진리라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을 'Adaequatio intellectus et rei', 즉 "지성과 사물의 일치"로 표현했습니다. 중세 철학을 통해 이 입장이 서양 사상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대응 이론의 강점
대응 이론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입니다.
직관적 설득력: 우리가 진리를 이해하는 일상적 방식과 가장 잘 맞습니다. "사실을 말한다"는 것이 바로 현실과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는 직관이 있습니다.
과학적 탐구의 토대: 과학은 세계에 대한 이론이 실제 세계와 얼마나 잘 맞는지를 검증합니다. 이것이 대응 이론의 실천입니다. 실험 결과가 이론의 예측과 일치하면 그 이론은 참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도덕적 명확성: 거짓말이 나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대응 이론이 유용합니다. 거짓말은 현실과 대응하지 않는 말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대응 이론의 문제점
그러나 대응 이론은 심각한 철학적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문제 1 : '대응'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눈은 희다"는 명제와 실제 눈 사이의 '대응'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가요? 언어와 세계의 대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초기의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명제는 세계의 사실을 그림처럼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최선의 정치 체제다", "살인은 나쁘다" 같은 명제는 물리적 현실과 어떻게 '그림처럼' 대응하는가요? 추상적 명제, 보편적 명제, 부정문, 미래에 관한 명제 등에서 대응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문제 2 : 독립적 현실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대응 이론은 언어나 사고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와 사고를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합니다. 우리의 모든 접근이 언어와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그것과 독립된 '날것의 현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칸트가 제기한 문제와 연결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물자체(Ding an sich)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틀이 구성한 현상 세계입니다. 진리가 이 현상 세계와의 대응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인식 틀에 상대적입니다.
문제 3 : 도덕적, 수학적 진리에 적용 어렵다
"살인은 나쁘다"는 것이 참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명제는 어떤 물리적 사실에 대응하는가요? '나쁨'이라는 성질이 세계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요?
수학적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2+2=4"는 어떤 물리적 사실에 대응하는가요? 수학적 대상인 수(數)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물리적 영역의 진리를 대응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응 이론의 현대적 발전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여 현대 철학자들은 대응 이론을 정교화했습니다.
알프레드 타르스키의 의미론적 진리 이론(Semantic Theory of Truth)이 대표적입니다. 그의 유명한 공식은 이것입니다.
"'눈은 희다'는 참이다 ↔ 눈은 희다."
이것은 순환적으로 보이지만, 타르스키는 메타언어(Meta-language)와 대상언어(Object-language)를 구분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진리 술어를 대상 언어에 적용하는 메타 언어적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이 접근은 수학과 논리학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상 언어와 도덕적 담론에 적용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 두 번째 이론 : 정합 이론 (Coherence Theory)
핵심 주장
정합 이론은 대응 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가집니다.
"어떤 명제는 다른 명제들의 체계와 정합(coherent)할 때, 즉 모순 없이 잘 맞아들어갈 때 참이다."
진리는 언어와 독립적 현실 사이의 대응이 아니라, 믿음들의 내부적 일관성과 상호 지지에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명제가 참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우리가 이미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다른 명제들과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가입니다.
정합 이론의 직관
왜 이런 이론이 필요할까요?
대응 이론의 핵심 문제를 다시 봅시다. 우리는 언어와 독립된 현실에 직접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과 인식은 이미 언어, 개념, 이론을 통해 형성됩니다. '날것의 현실'과 우리 주장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리를 검증하는가요? 우리가 실제로 하는 것은 새로운 주장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다른 주장들, 증거들, 이론들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주장이 기존 체계에 잘 들어맞으면 참으로 받아들이고, 모순이 있으면 의심합니다.
이것이 정합 이론이 포착하는 직관입니다.
역사와 과학에서의 정합
역사학에서 정합 이론은 매우 자연스럽게 적용됩니다.
역사가가 어떤 과거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할 때, 그 주장이 참인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요? '날것의 과거'와 직접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역사가는 남아있는 사료들, 물질 증거들, 다른 역사적 사실들과 그 주장이 얼마나 잘 정합하는지를 따집니다.
어떤 역사적 주장이 다른 잘 확립된 역사적 사실들과 자연스럽게 맞아들어가고, 다양한 독립적 사료들에 의해 지지되며, 기존의 역사 지식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참으로 받아들입니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이론의 수용은 그것이 기존의 잘 확립된 이론들, 실험 데이터, 수학적 체계와 얼마나 잘 정합하는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받아들여진 것은 그것이 전자기학, 광학, 역학의 기존 지식과 정합하면서도 그 이상을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정합 이론의 강점
인식론적 현실성: 우리가 실제로 진리를 검증하는 방식과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고립된 명제와 현실을 직접 비교하지 않습니다. 명제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새로운 주장을 평가합니다.
수학과 논리에 자연스럽게 적용: 수학적 진리는 수학 체계의 공리와 규칙들과의 정합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리가 참인 이유는 그것이 공리들에서 모순 없이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론적 지식에 적합: 직접 관찰하기 어려운 이론적 실체들, 예를 들어 원자, 유전자, 블랙홀 같은 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들에 관한 주장이 광범위한 이론적 체계와 얼마나 잘 정합하는지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정합 이론의 문제점
그러나 정합 이론도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문제 1 : 정합하는 허구
가장 강력한 비판입니다. 내부적으로 완전히 정합하는 허구 체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 짜인 소설의 세계는 내부적으로 정합합니다. 체계적인 망상도 내부적으로 일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합성만으로는 진리와 정교한 거짓말, 일관된 현실과 일관된 환상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두 개의 서로 모순되는 완전히 정합적인 믿음 체계가 있을 때, 어떤 것이 진리인지를 정합 이론은 결정할 수 없습니다.
문제 2 : 어떤 체계와의 정합인가?
어떤 믿음 체계를 기준으로 삼는가가 문제입니다. 중세 유럽의 믿음 체계와 현대 과학적 믿음 체계는 서로 정합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더 진리에 가까운가요? 정합 이론 자체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떤 새로운 발견이 기존 체계와 충돌할 때, 새로운 발견을 거부하는 것도, 기존 체계를 수정하는 것도 정합을 유지하는 방법이 됩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를 정합성 기준만으로는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 3 : 진리의 최소성
극단적 정합주의는 외부 세계의 존재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믿음들의 내부 일관성만이 진리의 기준이라면, 외부 세계는 불필요합니다. 이것은 상식적 직관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단순히 우리 믿음들의 일관성이 아니라, 실제 세계와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대응 이론과 정합 이론의 비교
두 이론을 직접 비교해봅시다.
무엇을 강조하는가: 대응 이론은 진리의 외부적 조건을 강조합니다. 진리는 마음 밖의 현실에 달려 있습니다. 정합 이론은 진리의 내부적 조건을 강조합니다. 진리는 믿음들의 내부 구조에 있습니다.
어디에 적합한가: 대응 이론은 경험적, 관찰 가능한 사실들을 다루는 데 더 자연스럽습니다. 정합 이론은 이론적, 수학적, 역사적 지식을 다루는 데 더 자연스럽습니다.
핵심 어려움: 대응 이론은 언어/사고와 독립적 현실의 대응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합 이론은 정합하는 허구를 진리와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은 두 이론이 배타적이지 않으며,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이론이 더 잘 작동한다고 봅니다.
■ 두 이론 사이의 긴장 : 실제 사례
과학적 이론의 진리성
뉴턴 역학은 수백 년간 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대응 이론에 따르면, 그것이 참이었던 이유는 실제 세계와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면서 뉴턴 역학은 근사적으로만 참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뉴턴 역학이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건가요? 아니면 특정 조건 범위에서는 참이었던 건가요?
정합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뉴턴 역학은 당시의 관측 데이터와 수학적 체계에 잘 정합했기 때문에 참이었습니다. 더 넓은 현상을 포괄하는 새로운 체계가 나왔을 때, 기존 이론은 더 작은 정합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과학의 진보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진리성
"임진왜란은 1592년에 시작되었다"는 참입니다. 대응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검증하는가요?
정합 이론에 따르면, 이 주장이 다양한 독립적 사료들, 고고학적 증거들, 다른 역사적 사실들과 잘 정합하기 때문에 참으로 받아들입니다.
역사적 진리에서는 두 이론이 실제로 협력합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것과의 대응이지만,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은 다양한 증거들 사이의 정합을 통해서입니다.
도덕적 진리
"고문은 나쁘다"는 참인가요? 대응 이론은 이것에 어떤 물리적 사실이 대응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정합 이론의 관점에서는, 이 명제가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은 나쁘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같은 다른 도덕적 명제들과 정합하기 때문에 참입니다.
하지만 도덕적 정합주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완전히 정합하는 도덕 체계가 있었습니다. 그 체계와의 정합이 노예제를 정당화하는가요?
■ 철학자의 목소리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
대응 이론의 원형을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를 존재의 문제와 연결했습니다.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참인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깊은 통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리는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있는가가 진리의 기준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 독립적 실재론(Mind-independent Realism)'이 대응 이론의 토대입니다.
프란시스 브래들리 (1846~1924)
영국 관념론 철학자 브래들리는 정합 이론의 가장 체계적인 옹호자였습니다. 그에게 현실은 단일하고 총체적인 절대 정신(Absolute)이며, 진리는 이 전체와의 정합에 있습니다.
개별적인 판단은 부분적으로만 참입니다. "이 장미는 붉다"는 명제는 이 장미, 붉음, 그것들의 관계를 총체적 실재 속에서 이해할 때만 완전히 참이 됩니다. 맥락에서 분리된 고립된 명제는 항상 부분적입니다.
브래들리의 관념론은 오늘날 주류 철학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진리가 개별 명제의 속성이 아니라 전체 체계의 속성이라는 정합 이론의 핵심 직관을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러셀은 처음에 브래들리의 관념론에 영향을 받았다가 나중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는 '논리적 원자론(Logical Atomism)'을 통해 대응 이론을 지지했습니다.
러셀에게 진리는 명제와 사실의 대응에 있습니다. 그는 명제의 논리적 구조가 세계의 사실의 구조를 반영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러셀도 대응 이론의 어려움을 인식했습니다. 특히 부정 사실("용은 존재하지 않는다")과 일반 명제("모든 까마귀는 검다")에서 대응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문제들과 씨름했지만 완전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토 노이라트 (1882~1945)
오스트리아의 논리실증주의자 노이라트는 정합 이론을 지지하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마치 항해 중에 배를 수리해야 하는 선원과 같다. 우리는 마른 도크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지을 수 없다."
우리의 지식 체계는 한꺼번에 의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미 존재하는 지식 체계 안에서 개별 믿음들을 수정합니다. 새로운 지식은 항상 기존 체계와의 정합을 통해 평가됩니다. 아무런 기반 없이 세계와 직접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비유는 대응 이론의 한계를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미 체계 안에 있습니다.
힐러리 퍼트넘 (1926~2016)
퍼트넘은 두 이론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내재적 실재론(Internal Realism)'을 제안했습니다.
진리는 순수하게 마음 독립적 사실과의 대응도 아니고, 순수하게 믿음들의 내부적 정합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 활동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퍼트넘에게 진리는 '인식론적으로 이상적인 조건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충분한 증거, 충분한 반성, 편견 없는 탐구 — 이런 이상적 조건에서 우리가 받아들이게 될 것이 진리에 가장 가깝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절대화하지도, 상대화하지도 않는 중간 입장입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언론과 진리
언론은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언론이 추구하는 진리는 어떤 종류인가요?
대응 이론의 관점에서, 좋은 언론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도합니다. 사실 확인(Fact-checking)은 이 대응 이론적 이상의 실천입니다.
하지만 정합 이론의 관점도 중요합니다. 개별 사실들을 정확하게 보도해도, 그것들이 더 넓은 맥락과 어떻게 정합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통계의 오용이 대표적입니다. 개별 수치는 정확하지만, 더 넓은 맥락에서는 왜곡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진리의 문제는 더욱 긴박해졌습니다. EP.14에서 살펴본 가짜 뉴스 문제는 결국 진리의 기준에 관한 문제입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에 대한 공유된 기준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적 대화도 무너집니다.
법정에서의 진리
법정은 진리를 추구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법정이 추구하는 진리는 어떤 종류인가요?
형사 법정은 주로 대응 이론적입니다. "피의자가 그 행위를 했는가?"라는 질문은 실제 사건과의 대응을 묻습니다.
하지만 법적 진리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증거'를 통해 구성됩니다. 이것은 정합 이론적입니다. 다양한 증거들이 유죄 또는 무죄의 서사와 얼마나 잘 정합하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흥미롭게도 민사 법정은 '증거의 우위(Preponderance of Evidence)'를 기준으로 합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개연성이 높은가, 즉 더 잘 정합하는가를 따집니다.
역사 교육과 진리
교과서에 실리는 역사적 진리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요?
대응 이론의 관점에서 역사적 진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의 대응입니다. 역사가의 역할은 이 대응을 최대한 정확하게 달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해석을 포함합니다. 어떤 사건을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서술하는가는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섭니다. 여기서 정합 이론이 작동합니다. 역사적 서술은 더 넓은 역사적 이해의 체계와 정합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 차이, 또는 북한과 남한의 현대사 서술 차이는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맥락 체계 안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떤 서술이 더 진리에 가까운가를 판단하려면 대응 이론과 정합 이론 모두가 필요합니다.
■ 두 이론을 넘어서
대응 이론과 정합 이론은 각각 진리의 중요한 측면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로 진리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다원적 진리 이론(Pluralist Theory of Truth)을 선호합니다. 다른 영역의 주장들에 대해 다른 진리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험적 사실에 관한 주장에서는 대응이 핵심입니다. 수학적 명제에서는 체계 내 정합이 핵심입니다. 도덕적 주장에서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음 편에서 살펴볼 실용주의 이론과 합의 이론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진리 이론의 다양성이 진리의 상대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가 너무 복잡하고 풍요로워서 하나의 이론으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일상에서 "그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할 때,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그 판단을 내립니까? 그 기준이 대응 이론적입니까, 즉 실제 세계와의 대응을 따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합 이론적입니까, 즉 다른 믿음들과의 일관성을 따지는 것입니까? 그리고 두 기준이 충돌하는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증거가 당신이 이미 가진 믿음 체계와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 다음 회 예고
대응 이론과 정합 이론의 강점과 한계를 탐구했습니다. 이제 진리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 방식들로 나아갑니다.
EP.24 진리란 무엇인가 (2): 실용주의 이론과 탈진실의 시대
"진리는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다." 이 충격적인 주장이 실용주의 진리 이론의 핵심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 검증된다는 이 입장은, 추상적 형이상학에서 진리를 해방시키려 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입장이 극단까지 밀려가면 탈진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실용주의 진리 이론과 우리 시대의 탈진실 위기를 함께 탐구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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