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론/프롤로그

EP.03 우리가 아는 것의 지도: 지식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by 책으로떠나는여행 2026. 4. 21.

■ 오늘의 질문

어린 시절, 세계지도를 처음 펼쳐보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드넓은 대륙들, 수많은 나라들, 그 사이를 흐르는 바다와 강들. 지도는 복잡한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줍니다. 물론 지도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실제 세계를 단순화하고 압축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지도가 없다면 우리는 방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그것은 놀랍도록 다양하고 넓은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법을 '아는 것'과 피타고라스 정리를 '아는 것'은 같은 종류의 앎일까요?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것'과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아는 것'은 같은 방식으로 얻어진 것일까요?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과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은 같은 기준으로 검증될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지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각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얻어지며, 서로 다른 기준으로 검증됩니다. 오늘은 그 지식의 지도를 함께 펼쳐보겠습니다. 이 지도를 손에 쥐면, 앞으로 이어질 모든 이야기가 훨씬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 생각의 실마리 — 지식의 세 가지 기본 유형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지식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왔습니다. 영어로는 각각 "knowing that", "knowing how", "knowing of"라고 부릅니다. 이 세 가지 구분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첫 번째 — 명제적 지식 (Propositional Knowledge) "~라는 것을 안다"
가장 전형적인 의미의 지식입니다. 어떤 사실이나 명제가 참임을 아는 것입니다.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 물은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끝났다.
  •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년이다.

이런 종류의 앎입니다.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고,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합니다.
명제적 지식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선험적 지식(A priori knowledge): 경험 없이도 순수한 이성만으로 알 수 있는 것. 수학과 논리학이 대표적입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는 실제로 수백만 개의 삼각형을 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성적 추론만으로 필연적으로 참임을 알 수 있지요.
후험적 지식(A posteriori knowledge):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자연과학의 지식이 대표적입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직접 실험하고 관찰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생각해도 이 사실을 논리만으로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학과 과학은 모두 '안다'는 말을 쓰지만, 그 '앎'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수학적 진리는 실험으로 반증할 수 없지만, 과학적 이론은 언제나 새로운 관찰에 의해 수정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 절차적 지식 (Procedural Knowledge) "~하는 방법을 안다"
이것은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지식입니다.

  • 자전거 타는 법을 안다.
  • 피아노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 법을 안다.
  •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안다.
  •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화법을 안다.

이 지식의 가장 큰 특징은, 언어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자세하게 글로 써도, 그것을 읽은 사람이 바로 자전거를 탈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넘어지고, 균형을 잡고, 몸으로 익혀야 합니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이것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는 그의 유명한 말은 바로 이 절차적 지식의 본질을 가리킵니다.
숙련된 의사는 환자의 얼굴만 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장인은 손으로 재료를 만져보면 그 품질을 알 수 있습니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의 표정 하나에서 이해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읽어냅니다. 이런 앎은 언어로 완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오직 수련과 경험을 통해서만 몸에 배어드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지혜 역시 이 절차적 지식, 암묵지의 형태를 띱니다. 젊은이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앎이 있습니다.


세 번째 — 친숙의 지식 (Knowledge by Acquaintance) "~을/를 안다 (직접 경험으로)"
이것은 직접적인 만남이나 경험을 통해 얻는 앎입니다.

  • 나는 파리를 안다. (직접 가봤기 때문에)
  • 나는 그 슬픔을 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 나는 바흐의 음악을 안다. (오래 들어왔기 때문에)
  • 나는 그 사람을 안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파리에 가본 사람과 가보지 못한 사람이 '파리'에 대해 아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책과 사진과 영상으로 파리를 공부해도, 직접 에펠탑 아래 서서 센강의 바람을 느낀 사람이 아는 파리와는 다릅니다. 이 차이가 바로 친숙의 지식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것을 '직접 지식(Knowledge by Acquaintance)'과 '기술 지식(Knowledge by Description)'으로 나눴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과 언어적 기술(記述)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학과 예술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됩니다. 고흐의 그림 앞에 서면, 어떤 명제나 설명 없이도 그 고독과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지식입니다.


■ 지식의 영역 — 더 넓은 지도

세 가지 유형 외에도, 지식은 어떤 영역에 속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지형을 형성합니다. IB 지식론에서는 지식의 영역을 크게 여덟 가지로 나눕니다. 이 여덟 영역은 이 시리즈의 3부에서 각각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만, 오늘은 그 전체 윤곽을 먼저 살펴봅시다.
① 자연과학 (Natural Sciences)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연 세계의 법칙을 발견합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이 여기에 속합니다. 자연과학의 지식은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핵심으로 합니다. 어떤 이론이 실험으로 틀렸음이 밝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과학적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의 이 기준은 오늘날에도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② 인문사회과학 (Human Sciences)
인간의 행동, 사회 구조, 심리를 연구합니다.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이 여기에 속합니다. 자연과학처럼 실험을 하지만, 연구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훨씬 복잡합니다. 사람은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행동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관찰자 효과라고 합니다.
③ 역사 (History)
과거의 사건을 탐구합니다. 역사의 지식은 다른 영역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과거는 직접 관찰할 수 없고,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을 통해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가의 관점과 해석이 필연적으로 개입됩니다. "역사는 사실인가, 해석인가"라는 질문은 이 시리즈 3부에서 깊이 다룰 것입니다.
④ 수학 (Mathematics)
논리적 추론만으로 절대적 진리를 도출합니다. 수학적 명제는 한번 증명되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참입니다. 이 점에서 수학의 지식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확실성이 수학을 현실에서 분리시키기도 합니다. "수학은 발견인가, 발명인가"라는 질문은 수학 철학의 핵심 논쟁입니다.
⑤ 예술 (The Arts)
예술은 지식을 전달하는 고유한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음악, 문학, 회화, 영화는 언어적 명제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합니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조건, 감정의 깊이, 삶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됩니다. 이 앎은 주관적이지만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앎일 수 있습니다.
⑥ 윤리학 (Ethics)
옳고 그름, 선과 악에 관한 지식입니다. "살인은 나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인가요? 아니면 문화적 합의인가요? 보편적 도덕 진리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도덕은 상대적인가 — 이 질문은 인류가 아직 완전한 답을 찾지 못한 영역입니다.
⑦ 종교적 지식 (Religious Knowledge)
신앙, 계시, 전통을 통해 궁극적 의미와 진리를 탐구합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종교적 앎이 인간에게 근본적인 무언가를 채워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과학과 종교는 반드시 충돌해야 하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는 것인가 — 이것도 앞으로 다룰 중요한 주제입니다.
⑧ 토착 지식 (Indigenous Knowledge)
특정 지역과 공동체에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입니다. 아마존 원주민들이 수백 종의 약용 식물을 알고 활용하는 것, 북극 이누이트 족이 눈과 얼음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는 것, 한국 어촌 공동체가 대대로 전해온 날씨 예측법 — 이런 지식들은 서구 중심의 과학 체계에서 오랫동안 무시되었지만, 오늘날 그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 철학자의 목소리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최초의 철학자 중 하나입니다. 그는 지식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테오리아(Theoria): 순수한 이론적 앎. 수학, 철학, 신학처럼 그 자체로 목적인 앎입니다.
포이에시스(Poiesis):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앎. 건축, 의학, 시 창작처럼 결과물을 낳는 앎입니다.
프락시스(Praxis): 행동과 실천에 관한 앎. 윤리학과 정치학처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회를 운영할지에 관한 앎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높은 형태의 앎은 테오리아였지만, 그렇다고 포이에시스와 프락시스를 낮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각각은 고유한 가치와 기준을 가지며, 인간 삶의 서로 다른 영역을 채웁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1934~2021)
현대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절차적 지식, 즉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것이 절정에 이를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몰입(Flow)'이라고 불렀습니다.
피아니스트가 연주에 완전히 빠져드는 순간, 장인이 오랜 숙련 끝에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운동선수가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순간 — 이때 지식은 더 이상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명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절차적 지식이 완성된 모습입니다.
이를 보면, 지식은 단순히 머릿속에 쌓이는 정보가 아닙니다. 깊어진 지식은 결국 우리 존재 자체와 합쳐지는 것입니다.


■ 우리 삶에서 보면

왜 '많이 아는 사람'이 반드시 지혜롭지는 않은가
요즘은 정보가 넘쳐납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정보는 많은데 지혜는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보를 많이 아는 것, 즉 명제적 지식이 풍부한 것은 지식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그것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것, 즉 절차적 지식과 친숙의 지식이 함께 쌓였을 때 나옵니다. 책으로 백 가지 요리법을 암기한 사람보다, 평생 부뚜막 앞에서 요리해온 어머니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전문가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이 지식의 지도를 이해하면, 전문가를 신뢰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의사의 진단, 경제학자의 예측, 역사학자의 해석 — 이것들은 모두 명제적 지식이지만, 그 안에 각 분야의 절차적 지식과 친숙의 지식이 녹아든 결과입니다.
반대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대해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훌륭한 물리학자가 경제 정책에 대해 발언한다고 해서, 그것이 경제학자의 분석만큼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은 분야마다 다른 종류이고, 다른 기준으로 검증됩니다.
나이와 지식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지식이 쌓이는 것일까요? 많은 경우, 나이가 들면서 명제적 지식보다는 절차적 지식과 친숙의 지식이 깊어집니다. 삶을 살아내면서 몸으로 익힌 것들, 수많은 관계와 경험을 통해 쌓인 것들이 깊어집니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자동으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험들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점검할 때, 경험은 비로소 지식으로, 나아가 지혜로 깊어집니다.


■ 지식의 지도를 손에 쥐고

오늘 우리가 그린 지식의 지도를 정리해봅시다.
지식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사실임을 아는 것 — 명제적 지식. 무언가를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 — 절차적 지식. 무언가를 직접 경험으로 아는 것 — 친숙의 지식.
그리고 이 지식들은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역사, 수학, 예술, 윤리학, 종교, 토착 지식이라는 여덟 가지 영역에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 지도를 갖게 되면, 우리는 훨씬 정밀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안다"고 말할 때, 어떤 종류의 앎인지, 어떤 기준으로 검증된 것인지, 어떤 영역에 속하는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질문들이 바로 진정한 지식 탐구의 시작입니다.


■ 오늘의 지식 질문

오늘 하루 당신이 '안다'고 말한 것들을 떠올려보세요. 그것들은 명제적 지식입니까, 절차적 지식입니까, 아니면 친숙의 지식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영역에 속합니까? 그 앎을 얻은 방식은 그 종류에 걸맞은 것이었습니까?


■ 다음 회 예고
지식의 지도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 그 지도를 탐험할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EP.04 — 질문이 답보다 중요한 이유: 지식 질문이란 무엇인가
"왜?"라고 묻는 아이는 어른들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질문하는 법을 잊어갑니다. 이미 정해진 답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앎은 언제나 좋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어떤 질문이 우리를 깊은 앎으로 이끄는지, 그리고 그 질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함께 탐구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구독과 즐겨찾기로 함께해 주세요. 🙏


 

반응형